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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實)의 공(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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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12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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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실]의 功[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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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나이 여덟 살 적, 지금 우리 큰아이 실(實)만 하여서 시골서 보통 학교엘 다닐 때에, 선생님한테서 우표저금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이 40이 되어 이번에는 우리 실이한테서 달력저금의 묘미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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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저금하던 이야기부터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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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선생님이 시간에 들어오시더니, 학과를 시작하는 대신, 사람은 누구나 저금을 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저금은 어려서부터 재미와 버릇을 들여야만 자라서도 꾸준히 계속하게 되는 것이니 제군도 부디 오늘부터 시작을 하도록 하라고 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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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저금을 하는 방법으로는 저금은 한 번에 10전 이상씩을 하여야 하는 것인데, 제군은 아직 어리니깐 한꺼번에 10전씩 저금을 하기가 좀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제군은 우표저금이라는 것을 하도록 하여라. 우편소에 가면 우표저금 대지라는 것을 준다. 우표를 열 장을 붙이도록 줄을 그어 만든 빳빳한 종이조각이다. 그 우표저금 대지를 얻어다 두고서, 1전이 생기 거든 1전 우표 한 장을 사서 대지에다 붙인다. 또 2전이나 3전이 생기면, 1 전 우표 두 장이나 석 장을 사서 붙인다. 그렇게 하여서 1전 우표 열 장을 다 붙이어, 10전이 차거들랑 그때는 도장을 가지고 우편소에 가지고 간다. 우편소에서는 저금통장에다 10전 저금한 것을 올리어, 일부인 찍은 그 대지와 함께 내어준다. 그 다음에도 또 1전이 생기면 1전 우표 한 장을, 3전이 생기면 1전 우표 석 장을 사서 대지에 붙이고 하다가 마지막 열 장이 되거 든, 그 때는 도장은 그만두고 통장과 그 대지만 가지고 우편소에 가면, 또 다시 십 전 저금을 한 것으로 통장에다 올려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표저금이다. 한번 맛을 들이면 계속해서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저금이다.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께 돈을 타거들랑 군것질이나 할 생각을 말고, 우표를 사서 대지에다 붙이고 붙이고 하여, 부디 저금을 하도록 하여라. 1전 2전이 모여 10전이 되고, 그것을 열 번 하면 1원, 백 번 하면 10원이 아니 되느 냐. 천 번 이면 백 원이 아니 되느냐. 백 원이면 제군은 만져보지도 못한 큰 돈이다. 그런 큰 돈이 1전 2전을 쓰지 아니하고 우표를 사 모아서 합쳐진 돈이다. 이야말로 진합 태산이라는 것이다. 잘들 알아들었느냐. 그럼 오늘부터 저금할 사람은 손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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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아이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죄다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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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만족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질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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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꼭 1전 우표루만 해야지 1전 5리나 2전 우표루 험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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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될 리가 있나! 1전 오리 우표를 열 장 사서 붙여가지구 15전을 해두 좋구, 2전 우표루 해서 20전을 해두 좋구 허지. 그렇지만 처음 1전 우표를 붙였으면 1전 우표루만, 또 2전 우표를 붙였으면 2전 우표루만 열 장을 채워야 하는 법야. 대지 한 장에다 1전 우표두 붙였다, 1전 오리 우표나 2전 3전 우표두 붙였다 해선 안되는 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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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이렇게 주의를 시켰건만 아이들 중에는 한 대지에다 1전 우표와 2전 우표니 5리 우표를 섞어 붙이어, 웃음을 산 일도 있었다. 우표저금이 빚어낸 조그만한 희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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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이야 어린아이들이 10전이라는 돈을 예사로 알지만, 30년 전이면 1전 한푼에 눈깔사탕을 열 개씩이나 주고, 쌀 한 되에 4전 5전 하던 시절이라, 10전박이 반짝반짝하는 은전 한푼이, 그때의 어린아이들에게는 지금으로 치면 1원 한 장만치나 대단스런 돈이었다.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돈을 주는데도 그래서 항용 1전 2전이요, 엽전으로 두 푼 서 푼도 주고 하였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이 한목 10전 이상의 돈이 번번이 생겨 가지고 척척 저금을 한다는 것은, 일부 유족한 집 도령들 말고는, 전반적으로 그다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나 학교에서, 아동들에게 우표 저금을 권장하는 것은 지당한 노릇이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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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점심시간에 아버지를 생떼같이 졸라 10전을 타서 바로 우편소로 달려가 1전 우표 열 장을 사고, 대지를 얻고 하여 가지고는 도로 집으로 가서는 점심 먹기도 잊고 우표에다 풀칠을 하여가며 대지에 처덕처덕 붙였다. 그것을 둘째형이 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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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은 헐 수 없어! 우표두 풀칠해 붙인다든? 침이나 물루다 붙이는 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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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조롱하여서, 우선 톡톡히 망신을 당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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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한꺼번에 1전 우표 열 장을 붙여버린 대지를 가지고, 의기양양 학교로 가서, 자아 어떻습니까 첫째 했죠 하는 듯이 선생님 앞에다 내놓 기까지는 좋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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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렇지만 아버지 주머니를 털어서 한 목 이렇게 하기보담 군것질하는 돈으루다 오면가면 우표를 사붙여야 그게 더 잘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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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은근히 구슬려 주어서 거듭 무렴을 당하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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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저금을 얼마 동안이나 계속하였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러나 지금도 시골집 깊숙한 다락을 뒤진다면 그때의 낡은 통장과 일부인 찍힌 대지 뭉텅이가 당시의 재미스러웠던 세세한 기억과 함께 정녕 삐어져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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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는 나이 40이요. 우리 아이 실이가 마침 그때의 내 낫세가 되었다. 그애가 이번에는 나에게 달력저금의 묘미를 실행 으로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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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4월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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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건넌방에 혼자 들어박혀 일을 하고 있노라니까 실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저의 엄마더러 무엇인지 조르는 모양이더니, 한참 그러다 쿵쿵거리고 건너와 샛문을 펄쩍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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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 돈…… 으음 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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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끝을 더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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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아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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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해 무얼 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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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전만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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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네가 돈을 12전씩 해 무얼 허느냐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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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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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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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아버지? 12전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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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델 말해! 무얼 사 가질 영으루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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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가지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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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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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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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석 참!…… 가 엄마더러 달래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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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쬐꼬만 돈 없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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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용품을 산다거나, 또는 학교에 추렴을 내는 돈이거나 하면 일일이 말을 하여서, 사 달란다든지 돈을 타 간다든지 하도록 버릇을 들여둔 터라 막상 그런 용처는 아닐 것이요, 아마 장난감이라도 탐나는 것이 있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동무아이가 돈을 가진 것을 보고 저도 부러워 그러나보다쯤 여기 고, 무심히 1전 한 푼과 5전 두 푼을 꺼내서 쥐어주었다. 물론 나이가 마악 돈을 쥐고 나가서 함부로 군것질을 할 무렵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절이 시절이어서 거리의 가게에 과자니 과실 등속이 귀한 형편이라, 그만 낫세의 아이들에게 돈을 주기에 별양 불안은 느끼지 아니하여도 좋았다. 실상 또 일찍이 저 혼자서 거리에 나가 군것질을 하도록 습관을 들인 적도 없었다.
 
40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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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아이가 학교에 갔다 오더니 저의 엄마더러 무얼 조르다간 내게로 건너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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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 돈 13전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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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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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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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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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이라니? 무엇에 쓰길래 날마다 13전씩 돈을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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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껜 12전 아니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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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든가?…… 그래 오늘은 1전 더해 13전을 무엇에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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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13전 줘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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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녀석을 보겠나? 맡긴 것 내라듯 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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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아버지, 13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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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델 말해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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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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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니 너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니? 으응, 조끄만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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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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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직 그런 말 허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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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말이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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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말은 아니지만, 착한 아인 안직 그런 말은 허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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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신 안허께, 아버지 13전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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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할 수 없이 웃고, 13전을 주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14전을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흘째 디는 날에는 15전을, 닷새째 되는 날에는 16전을, 그렇게 날마다 1전씩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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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마다 1전씩 올라가는 것만 좀 이상히 여겼지, 여일히 주기나 하였을 뿐, 깜박 깨닫지 못하고 지났다. 그러나 마지막 30전을 준 바로 다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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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하다, 그 끝에 아내가 문득 생각이 나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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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요새두 실이가 날마다 돈 타가지군 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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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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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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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가 돈을 그렇게 타단 무엇에 쓰우? 아마 군것질에 팔렸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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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장남감이나 그런 것 사들이는 눈치 없읍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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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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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2전부터 시작해 가지군 매일 1전씩 올라간 것이 어저껜 한목 30번을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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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두 딱허시지, 어떡허자구 어린앨 돈을 그렇게 달래는 대루 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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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생각하니 아내에게 탓을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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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제 손그릇이랑 책상설합이랑 좀 뒤져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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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두 벌써 다 뒤져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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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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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 한푼 없어요! 정녕 군것질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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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군것질거리가 어디 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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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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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드래두 날마다 1전씩 올라가는 게 모를 속 아니요? 군것질이라면야 10전이면 10전, 20전이면 20전, 그렇지. 어째 12전, 13전, 연해 그러우?”
 
79
마악 그러고 있는데 마침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80
무엇인지 단단히 좋은 일이 있는 듯, 싱글거리면서 들어와, 나를 보기가 무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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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 돈 1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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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별안간 뚝 떨어져 1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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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자코 제 낯만 여새겨보고 있고, 아내가 내다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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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새 돈 타다 무엇에 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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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무람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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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그래도 벙실거리기만 하면서, 책가방으로부터 난데없는 저금 통장 한 벌과 목각도장 한 개를 꺼내놓았다. 저금통장도 도장도 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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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저금을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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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얼른 안색을 고쳐하고 묻는 것을 아이는 자랑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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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그렇게 험, 아주 재밌다구 허라구 했다누!”
 
90
나는 비로소 깨우칠 수가 있었다. 언제든가 신문에서 본 달력저금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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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날 달력에 나온 날짜대로, 초하룻날에는 1전, 초이튿날에는 2전, 열흘날이면 10전, 보름날에는 15전, 그리고 30일날이면 30전…… 이렇게 매일 매일 모은 것을 그믐날에 가서 저금통장에다 올리고 올리고 하는 것이었다.
 
 
92
저금통장을 집어 펼쳐 보니 5월1일 일부로 3원 49전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선생이 써보낸 것인 듯 어른의 필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의 명세를 적은 조그만한 쪽지가 들어 있었다. 즉 4월 12일 부터 30일까지에 모은 돈이 도합 3원 99전이요, 그 중에서 목각도장 한개 값 50전을 제하고 나머지가 곧 3원 49전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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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금통장을 아내에게 건네주면서 아이더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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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그런 말을 헐 것이지, 깜박 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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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엄마나 아버지한테 돈 타서 허지 말구, 장남감이랑 그런 거 사가지는 돈 냉겨뒀다 허랬으니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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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걸, 넌 죄가 아버지한테만 타서 허구두 선생님더런 내 돈으루 했어 요, 그랬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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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그럼 나 시방 장남감 사게 돈, 으음, 으음, 10전 허구 1원전 허구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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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해야 주머니돈이 쌈짓돈? 장님 제 닭 잡아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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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런 소리를 하고 우리는 함께 유쾌히 웃었다.
 
100
이 끝에 아이가
 
101
“그리구 응? 엄마, 선생님이 그리시는데에, 엄마랑 아버지랑 다아 그렇게 저금허래!”
 
102
“나두 참 오늘부터 시작헐까 보다!”
 
103
아내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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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으응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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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만 둬다구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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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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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시게 누가 걸 날마다 1전씩 2전씩 모우구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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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랑 다아 해야지 재미있지 머!”
 
109
“그리구 난 그거 아니래두, 다달이 저금허는 게 많지 않니? 자아 간이보험 세 목아치 부어가는 것 있지. 적립저금 시작헌 거 있지. 동회서 가끔 채권 나오는거 있지. 또 물건 사면 채권 껴받는 거 있지. 그만해두 얼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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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그리는데 많이 헐수록 더 좋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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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넌 내가 벌어서 네 월사금두 학비두 아니 대주구, 밥두 아니 해먹 구, 죄다 저금만 했으면 좋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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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113
“네라끼녀석!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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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도 그날부터 달력저금을 시작하여 가지고 3전부터 하였다. 초하룻날 3전, 초이튿날은 6전. 열흘날이면 30전, 30일이나 31일이면 90전이나 93전, 이렇게.
 
115
그것이 그믐날 가서는 작은 달이면 13원 95전 큰 달이면 14원 88전씩 이책상서랍에 모이곤 하여 그대로 쓸어다 저금통장에 실리고 실리고 하였다. 한 것이 지나간 11월까지에 백 원이 넘었다.
 
116
아내는 그리고 2전씩을 하여서 역시 11월까지에 근 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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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이가 근 40원.
 
118
이래서 11월 현재로 우리 집안에서 달력저금으로만 2백여 원의 저금을 하여 놓았다. 말하자면 우리 실이의 공이었다. 조선 사람 2천 5백만이 다들 이 달력저금을 한다면 그것도 수월찮은 돈이겠다고 나는 절절히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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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庭生活[가정생활] 1962년 12월호, 遺稿[유고]>
【원문】실(實)의 공(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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