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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식(誤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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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8
이효석
1
오 식(誤植)
 
 
2
화초 외에 토마토와 가지 포기도 심어볼 양으로 모를 몇 대간 사왔더니 원체 좁은 뜰이라 심을 여지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묵혀 두었던 화분을 두어 개 집어내다가 남은 것을 각각 한 포기씩 심어 두었다.
 
3
하루아침 물을 주노라니 마침 산보를 떠났던 동무가 들러서 뜰을 기웃거리다가 화분의 가지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가지같이 천한 것을 분에 심는 것이 가소롭기 짝없다는 것이다. 내 깐에는 귀한 것으로 여겨서 한 짓이었으나 동무의 눈에는 더없이 격에 어그러져 보였고─나 역 말을 듣고 보니 잘한 짓이 못됨을 깨달았다. 분에 자라는 그 한 포기를 이제 새삼스럽게 어쩌는 수는 없게 되었으나 여기에서도 나는 오식(誤植)의 한가지 예를 보고─볼수록에 점점 눈에 거슬려짐을 느끼게 되었다. 가지한 포기도 바른 자리를 얻어야 떳떳하고 어울리는 모양이다. 오식은 애교도 운치도 아닌 것이요, 무시로 그것을 보고 지나는 사람에게 주는 불쾌감은 상상 이상으로 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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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나 활자의 오식 또한 불쾌하기 짝없는 것이다. 오식의 부주의가 언제 가면 없어지려만 조금도 덜해 가지 않고 더해 짐은 웬일인가 한다. 일반 독자에게는 불쾌한 느낌을 줌으로써 그칠는지 모르나 원고를 쓴 작가 자신에게는 일종의 치욕을 주는 셈이다. 더구나 문학작품에 있어서는 한 자 한 구가 소중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수가 있을 때 조그만 오식이 작품 전체에 얼마나 큰 흠을 주게 되는지 모른다. 오식 중에는 대단히 교묘한 것이 있어서 꼭 작자 자신의 문장의 무지인 듯 오해당할 때조차 있다. 요새같이 오식이 심한 때에는 발표된 자작을 반드시 한번은 읽어서 오자를 정정해 두어야 함이 작자의 일의 하나인 듯하다.
 
5
동경서 권위 있다는 잡지부터가 그 모양이다. 가까운 자신의 작품에서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면 모두가 기관(奇觀)의 것이다. ‘立齡입령’이라고 박아 써도 ‘年齡연령’이 된다. 입령이 왜 연령인 것인가.
 
6
‘暗約암약’은‘婚約혼약’이다. 식자 직공과 편집 당사자는 혼약이라는 문자밖에는 몰랐던 것일까. 왜 원고면을 똑똑히 보아주는 성의가 없는 것일까. ‘眥자’라고 어김없이 쓴 것이 ‘肩견’으로 나타난다. 노여워서 눈초리가(眥)가 경련했다는 것을 어깨(肩)가 실룩거렸다고 했으니 이런 망령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때 독자는 ‘肩견’을 설마 ‘眥자’의 오식이라고까지는 추측 못할 것이오, 따라서 노여울 때 어깨가 실룩거린다고 관찰한 작가의 무지를 얼마나 멸시할 것인가. 흡사 편집자가 식자공과 짜고 작가 한 사람을 조롱한 셈이다.
 
 
7
‘喰べた代物’가 ‘喰つた代物’ 로 변하고 ‘澁い가 ‘澁々’ (이 두 가지 뜻이 얼마나 다른고)가 되고 ‘怩니’는 ‘泥니’로 화한다.
 
8
‘垂수’가 ‘乘승’으로 변하는 것은 여반사이다. 여기에 비기면 ‘經歷경력’이 ‘經惡경악’이 되고‘感情감정’이 ‘感傷감상’으로 되는 것은 그래도 묵과할 수 있다고 할까,‘獨占독점’이 ‘掛合괘합’으로 된 것은 대체 무슨 착오였을까.
 
 
9
여상(如上)의 오식에 부딪힐 때 농담도 쉬엄쉬엄 하라고 식자공의 따귀를 갈기고 싶다. 오식에 변명도 사정도 있을 것이 없다. 당사자의 태만이요, 부주의일 뿐이다. 맡은 일을 완전히 함이 각자의 의무일 때 식자공의 무지로 인한 과오라면 편집자는 자기의 전지(全智)를 다해 작가의 붓을 그르치지 않도록 힘씀이 옳을 것이 아닌가. 작자의 그릇된 것까지 고치라는 것은 아니나 원고 면에만은 절대로 충실해야 할 것이다.
 
 
10
검열 관계론지 원고면의 글을 그대로 몇 줄씩 문질러 버리는 때도 있다. 그런 때에는 해명의 말이나 혹은 기호를 붙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문장의 전후가 연락되도록 붓을 더하든지 해야지 그대로 뭉툭 자른 대로 전후를 붙여 편집하니 기괴한 것이 되는 것이다.
 
 
11
오식 중에서도 한자의 오식같이 어처구니없고 기막힌 것이 없다. 고의의 작희같이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때가 비일비재다.
 
 
12
편집 당사자는 지혜와 아량과 수완을 가지는 동시에 오식에 대해서는 철저히 경계, 주의함이 작자를 욕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숨은 곳에서 문화에 크게 기여함이 되지 않을 것인가.
【원문】오식(誤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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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식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 박문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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