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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지(自由意志)의 문제(問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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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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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意志[자유의지]의 問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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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爲先) 사람이 진화라는 궤도를 밥는 것은 이것이 잇기 때문이라고 말해 두쟈. 하느님이 만일 잇다면 이 불완전한 인간을 맨들은 불만을 이 한가지로 갑흘 수 잇슬 것이다. 그런대 인간이란 역시 불완전하닛가 이것을 천시하고 경시하고 혹은 악마시하고 사갈시(蛇蝎視)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이것의 존재를 마비식히려 든다. 신은 네 속에 잇다 하고 옛사람은 말햇다나. 이것이야말로 자유의지야말로 챰의 신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본체이다. 이것을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이 행인지 불행인지 복인지 화인지를 몰으겠다. 그러나 숙명(宿命)이며 정체(正體)다. 이것을 이용하고 배양식히는 것 외에 무슨 삶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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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철학자들이 자유의지에 대해서 난설난설(難說亂說)이 만이 잇는 모양이다. 철학자란 엇던 방면에 가서는 신통한 궁리도 해내는 모양이나 그러나 어렵지 안은 문제를 어렵게 논의해 가지고 더 어렵게 맨드는 것이 만타. 자유의지도 이 한 가지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사람의게는 자의(自意, Voluntariness)와 부자의(不自意, Involuntariness)가 잇다. 운동 · 감각 · 행위 · 인식 · 사상에까지 이것이 잇다. 우리가 손을 움지긴다 하쟈. 움지기는 것은 내 자의의 운동이다. 그리고 안 움직이는 것도 내 자의의 운동이다. 거름 걷는 것, 이약이 하는 것, 보는 것, 듯는 것이 다 자의의 운동이다. 또 이 반면에 사람의게는 부자의의 운동이 잇다. 즉 심장의 고동 · 혈액순환 · 발한 작용 등이다. 이것은 우리가 수의(隨意)대로 행지(行止)케 못할 부자의의 운동이다. 이와 갓흔 말이 심리학상의 해석이다. 단순한 이 두 가지 운동이 실상은 아쥬 학자가 붓친, 그야말로 자의대로 구별해논 말에 불과하다. 우리가 과연 눈을 뜬다면 얼마나 철저하게 자의대로 할 수 잇슬가. 일년 삼백육십오일 칠, 팔십 장수하는 동안, 한 시 한 분 동안 쉬일 새이가 업시 걷고만 잇슬 수 잇슬가. 이약이만 하고 잇슬 수 잇슬가.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도 자의의 운동이다. 그러나 임의대로 먹기를 정지할 수 잇슬가. 잇스면 얼마동안? 일시적(一時的)에 불과하다. 보는 것, 듯는 것, 동작하는 것 모도 일시적에 불과하다. 그러면 자의란 것이 실상인즉 부자의에 지내지 안치 안는가. 개념이 나노아쥰 부자의란 말의 대칭에 불과하지 안는가. 그러나 부자의하다는 심장의 고동, 혈액순환, 발한작용은 과연 부자의 운동일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생리적 기능 중에서 제일 자의의 운동이다. 이것 업시는 모든 다른 운동을 쟈아내지 못할 자유의지를 가진 운동이다. 우리가 엇졀 수 업는 자유의지의 운동이다. 산하를 뚤불 힘이, 능력이 업다 할지라도 능히 뚤코나갈 만한 맹목적의 결정적 힘이다. 자유의지를 말하는 디터 ― 미니스트도 이 소식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이 결정적 힘이, 생명력이 업스면 신의 소업(所業)은 실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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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갓흔 현상은 한 보 더 나가서 생각할 수 잇다. 두뇌와 신경에 드러가서다. 칩고 챠고 할 수 잇는 것도 우리의 자의이다. 소위 심령철학자들의 고행으로써 뜨거운 불 속에 들어 설 수 잇다. 남은 벌벌 떠는 눈어름 중에 고행자는 땀을 쳘쳘 흘니며 서 잇을 수 잇다. 그리나 어늬 정도까지? 얼마나 올애동안? 또 분노를 인내심의 수양으로써 챰을 수 잇다고 한다. 그러나 어늬 정도까지? 이것 역(亦) 부자의의 운동에 불과하다. 간디를 가진 인도 민족에는 영국의 춍과 매를 챰을 만한 고행자가 만핫다. 죤 불늘그니의 교활에 반세기동안 챰아 왓다. 그러나 어늬 때까지? 인내심이란, 피압박(被壓迫)이란 이러한 것이다. 이러한 부자의의 운동이야 시시변천(時時變遷)한다. 또 한 보 더 나가서 두뇌의 운동, 즉 사고 작용도 이런 부자의에 편입되는 것이다. 정의나 진리를 생각할 수 잇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오늘 정의고 진리든 것이 언졔까지? 그 변천하고 변화함이야 해질 때까지도 존속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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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자의의 운동을 결정해 쥬는 것은 무엇일까. 인과법칙이다. 왼갓 우주의 현상이 이것이다. 여긔 한 사람의 병자가 잇다고 하쟈. 꼿 피고 새 우는 죠을 날, 그이는 병실 안에 안져서 왜 겨울이 속히 안 지내가느냐 하고 고통한다. 그래서 챤 벽에 손을 대여보고는 어름벽이라고 불평을 말한다. 천정을 쳐다보고는 왼 동지섯달의 구름이 져리 엉기엿는가 하고 분노를 한다. 이 불평, 이 불만의 원인을 그이는 생각치 못한다. 또 자기 동무는 여름이 와서 땀을 흘니고 홋옷도 덥다고 하는 때, 자기는 한속을 하면서 칩다고, 솜이불이 얇다고 한다. 그이는 학질에 걸린 까닭이다. 정신병자나 학질 환자나 모도 그 감각·사고가 인과율에서 나온 쥴이야 의사 아닌 아희들도 알 것이다. 그런대 성하다고 생각하는 이, 장하고 자기들만 건전한 신사, 양반, 천재라고 생각하는 이 새이의 생활에서도 이 인과율이 호흡하는 공기 모양으로 절대 지배를 하고 잇는 것을 발견할 수 잇다. 건전하고 위기(韋起)라는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창문에 빗최여 드러오는 아침 해발에 정신이 상쾌해져 가지고 식탁에 올는 아침 음식이 모도 맛잇다고 한다. 구미(口味) 업슬 때나 한가지인 이 음식 반챤이 역시 아침 해발에 정화해서 그 맛이 변해진 것이 아니다. 다만 평소붓허 까탈시럽고 처자(妻子) 업수히 녁이든 이 집 주인이 간밤에 안면을 어든 까닭이다. 또는 아침 신선한 공기에 신경이 침정(沈靜)된 까닭도 잇겟지. 또는 그 전날 져녁에 입욕(入浴)을 해서 밤 동안 신경과 혈액순환의 균형을 어덧든 까닭도 잇겟지. 만일 이 여러 까닭과 반(反)하는 행동이 잇섯드면, 그이는 아침붓허 애매한 처자권속(妻子眷屬)의게까지 불평과 불만이 미치겠지. 또는 동무와 이약이하다가 감정 끗헤 구론(口論)이 생기고, 심지어 평소붓허 호의를 갓든 그 친구의 속한 당파의 증오에까지 진화하겟지. 그래서 하눌청년회(靑年會)는 지옥보다 더한 해독단체(害毒團體)로 선언하는 이론이 생겨나오며 동풍회(東風會), 일요회(日曜會)는 다시 업는 사기 단체(詐欺團體)라고까지 아모 것도 몰으는 민중을 들먹일 테지. 이것이 인과율이다. 개인상의 사상과 감정의 거러나가는 인과율의 일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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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 개인의 집단인 민중이나 사회에서도 인과율이 지배한다. 민중심리가 그렷코 사회 의식이 그럿타. 역사란 인과율의 간단업는 반복이다. 또 사회제도의 변천이 역시 그럿타. 이곳에서 날더러 이 해설을 청하는 이야 업겟지. 너무나 알기 쉬운 요새 상식이 되여 잇는 까닭이닛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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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지의 공식과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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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이 인간의 부자의 운동을 결정해주는 발동기라는 말을 우에 말햇다. 그럿타. 그런대 인과율의 지배를 아니 당하는 현실이 한 가지 잇다. 교회 속에 잇는 것도 아니다. 철학자 머리 속이나 이데속에서 사라 잇는 것도 아니다. 불타(佛陀)나 기독(基督)이나 마호메트나 공자 가슴 속에 잇는 것도 아니다. 극히 미소한 아미 ― 바 속에 잇다. 이것이 생물인즉 생물 중에서 제일 영장(靈長)이라는 인간 속에 제일 강렬하게 이 현실이 잇다. 극히 발달되고 진화되고 문화되엿다는 나라의 국왕의게도 잇지만, 극히 유치하고 단순하고 우치한 산촌의 초동 아이의게도 그이의게 지지 안을 만큼 잇다. 이것은 자유의지다. 살냐는 맹목적, 결정적, 숙명적인 자유의지다. 아모 것도 지배할 수 업고 아무 힘도 결박하거나 쥭이지 못할 생명의 힘이다. 자살자의 예를 들쟈. 실연한 청년이나 소녀라고 하쟈. 그이는 환경의 불여의(不如意)에 혹은 욕망의 실패에 비관한 끗헤 자살을 해서 실망의 고통을 이즐녀고 한다 (실망을 극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살의 행동 - 칼이나, 네고이라스나, 총이나, 허리끈으로나 ― 은 부자의 운동이기 때문에 이런 제 이의적의 수단이 살냐는 자유의지를 자기 생명일지라도 건듸리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명(命)이 떠러지는 그 찰나까지라도 현실의 빗을 일치 안으려고 팔다리를 허덕그린다. 물에 빠진 이는 한번이라도 더 숨을 쉬이려고 폐(肺)가 불너지려고 한다. 그 끗헤는 물을 더 듸려켜서 절명(絶命)을 속히 하지만 그이의게는 그이 자의로는 엇지할 수 업는 생의 힘이 잇는 까닭이다. 자유의지가 잇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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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라는 공장노동자가 잇다고 하쟈. 동시에 P라는 사회운동가가 잇다고 하쟈. P는 개념으로, 지식으로, 열로 공장주의게 스트라이크를 일으킬녀고 C를 선동한다. 그래서 표면상의 이 두 사람은 다 자본가의게 적대하는 무산 계급의 한 분자다. 그러나 C를 위해, 정의를 위해 하겟다는 P의 의식이나 열정 속에는 자유의지가 업다. 혹은 부족하다. 그런대 C의게는 이 자유의지가 절대적으로 살아 잇다. 그러기 때문에 C는 생명을 도(睹)해서 공장주를 미워한다. P는 공장주의게 타협하려는대. 물론 사회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초기에셔는 C보다도 P가 몬져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인류 활동이란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닛가. 그러나 어늬 시기만 지내가면 직업적이고 강단적(講壇的)인 P는 업서진다. C만이 선명하게 낫하난다. P는 지식으로 해서, 의식으로 해서, 즉 제이의적의, 부자의적의 행동인 대신에 C는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가졋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계급쟁투사에 잇서서 제일 그 목적을 달(達)하려면 경제적 투쟁을 몬져 한다. 다음에 정치적 투쟁에 들어간다 (영역(英譯) 『공산당선언』18∼19항 참조). 경제적 투쟁 시대에는 C는 물론 P와 한가지로 한 개인의 자본주의게 대해서 공장을 깨트리고, 임금 증가를 요구하고, 적이 아니라 적의 적의게 대해서 또는 자본가의 생산 상태 그것이 아니라 생산 기관 그것에 대해서 싸운다. 그런대 정치적 쟁투시대에 들어가서는 수가 느러가고, 한 당(黨)이 되고 한 지방, 한 민족, 맨끗헤 가서는 지방별, 인종별이 업시 한 파(派)가 되여 가지고 싸운다. 이때에는 P는 점점 융성해 오는 C의 수의 단결에 따라 그 힘이 무소용(無所用)하게 된다. 여긔에서 P는 이슬 모양으로 사라지는 동시에, C는 봄 쟌듸 솟아나오듯 지평선상에 낫하난다. P는 하로사리 쥭어가듯 그 생명의 짜릅고, 또 위험시럽고 타협적이지만 C는 그 생명이 막지 못하게 지속되여 가고 철저하고 절대적이다. 이 까닭은 P가 안가진 자유의지 그것을 직접 가지고 잇는 까닭이다. 이 증거로는 정치적 투쟁 시대에 들어가서 볼 수 잇다. 엄정한 의미의 우도 아니오 좌도 아닌 중성적 C, 즉 소위 온건파라는 단결이 생겨 나오는 것은 이 시대이다. 이 중성 C의 무리는 대개 소부르죠아혹은 반동적 C에 불과한 사실로 보아서 P의 변형체에 불과하다. 중성 C의게는 자유의지가 업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타협과 고식과 안이만이 잇다. C의게는 자유의지가 잇다. 일어버릴 철쇄(鐵鎖)보다도 어들 무엇이 자기 혼쟈의게만 잇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영구한 사실, 또 미래에도 그러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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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지의 발현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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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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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촉과 시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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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동의 원리와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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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증법적 긍정
【원문】자유의지(自由意志)의 문제(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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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9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