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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莊周)가 호접(胡蝶) 되고 호접이 장주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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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락은 아직도 가장 정열적으로 가장 몽환적으로 ‘춘향타령’ 에 나오거니와, 아득한 옛날 지나(支那)의 춘추 열국 시대에 태어나서 그 허무한 호접몽이 오늘날까지도 남국(南國) 가희(佳姬)의 주순(朱脣)에 오르나리는 것을 생각하면 장자의 염복(艶福)도 실없이 영원성을 띠었다 할 것이다. 딴은 사랑하는 안해를 시험해 볼 양으로 거짓 죽음을 하고 아름다운 귀공자로 다시 변신하여 눈물도 채 마르지 않은 청상(靑孀)을 능청맞게 놀려대고 마지막엔 시체방을 불시에 화촉동방으로 돌려 꾸미게 한 것을 보면, 그는 홑으로 도학자 철인만이 아니요, 잡보며 멋쟁이며 풍류랑일시 분명하니 이국의 유항화가(柳巷花街)에까지 그 짓궂은 전설이 노래로 살아남도 바이 인연없다고는 못하리라. 그러나 필자는 지금 무슨 장자의 전설을 검토하자는 것도 아니요, 더군다나 그 평전을 늘어놓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호접몽! 이란 세 글자가 부질없이 감흥을 자아내고 시취(詩趣)를 돋우기에 붓 가는 대로 몇 줄 끄적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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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 이 얼마나 매력 있는 문자인가. 나비라면 꽃을 연상하게 하고 사랑을 연상하게 하고 게다가 꿈까지 연결을 시켜 놓고 보라. 어쩐지 아름답고 어쩐지 덧없고 어쩐지 로맨틱하지 않은가. 봄 아지랑이와 같은 아른아른한 감촉, 오채영롱하던 무지개가 스르르 사라지는 듯한 적막, 절창의 명곡이 끝을 감는 듯 마는 듯한 요뇨(嫋嫋)한 여음이 세 글자에서 풍기지 않는가. 꿈에 나비가 되어 펄펄 날아다닐 것을 상상만 해도 괴로운 이 인생을 선탈(蟬脫)한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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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걸음 더 나아가 꿈이 아니요, 생생한 육신으로 아주 나비가 되어 버린다고 생각해 보라, 요란한 백화(白花)가운데, 위(胃)와 뇌(腦)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고통과 번민을 잊어버리고, 편편(翩翩)히 고상(翶翔)할 것을 환상해 보라. 이 고해(苦海)는 대번에 낙원으로 화할 것 아니냐. 이 문제를 현실로 절실하게 생각해 본 이에 프랑스 문호 아나톨 프랑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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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장에 의하면 하느님이 사람을 만드실 제 고등 포유동물을 본 뜬 것은 실수 중에도 큰 실수였다. 그가 만일 인간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할진댄 그 모형을 현재와 같이 유인원에게 취하지 않고 곤충에게 취하리라 한다. 곤충이란 유충 시대에 모든 제 생활에 필요한 노동과 고역을 다 치르고 최후에 오직 아름다워지고 사랑하기 위하여 나비로 변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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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물주이었던들 인생 생활의 최후에 청춘을 두었으리라. 어떤 곤충은 마지막으로 변형할 때엔 나래 지니고 위는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 순화된 자태로 재생해 단 한 때의 사랑을 하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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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렇게만 해 놓았으면 ‘굶주림이 사랑을 타락’시키는 비극은 절대로 없으리라. 남자와 여자는 오직 번쩍이는 나래만 펴들고 감로에 입술만 축이면서 키스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나리라. 얼마 안 되어 덧없는 생을 마칠 그들이 아니냐. 그들의 최후를 장식할 왕관으로 사랑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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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철인, 하나는 문호, 거리로는 천애지각(天涯地角)이요 시대도 수천재(數千載)를 격하였건만 그 사상이 요요히 상대한 것은 또한 일기(一奇)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알지 못괘라, 프랑스는 워낙 박식한 터이니까. 혹은 장주의 몽화호접설을 따 가지나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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