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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점 막차가 달려들려면 아직도 멀었나보다. 정거장은 안팎으로 불만 환히 켜졌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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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이라야 하기는 이름뿐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밤이니까 아니보이지만 낮에 보면 논 있는 들판에서 기차길이 두 가랑이로 찢어졌다가 다시 오므려진 그 샅을 도독이 돋우어 그 위에 생철을 인 허술한 판장집을 달랑 한 채 갸름하게 앉혀놓은 것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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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전등을 켜는 기둥이 몇 개 섰고, 절 뒷간처럼 쫓겨간 뒷간이 있고 쇠줄로 도롱태를 달아놓은 우물이 있고, 그리고 넌지시 떨어져 술집, 사탕집, 매갈잇간, 주재소 그런 것들이 초가집, 생철집 섞어 저자를 이룬 장터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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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는 해도 이 정거장이 올 가을로 접어들면서 굉장하게 번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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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점판(砂金鑛[사금광])이 터져서 그렇다. 정거장 둘레로 있는 논바닥에서 요새도 날마다 수백 명씩 들이덤벼 금을 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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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차를 타고 오고 가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장터에는 사탕집이 더 생기고 술집은 더 많이 늘고 전에 없던 이발소까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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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오늘밤도 막차를 보려고 정거장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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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합실로 섬뻑 들어가지는 못하고 옹송그려 팔짱을 끼고 밖에서 빙빙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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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엣 사람은 그렇잖더니, 갈리고 이번에 새로 온 역부는 덕쇠가 대합실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눈을 부라리고 발길로 툭툭 걷어차고 해서, 그래 뒤가 걸려 덤쑥 들어앉지를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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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성이 잔뜩 나서 휘익 쌀눈을 몰아다가는 귀때기를 때린다. 그럴 때면 옹송그린 데시기로 소름이 쪽 끼치게 눈이 휩쓸려 들어간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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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굶어서 더 춥고 더 떨린다. 저녁 한 끼 굶은 거야 예사지만 속이 비어서 더 춥고 더 떨리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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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닫힌 유리창으로 대합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 번째 굽어다보는지 모른다. 아랫도리가 시뻘겋게 불이 단 난로가 보기만 해도 뜨끈뜨끈해서 부쩍 그러안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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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가에는 촌 영감이 혼자 담뱃대에 담배만 풀씬풀씬 피우고 무료하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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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돌아서서 잠깐 서성거리다가 이번에는 대합실 안의 시계를 들여다 본다. 그러나 시계는 아까부터 암만 보아도 바늘 두 개가 한일자로 쭉 뻗친 채 그대로 서서 있다. 꼼작도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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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날이 이렇게 차고 바람이 불고 하니까, 혹시 막차가 오지않지나 아니하려나? 그렇다면 괜히 추운 데 와서 고생을 하고 있지나 아니하나. 그래 궁금증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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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만가만 대합실과 연달아 있는 사무실 옆으로 가서 불밝힌 안을 들여다보았다. 금테박이 역장은 나오지도 아니했고 난로가에 멀찍이 역부가 걸상을 타고 앉아 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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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잘되었다 싶어 냉큼 이편으로 돌아와 대합실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섰다. 들키면 욕 좀 먹고 한두 번 걷어차일 셈 잡아도 뜨뜻한 날로불에 몸을 녹이는게 훨씬 낫고, 요행 들키지 아니하면 더구나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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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합실 안은 후끈 더운 기운이 치닫고 촌 영감이 버선발을 쬐어서 그런지 고차분한 냄새가 물큰 치닫는다. 그러나 덕쇠한테는 되레 구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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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대합실 안으로 들어는 섰어도 난로 옆으로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찍이 마룻전에 가 어설프게 반만 걸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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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영감은 들어오는 덕쇠를 소 닭 보듯 멀거니 치어다보다가 한참 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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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옆으루 가까이 와서 몸을 녹히지 왜 그렇게 멀리 앉어서 그러우? 추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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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미상불 그 말을 듣고 보니 기왕 들어온 판에 그럴 일이 아닌 것을 그랬구나 하고 히죽이 웃으면서 난로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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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영감은 침 흘러내리는 담뱃대 물부리를 입에서 뽑으면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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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한 대 얻어 피웠으면 꿀처럼 맛이 있을 것같아 시장한 것은 잠시 잊어버리고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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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근처 사우?…… 불 쬐러 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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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건성으로 덕쇠는 담배 꽁초가 어디 떨어지지나 아니했나 난로 바닥과 사방을 둘러보다가 좋아서 성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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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바닥에 불쏘시개 자루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아니하는 놈이 한 개, 그리고 저편 차표 사는 앞에는 제법 굵기는 해도 발로 싹 밟아 으끄린 놈이 한 개 있다. 그는 두 개를 주섬주섬 집어다가 풀어서 허리에 찬 곰방대에 넣으려고 하니까, 촌 영감이 물끄러미 바라다보더니 옆에 놓인 희연 봉지에서 한 대 집어 손바닥에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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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데시기로 손이 올라가 더북이 자란 막깎기 머리를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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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허리를 굽실하고 두 손을 내밀어 한손으로 담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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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앞니가 드러나고 겨울에도 가실 줄 모르게 볕에 그을은 검은 얼굴이 헤죽이 흐트러진다. 고맙다는 치하요, 그리고 만족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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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담배니 그렇지 아니할 수 없다. 돈이라고는 구경도 하기 어려운데, 더구나 요새는 값이 올라 담배를 살 염도 내지 못하고 정거장에 나와 권연 꽁초를 줍지 않으면 뽕잎을 피우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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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은 제각기 담배를 심어 두구 제 맘대루 피더니, 요새는 무슨 개명(開明) 속인지 담배두 못 심어 먹게 히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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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영감은 덕쇠가 빗밋이 돌아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탄식하듯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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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새 이 근처에 금점이 터져서 벌이가 좋다는디 그런 거나 허지, 이 춘디 밤으루 정거장 짐벌이를 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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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영감이 심심한지 이야기 거리를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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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츰 삼백 명을 모집(募集)허는디 이 근처서 어찧던지 한 천 명 뫼여들 었는가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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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라우! 숭년은 들어서 먹구 살 것은 없구 그러닝개…… 허기사(허기야) 풍년이 들어두 그 대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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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유, 그중에서 삼백 명만 골라 뽑구 그 남저지는 다 낙방되었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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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달았던 난로 아랫도리가 식어가는 것을 보고 덕쇠는 일어서서 석탄을 퍼넣는다. 황황 소리가 나면서 난로불은 세차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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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소리가 요란한데 대합실 안은 딴 세상인 듯이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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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석탄을 한 아궁이 가득 지피고 나서 도로 제자리에 앉았다. 촌 영감은 지르르하고 진이 끓는 담뱃대를 시멘트 바닥에 똑똑 털고 나서 어험 하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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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x까지 가우…… 저 너머 딸네 집에 왔다가…… 에, 게 아예 겨울에 대사(大事[대사]:婚姻[혼인]) 치를 것 아니여! 날은 춥고 모다 군색히여서……원 이렇게 저물 줄 알었으면 붙잡는 대루 하룻밤 더 자구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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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영감은 늙은이답게 혼잣말로 꿍얼꿍얼 꿍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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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비로소 촌 영감이 옆에 놓고 앉은 동쳐맨 대사리짝을 알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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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속에는 고기며 저냐며 떡이며가 하나 그득히 들어 있을 텐데 촌 영감이 아까 담배 한 대 주듯이 떡이나 무엇 좀 꺼내 주지 아니하나, 그래 헛침을 꿀꺽 삼키고 촌 영감을 치어다보았다. 그러나 촌 영감은 맨숭맨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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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자꾸만 더 시장기가 들었다. 떡을, 떡도 큼직한 인절미를 노란 콩고명을 묻힌 놈을 하나 어쨌든지 저 뜨끈뜨끈한 난로 위에다 올려 놓으면 그놈이 고소한 냄새가 나다가 부하고 떠올라오를 테니 그놈을 두손에 들고 쭉 잡아떼면 김이 물씬물씬 나고 하얀 속이 기다랗게 늘어나는 놈을 훅 불어서 입에다 넣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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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촌 영감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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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무렴해서 웃어버렸다. 그러나 무렴한 것은 잠깐이요, 눈은 빨리듯이 떡이 들어 있는 대사리짝으로 건너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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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영감은 종시 떡은 먹으라고 줄 눈치가 아니다. 그러니 혹시 잊어버리고 그냥 차를 탔으면 좋겠다고 덕쇠는 은근히 그거나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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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에 이렇게 와서 있으면 더러 벌이가 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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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영감은 담배 한 대를 또 붙여 문다. 이번에는 덕쇠가 아까 주워 모은 권연 꽁초담배를 쟁이고 있어도 한 대 더 주지는 아니하고 이야기만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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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이유! 그저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돈 십 전씩이나 벌까말까허지 별루 없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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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바라구 날마다 와서 왼종일 이렇게 기다리우? 차라리 다른 품팔이를 드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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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여유, 이 막차만 나와유…… 집두 멀구 또 낮차는 더군다나 짐이 없으닝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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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무실에서 역장이 나왔는지 차가 올 때마다 나오곤 하는 순사가 나왔는지 이야기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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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땡땡 소리가 자주 들려오고 분주한 것 같더니, 망대(시그널) 젖히는 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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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영감이 두루마기를 젖히고 주머니를 풀어 차표 살 돈을 몇푼 꺼낸다. 덕쇠는 십 전만 주었으면 절을 백 번은 할 것 같아 연해 촌 영감의 손만 바라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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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망을 조그맣게 쳐놓은 차표 파는 구멍이 덜커덩 열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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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뒤이어 역부는 덕쇠를 내다보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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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얼핏 대합실 밖으로 나와 기대놓았던 지게를 걸머지고 멀찍이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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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소리가 가까이 울리더니 연통으로 불을 뿜어올리면서 차가 들이닿는다. 차 탈 사람은 종시 아까 그 촌 영감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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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촌 영감이 떡 든 대사리짝을 가지고 나왔다 아니 가지고 나왔나 보려고 조촘조촘 가까이 갔다. 영감은 대사리짝을 무긋하게 쳐들어 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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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탈 사람은 하나뿐인데 역장, 역부, 순사 해서 멀찍이 서서 있는 덕쇠까지 네 사람이 대비를 하고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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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마음이 졸였다. 그동안 벌써 사흘째 헛걸음을 했고, 오늘 아침은 좁쌀죽을 한 보시기씩 먹었을 뿐 저녁은 고스란히 굶었다. 춥고 시장하고 한데 또 헛걸음이나 하면 어찌하나 지레 겁이 나서 나오기도 싫고 집엣 사람이 말리기도 했지만, 무어 그게 밑천이 드는 거냐 헛걸음을 해도 밑질 것은 없으니 나가본다고 나오기는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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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벌지를 못하면 십리길을 덜덜 떨고 돌아가 그냥 자야 할 판이요, 그래도 행여 좁쌀 한 줌이라도 팔아오나 꼬박꼬박 기다리는 집엣 사람한테 미안하고 낯이 없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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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씨근거리며 들이닿았다. 덕쇠는 정신을 차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일일이 여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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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사람이 셋 내렸다. 저편 뒤칸에서 조그마한 보따리를 든 색시를 데리고 안경 쓴 활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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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어쩌면 괜찮겠다 싶어 그 남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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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머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시 달아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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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차에 가로막혀 기다리고 있다가 차가 떠나자 비로소 덕쇠가 목 지키고 서 있는 앞으로 해서 철둑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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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사람 셋이 웅숭그리고 앞서 가고 색시 데린 활량이 덕쇠 앞을 지나가다가 힐끔 돌아보더니 무슨 말을 할 듯이 짯짯 치어다본다. 덕쇠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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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가 보매도 보따리는 그리 크지도 아니하고 해서 짐을 지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새 몇 달 두고 더러 보면 짐은 무겁지 아니해도 정거장에서 집이 먼 사람은 호젓한 밤길을 혼자 가기가 안되었으니까 짐을 지우고 가는 수가 있었다. 그러한 자리면 가서 술잔도 얻어먹고 짐삯도 후히 받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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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이 활량도 꼭 그런 거리거니 생각하고 속으로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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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활량은 무슨 말을 할까말까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휙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 사람이 실상은 짐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라 덕쇠를 알아서 알은 체하려고 그래 주춤거렸던 것인데, 덕쇠는 벌이가 생겼다고 좋아하다가 그만 헛다리를 짚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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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철둑을 건너 나란히 가고 있는 남녀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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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따라가서 짐을 지우라고 말을 해볼까 망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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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빈 지게를 덜썩거리면서 철둑을 건너 남녀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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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로 들어서서 거진거진 뒤로 바짝 다가 말을 건네려고 하는 판인데 남녀는 길 옆 술집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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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그만 땅에 가 펄썩 주저앉고 싶게 안타까와 두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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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사정없이 쌀눈을 끼얹는다. 덕쇠는 기가 딱 질려 걸음도 느릿느릿 잘 걸리지 아니했다. 위아랫 이빨이 딱딱 맞히고 팔다리는 대 잡은 것처럼 떨리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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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까스로 전주집이라는 국밥집 앞까지 당도했다. 무슨 의사가 있어서 그 앞으로 오기도 한 것이지만 술청에서 나오는 구수한 국 냄새에 그는 눌어붙듯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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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청에서는 아까 차에서 내린 촌사람 셋이 죽 앉아 술잔을 놓고 기다리고 있고, 전주댁이라는 안주인은 분주히 서두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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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놓은 술국솥에서는 소담한 김이 뭉게뭉게 오른다. 그놈이 냄새가 그렇게 구수하게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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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댁은 흰 사발에 찬밥 한 덩이를 담아가지고 국자로 솥의 국국물을 떠부어 꾹꾹 누르다가 국물을 도로 솥에다 좌르르 따르고는 또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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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너 번 하다가 마지막 건데기 얼러 국을 소담스럽게 퍼부어 손님들 앞 개다리소반에다가 통 하고 갖다놓고는 다시 다른 사발어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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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왕방울 같은 눈을 끄덕거리지도 않고 전주댁의 손에서 노는 국밥 사발과 국자에 정신이 쏠려 목이 기다랗게 늘어난 것을 저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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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청에서는 차례차례 말아다 놓은 국밥 한 사발씩을 차지하고 앉아 세 사람이 술을 한잔씩 마신 뒤에 숟갈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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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갈이 밥과 콩나물과 우거지가 뒤섞인 국밥을 듬쑥 떠서 국물을 질질 흘리며 입으로 올려갈 때면 덕쇠는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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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그렇게 벌리고는 씹는 시늉을 해보나 맞히는 것은 위아래 이빨뿐이요 회가 동해서 걷잡을 수 없이 넘어오는 거위침이 입안에 그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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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말고 항우라도 더 참을 수 없는 고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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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다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졌던 지게를 내동댕이치듯 훌렁 벗어버리고 술청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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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댁이 힐끔 돌아다보는 둥 마는 둥 저 할 일을 하면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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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대답이 나오지 아니해서 입만 우물우물한다. 무어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그것도 모르거니와 아가리뼈가 뻣뻣하게 굳어서 입을 놀릴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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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댁은 덕쇠가 아무 대답도 아니하니까 다시 돌아다보고 혼자 종알거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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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을 먹고 있던 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덕쇠를 멀거니 치어다본다. 덕쇠는 겨우 입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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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유…… 저, 술은 그만두구…… 그런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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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국밥만 주는디 저 거시기, 저 돈은 내일 드리께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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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은 또 덕쇠를 올려다보고 전주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짯짯이 바라보다가 손에 들었던 국자를 솥전에 통 부딪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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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수없네…… 외상은 못 히여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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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두말도 더 못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등 뒤에서 촤르릉 철소댕을 끌어다 덮는 소리는 그 푸짐한 국밥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 같아 그는 내디디던 발을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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