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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양방(孝養坊)의 애화(哀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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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2
계용묵
1
효양방(孝養坊)의 애화(哀話)
 
 
2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때, 어느 봄날이었다.
 
3
신라의 서울 남산(南山) 포석정(鮑石亭)을 향하여 걸음을 빨리하고 있던 두 사람의 낭도(郎徒)는 분황사(芬皇寺) 어귀를 다닫자 문득 뜻아니한 이상한 소리에 발길을 멈추었다.
 
4
‘울음소리!’
 
5
‘젊은 여자의 울음소리!’
 
6
두 사람의 낭도는 눈이 둥글하여 제각기 중얼거렸다.
 
7
“어머니이! 어머니이!”
 
8
부르짖으며 우는 여자의 울음소리는 하냥같이 창자가 끊기는 듯이 애절하다.
 
9
‘웬일일까?’
 
10
‘무슨 까닭으로……?’
 
11
두 사람은 귀담아 소리를 더듬었다.
 
12
소리는 머지도 않은 데서 들렸다. 바로 몇 집을 격하지도 않은 분황사 길가의 어귀에 있는 조고마한 한 채의 오막살이로 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13
‘아아, 이 젊은 여자는 어머니의 상변을 불의에 당했나?’
 
14
생각을 하며 듣고 있자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15
“아가 지은아! 우지 마라. 내가 그만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네 마음을 이렇게 상해 놨구나! 어서 그쳐라. 이애 지은아!”
 
16
역시 떨리는 음성으로 간곡히 달래는 말은 그 어머님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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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머니는 딸 지은에게 무슨 말을 그렇게 잘못하여 딸은 이리도 애절하게 창자가 끊기는 듯 목을 놓아 울고? 두 사람의 낭도는 그 창자가 끊기는 듯한 애절한 울음소리를 그대로 듣고만 슬쩍 지나가기에는 어딘지 차마 발길이 내키지 않았다.
 
18
‘심상한 일이 아닌데-.’
 
19
‘심상한 일이 아닌데-.’
 
20
두 사람은 중얼거리며 슬금슬금 울음소리를 더듬어 그 오막살이로 걸음을 옮겼다.
 
21
대문이자 방문인 초라한 오막살이, 그러나 봄은 이 집에도 찾아왔다. 따뜻한 그 볕을 함복히 받고 열린 방문으로는 방안의 비밀까지 들여다보인다. 머리를 기웃하던 순간 두 사람의 낭도는 눈앞에 들어오는 한바탕 꿈 같은 풍경에 흠칫 하고 발길을 세웠다.
 
22
어머니의 목을 얼싸안고 흐득이며 우는 스물이 될락말락한 처녀, 그런데 아아 그런데 목을 얼싸안기운 백발이 성성한 그 어머니는 두 눈이 하나같이다 먼 소경이 아닌가!
 
23
“어머니! 어머니!”
 
24
“어서 그쳐라. 아가 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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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사람이 와 섰는 줄도 모르고 서로 달래며 우는 어머니와 딸. 그 달래는 정경이 어떻게도 정에 사무쳐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표현이 설움으로 밖에 빚어질 도리가 없었다. 두 사람의 낭도는 그 까닭은 알 수 없으면서도 그 모녀의 서로 서러운 그 정의 발로에 자기네들의 눈시울도 뜨거워 옴을 느끼었다.
 
26
“아가 지은아! 글쎄 요새는 내 마음이 왜 이리도 편치를 못하겠니?”
 
27
그저 그게 안타가운 듯 어머니는 딸의 등에 손을 가만히 얹는다.
 
28
“어머! 어머니의 마음이 왜 그럴까요. 네? 어머니!”
 
29
등에 얹은 어머니의 손을 붙잡는 딸.
 
30
“글쎄 지은아! 지난날엔 서걱거리는 겨밥을 먹어도 마음만은 오히려 편하더니 이게 글쎄 웬일이냐? 요새는 기름이 흐르는 쌀밥을 먹는데도 칼에 가슴이 찔리는 듯이 마음이 아프니…….”
 
31
말끝이 채 여물기도 전에 소경 어머니는 그만 목을 놓는다. 참다 참다 터뜨리는 설움인 듯 흐느낌이 처음부터 그대로 섧다.
 
32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지은이는 더욱 소스라치게 느끼며 어머니의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엎더진다.
 
33
“지은아! 응? 지은아! 네가 하는 일이 정말 고되지가 않느냐! 너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느라고 그저 속이는 것만 같구나 지은아!”
 
34
어머니는 소경인 자기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귀여운 딸 지은이가 그처럼 고생을 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떠나지 않고 아픈 것이다.
 
35
이 소경 어머니는 연권(連權)이라는 사람의 아내로 본래부터 그 집이 몹시 가난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연권이 긴 세월을 병으로 자리에 누워 앓고 있게 되었으니 가족은 끼니에 조차 만류하였다. 그리고 아내는 소경, 힘이 없고, 딸 지은이는 나이 어리다. 또한 힘이 없다. 그러니 한술의 밥에조차 군색한 그들의 형편이었거늘 하물며, 한 첩의 약이 연권의 목구멍을 축여줄 여유인들 있었으랴! 가엾게도 연권은 소경 아내와, 하나인 어린 딸 지은을 이 세상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다시 못 올 영원한 길을 떠나고 말았다.
 
36
그리하여 남편을 잃은 아내, 아버지를 잃은 딸, 이 두 모녀는 그러니 슬프다고 울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닥쳐오는 배고픔의 설움!
 
37
‘지은의 배가 얼마나 고플까?’
 
38
그러나 눈이 멀다. 마음을 채일 길이 없다.
 
39
‘어머니 배가 얼마나 고플까?’
 
40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 힘이 없다.
 
41
‘그래도-.’
 
42
‘그래도-.’
 
43
소경 어머니와, 어린 딸은 서로 제 힘을 저울질해 보고는 기가 막히어 눈물을 흘렸다.
 
44
그러나 “그래도 그래도”하고 어머니를 위한 생각이 간절한 지은이는 마침내 눈물을 씻고 거리로 나서는 몸이 되었다. 밥을 얻자는 것이다.
 
45
아침이면 아침, 저녁이면 저녁, 날마다 지은이는 바구니를 옆에 끼고 하루 두 때씩 거리로 나섰다.
 
46
그러나, 이것인들 그리 용이하랴! 열 집에 아홉 집은 들어가나 공길이었다.
 
47
이렇게 애를 쓰며 동네를 돌다가 그래도 그럭저럭 얻어지는 밥이 그릇에 절반 턱이라도 차는가 하면 배가 고파 앉아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고는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배를 불려 드리심으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처럼 즐거움은 세상에 또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창피하고 고단한 일이라 하더라도 어머니를 위하여 그저 다 참자 이렇게만 갈수록 굳어지는 지은의 마음, 이 마음은 얼마의 세월을 지나면서는 마침내 어떤 부잣집 부엌 심부름으로 몸을 팔게까지 하였다.
 
48
그리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이 맛도록 부엌일을 보살펴 주고는 삯으로 벼를 얻어선 그것을 방아에 찧어가지고 밤길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지어 어머니를 공양하는 것이 날마다의 즐거움이었다.
 
49
“오늘은 얼마나 힘이 들었니 지은아!”
 
50
지은이가 돌아올 때마다 어머니는 딸의 고되었을 일을 생각하고는 못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51
이런 기색을 아는 지은이는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마음이 자기로 위해서 상할까 일체 그런 티도 나타내지 않으려고 항상 즐거운 낯으로 어머니를 대하고 위로했다.
 
52
“어머니 어서 식기 전에 진지 잡수세요.”
 
53
“너나 어서 먹어라. 내야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 네 배가 더 고프지”
 
54
“오늘은 밥맛이 유별히 더 나는 것 같은데요 어서 잡수세요. 다 식어요.”
 
55
지은이는 어머니의 밥을 늘, 많이 푸고 어머니는 그것을 사양하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 정성이 서로 다하는 이 마음, 이 마음속에 티끌만한 거짓인들 있으랴! 이 신라 17만 8천 백여 호나 되는 그 가운데서 이 지은네 가정처럼 불쌍하고 가난한 가정이 또있었으랴만 이 지은이처럼 기쁨과 즐거움으로 날을 보내는 그러한 가정은 다시없었다.
 
56
어머니를 위하여 종일 일을 하고 쌀을 만들어다가 뜨뜻하게 밥을 지어서 대접을 하는 그 즐거움, 그리고는 곤한 몸을 쉬이며 한밤 동안을 어머니와 더불어 이야기를 주고받는 오붓한 마음, 이런 즐거움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자기의 힘으로 어머니의 몸을 체 드리고 정성으로 마음을 체 드리는 그 즐거움, 그것이 어린 지은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57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편하지 않았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집을 떠나서는 그날의 해를 다 지우고 어둡게야 돌아올 줄 아는 딸, 얼마나 고생스러울고? 어디 몸이나 다치지 않는 것인가 부림이나 혹독하지 않았으면? 하고 딸을 내어보내고는 진종일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눈곱이 끼도록 기다 리며 울었다. 내가 천생에 무슨 죄를 지어 눈이 이렇게 멀어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이런 귀한 딸을 이렇게도 고생을 시킬고. 그것이 흘리는 땀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지 않아서는 안 되는 아픈 가슴-생각을 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58
이러기를 날마다 하던 어머니는 점점 사무쳐드는 아픈 마음을 참을 길이 없어 하루는 지은이를 붙들고,
 
59
“이애 지은아- 내 마음은 네가 밥을 지어가지고 들어올 때마다 쏘는 듯이 아프구나. 오늘은 글쎄 네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 것이냐?”한 이 한마디가 지은의 마음을 어떻게도 놀래었는지 모른다. 나를 위하여 어머님이 이렇게 마음이 아파하시다니! 그러시면 그동안 어머니는 얼마나 나를 위하여 속을 태였을고? 어머니의 마음을 즐겁게 편하게 하여 드리지 못하는 부족한 힘, 그것이 자기로선 다하는 힘인 것을 생각 할 때 지은이는 어머니에게 향하는 정이 전보다도 더욱 살뜰하여지는 것 같은 감격에 어머니의 목을 저도 모르게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리게 되었던 것이 문 밖에까지 새어나가 이렇게 길손의 발목을 붙들게 하였던 것이다.
 
60
“어머님! 어머님! 이 세상에 제가 어머님밖에 모실 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제 몸이 부서져 뼈까지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마음만이 그저 편안하시기 그것만이 정성을 다하는 소원이옵는데 마음이 아프시담 이 어인 말씀이오리까? 네? 어머님!”
 
61
지은의 울음은 더한층 설움에 떨린다.
 
62
두 사람의 낭도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지은의 그 지극한 효성에 그만 감동이 되어 저희들도 모르는 사이 뜨거운 눈물이 쭈루루 하고 두 눈에서 흘러내림을 금할 길이 없었다.
 
63
“그만 울음을 그쳐라 이애 지은아!”
 
64
어머니는 공연한 말을 그만 해서 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고 후회를 하며 딸을 달래는 것이었으나, 지은의 울음은 그저 설움에 흐득일 뿐, 멎는 것이 아니었다.
 
65
“어머님! 저는 몸이 조금도 괴롭지 않아요. 남의 집 부엌일이 무에 그게 고생이겠습니까. 여자란 누구나 다 하는 일이온데-. 어머님 조금도 제가 고생할 생각은 마러 주세요. 어머님의 마음이 불편하신 것 같은 기색을 볼 때에만 제 마음은 그저 슬프옵니다.”
 
66
어머니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떨어진다.
 
67
포석정에는 이미 많은 낭도가 모여서 놀고 있었다. 그들은 서발한(舒發翰) 벼슬에 있는 인경(仁慶)의 아들 효종랑(孝宗郞)의 낭도들이었다.
 
68
이 효종랑은 신라 화랑(花郞)의 한 사람으로 집안은 정승의 계제일 뿐 아니라, 이 신라 서울에 있어 굴지하는 부자였다. 그런데다가 그 지혜와, 성품이 어질고, 착하여 남들이 우러러보는 자랑을 스스로 지니고 남의 스승이 되기에 넉넉한 사람이었다. 이 효종랑이 오늘 자기의 밑에 낭도들을 데리고이 포석정을 찾아 하루의 놀이를 즐기기로 하였던 것인데 두 사람의 낭도가 어쩐 일인지 오지를 않아 갑자기 이들이 어디 몸이나 편치 않은 것이 아닌가 유한 쾌흥에 잊었다가도 문득 그들의 신상이 생각키곤 하여 분황사 쪽을 짬짬이 바라보는 것이었으나, 그날의 놀이가 끝나기까지 마침내 두 사람의 낭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69
그리하여 그들은 필시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더 기다릴 것이 없어 이젠 다 각기 헤어지기로 내일의 도리를 의논하고 있을 무렵, 급히 재를 넘어 걸음을 몰아오는 두 사람의 낭도.
 
70
“아, 웬일들이요?”
 
71
달리어오기가 바쁘게 효종랑은 의아한 눈을 둥그렇게 뜨며 그러나 반가움을 참지 못하여 마주 달리어 나갔다.
 
72
“네-.”
 
73
할 뿐 두 사람의 낭도는 숨이 차서 뒷말을 잇지 못한다.
 
74
“아, 웬일들이요?”
 
75
궁금하여 곱채는 효종랑.
 
76
“네, 그만 늦었소이다. 분황사 어귀를 지나다가 그냥 지나기가 어려운 슬픈 울음소리를 들었소이다.”
 
77
두 사람의 낭도는 잊을 수 없는 지은의 그 지극한 효성을 다시금 생각이나 하는 듯이 눈들을 내려깔며 이마에 땀을 씻는다.
 
78
“응? 슬픈 울음소리?”
 
79
“네! 젊은 여자의 …….”
 
80
“젊은 여자의…….”
 
81
효종랑의 한 발걸음 버쩍 나선다.
 
82
“분황사 어구에 있는 한 채의 조그만 외막살이에서는 스물이 될락말락한 어여쁜 처자가 소경 어머니를 붙들고 애절하게도 우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83
“어여쁜 처자가?”
 
84
“네, 스물이 될락말락한…….”
 
85
“소경 어머니를 붙들고?”
 
86
“네, 두 눈이 다 멀었사옵는데…….”
 
87
“그래서?”
 
88
“그래서 그대로는 지나올 수가 없사와…….”
 
89
하는데 잠자코 섰기만 하던 한 사람의 낭도가 인제 숨을 다 태인 듯 나서더니, 그 처자 지은의 효성이 아닌 감동될 수가 없어 그 내력을 알아보려고 근처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보기까지 수차를 거듭한 이야기로 오늘 하루의 듣고, 보고, 느낀 바를 차례로 낱낱이 아뢰었다.
 
90
듣고 있던 효종랑은 낭도의 말이 끝났음에도 머리를 들지 못하고 오히려 더 점점 숙어질 뿐이었다.
 
91
“그래서 이렇게 늦었소이다.”
 
92
“처자의 이름이 지은이?”
 
93
문득 머리를 드는 효종랑의 눈에는 눈물이 두 눈에 다 팽그르 어리어 있었다.
 
94
“네, 스물이 될락말락한 처자 지은이옵니다.”
 
95
“어머닌 소경인데 어린 딸이!”
 
96
효종랑은 그 가난과 어린 처자 지은의 효성에 무엇을 생각함인지 다시금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묵묵히 섰더니 별안간 고개를 번쩍 들며,
 
97
“우리 신라의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이 어찌 지은이 모녀뿐이리오. 또 부모에게 효도를 베프는 사람이 어찌 지은이란 처자뿐이리오. 그러나 지은의 그 가난과 효는 참으로 눈물겹소. 나는 이 자리에서 벼 백 석을 내어그 불쌍한 지은이를 도우려 하요.”
 
98
하고, 눈물을 씻는다.
 
99
“그렇습니다. 그 가난, 그 효를 어찌 돕지 않소오리까. 저도 돕겠소이다.”
 
100
“참으로 눈물겹소이다. 저도 돕지오.”
 
101
모였던 낭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선선히 나서며 지은이를 돕자는 데 마음이 하나같이 일치되었다.
 
102
그리하여 벼를 보내는 사람, 혹은 돈으로, 혹은 옷으로 힘이 및는데까지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103
이 말이 대궐 안에까지 흘러들어 그날 저녁엔 진성왕도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지극한 마음에 감동됨을 참지 못하시어 한 채의 집과 벼 오백 석을 하사하셨다.
 
104
그래서 지은이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음껏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즐겁게 체 드릴 수 있었고, 그 어머니로선 온 가슴을 지은이를 위해 썩이는 일이 없이 오붓하게도 안락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게 되었다.
 
105
그러나 지은의 마음은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만 만족하지 못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앉아 계셨으면 하는 아버지 생각이 짬짬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달 돋는 밤이나 꽃 지는 저녁이면 유달리 아버지를 생각케 되는 처량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106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 밤도 헤어진 창 틈으로 들이쏘는 밝은 달이 하도 마음을 처량케 하여 자리에 누운 어머니가 주무시는 기색을 보고는 혼자서 방시시 문을 열고 뜰로 내려와 하늘을 우러러 반짝이는 푸른 별을 바라보다 가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지으며 섰다가 뜻하지도 앉은 인기척 소리에 지은이는 소스라쳐 놀랐다.
 
107
이 깊은 밤 아닌밤중에 웬 사람일까. 오싹 하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올려 뻗히는 순간,
 
108
“소리 지르면 죽인다!”
 
109
우렁찬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린다.
 
110
지은이는 제곁에 힐끗 뒤를 돌아다보았다. 시퍼런 칼을 든 장대한 두 사람의 사나이가 뒷담을 섬쩍 하고 넘어 들어서는 것이다.
 
111
“소리를 지르면 죽인다. 벼와 옷을 있는 대로 다 내놔라.”
 
112
도적이었다.
 
113
지은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벌벌 떨고 섰노라니 어느새 달려온 도적은 우뚝 마주서며 시퍼런 칼을 가슴에 겨눈다.
 
114
그러나 지은이는 그것이 도적임을 알았을 때 오히려 마음이 든든하였다.
 
115
“큰 소리를 왜 지르겠습니까. 당신들은 남이 들을까 봐 겁이 나서 큰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하니 곤히 잠드신 어머님의 잠이 깨이실까 두려워 오히려 당신들의 큰 소리를 염려하는데요. 저기 벼가 쌓여있지 않아요! 조용조 용히 가져가세요. 어머니의 잠이 깨시지 않게-.”
 
116
하고 벼가 쌓여 있는 곳을 가리켜 주었다. 그저 지은이의 마음은 달게 드신 어머니의 잠이 깨이실까 하는 그것만이 근심이었던 것이다.
 
117
이튿날 아침 이 말이 또 대궐 안으로 흘러 들어가 진성왕의 귀에까지 미치게 되어 왕은 곧 군사 몇 사람을 명하여 지은네 집으로 보내어 호위하게 하고 그 마을의 이름을 효양방(孝養坊)이라고 지으셨다.
 
 
118
〔발표지〕《조광(朝光)》제10권 2제2호(1944. 2.)
【원문】효양방(孝養坊)의 애화(哀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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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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