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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조(落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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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채만식
1
落 照[낙조]
 
2
1
 
 
3
모처럼 별식으로 닭 국물에 칼국수를 해서 식구가 땀을 흘려가며 먹고 있는 참이었다.
 
4
“이런 때 느이 황주 아주머니나 오셌다 한 그릇 훌훌 자섰드라면 좋을걸 그랬구나…… 말이야 없겠느냐마는, 그 마나님두 인저 전과 달라 여름 삼복에 병아리라두 몇마리 삶아 소복이라두 하구 엄두를 낼 사세가 되들 못하구. ……내남적없이 모두 살기가 이렇게 하루하루 쪼들려만 가니…….”
 
5
어머니가 생각이 나 걸려해 하는 말이었다.
 
6
어머니는 의가 좋고 해서 그러던 것이지마는 어버지는 어머니와 달라, 황주 아주머니가 별반 직성이 맞지를 않는 편이었다.
 
7
“그래두 그 마나님넨 느는 게 있어 좋습니다.”
 
8
“온 영감두. 지금 사는 그 일본집두 30만 환에 내놨다는데 그래요? 한30만 환 받아, 삭을세집을 얻든지, 문 밖으루다 조그만한 걸 한 채 장만하든지 하구서, 남겨진 가지구 얼마 동안 가용이라두 쓰구 할 영으루다……”
 
9
“느는 게 조음 많으우?…… 자아, 몸집이 늘지. 희떠운 거 늘지. 시끄런 거 늘지. 말 능란한 거 늘지. 따님 양개화(洋開化) 늘지. 아마 그 마나님은, 한때 그 국회의원이라드냐 하는 걸 선거하는 데 내세우구서, 누굴 추천하는 연설 같은 걸 시켰으면 아주 일등으루 잘 했을 거야.”
 
10
“난 또 무슨 말씀이라구……”
 
11
어머니는 그만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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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따라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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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이지, 그 생철동이, 하두 시끄러 골치가 아파 못하겠읍디다.”
 
14
“아따, 생철동인 생철동이루 씨어먹게스리 마련 아니우? 세상 사람이나 세상 일이 다 그렇게 제제끔이요, 제곬이 있는 법 아니우?”
 
15
어머니는 이렇게 원만하였다.
 
16
어머니가 만일 원만치 못한 어른이었다면 그런 대답이 나오는 대신
 
17
“영감두 말씀 마시우. 황주 마나님더러 느느니 몸집이네, 희떰이네, 시끄럼이네, 말 능란해 가는 거네 하시지만, 영감은 느느니 괴벽과 편성입디다. 난 영감, 그 남 비꼬아대기 잘하는 거, 미운 소리 잘하는 거, 하두 박절해 골치가 아파 못하겠읍디다.”
 
18
하고 오금을 박았을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말이 오고가고, 티격 태격하다 필경 싸움이 되고, 결과는 불화가 일고.
 
19
생각하면 어머니의 그렇듯 원만함은 우리 집의 고마운 보배였다. 솔성이 심히 박절하고 옹색한 아버지를 모시어 규각이 나지 않고, 잘 평화가 지탱되어 나가기는, 오로지 어머니의 그렇듯 남의 흠점이나 과실을 찬하지 않고 너그러이 보는 원만함의 덕이었다.
 
20
아버지는 나를 가리켜 어머니의 성정을 닮아 세상 만사를 좋도록만 보려 들고, 그래서 사나이 자식이 소견이(視野가) 좁고 진취성(積極性)이 적으니라고 하였다.
 
21
미상불 나는 내가 생각하여도, 아버지의 편협하고 박절한 성품보다 어머니의 너그럽고 원만한 성품을 물려받은 것 같고, 따라서 모든 사물을 호의적으로만 보면, 인하여 시야가 좁고 진취성이 적음도 사실인 성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보다는 차라리 어머니를 닮았음을 복되게 여기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22
아버지의 편협하고 박절함은 유난한 것이 있었다.
 
23
아무 이해상관이 없는 일이거만, 당신의 비위에 맞지 않는다든가 눈에 거슬린다든가 한다는 것으로, 미운 소리을 하고 비꼬아 대고 하여 남에게 실안심을 하고 경원을 당하고 하였다.
 
24
아버지는 크고 작은 일에 있어 당신이 보기에 그른 것에 대하여 둘러 생각을 한다거나 관용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25
그르다…… 혹은 보기 싫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상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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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른 것을 그르다고 단정하는 데 그치고 말거나, 보기 싫은 것을 보기 싫어하는 데 그치고 말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미운 소리를 하고 비꼬아 대고 하기를 좋아하였다. 일종의 악취미랄 것이 있었다.
 
 
27
해방까지는 아무려나 그것이 타고난 천품에서 오는 단순한 성격적인 것이요 악취미나마 취미적인 것이요 함에 불과하였으나, 해방을 고패로 아버지의 그 비꼬는 솔성은 경제적인 이해관계에서 우러나는 바로 육체적인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28
3백 석 추수거리와 계동(桂洞) 복판에 있던 터전 넓고 고래등같이 큰상하채의 기와집과 이것이 해방 전의 우리 집의 재산이었다.
 
29
이 집을 지니고 3백 석 추수를 받아 식량을 하고, 가용을 쓰고 하면서 우리는 넉넉지는 못하나마 남께 옹색한 거동을 보이거나 황차 빚 같은 것은 통히 모르고 편안하고도 만족한 세상을 살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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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해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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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료를 전 수확의 3분지 1만 받도록 마련이 나, 3백 석 추수가 2백 석으로 줄었다. 기본 수입이 3분지 2로 줄어, 우리 집에서는 2백 석 추수를 가지고 1년 가계를 삼아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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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는 3분지 2, 2백 석의 추수를 줄었는데 다른 물가는 다락같이 올라만 깄다. 3분지 2로 준 2백 석의 추수를 가지고, 옛 가용의 3분지 2조차 대기가 까마득하게 어려웠다. 추수한 벼2백 석은 소위 공정가격으로 고스란히 공출을 하고서, 그 대금을 받아가지고, 용은 소위 야미값으로 사대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33
하기야 일제 말기에도 소작료 받는 벼를 죄다 공출에 바치고, 한 섬 10원씩의 공정가격으로 받지 아니한 바는 아니었으나, 그때의 야미 시세는 시방처럼은 공정가격과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제 털 뽑아 제 구멍을 메꿀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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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에는 그러나 도저히 안될 말이었다.
 
35
지난해 가을에 2백 석에서 소작료 공출 대금으로 도합 25만 몇천 원인가를 받았다. 그중에서 토지 그것에 따르는 지세니 무어니를 까고 나면, 20만원 원 남짓이 옹근 수입이었다.
 
36
식량 그 밖에 모든 비용을 줄이고 줄여도 1948년 현재의 화폐로 매달 4만 원의 가용이 든다. 20만 원인다 치면 다섯 달치 가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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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머지 일곱 달은?……
 
38
내가 국민학교의 교원으로, 다달이 받는 월급이 한 7,8천 원은 된다. 그러나 그 월급을 가지고 나의 일신에 관한 용, 가령 담배를 사피운다든가, 책을 산다든가, 술은 먹지 않아서 그 방면에 낭비는 없다지만, 가다오다 친구 만나 점심 낱 먹고 찻잔 마시고 양말 컬레 사 신고 한다든가 하느라면 오히려 부족이 나서 옹색한 일을 당하는 적이 있을 지경이니, 단돈 백 원이라도 집안에 들여놓질 못하는 형편이었다.
 
39
아버지는 드러내놓고 말을 아니하나, 이왕 월급벌이를 할 바이면, 아무 변통성 없는 초등학교의 교원질보다도 종종 가다 뒷길로 딴 수입이 있고, 배급 물자 같은 것도 동떨어지게 후하고, 그리고 권도(權力)도 부릴 수가 있고, 그 권도를 묘리 있이 잘 부리거드면 큰수를 잡아 일조에 팔자를 고치는 수가 있고…… 이런 관리 방면으로 터를 바꾸어 앉았으면 하는 눈치가 없지 않았다.
 
40
나는 그러나 아버지의 그런 뜻을 받들 생각이 없었다.
 
41
관리 그것이 나쁠 며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관리를 다니면서, 사를 써주고서 뒷길로 딴 수입을 보고 하는 것은 마땅히 군자의 할 도리가 아니었다.
 
42
더우기 지체를 이용하여 아닌 권세를 부린다든가, 황차 권세를 부리어 불의한 재물을 긁어들인다는 것은, 남이야 어떠했든 나로서는 감히 범하고 싶지 아니한 불의였다.
 
43
의 아닌 부와 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으니라…… 이 공자님의 말씀은 정히 나의 변할 수 없는 심경이요 태도였다.
 
44
관리가 됨으로써 그러한 불의를 범하고 하기가 뜻에 없을 뿐만 아니라, 반면 나는 현재의 교원이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는 자이었다.
 
45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데리고 그들을 가르치며 잘 지도한다는 것, 이것은 내가 사람으로서 할 바의 다시 없는 사명이었다.
 
46
지금은 나라를 새로이 세우는 아침이었다. 앞으로 우리 나라를 두 어깨에 메고 나갈 사람은, 시방 내가 가르치고 지도하는 어린 사람들인 것이었다. 그런 새로운 우리 나라의 일꾼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한다는 것은 한결이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노릇이었다.
 
47
나는 장차에 우리 집안이 더욱 더 몰락이 되어, 가사 조석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른다고 하더라도, 나는 끼니를 줄이고 누더기를 걸치면서라도 이 천직을 지키되 버리지 아니할 터이었다.
 
 
48
우리 집은 빚을 지기 시작하였다. 1946년 봄부터 1948년(금년) 봄까지 만 2년 동안에 진 빚이 30만 원이 넘었다.
 
49
토지는 팔자하니, 작인들이 장차에 토지분배가 있을 것을 생각하고서 값만 잔뜩 깎고 앉아 사려고를 아니하였다. 작인들로는 당연한 타산이었다.
 
50
할 수 없이 계동 집을 팔아 지금 사는 가희동의 이 방 세 개의 단채 집을 사고 빚을 대강 갈무리하였다.
 
51
큰 집을 팔아먹고 작은 집으로 옮아앉아, 빚을 갚고 하였다고 그것으로써 전과 같이 수지의 균형이 도로 맞고, 생활이 안정이 되었느냐 하면 아니었다.
 
52
수입보다 지출은 여전히 컸다. 금년 1년을 지나고 나면, 또다시 몇십 만 원의 빛이 앞채일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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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을 팔거나 아주 헐값으로 토지를 팔거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은 앞으로 3년이 못하여, 토지는 물론이요 집도 터도 없는 철빈이 되고 말 번연한 운명의 선 위에 당시랗게 놓여 있는 것이었었다.
 
54
일반 가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버지는 당신의 모든 씀씀이를 줄이고 갈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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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가을 두 철, 친구들과 작반하여 승자로 유람 다니는 것을 뚝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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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달이 한 번씩 모여 놀고 하는 시회(詩會)를 한 달 혹은 두 달씩 거르곤 하였다.
 
57
정월과 8월의 양 명절때를 비롯하여 한식, 단오, 9월 9일, 동지, 그리고 시월 초사흗날인 당신의 생신날, 이렇게 1년이면 대여섯 차례를 좋은 술과 안주 많이 장만하여 더러는 기생까지 곁들여 친한 친구 청하여다 대접하면서 풍월(風月 : 詩) 읊어가며 흥그롭게 놀던 것을 처음에는 양때 명절과 시월 초사흗날의 당신 생신날과의 세 차례로, 그 다음엔 당신 생신날의 한 차례로 줄이었다. 그러나마 음식 차림새도 극히 간소하게 하고 기생은 일체로 부르지 아니하였다.
 
58
간구한 친구가 촐촐해서 찾아왔을 때, 석양배 한잔 내기에도 두루 주저를 하지 아니치 못하였다.
 
59
친구와 술과 풍월과 승자 찾아 유람 다니기와, 이것이 이 아버지에게서 일시에 전부 혹은 태반이 없어진 셈이었다.
 
60
친구와 술과 풍월과 승자 찾아 유람다니기와,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아버지는 노래(老來)의 인생이 즐거웠었다. 그리고 그것이 없어짐으로 해서 아버지는 위안과 낙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61
집안 살림은 나날이 졸아들어, 끝장이 눈앞에 내어다보이고…… 친구도 술도 풍월도, 승지 찾아 유람도 죄다 잃어버린, 그래서 세상 살아가는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이 다 없어진 만년…… 아버지는 이른바 앙앙불락(怏怏不樂)이었다.
 
62
아버지는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당신에게 직접 이해 상관이 있는 일이고 없는 일이고 간에 하나도 정당하거나 당연한 것이 없고, 모두가 옳지 못한 일이요, 사리에 어그러지는 일이요 하였다.
 
63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고 간에 남이 하는 일, 하는 말 치고 하나도 마음에 맞거나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64
아버지는 그래서 불평이요 불만인 것이었었다.
 
65
이 앙앙한 심사라든지 불평과 불만은, 그러나 어디다 대고 어떻게 부르댈 바이 없는 울분이요 불평과 불만이었다.
 
66
천품으로 이미 좁고 비꼬인 것이 있는 아버지였다. 가뜩이나 거기에 당신의 허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외부적인 원인으로 하여 당하는 몰락과, 불여의(不如意)에서 오는 울분과 불평불만이—— 그러나마 풀 길도, 부르댈 대상도 마땅히 없는 울분과 불평불만이, 앞채이고 보매, 비꼬인 솔성이 더욱 심각하여질 것은 차라리 당연한 노릇이었다.
 
67
친한 여러 친구 중에서도 유난히 더 친하고, 아버지를 잘 알고 하는 윤씨라는 이가 있었다.
 
68
“용 못 된 이무기가 심술만 남드라구…… 가사 세상이 좀 불여의하기로소니, 장부가 마음을 좀 활달히 가지는 게 아니라 복닥복닥 속을 고이구, 사람이 그 웨 그렇드람? 그리군 무단히 남더러 미운 소리나 하구…… 그게 그대지 쾌할 건 무어람.”
 
69
그 윤씨라는 이가 핀잔삼아 권고삼아 아버지더러 한 말이었다.
 
70
아뭏든 아버지가 그런 어른이고 보매, 황주 아주머니만 하더라도 도무지 여자답지 못하게 시끄럽고 실속없이 말이 많고도 능하고, 그리고 번접스럽고 한 것이 작히 아버지의 눈에 벗음직도 하기는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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