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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文學作品)의 영화화(映畵化) 문제(問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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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4.6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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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作品[문학작품]의 映畵化[영화화] 問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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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春園)의 원작『무정(無情)』을 영화「무정」으로 보고서 문득 생각이 난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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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영화 그것에 대한 이론에 있어서는 전연 문외한이다. 그러므로 이번의 영화「무정」이 영화로서 얼마만큼 성공을 했느냐, 또는 어떠한 정도로 실패를 했느냐, 더우기 가부간 그 세부적 테크닉 같은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말하기를 피함만 같지 못한 줄로 생각한다. 그리고 다만 한 사람 문학인의 입장으로서 영화가 문학과 접촉되는 부면(部面), 그중에서도 이번의「무정」을 보고나서 영화가 문학작품 즉 소설을 영화화하는 태도 그것에 대하여 문득 느낀 바를 간단히 토로하는 데 그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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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우리네 조선 사람에게 가장 사랑을 받고 그리고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로, 고전에서는「춘향전」이 으뜸이라고 한다면 신문학에 있어서는 춘원의『무정』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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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우리가 그 스토리는 물론 어떤 대문은 문구까지도 구송(口誦)할 수 있도록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하면서도「춘향전」을 다시 읽고 싶은 때가 있고, 그래서 읽을라치면 여전히 즐겁고 싫어날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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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것을 우리는 오랜적부터 ‘협률사’ 라든가 요새 같으면 창극이라든가 또는 신극(新劇)의 형식을 통하여 몇 번이고 보아왔지만, 그러나 어느 때 다시 그것을 보아도 전과 다름없이 반갑고 역시 싫어날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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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의『햄릿』등 그의 여러 작품들이 전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꾸준히 사랑을 받고, 그리하되 조금도 그 인기( ─ 라고 하면 속스런 형용이겠지만)가 축지지 않는 것이나 또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불란서 자국 내에서만 거듭 일곱 번째나 영화화가 되어도 여전히 반갑게 환영을 받는 것과 일반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춘향전」이『햄릿』이나『레미제라블』이 그러하듯이 스스로 영원한 예술적 향기와 생명을 가진 때문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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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춘원의『무정』도 그러하다. 물론『무정』의 가치와 인기를「춘향전」이나 더우기 셰익스피어의『햄릿』같은 것과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서 그의 독자층의 넓이나 수효라든가 그들에게 사랑받는 심도라든가를 비교한다면 오히려『무정』자신이 억울한 씨름이라고 불평일 것이다. 그러므로『무정』의 장자적(長者的)인 지위는 조선의 그리고 신문학에 국한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한 과거 30년간에 많이 생겨난 여러 신문학 작품 가운데서는『무정』의 지위를 덮은 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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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그리하여『무정』은 우리네에게 아직껏 싫어남이 없이 즐거운 문학이요 그러한만큼 그가 영화로서 우리네 앞에 나타날 때는 한 새로운 즐거움이 솟아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설『무정』을, 영채(英彩)나 형식(亨植)이를, 이번에는 종이에 찍힌 활자가 아니라 움직이고 말을 하고 하는 그림으로서 스크린에서 만날 수가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히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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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으로도『무정』은 한번 영화가 됨직한 조건을 넉넉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무정」이 소설『무정』의 사상과(광의의 사상을 가리킴이요 이하도 그러하다)표정을 어떻게 닮아 가지고 나왔느냐? 즉 서두에서 말한 것대로 영화「무정」은 어떠한 태도로 소설『무정』을 영화화했느냐? 하는 것이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문제의 촛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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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견해일는지 모르겠으나 한 영화작가 즉 연출자인 감독이 어떤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서의 태도는 우선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소설을 그대로 스크린에다가 번역하는 것” 과 “단지 그 소설의 사상만을 차용하는 것”과의 두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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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작가는 경우를 따라 그 소설이 가진 바 세계를, 소설이 문자로써 기록했던 그대로를 갖다가 화면과 음향 급 언어로써 스크린 위에다가 재생을 시켜 그 소설의 사상이 스스로 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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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우에 있어서는 영화작가는 한 사람의 충실한 번역자에 불과하고 따라서 그 영화는 순전히 그 소설의 영화적 수단에 의한 번역품인데서 더 나아가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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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이나 무난하다고 하겠는데, 만일 우리 문학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엇보다도 안심스러운 노릇이다. 불안이 없고 그 대신 작자 자신이 일찍 머릿속에서 창조하여 활자로써 기록했던 세계와 인물이 실제의 영상과 음향급 언어를 가지고 직접 시각과 청각적인 것으로 재현되어 보다 더 효과적으로 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려나 반갑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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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태도는 그러나 드물고 오히려 과거 무성영화 시절에 흥왕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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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토키 이후는 전기 중 그 후자의 태도가 단연 우세하여(가령『죄와 벌』같은 것만 하더라도) 영화작자는 원작인 소설의 사상만을 빌려다가 그 소설이 가지지 않았던 세계와 인물을 도입도 하고 또는 스토리를 개변(改變)도 하여, 그러하되 그 사상을 잘 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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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토키의 새로운 예술로서의 중요한 성격의 하나라고 하는데, 문학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욕심이 미흡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원작의 스토리며 디테일이며 사건이며의 개변첨삭(改變添削)이 있다고 치더라도 사상만이 완전히 살았다고 하면 그다지 큰 불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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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를 않고 더 나아가서 곤란스런 이례(異例)가 생겨, 그 소설을 통하여 작자가 보인 바 사상이 아니고 어떤 다른 사상이 그 소설로부터 추출(抽出) 이용, 혹은 전연 몰각(沒却)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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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우가 소설의 원작자에게는 가장 의외로운 경우이겠는데, 가령 이번의 영화「무정」은 아무리해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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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할 때에 춘원의 소설『무정』은 인정세사(仁情世事)의 한 무정한 단면 즉 하나의 생활을 통하여 10년대의 젊은 제네레이션의 시대적 동향을 보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 『무정』의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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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무정」은 무엇보다도 시대가 그대로 현대로 바뀌어졌다. 그리하여 춘원이『무정』에서 의도한 바 사상은 전연 보여짐이 없고 다만 인정세사의 어떤 무정한 단면만이 전면에서 흐르고 있다. 물론 그것 한가지만으로도 영화적으로는 소설 『무정』의 이름 밑에서 성공이라고 할는지 모르겠다. 또 현대의 특수한 객관적 조건이 영화 「무정」으로 하여금 그렇듯 소설『무정』의 사상을 오밋시켰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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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다면 한무내하(恨無奈何)거니와 그러므로 이번의「무정」은 가령 그러한 제약하에서 생겨진 예외라 하기로 하더라도 앞으로 소위 문예영화라는 것이 상당히 득세를 할 기세가 보이는 이때에 있어서 일반으로 영화작자의 대 문학작품의 태도는 매우 책임있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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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9.4.6〉
【원문】문학작품(文學作品)의 영화화(映畵化) 문제(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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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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