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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위 42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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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6. 3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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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4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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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십 원의 집이 대궐같이 크다. 넓은 앞뜰은 제법 웬만한 운동장이다. 날이 따뜻해지면서부터 의사의 권고로 글러브를 사가지고 캐치볼을 시작하였다. 캐치볼 터로도 쓰고 남은 넓은 뜰을 그대로 버려 두기가 아까워서 딸기 묘종을 수십 주 얻어다 심고 날마다 공들여 물을 주었더니 꽃이 하아얗게 피면서 푸른 열매가 맺기 시작하였다. 토마토도 올에는 폰데로오자와 델리셔스 두 종 약 30주를 파다 심었더니 이것도 어느덧 노랑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카카리아와 애스터가 한 치 길이나 자랐고, 종이 움 안의 오이가 넝쿨을 뻗으며 푸른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도 보기에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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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도 모두 온상 안에서 월여 동안 자라나 묘를 이식하였기 때문이지 평지에서 자랐더면 아직 이만큼의 장성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평지에서는 ─ 종묘장의 라이맥이 이제 겨우 3·4촌 자라났고 과수원의 능금꽃이 연지빛 봉오리에서 흰 꽃으로 분장을 변하여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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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북위 42도의 6월이다. 발육 불충분의 가난한 자연 ─ 털을 뜯긴 양 모양으로 빈약한 계절 ─ 딸기를 먹을 시절에 꽃이 피고 보리를 베인 시절에 이삭도 안 팼다. 하기는 온실에서는 베고니아의 꽃이 지고 제라늄과 아마리러스가 한참 아름다운 때이다. 그 속에 섞여 선인장의 진홍의 꽃송이가 난만한 열대적 열정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온실을 나가면 만목(滿目) 헌칠한 벌판이다. 그 벌판에는 청색보다도 아직 토색이 더 많이 눈에 띠는 것이다. 바다에서는 찬 안개가 아물아물 흘러 온다. 사무실에서는 난로 뒷자리에 놓은 큰 화롯전이 그리워서 우줄우줄 모여드는 형편이다. 기온이 차고 자연이 어리고 계절이 빈궁한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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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넘도록 폈다 덮었다, 읽다 치웠다 하면서 도무지 나가지 않는 발자크의 소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추군추군한 작품의 열정을 쫓아가지 못함이 그 한 이유가 아닐까. 발자크의 인물들은 황소 같은 열정을 가지고 생활한다. 한 가지의 생활 목표를 작정하고는 그 과녁을 향하여 일로매진 마치 마술에 걸린 것같이 한사하고 생활하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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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마지막 방울까지 생활하여 간다. ‘바루다잘’이 그러하고 ‘유로’ 가 그러하고 ‘크루벨’ 이 그러하다. 아니 그의 전 작품의 전 인물이 모두 그러하다. 전 육체, 전 감각, 전 지능으로 생활하여 가는 그 전신적 열정, 절대적 생활 ─ 이것을 좇아가기에 나는 도중에서 몇 번이나 헐떡거렸던가. 여러 번 그만두려다 간신히 끝까지 좇아가서 한 편을 읽고 나면 마치 찐득 찐득하고 독한 고급 양주를 마신 뒤와도 같이 그 열정에 취하여 전신이 몽롱하다. 며칠 동안은 허든허든하여 다른 생각 없이 그 인물들의 뒷생각뿐이다. 과연 이런 것이 휼륭한 ‘문학’이라는 것을 뚜렷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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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위도와 지리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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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체구를 가진 발자크가 일생의 열정을 기울여 제작한 소설 ─ 그 속에서는 그와 같은 불란서에 태어나 남구적 열정을 가진 백성들이 힘차게 생활한다 ─ 근기(根氣)있고, 끈기있고, 추군추군하고, 줄기찬 소설을 다른 위도와 풍토 속에 사는 우리가 용이하게 따라가지 못함은 정한 이치이다. 대체 그러한 위대한 열정이 그다지 덥지 않은 기온 속에 살고 그다지 크지 못한 체구를 가진 우리의 성에 맞을 것인가. 발자크의 육체와 우리의 육체 ─ 그의 소설과 우리의 소설 사이에는 이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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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풍토내지 문학과 기후 ─ 이것은 결코 새로운 제목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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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대를 표준으로 하고 변칙적 대외적인 풍토의 철늦은 이곳에 살면서 풍토 다른 발자크를 읽으려니 이 제목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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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토와 기후는 생활을 규정하고 그 생활을 비추어낸 것이 문학일지니 문학과 풍토의 관련은 심히 큰 것이다. 발자크의 찬란한 문학에 비길 때 우리의 문학이 얼마나 빈혈증의 앙크렇게 여윈 호흡 짧은 윤택 없는 것인가를 보라. 문학의 전통 기타 백 천의 제 조건과 문제는 그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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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제환(濟患)에 실망하고 약 숟가락을 던지는 격 ─ 의 의미가 아니라 이 제목을 새삼스럽게 되풀이하는 것은 발자크의 너무도 위대함에 괄목하여서이다. 그의 소설은 실로 인생의 박람회장이요, 지식 창고이다. 이 경이할만한 창조신 ─ 그는 ‘문학’ 의 한 큰 자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풍토의 제목을 차버리고 이 땅에도 발자크 같은 위대한 육체의 예외적 천재가 나서 그의 재조(才操)를 배우고 기술을 승양하여 그의 작품에 비길만한 정력적 걸작을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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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극히 차지도 아니한 격정이 없는 이 가난한 풍토와 거세된 이 환경 속에서 발자크적 휼륭한 문학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 극난의 일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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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아직도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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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차 계절이 익으면 얼었던 마음이 풀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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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에 딸기가 빨갛게 익으면 딸기 같은 문학이라도 써볼까. 토마토가 익을 때면 토마토 같은 문학을, 능금이 익을 때면 능금 같은 문학이라도 써볼까. ─ 치성(雉城)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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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신보 1933. 6. 3
【원문】북위 4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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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위 42도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3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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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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