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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란 가장 멀리 있는 것이다. 벨트람과 같이「언어의 자유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어느날에 실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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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모든 전달과 개념만을 위하여동원된 언어는─ 설혹 그것이 시작(詩作)인 것이라도─ 무질서한 나열과 계기적 조화로써 그들의 죽음을 표명한 데 불과하다. 자칫하면 현대시의 과제가 언어의 지악적(枝惡的) 남용에 그치지 않는가에 대하며 우리들의 시력이 그 이상의 마비를 수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효용가치로서의 언어가 모든 허식적 절망에 주저할 때 정밀한 의미적 건축에서 언어는 또 다른 탄생을 이루지 않았던가. <있는> 결과에서가 아니라 <낳는> 이념에서 언어는 보다 완전한 로고스의 집결로 존재하며 가장 알맞는 언어란 우리 자신을 치환할 수 있는 언어인 것으로 또한 부정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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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930년 안넬로대학에서 행한 바레리의 시어 강연 속의 <소리에서 뜻으로, 품는 것에서 풍기는 것으로> 혹은 <전존재의 획득> <전능력의 추방> 등등이 한결 언어의 추상적 목적을 반박하는 그의 정당한 시현이었음을 다시금 뉘우쳐야 할 것이다. 모든 분식적 사역의 절망에서 석방될 언어의 자유란 결국 불가결한 세계와의 전연계이며 전연계를 의식하는 것 또한 그러한 의식을 내용하는 <선택> 그것이라고 보아진다. 선택은 그 스스로가 추상화됨을 배척하는 동시에 이미 정신 범위에 있어서의 여하한 피동(被動)도 용납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톺아갈 불연 속의 연속 속에 혹은 그러한 생명현상 속에 더 확실히 발휘되는 존재적 매개이며 예지적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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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마땅히 처분되어야 할 모든 현대시(?)의 발호적 구상들은 이러한 영역을 대부분 우회하였으머 피상화된 채집만으로 그들 자신의 위기를 더욱더 심혹(深酷)케하는 것인즉 유일적 발견에 권태한 그들의 분열 의식이란 한갖 이러한 기피를 보호하기 위한 <양의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고정체(非固定體)로 발전될 언어의 질적 확대는 세계와의 전연계속에서 필연 그의 자유는 그러한 전연계의 충실에 의하여만이 한층 유일적인 것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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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어의 실상이란, 이렇듯 혼돈과 우주간의 영원한 몸짓일 것이다. 한편 세계와의 전연계가 존재 내면과의 연계에서 시발하는 것일진데 모든 언어는 <안으로>있는 것이며 <합생>의 이념에서 언어는 더욱 <그 어느날>부터 회잉(懷孕) 실존하는 것이 된다 언어철학에 있어서 이를테면 <내적형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태초로부터 있는 언어의 형이상학적 혼돈에 젖힌 그대로를 부결치 못하는 우리들의 세계적 광경이 이닺 오묘하고 엄숙할지언정 그것은 한마디로 정신의 끝없는 피안 또는 정신의 울창한 밀림을 가르친 것이라 본다 그러한 . 피안에 대하여 그러한 밀림에 대하여 또는 그러한 내면과 세계에 대하여 시는 최초로 언어를 방수(放遂)한다 시는선택에 거역한 언어의 무정부적 도래를 다시금 거역하는 것이며 뭇 언어는 전연계의 구체적인 임무를 새삼 강요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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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거역을 필약(畢…約)한 뒤에는 언어의 세계적 방황과 고뇌의 절정을 시는 엄밀히 수산(數算)하는 것이며 마침내 새로운 재환再還)과 탄생을 위한 그 절대적 구속에 대하여 하나의 <초혼>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의 초혼이란 절박한 그들의 최고 비원(悲願)이다 추억과 사자死者)에 대한 공통한 조소이며, 피안과의 아름다운 교환일 것이며 가장 순결한 기도일 것이 분명하다. 절대자의 우연한 방치와 이별에 대한 그들의 고뇌는 경건한 제전에 타는 은은한 불길로서 머뭇없는 행위의 직분적 호소이다. 시는 이와 같이 언어를 초혼하는 것이다. 언어적 실재란 그 형성된 즈음의 과정을 우리들에게 재생시키므로써만 획득되는 것이며 언어적 방법이란 <어떻게> 보다는 <무엇>으로서 나타날 것이라는 고도한 의의를 또한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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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예비적인 파악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가능적 실천이 무엇을 낳았는가에 대하여 또는 <총화의식>에 의한 저현(著顯)한 그의 연금鍊金)에 대하여 임의로의 한 윤곽을 그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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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있어서 언어에의 구속과 희망이 각기 다른 체내에 용로(熔爐)된 불의 신념과 같이 초혼적일 때, 시인 서정주는 <시와 시평을 위한 노오트>에서 「나는 시를 하는 일을 자기가 숨쉬고 생명을 영위하기에 적합한 세계를 정신과 언어의 율동으로써 꾸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하였으니 그는 자기가 숨쉬는 생명을 영위하기에 적합한 세계를 내공(內攻) 장식하는 정신속에서만 언어는 스스로 주루(彫鏤)의 흔적과 혈색을 그대로 들어놓는것이며 온갖 언어적 인색과 빈척(貧脊)은 오히려 정신적 감퇴와 거짓에서 유래되는 것임을 명백히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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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으로 언어가 창출된 그 시원(始源)의 요구와 가쁜 개성적 밀도로써 어떻게 하면 언어의 비장(秘藏)을 타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문에 일관하여 자기 희생의 집중적 체험을『화사집』에 수록한 대부분의시편에서 거의 완료한 것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시집『귀촉도』에 이르러선 동시 존재적인 미토스의 승화에 까지 모든 언어를 장래(將來)시킨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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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에 있어서의 공간적 제압과 후자에 나타난 시간적 원근은 결코 무의미한 대조가 아닌 것이며 정신의 가혹과 핍박이 심한 <그 어느날>이란 시원적(始源的) 저편에서 체현(體現)되었던 그들의<언어 행위야말로 서로의 공유적 필연 위에 더욱 뚜렷한 목표를 가리어 제시하는 것이다. 서정주 그는 시인의 명예보다 언어인(言語人)의 노동을 얼마나 중시한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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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우에서든지 행위에 대한 진지한 욕망에는 관념적인 것 일체가 중단된다. 시인 서정주는 자기 <선택>의 욕망 속에선 관념의 여하한 부분도 압수(壓遂)한 것이니 그는 오히려 모진 징벌에의 수락인 동시에 어떤 공격(空隔)도 용납하지 못할 생명 영위에 순수한까닭이였다 사실 정신상의 일시적 포기라도 엄금(嚴禁)한 그에게 있어서 벙어리와 문둥이를최상의변신이라 할 것 같으면 벙어리와 문둥이의 의지는 무엇이며 인간병의 유일한 지지자는 어찌하여 이들의 과잉적 병리에 끝내 매혹된 것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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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생애에 나타난 이상과 같은 비관념성은 오히려「생간(生肝)으로 매워오는 두개골 속에서」정신의모든아프리오리까지를수락한것이었다 아프리오리란 다만 더 가능적 의식인 것이며 존재적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정신이란 그 절망과 고통속에 더 많이 발견되어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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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이외의 어느 부분에서도 살필 수 없는 선험적 <전살도(全殺到)>야말로 그의 정확한 세계적 목적을 말하는 것이 되므로 이다. 여기에 있어서서 행위에 대한 관념의 중단은 정신의 아프리오리적 일체를 수락함과 동시에 지성이전의 원시 영역에서 생존하는 <언어군>을 적극 매개하는 것이였다. 질서가 무질서를 반정(仮定)함과같이정신은육체를반정하고 순수는 혼돈을 반정하고 마침내 정신은 제약을 발휘하는 것이 된다. 정신은 <이루워짐>속에서 그 방사되는 빛깔의 제약을 목적하여 자기 통로에 놓여질 촛점적 언어를 얼마나 엄정(嚴定)하는것인가 생명에있어서의뭇감각도결국은이 시원적(始源的) 근저에서동등한협력으로만출발되는것이다 또다시정신은 <주어진 존재>를 떠나서 <해결적 존재>로 옮아가며 이러한 체현적 내부에 교착되는 <언어상태>를 또한 숨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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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정주에 있어서 언어 생태란 어떻게 발전된 것인가. 우리는 먼저 그가 말하는「정령精靈)의수백층계層階)의기류」라는시간적공간을생각하여야 한다. 다만 정령이란 호칭에 대한 언급을 폐하더라도 수백층계의 기류 속에 잠세(潛勢)되어오의적奧義的) 침묵은그대로<심연의확보가아니였겠는가. 정신체계에 있어서 허무한 것과를 변별하는 것같이 언어적인 것과 언어 그것을 철저히 분리하였을 때 언어의 자유는 구속이라 불리워지며 언어의 정교(正校)는 생리의 이교적(異敎的)혼돈 끝에서만 영원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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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봄은 봄 이상의 아무것으로도 형용되지 않는 것이니 언어상태는 언행위(言行爲)를 내용하는 발전 속에서 스스로 나타난 잠월적(潛越的) 탄생에 불과하다. 불가시한 세계와의 연계를 느끼게 하였을 때 언어는 언어 이상의 아무것으로도 반상(仮想)될 수 없으므로 이때의 시간적 공간이란 원시(原始)에의 측정이며 험준한 주목의 전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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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아도 사방에서…… 오손 도손 생겨나고 있는 것이었다”이것은 하나의 상황이다. 상황을 어디까지나 초월적인 것이다. 상황은 오히려 형이상학적 장소일 것이다. 이리하여 언어상태는 언어상황을 수립하고 언어의 지속성을 극화한 것이다.“서녘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한바다의 정신병과 징역 시간과”불가지한 촛점은 여기에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정말의 시는 한개의 특수 공기와 같은 성질을 가진다. 그리고 이것이 위대하면 위대 할수록 그 특수성은 특수 공기와 같은 성질을 가진다. 그리고 이것이 위대하면 위대 할수록 그 특수성은 기성의 일반성에 대치할 수 있는 일반성이 되는 것이다.”사실, 시「서풍부」에 나타난 것은 특수 공기와 같은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그러한 특수성이 일반성과 대치할 수 있다는 것은 언어의 미학적 원시성이 언어의 기존적 현실성까지도 얼마든지 내섭(內攝) 능가할 수 있다는 최고의 판단일 것이다. 그러므로『화사집』에 나타난 모든 언어는 그 방법적 음미를 피하더라도 <특수 공기>의 발전과 수백층계간의 가역(可逆) 속에서 그의 일반적 승리와 세계연계의 목적을 십분(十分) 완료한 것이라고 보아지는 것이다. 육체의 반정에서 혹은 그 절대한 태형을 넘어 정신은 격동하는 심연으로부터의 질서적 비약을 마련하였다.「저 마약과 같은 봄을 지내어서 저 무지한 여름을 지내어서」<목화>는 피었다.『귀촉도』는 피어난 것이다. <귀촉도> 전편을 물들이고 있는 정신적 생성을 말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미 인간 서정주가 얼마나 그 <개(個)>의 입장으로부터 <전(全)>의 입장으로 변신한 것인가를 새삼 주목할 것이며, 이루 한 마디로 적을 수 없는 생명과 비생명과의 로고스적 전역(展域)을 또 새로이 구상해야 할 것이다. 다만『화사집』의 마지막 시편 「부활」은 자타의 인정과 같이 그러한 두 세계 간의 유일적 교량인 것을 또한 말해 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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