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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7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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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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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기는 할 것이로되 여름 과실로는 아무래도 수박이 왕좌(王座)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맛으로 친다 해도 수박이 참외나 다른 그 어떤 과실에 질 배 없겠으나 그 생긴 품위로 해서라도 참외나 그런 그 어떤 다른 과실이 수박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중후한 몸집에 대모(玳瑁)무늬의 엄숙하고 점잖은 빛깔이 우선 교양과 덕을 높이 쌓은 차림새 같은 그러한 고상한 인상을 주거니와, 감미한 맛을 새빨갛게 가득히 지닌 그 속심은 이 교양과 덕의 상징이라 아니 볼 수 없다. 새빨갛게 속이 물드는 과실이 하필 수박이리오만, 유심히 보면 수박의 그것은 어느 다른 과실의 그것보다 빛의 성질이 다르다. 천진에 가까울 만치 순한 빛이요, 연한 살이다. 아마도 자연의 제과품으로선 이 수박이 여름의 풍물 가운데선 가장 예술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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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박을 좋아하는 것도 실은 이 예술적인 풍미에 있다. 그래서 나는 수박을 미각으로만 즐길 것이 아니라, 시각으로도 취미로도 즐기고 싶어, 한때 시골서 살 적엔 채원(菜園)에다가 수박을 손수 심고 가꾸며 어루만진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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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예술이 완성되기까지에는 그 노력이 헐한 것이 아니듯이 이 수박을 가꾸는 노력도 참으로 헐한 것이 아니었다. 재배법을 들여다보며 꼭 법칙 그대로 가꾸는데도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참외는 맺히기만 하면 결실이 거의 영락이 없는데 수박은 그렇지 않았다. 맺혔다가도 곧잘 떨어지고 한창 크다가도 결실에 이르기까지의 밑자리가 위태해서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손만 좀 대어도 손내를 맡고는 앓는다. 자연 이외의 접촉은 허하려고 아니했다. 자연이 준 지조를 충실히 지키는 과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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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상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박은 탐나는 미각의 대상이 아닐 수 없는데, 달고 시원하면서도 훗입이 깨끗한 맛이란 여름의 그 어느 과실이 감히 따르지 못할 것이다. 적당히 익어서 땅바닥에 닿았던 부분이 누렇게 되고 두들겨 보아 북소리가 나는 놈만 골라들면 그야말로 그건 여름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일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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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장에 진열된 것으론 이런 게 용이히 눈에 띄지 않는다. 영리를 위하여 다량생산을 목적하고 인공을 가하여 자연을 모독해서 조숙시킨 것이 거의여서 수박 본래의 제 맛을 다들 그대로 지니지 못했다. 심지어는 속을 붉게 만드느라고 애숭이에다가 물감 주사질로 성숙시킨 것도 없는 게 아니라니 도시 사람은 어쩌면 한평생 수박의 제 맛을 모르고 지나게 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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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오랜 세월을 내려오며 시인의 흥을 돋우고 만인의 입에서 오르내려 오는 수박이 오늘 와서 이렇게 변질이 되고 만다는 건 여름의 미각을 위하여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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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국도신문(國都新聞)》 (194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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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상아탑』(우생출판사, 1955)
【원문】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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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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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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