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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학(時調詩學)은 조선의 특유한 시조시의 연구를 목적한 학문이다. 시조시는 조선문단에서 예부터 크게 숭상하여 온 시체(詩體)이며, 또한 청각의 미(美)를 나타낸 성악에 있어서도 시조시에 붙여 있는 곡조를 유별나게 치중하여 온 것이다. 그것이 시로나 창가로나 일반 민중의 치성(致盛)한 예술품으로 되어 옴에는 그 속내에 사상의 역사적 가치가 잠재하여 있음은 물론이요, 그 형식으로 말해도 작자가 각기 제멋대로 표출한 것이 아니라 서로 옮기며 본받던 전형(典型)이 있고, 그 전형은 또한 일시적인 조작이 아니라 옛날부터 많은 사람의 세련을 거쳐 정제(精製)됨에 따라 기능과 재치를 다하여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그 문칙(文則)을 찾아 깨우침에는 조선(祖先)의 공력이 낙인되어 있는 정화(精華)의 의장(意匠)을 알기도 하려니와 시조시 그것의 가치를 평정(評定)함으로부터 작법의 지침을 터득하기 좋은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곧 시조시에 대하여 그 법칙을 해득코자 하는 지적 작용을 직접으로 움직여 보는 일로부터 성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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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전 사람도 이에 대한 연구가 있어 작품의 정도를 논평하며 정리하고 해석하고 또는 문헌적으로도 연구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구체적 연구로서는 시조시의 표준적 법칙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신연구는 그런 구체적인 작품을 대상으로 함이 아니요, 널리 시조시라는 현상을 대상으로 하여 추상적으로 그것을 각종 방면으로 관찰하고 추론하여 그 현상의 위에 존재한 법칙을 천명코자 함이다. 그러나 과거인의 구체적 연구과 오늘날 우리들의 추상적 연구 사이에는 전연 몰교섭이 아니다. 피차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시조라는 것이 개개의 작품을 내놓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추상적 연구의 법칙을 구함에는 결국 개개의 작품에 대한 지식으로 귀납치 않을 수 없으며, 도리어 그 투득(透得)한 법칙은 개개의 작품상에 연역(演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추상적 연구는 필요 있는 한계 안에서 널리 개개의 작품에 나아가 관찰할 것이요, 그 연구한 결과는 도한 반대로 개개 작품의 구상적(具象的) 연구에 기초를 두며, 그것을 보조하고 지도하여 내용을 충실케 할 것이니, 이것이 시조시학을 건설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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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연구의 목적은 이상에 말한 것과 같거니와 이 시조시학의 조직에 있어서는 조리 있게 하지 않을 수 없으매, 그 범위를 널리하여 유래 (由來)·운율·문장법 또는 시가사(詩歌史)와의 관계 등 문제를 잡아가지고 그 특수성의 여러 사항을 나누어 제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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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라 이름한 것은 재래 명사인 시조(時調) 2자에 시(詩) 1자를 더한 것이다. 본래 시조라 한 것은 시조 문구와 그 문구에 짝한 곡조를 합칭한 명사이다. 그러므로 시조라 하면 문구인지 곡조인지 분간할 수 없으매, 지금 그 문구를 논함에 있어서는 그의 혼동을 피하고 또다른 시체(詩體)와도 분별키 위하여 ‘시’ 1자를 첨가한 것이다. 시조의 일명은 혹 단가(短歌)라고도 하였으나 일반의 통용어로는 ‘시조’ 2자가 본이 되어 이것이 풍유(諷喩)의 투어(套語)까지로도 유행된 것이다. 그 의미를 말하면 광의와 협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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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의 : 일반 신출(新出)의 가사(歌詞)를 범칭하여 시조라 함이 있으니, 신광수(申光洙)의 「관서악부(關西樂府)」 1절에 ‘일반시조배장단(一般時調排長短)’이라 한 것이 그런 예투요, 이학규(李學逵) 문집(文集)에 ‘시조역명시절가(時調亦名時節歌)’라 한 주기(註記)가 있으니, 시조를 일방으로 시절가(時節歌)라 함은 시조의 본뜻을 명시키 위한 속명(俗名)인바이로 인하여 그 의의가 인식되니, 곧 시조의 의의는 구조(舊調)가 아니요, 시체(時體)로 나온 조자(調子)라 함은 가리킨 것이다. 그 본뜻이 신조(新調)란 말과도 상통성이 있는바 이런 명토(名吐)가 곧 신출로 나온 것의 일반 가조(歌調)에 대하여 광의적으로 쓴 것이다. 이 본뜻으로 한 문자는 한문 숙어에도 또한 있으니, 당(唐)나라 사람 맹동야(孟東野) 시에 “顧余昧時調[고여매시조] 擧止多疎慵[거지다소용]”이라 한 시조와 같은 말임을 연상할 것이요, 동시에 옛사람이 그 숙어를 적발하여 여기에 이용한 것이라 인정하기도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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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협의 : 현대에 시조란 용어는 오직 시조시에 대한 3장식의 곡조를 이름이다. 그러나 갖가지 가서(歌書)에 낙시조(樂時調)란 것이 있고, 또 우락시조(羽樂時調) ‧ 계락시조(界樂時調)란 것이 있는 동시에 그 아래 2자를 생략하여 우락(羽樂)이라 계락(界樂)이라 함도 있으니, 이의 약칭을 보아서는 시조 2자는 접미어로 된 형적이 있는바 ‘낙시조’3자에서 분리한 것이라 할 것이니, 곧 서양인을 양인이라 기우제(祈雨祭)를 우제(雨祭)라 하는 약어처럼 낙(樂)자를 선략(先略)하여 시조라 한 것이 분명하다. 본래 낙시조란 의미는 시절을 낙(樂)한다는 조(調)라 함인지 음악으로 하는 시조라 함인지 그 뜻이 미상하나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써 있는 낙시조는 속악(俗樂)의 사지율(四指律) 32조를 통칭한 명사로서 그 광용상(廣用上) 음편(音便)을 취하여 약칭으로 지어져 내려온 것인 듯하다. 세종대왕 때 일반 음악을 정리하던 박연(朴堧)의 가곡소조(歌曲疏條)에 “다만 향악(鄕樂)에 쓰이는 바의 율은 곧 낙시조(樂始〔時〕調)의 임종·중려 2율의 궁조를 서로 쓴다. 중려의 궁조는 2지(指)의 소리요 임종의 궁조는 3지(指)의 소리다. …….” 한 것을 근거하여 표준하면 낙시조란 말은 이조시대 이전부터 사용되던 것이니, 시조를 낙시조의 약칭으로 보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명사 발생은 고려 시대에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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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시조를 시조곡에 한정된 명사로서의 특별한 말이라 할진대 그 곡조의 유래를 탐색하여야 될 것이나 이는 음악 연구의 직분에 양보할 것이거니와 이 역시 고대로부터 전하는 한자 숙어를 곡조에 이용한 것이라고 추측하면 다른 의미의 해석을 찾을 것이 없이 이상에 말한 대로 시조 2자는 고려 고시(古時)부터 광의로 써온 것이요, 그것이 뒷날에 와서는 협의로 3장식의 시조곡에 한하여 사용된 것이라 함에 귀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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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감정과 상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천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과 시가는 그 옛날 문화가 개시하던 시절부터 발생한 것이니, 사기(史記)에 천신(天神)에 제향(祭享)하던 시각과 농공(農功)이 끝나던 여가에 당하여 가무 음악을 연주하였다 함이 곧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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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예술의 표현 방법은 처음에 가악을 겸하여 행하다가 점차 문학의 진보에 따라 노래가 음악을 분리하여 나갈새 그 가도(歌道)는 삼국시대에 당하여 이미 발달을 이루니, 그때의 가체(歌體)는 4구 6구 8구 또는 10구 등의 단가와 그 10구 이상의 체재인 장가도 있었다. 그 가운데 단가체는 서정(抒情)을 중심삼아 가장 발달하다가 고려 중엽에 와서는 고래 각체가 쇠하여지고 신체 곧 시조체로 집중되어 그것이 일반 시의 표본이 되니, 그 창조의 원조는 고증하기 힘드나 이조 태종(太宗)의 「하여가(何如歌)」와 정포은(鄭圃隱)의 「단심가(丹心歌)」와의 2수가 가장 현조품(顯祖品)으로 인식하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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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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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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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이 죽어죽어 일백번(一白番) 고쳐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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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고 넋이야 있고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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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야 가실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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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2수는 이씨 혁명의 운동이 발발할 때에 나온 것이다. 곧 태종이 포은을 잔치에 초청하여 혁명의 협찬을 간구함으로써 노래한 것이 그것이요, 포은은 그 즉석에 자기 결심을 토로하여 찬동치 않는다는 답으로 노래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2수에 표현된 사상은 정반대로 된 것이다. 태종의 시는 풍유의 사(詞)로서 종순입명(從順立命)의 뜻이니, 당시에 정도전(鄭道傳)· 조준(趙浚)· 변계량(卞季良) 등이 다 이 사상을 따라 본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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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교(仙人橋) 나린 물이 자하동(紫霞洞)에 흐으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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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천년(半千年) 그 왕업(王業)이 물소리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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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희(兒嬉)야 고국흥망(古國興亡)을 물어 무엇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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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천하(治天下) 오십년(五十年)에 부지(不知)왜라 천하사(天下事)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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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조창생(億兆蒼生)이 대기(戴己)를 원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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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康衢)에 문동요(聞童謠)하니 태평(太平)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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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의 시는 강직· 불굴의 사로서 견수(堅守)한 정조의 뜻이니, 이 사상은 상고존의(尙古尊儀)의 주의가 있으매 당시 충성에 동감이 있는 자는 많이 이를 본떠 지으니, 원천석(元天錫)· 이색(李穡)· 길재(吉再) 등의 가조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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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白雪)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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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夕陽)에 홀로 서 있어 갈길 몰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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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세한고절(歲寒苦節)은 대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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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앞의 2인의 시는 당시 민중사상의 양립된 바의 대표로 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후에 혁명 과업이 성공해서는 유교(儒敎)의 존고정치(尊古政治)가 행해지매 문단의 사상도 옛 명사의 작품을 사모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그로부터 앞의 두 사람의 시는 시러곰 후인의 본떠 짓는 표본이요, 또 현조(顯祖)로 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하여가」와 「단심가」를 부르던 곡조도 있었을 것이니, 오늘날 시조곡도 후일의 발생이 아니요 고려 가법의 계통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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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악곡은 어떤 것을 물론하고 모두가 가사를 반주함이 예투다. 그러므로 가사를 지음에도 서양의 고대시같이 반드시 악곡에 배부(配付)하였던 것이다. 시조도 역시 그 문구에 짝한 곡조가 있어 문과 곡이 서로 짝을 지어 내려왔다. 지금 시를 문예품으로 볼 때는 그의 곡조를 거론할 필요가 없으나 문과 곡조와의 관계 있음을 살필진대 그 곡조를 도외시할 수 없다. 영국 서정시의 운율이 그 고대의 음악 선율에 의하여 성립한 것처럼 시조의 문구도 가인(歌人)들이 그 곡조의 선율을 위하여 자수를 가감하는 수정 작용이 있었으매 그로부터 문구는 스스로 운율이 균제(均齊)됨에 이르러 규칙적인 율조를 형성하였다. 또한 그 곡조는 시간적인 예술이라 따라서 청각만으로는 시간을 천이(遷移)하여 변화가 생길 것이나 그러나 그에 짝진 문구가 있었기 때문에 선율의 전형이 그 문구에 의지하여 그 생명을 보존하여 왔다. 다시 말하며, 문은 곡의 화차가 되고 곡은 문의 궤도가 되어 상수상제(相隨相制)의 관계를 지어온 것이다. 그런데 그 곡조는 2종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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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조곡 : 이는 민요적인 색채를 띤 것으로서 그 가락이 가인의 기호음(嗜好音)에 따라 서로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박자만은 규정된 통제가 있어 이로써 주체를 삼은 것이다. 그 보표(譜表)는 백수십년 전에 서유구(徐有榘)씨가 지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기술한 것이 있고 근일에는 가인들이 공력을 들여 양악보로 번역한 것이 유행되어 있다. 그런데 서씨보는 오서(誤書)인지 율격에 합하지 아니한다. 양역보는 현행조로 한 것이나 현행조는 각인각색으로서 악률 원칙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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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곡 : 이는 「정과정(鄭瓜亭)」의 계통으로 되었으되 범성(梵聲)의 가락을 띠고 있는 곡조인데 그 조직은 치(徵)·우(羽) 2조로서 대강삼엽으로 된 것이다.(내용은 弄樂編[농악편] 등의 24투수로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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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율의 내용은 복잡하므로 그 설명은 음악 연구에 밀어붙이거니와 치 ‧ 우 2조란 것은 조금 말할 필요가 있다. 조선 음악의 본음계는 양악으로 말하면 ‘띄’에서 계산하는 음정과 같은 7음으로서 그 7음을 가지고 치·우 2조를 계산하여 모든 악곡을 지은 규칙으로 되어왔다. 이것이 조선음악의 근본 성질이다. (『朝鮮名人傳[조선명인전]』 제2권 王山岳[왕산악] 참고) 이 근본 음악의 성질을 일반 민중에게 보호 유지시켜 온 것은 전연 시조시에 딸린 1곡의 가곡으로써 지켜온 것이니, 그러므로 시조시의 가치는 음악상에 있어서도 큰 관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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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를 논구함에 있어 주관적으로 그의 원칙을 말할진대, 첫째는 체재의 조직이요, 둘째는 운율이다. 그 체재를 말하면 수십행 또는 수백행의 장형으로 된 것이 아니요 간단한 형식으로 되었으니, 그 간단하게 된 이유는 시(詩) 된 본성에 있는 것이다. 시라는 것은 그 미적 표현이 다른 산문에 비하여 긴축(緊縮)하고 집중적인 의식으로써 표현함을 필요로 한 문예다. 그러므로 그 표현 형식이 스스로 긴축한 규율을 가진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시조시의 체재도 역시 시이므로 간단한 형식을 취하여 된 것인데, 더욱 시조시는 서정(抒情)을 위주하여 왔으매 그 감정은 장시간의 영속적을 요하지 아니함에 의하여 그 내용을 묘사한 문구도 역시 단소(短小)하게 된 것인데, 그 간단이라 하면, 그 정도가 얼마만큼 간단한지 이것을 알아볼 것이다. 또 시는 운율 즉 리듬을 요소로 한 것인데, 그 운율은 각종 시에 따라 다르매 시조시의 운율은 어떤 성질로 조직되었는가 함을 강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이 체재와 운율의 조직을 논술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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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의 구성된 체격(體格)은 인체의 외양 구조와 비등하여 일정한 전형이 있고 그 전형 안에 부분이 있다. 곧 1편을 3단으로 나누고 1단을 2행으로 나눈바 전편이 6행으로 된 것이니, 그 단락의 순서는 제1행으로부터 2행까지는 초장, 제3행으로부터 4행까지는 중장, 제5행으로부터 6행까지는 종장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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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장에 나아가 어사 배열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제1단 초장은 모두(冒頭)에 서언(序言)을 기(起)하고, 제2단 중장은 위의 서언을 이어 서설(敍說)하고, 제3단 종장은 전문(全文)을 종결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전편 구성의 요소는 기· 서 ‧ 결(起敍結)의 질서로 조직한바 수사상(修辭上) 단락이 매우 규칙적이요 또 간명하고 순정(純正)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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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시의 체재는 드리없어 2행 ‧ 3행 ‧ 4행 ‧ 6행 ‧ 8행 등이 있는 중에 가장 많이 쓰는 것은 4행이다. 옛 한시(漢詩)는 3단 6행으로 조직함이 예사니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갈담장(葛覃章), 국풍편(國風篇) 등이 있고 후세에는 4구· 8구 등이 많이 쓰인다. 불교문학에도 삼분설(三分設)이 있다. 조선 고대에 한문 및 불교문학이 왕성하였으매 시조시의 3단 체재도 그의 본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그러나 그 유래는 음악상 관계로 보아서 외래식을 이용한 것이 아닌 줄 안다. 앞에 말함과 같이 시조시는 고대 음악과 짝을 지어 내려온 것인즉 그 체재는 악곡상의 선율과의 관계가 있음을 알 것이다. 옛 악곡을 사실(査實)하여 보건대, 백제 「정읍사(井邑詞)」도 6구 3단이요, 「서경별곡(西京別曲)」도 3단이요, 「만전춘(滿殿春)」은 3구 6구를 혼용하고, 「한림별곡(翰林別曲)」도 6구 3단이요, 「정과정」의 악절도 전후 각 3단이요, 「처용가(處容歌)」의 악절은 6단으로서 매단 3엽(葉)으로 구별하였다. 그러므로 시조시의 3단 조직도 재래 악곡의 통례로 된 것이 분명하다. 서양악의 작곡법은 각 부분의 균형과 대비를 주안으로 하여 기· 승· 결의 3부로 구성하니, 시조의 3단 체재도 이와 동일한 사고 작용으로써 조직된 것인바 이를 음률상으로 보아 가장 학술적으로 된 것이라 할 것이니, 서양 시학에도 종종 음악 작곡법에 비교함이 있거니와 시조시의 체재는 본래부터 음악과의 관계가 있음으로써 그 체단이 가장 예술적으로 조직된 것이니, 이것이 시조시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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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삼단설은 문장상으로 해석할 것이요 시의 성질로는 말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각국 시는 각국 시의 특성과 습관으로 설명할 것인즉 시조시도 시조시의 자재(自在)한 정형을 거론치 않기 어려울새 그 삼단법은 엄정한 규칙으로 되어 있는바 이것을 시조시의 특성적 원형으로 논급치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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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시 된 주요 조건은 음성을 율동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 율동은 어음의 장단과 강약과 또는 음수로써 구성하는데 이 구성은 언어 성질에 따라서 다르다. 영시는 강약음을 주로 하고 한시(漢詩)는 고저음 곧 사성(四聲)이란 것을 주로 하며 불란서시는 강약음보다 음수의 계량으로써 주장한다. 조선어의 고저음은 ‘섬’〔島[도]〕이 높고 ‘섬’〔石[석]〕은 낮으며, 장단음으로도 ‘밤’〔栗〕은 장음이요 ‘밤’〔夜[야]〕은 단음이다. 강약음은 보통음에는 불분명하나 문장상 또는 수사상에는 있으니, ‘붓이 아니라 책이다’할 때는 ‘책’이란 말이 강하며, ‘나비가 춤춘다’하면 ‘나비’와 ‘춤’은 강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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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조시에는 강약음과 장단음 등을 보지 않고 불란서시와 한가지로 음수율을 위주하니, 다시 말하면 시조시의 격조를 이루는 것은 한갓 음철수(音綴數)를 일정히하는 것으로서 시형(詩形)을 지으니, 음수는 시조시의 유일한 조건이다. 이 음수를 위주한 것은 본질적 특징을 가진 보편적 규범으로 된 것이니, 말하자면 고대 시가로부터 전통을 법을 삼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고금 시가는 음수 이외에 다른 요소는 없이 되었다. 음수란 것은 일정한 음의 연속으로 된 철자수를 가지고 시의 장구(章句)를 이룬 것이다. 재래시의 자수는 각기 서로 일정치 못하여 과학적으로 그 정형을 말하기 어려우나 이제 거기에 짝한 곡조에 의하여 자세히 살피면 정형(定型)과 부정형(不定型)의 2종을 발견할 것이다. 정형은 자수가 모두 45자인데 이 45자를 대단위로 하고 그를 다시 내분(內分)하여 앞절에 말한 대로 3장에 나누어 15자를 1장으로 하였다. 1장 15자를 다시 둘로 나누어 내구(內句)는 7자로 외구는 8자로 정하니, 다시 말하면 내7 외8의 엄격한 자수를 율동 구성으로 한바 그것을 반복 곧 되풀이하여 3장을 조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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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말하면 그 내7 외8의 합수인 15자는 1장의 수운(數韻)이 된바 그 15자를 동수로써 3회 반복하여 전편의 율을 구성한 것이다. 서양시의 박자 운동이 동일한 시간으로 됨과 같이 이 15자의 단위는 3장을 통하여 동일한 바로서 시간 단위가 해화적(諧和的)으로 정확히 균제된 것이니, 이것이 장(章)의 정형적 운율이다. 그런즉 3장의 연속되는 자수가 동수로 구성되어 정서적 암시가 동고조(同高調)를 보유할 때에 각장의 시구는 서로 해화적으로 된다. 만일 3장의 자수가 동일하지 않아 다른 장과의 관계를 산란케 하면 자수의 불해화(不諧和)가 생기니, 이를 시학상 소위 부정형(不定型)이라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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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하니 1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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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의 자수가 다 각각 되면 율동 시간이 맞지 아니하여 가락이 산란하다. 어떤 나라 시든지 정형격(定型格)은 그 박자 운동이 동일한 시간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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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구의 자수 규정이 선7 후8의 장단으로 된 것은 무슨 이유냐 하면, 이는 곧 율동의 본태로서 전편 6구의 자수 상태가 파형선(波形線)을 지어 선율미를 나타낸바 영시의 8· 6조인 장단구와 같이 된 것이다. 만일 장단구로 하지 아니하면 선율의 미감(美感)이 나지 아니한다. 말하자면 시조시의 운율은 앞에 말한 대로 강약음과 또는 고저음을 쓰지 아니함으로써 그 대신에 자수로써 율동의 요소를 삼지 아니할 수 없는 이유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수의 율동적 장단이 없으면 율격(律格)이 성립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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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구를 만들 때는 또 어찌하여 7· 8의 수로써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음각(音脚) 원리와 인간의 생리적 관계에 근거된 것이라고 해답할 것이다. 1음은 음조를 내지 못함으로써 음각은 영시의 율동처럼 2음 3음으로 단위를 삼으니 2음 3음을 그 단위수로 결합하면 1호흡의 장은 8음이다. 그러므로 3· 2· 3의 3음절로써 8음을 발할지라도 호흡상 곤란이 없거니와 8이상의 9음은 2· 3· 2· 2의 4음절이 되어서 2절로 분할치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8음수를 음각의 최장으로 하는 것이니, 15음에서 8음을 제하면 그 나머지 수는 7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7 후8의 수운(數韻)으로써 1장의 율조를 삼은 것이니, 이럼으로써 시조시의 수운은 과학적으로 된 것이라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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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율조가 선7 후8의 순으로 됨에 따라서는 종장도 또한 동일할 것이나 실은 그에 반하여 선8 후7로 됨은 무슨 이유인가. 이는 두 가지 성질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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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율(前律)과 후율(後律)을 연쇄하여 추이(推移)의 묘미를 취한 것인 바 한시의 환미 염법(換尾簾法)과 같으니, 곧 종장 내구의 8자는 중장 외구의 8자와 동수로 연점(聯粘)시키고 그 외구의 7자는 초장의 최초 내구 7자와 동수로 연점케 한 동시에 다음에 오는 다른 편과도 이어져 수십편의 많은 문구라도 상합(相合)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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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장 외구가 7자로 그친 것은 종장의 수구(首句)가 7자로 일어남에 의한 바의 율동적 원칙을 취한 것이니, 음악 작곡법과도 동일한 규율인바 서양 시학의 소위 시의 선율과 음악 선율이 서로 동일한 점이 있다는 말과 같은 이치로 된 것이니, 이 두 가지 성질도 또한 과학적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장의 외구를 본으로 한다면 종장 외구가 짧게 된 것은 중지형(中止形)으로서 반성적(半成的) 성질이 있게 보인다. 조선 민요(民謠)의 선율은 모두 중지 상태로 된 것인바 이 점으로 대비할 때는 시조시는 조선적 특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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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주요 조건인 운율은 단순한 것이 아니요 여러 종류가 있으니, 그 종류는 수운(數韻)· 성운(性韻)· 위운(位韻)의 3종으로 된 것이다. 성운(性韻)은 어성(語性)에 의한 바 억양 또한 염(簾)이란 것이요, 위운(位韻)은 일정한 위치의 음을 서로 근사케 하는 것이니, 시조시에는 성운이 없고, 위운은 반(半)의식적으로 쓴다. (다음에 보인다) 수운(數韻)은 장의 수운과 구 곧 1행에 대한 것인데 장의 수운은 앞의 절에서 말함과 같고 1행의 수운으로 말하면 그 율동이 음악의 선율같이 한 음절에서 다음 음절까지 가는 시간이 소단위로 되니, 이 소단위를 운각(韻脚)· 율조(律調)· 박자(拍子) 또는 음절(音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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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의 음절 구박수(口拍數)는 1구를 이절(二折)한 바의 2운각으로서 1장이 4운각으로 전편 모두 12운각을 이룬 것이다. 그 단위인 1음절의 자수 구성은 구의 원 자수에 의하여 3· 4, 4· 4, 또는 3· 5, 4· 3의 순서로 되니 이를 7· 8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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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Ο―Ο―Ο:Ο―Ο―Ο―Ο | Ο―Ο―Ο―Ο:Ο―Ο―Ο―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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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Ο―Ο―Ο:Ο―Ο―Ο―Ο | Ο―Ο―Ο―Ο:Ο―Ο―Ο―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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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Ο―Ο―Ο:Ο―Ο―Ο―Ο―Ο | Ο―Ο―Ο―Ο:Ο―Ο―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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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율조는 그 곡조에 따른 장단 점수 곧 선율 역시(歷時)의 박자를 치는 점수의 순서에서 발견한 것이니, 그 점수의 단위는 6점을 전각(全刻)이라하고 그 반인 3점을 반각(半刻)이라 하는데 노래의 문구는 그 타순(打順)에 따라 상반각을 칠 동안에 3자, 하반각을 칠 동안에 1자를 창(唱)하는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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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 3점은 문구 없이 공타(空打)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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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 5점은 문구가 있으나 휴지(休止)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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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단점은 가법의 발달을 짝하여 확정된 것이니, 곧 장죽헌(張竹軒)이 매화점법(梅花點法)을 설정함으로부터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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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끝의 3점은 최초 상반각에 합하여 전각을 짓기 위한 것이니, 이는 작곡법상의 원칙이다. 이상에 설명한 음절 구성은 곡조에 대조한 바이거니와 다시 운각의 원칙으로 말하건대 조선 시가의 음절 결합은 고대로부터 간단함에서부터 복잡함으로 소로부터 대에 점행(漸行)하는 자연적 진화 법칙을 취하여 소수를 먼저 하고 다수를 뒤에 하는 것이 보편적 규범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5음을 양절(兩折)함에도 선2 후3으로 한 것이 통례로 되니, 시조시의 1장 수운(數韻)도 15자를 선7 후8로 한 것이 그 이치다. 그러므로 1구의 음절도 처음 7자를 선3 후4로 구분함은 순조인 그 원리와 그 체계에서 나온 것이다. 초장 외구가 4· 4조로 된 것도 그 내구 말절(末節)의 4음을 순조로 연점(聯粘)함으로써 된 것이니, 그 점진적 순조를 취한 것은 시조시의 운율 구성법의 원칙으로 된 것이다. 영시계(英詩界)에서 가장 용이한 방법으로서 많이 쓰는 율조도 순조를 취한 선약후강(○―● 또는 ◯―◯―●) 격이니 시조시도 그와 동일한 성질이 있어 그것이 시인의 실용에 평이하고 또 화평미(和平味)가 있으며, 내용 및 정서를 가짐에도 적당하게 된 것이다. 이럼으로써 옛날부터 사람들이 시조시를 애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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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의 음률에는 선율이란 것이 있다. 선율은 음악에 고저음이 있는 것같이 시간을 위반치 않는 안에서 변조(變調)를 취하는 것인바 그 선율(멜로디)을 변함에 의하여 미(美)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동일한 2자 음절만 무한히 연속하면 하등의 예술미가 없이 된다. 종장의 음률이 다른 장의 순서에 반하여 선8 후7로 된 것이 곧 그 이치를 쓴 것이다. 서양시에 활기를 위하여 선강후약의 율동을 쓰는 것같이 초장· 중장은 동일한 선7후8로서 이완(弛緩)의 느낌이 있다가 종장에 와서는 그 순서를 전환함으로써 일종의 쾌감이 생기니, 그러므로 종장에 당한 시어(詩語)는 강한 인상의 말을 쓰는 것이 통례로 되었다. 종장 외구가 선4 후3으로 됨은 종장 전체의 구성형으로서의 선다후과(先多後寡)인(내8 외7) 방법을 기준하여 배정한 것이요, 동시에 최후 3자는 초장 최초에 일어난 3자조에 회선(回旋) 연점(聯粘)케 한 것이다. 시조시의 율동 구성이 이렇듯 조리 있게 되었으며 그 미묘한 조직은 세계 각종 시체에 비하여 가장 우월한 특장의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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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에 주의를 붙여 둘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서양시의 수운은 1어음을 둘이나 셋에 분할하는 분석적이요, 조선시는 2어 이상을 종합하여 율동의 수운을 삼는 것이다. 선율이란 것은 어느 정도를 벗어나 설명할 수 없으매, 이는 작자의 재주에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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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는 운율 이외에 성조(聲調)라는 것을 보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또한 요긴한 것인바 어음의 성조와 음수는 시형의 생명이다. 무식한 기생과 광대들이 한문(漢文)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 문구를 많이 낭창(朗唱)하는 것은 오로지 성조를 기억하는 것이다.(승려의 염불도 역시 그렇다) 또 그들이 한자 본음을 비뚜로 하는 것이 있으니, 그중에 오류도 있지마는 그 얼마는 성조 때문에 고쳐진 것이다. 성조로 말미암아 선율이 잘되고 어음으로 말미암아 선율과 해화(諧和)가 잘된다. 동일한 내용, 동일한 율동에도 선율이 잘되기는 성조에 달린 것이다. 한시계에서는 성조 설명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나 서양 시계에서는 이 설명이 대단하여 모음· 자음을 분간하여 해화적 논란을 많이 하였다. 이 성조를 잘하자면 문법에 위반이 될지라도 발음의 연속이 순조로 되게 할 것이니, 가령‘하야서’하면 순조가 되나 그를 문법대로 한다 하여 ‘하여서’로 쓰면 안된다. 또한 내용과 제재(題材)에 따라 어음을 선택하여야 될 것인데 평화의 어의에는 범조(凡調)로 하고 활발한 어의에는 호장(豪壯)한 파장음(破障音)· 강음(强音)· 탁음(濁音) 등을 써서 (가령, 삭풍은 나무 끝에 ; 일짱검 비끼 들고) 강한 인상을 일으켜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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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시는 인상을 설명케 하기 위하여 거기에 마땅한 언어를 선택하여야 한다. 무릇 문예는 언어를 매개 재료로 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곧 문을 알게 되는 인식적 요소는 언어다. 그런데 시에 있어서는 운율의 조직으로 말미암아 결정적 구성법이 있음으로써 그 언어는 그 시의 율조에 응하여 쓰게 되는 것이다. 곧 시는 운율 있는 언어를 매개 재료로 하여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3자조에는 3음어, 4자조에는 4음어를 맞춰넣어야 된다. 그러나 1음절을 2어로 합하든지 1어만 쓰든지 하는 것은 선율의 관계다. 그러므로 이는 작자의 임의거니와 음절마다 단어가 떨어지게 하는 것은 원칙이다. 운율을 위하여 문법에 어긋나게 본어음을 압축하고 합병하는 일이 많다. 시조시의 이에 대한 관용법은 대개 5조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138
가이(개) 하나다(한다) 하는다(한다) 한거이고(한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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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란(이거는) 하돗다(했다) 다만지(다만) 궁굴리다(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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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熟[숙]’하다 모질‘惡[악]’ 밤저녁 ‘湧[용]’솟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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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따(가려 한다) 말가(말인가) 긘가(그것인가) 잠못들어(잠을 못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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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시의 문법은 보통 문법 이외에 문법이 따로 있다. 또 인상을 설명키 위하여 언어를 선택함에는 추상어보다 구상어를 쓰는 것이다. 이 구상어에 있어서는 보통어보다 시격(詩格)에 마땅한 숙어가 따로 있으니, 그 몇 가지 예를 아래에 보인다.
148
○ 동풍(春風[춘풍]) 서풍(秋風[추풍])
149
○ 대경(大鏡)이 날아간다 (電[전])
150
○ 양각(兩脚)이 천심(千尋)이라 (虹[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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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꽃이 찬란하니 시(詩)가 절로 화장한다 (宴會[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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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져 누운 비(碑)에 천고한(千古恨)이 어려 있다 (懷古[회고])
155
○ 지난 일 생각하니 하루아침 천고(千古)로다 (輓章[만장])
156
○ 망운우(望雲憂) 가득하니 좋은 경(景)도 심상(尋常)하다 객지 (客地[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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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詩語)를 선택함에는 대가도 왕왕 실수하는 일이 있으니, 단테 같은 시인의 시도 “광(光)이 침묵한 데로 온다”하였다고 뒷사람은 ‘광과 침묵’이 부당하다 하는 비평을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시어를 공부할 것인바 화어(華語)· 요어(要語) 등을 강심(講尋)도 하려니와 외국어· 폐어(廢語)·신어· 술어· 와어(訛語)· 이어(俚語) 등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결코 쓰지 않는다. 또 본어(本語)만 쓰고 고래로 관용하던 한문 숙어 같은 것을 배척하는 것은 불가능의 일이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본어 수가 소수인 때문에 시를 잘 지을 수 없는 때문이다. 철자법 같은 것도 경우에 따라 본법을 파괴하여야 될 일이 있으니, 왜 그러냐 하면 시는 어음과 성조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고 형식이 틀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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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음과 강음에 따라서 인상이 다르게 되며 또한 선율도 변해진다. 『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 같은 고서의 철자법들을 보면 서로 다른 점이 많으니, 그것은 불규칙이 아니라 성조를 위하여 고의로 달리 쓰는 것이니, 시인은 이것을 주의치 아니하면 안될 것이다.
166
문예는 다른 예술보다 구체적 특장이 있다. 그러나 개념적으로 됨으로써 그 어사(語詞)가 용장(冗長)함을 면치 못하며, 시는 긴축을 필요로 함으로써 2중의 결점이 있다. 그러므로 세계의 어떤 나라 시인이든지 이 결점을 보정(補正)키 위하여 미적 효과를 증장케 하는 노력은 산문보다 배나 더하게 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한정된 문자로써 충분한 의사를 표출함에는 어의의 함축을 취함으로써 일대 방법을 삼은 것이다. 그 함축술이 곧 각종의 문장법을 산출한 것이다. 그 결과로 인하여 시조시의 문장법은 월등한 발달을 나타냈다. 한시와 서양시에는 그 문장법이 대체로 비유· 은유· 환명(換名)· 의인(擬人)· 과장 등 5법에 불과하나 시조시에는 이미 30여칙을 썼으니, 이런 발달의 문장법은 세계적으로 가장 우월하게 된 것이니, 이를 이하에 자세히 기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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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형태상 요소는 먼저 율어(律語)를 연결하여 구를 이룸에 있으니, 그러므로 구는 시형의 구성상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여기에 대한 미문적(美文的) 치장은 예술상 공력을 다하는 것일새, 그 법은 사람의 감정 발작의 동향에 응하여 자못 많은데, 시조시의 미적 효과로 발생한 것은 이미 30여 칙에 다다르니 이를 다음에 진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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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유법(直喩法) : 명확히 둘의 사물을 비교하여 솔직히 비유하는 법이니, 이 법은 고시· 고문에 가장 많이 쓰이던 것이다.
170
◯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옐만 하도다 ……(王邦衍[왕방연])
171
◯ 우리는 총명남자(聰明男子)로되 농고(聾瞽)같이 하리라 ……(李滉[이황])
172
◯ 원근(遠近)이 거림이로다 ……(李珥[이이])
173
◯ 눈이 모래같고 모래도 눈이로다 …… (洪迪[홍적])
174
(2) 활유법(活喩法) : 무생물에 생을 부여하여 의인적(擬人的)으로 비유한 것이니, 서양문에서도 이 법을 비상히 취미 있게 치는 것이다.
175
◯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드르며 웃는고야 ……(孝宗王[효종왕])
176
◯ 천공(天公)이 한가(閑暇)히 여겨 달을조차 보내더라 ……(柳自新[유자신])
177
◯ 유신(有信)한 강파(江波)는 보내느니 바람이라 ……(孟思誠[맹사성])
178
◯ 동풍(東風)이 세우(細雨)를 몰아 잠든 나를 깨운다 ……(趙浚[조준])
179
(3) 풍유법(諷喩法) : 표면상 본의를 은닉하니 비유의 뜻을 투과(透過)하여 본의를 살피는 것인바 혹 우언법(寓言法)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180
◯ 까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 마라
182
청강(淸江)에 조히 씻은 몸 더러올까 하노라 ……(圃隱母氏[포은모씨])
183
◯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大鵬)새야 웃지 마라
184
구만리(九萬里) 장공천(長空天)에 너도 날고 저도 난다
185
두어라 일반비조(一般飛鳥)니 네오 내오 다르랴 ……(李澤[이택])
186
◯ 해 다 저문 날에 지저귀는 참새들아
187
조고만 반가지(半柯枝)도 그 무엇이 하거이던
188
구태여 크나큰 낭글 새와 무삼하리요 ……(具志禎[구지정])
189
(4) 은유법(隱喩法) : 표면상 비유의 형식을 숨기어 격언(格言)으로 된 것이다.
190
◯ 날을 묻지 마라 전신(前身)이 계하사(桂下史)라 ……(申欽[신흠])
191
◯ 인심(仁心)은 터이 되고 효제충신(孝悌忠信) 기동 되어 ……(朱義植[주의식])
192
◯ 거문고 들어메고 서호(西湖)로 돌아가니
193
노화(蘆花)에 떼갈매기는 제벗인가 하더라 …… (金聖基[김성기])
194
◯ 인정(人情)은 토각(兎角)이요 세사(世事)는 우모(牛毛)로다 ……(李廷燮[이정섭])
195
(5) 대조법(對照法) : 상반(相反)의 사물을 병시(併示)하여 양단(兩端)을 상보한 것이다.
196
◯ 더져두다 어데가랴 ……(金天澤[김천택])
197
◯ 부생(浮生)이 꿈이어늘 공명(功名)이 아랑곳가 ……(金天澤[김천택])
198
◯ 시절(時節)이 저러하니 이 인사(人事)도 이러하다 ……(李恒福[이항복])
199
◯ 덕(德) 없으면 난(亂)하나니 예(禮) 없으면 잡(雜)되나니 ……(尹善道[윤선도])
200
(6) 조응법(照應法) : 유사한 사상을 격치(隔置)하여 상조 호응(相照呼應)으로써 묘미를 있게 한 것이다.
201
◯ 강한(江漢)이 무궁하니 백구(白鷗)의 부귀로다 ……(任義直[임의직])
202
◯ 산천(山川)은 의구(依舊)커늘 인걸(人傑)은 어데 간고
203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吉再[길재])
204
◯ 암반(巖畔)에 설중고죽(雪中孤竹) 반갑기도 반가워라
205
수양산(首陽山) 만고청풍(萬古淸風)에 이제(夷齊) 본듯 하여라 …(徐甄[서견])
206
(7) 억양법(抑揚法) : 대조법의 일종으로서 허사(虛辭)와 실사(實辭)로써 파란의 형세를 일으킨 것이다.
207
◯ 태산(泰山)이 높다 하되 하날 아래 묘이로다 ……(楊士彥[양사언])
208
◯ 폐일(蔽日) 부운(浮雲)을 다 쓸어버리과저
209
시절이 하 수상(殊常)하니 쓸동말동하여라 ……(金瑬[김유])
210
◯ 술을 내 질기랴 광약(狂藥)인 줄 알건마는
211
진실로 술 곧 아니면 시름 풀 것 없어라 ……(鄭太和[정태화])
212
(8) 괄진법(括進法) : 전에 산서(散敍)하다가 후에 괄속(括束)한 문맥이다.
213
◯ 문경(門扃)에 객산(客散)이요 풍미(風微) 지어 월락(月落)이라
214
주옹(酒甕)을 다시 열고 시를 달아 훗부르니
215
아마도 산인득의(山人得意)는 이뿐인가 하노라 ……(河緯地[하위지])
216
◯ 멘구름 한(恨)치 마라 세상(世上)빛을 가리운다
217
낭파성(浪波聲) 염(厭)치 마라 진훤(塵喧)소리 막는고야
218
두어라 막고 가림을 나는 좋아하노라 ……(尹善道[윤선도])
219
(9) 열서법(列敍法) : 전어(前語)를 괄속(括束)치 아니한바 정이 격한 것을 그대로 사출(寫出)한 것이다.
220
◯ 슬프나 질거오나 옳다 하나 오(誤)라 하나 …… (尹善道[윤선도])
221
◯ 공명(功名)도 잊었노라 부귀(富貴)도 잊었노라 ……(金光煜[김광욱])
222
◯ 늙고 병든 정은 국화(菊花)에 붙였노라
223
귀밑에 홋나는 백발(白髮)은 일장금(一張琴)에 붙였노라 ……(金壽長[김수장])
224
(10) 연쇄법(連鎖法) : 앞구의 끝말을 다음 구두(句頭)에 재치(再置)하여 추이의 묘미를 생기게 한 것이다.
225
◯ 강호(江湖)에 놀자 하니 성주(聖主)를 버리려고
226
성주(聖主)를 섬기자니 소락(所樂)에 어기어라 ……(權好文[권호문])
227
◯ 어려서 헴못나고 헴이 나자 다 늙었다 ……(宋宗元[송종원])
228
◯ 아나니는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헌사할손
229
못믿을손 매화(梅花)로다 매화야 떠지지 마라 ……(李滉[이황])
230
(11) 점층법(漸層法) : 어구(語句) 사상을 차례로 강 또는 약하게 하여 사람을 유화(誘化)케 한 것이다.
231
◯ 풍파(風波)에 놀란 사공(沙工) 배 팔아 말을 사니
232
구절(九折)도 양장(羊腸)이야 물도곤 어려워라
233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 ……(張晚[장만])
234
◯ 꽃피면 달 생각에 달 밝으면 술 생각에
235
꽃피자 달이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에 ……(李鼎輔[이정보])
236
(12) 생략법(省略法) : 가독처(家讀處)를 끊어 간결과 여운(餘韻)을 나게 한 것이다.
237
◯ 앞에는 천경유리(千頃琉璃) 돌아보니 만첩청산(萬疊靑山) ……(尹善道[윤선도])
238
◯ 화작작(花灼灼) 범나비 쌍쌍 유청청(柳靑靑) 꾀꼬리 쌍쌍 ……(鄭澈[정철])
240
◯ 오동(梧桐)에 듣는 빗발 무심히도 듣건마는 ……(金尙容[김상용])
241
◯ 송단(松檀)에 선잠 깨어 취안(醉顔)을 들어보니 ……(金昌翕[김창흡])
243
(13) 접리법(接離法) : 1구에 속한 말을 다른 구에 옮기어 문구에 힘을 붙이고 상상의 여지가 있게 한 것이다.
244
◯ 있으라 하드며는 가랴마는 제 구태여
245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眞伊[진이])
246
◯ 눈정(情)에 결운 님이 실커널 어디본다 ……(無名氏[무명씨])
247
◯ 밤지난 고사리야 하마 아니 늙었으랴 ……(趙存性[조존성])
248
(14) 상실법(詳悉法) : 진선진미로 사물을 열거한 것이다.
249
◯ 홍진(紅塵)을 다 떨치고 죽장망혜(竹杖芒鞋) 짚고 신고
250
거문고 들어메고 서호(西湖) 찾아 돌아가니 ……(金聖器[김성기])
251
◯ 궁상(宮商)과 각치우(角徵羽)를 주줄이 짚었으니 ……(金重說[김중설])
254
평생(平生)을 이리 했으니 무삼 근심 있으랴 ……(安玫英[안매영])
255
(15) 환서법(換序法) : 문법상의 순서를 전도(轉倒)하여 감정을 높게 한 것이다.
256
◯ 초당(草堂)에 청풍명월(淸風明月)은 나며들며 다닌다 ……(李賢輔[이현보])
257
◯ 저근듯 빌어다가 뿌리과저 마리 위에 ……(禹倬[우탁])
259
(16) 대우법(對偶法) : 가락의 유사한 문구를 병렬하여 대립 또는 겸행(兼行)의 미로 된 것이니, 서양문에도 이 법을 많이 쓰는 것이다.
260
◯ 창전(窓前)에 풀 푸르고 지상(池上)에 고기 뛴다 ……(張經世[장경세])
261
◯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林悌[임제])
262
◯ 들은 말 즉시 잊고 본 일도 못본 듯이 ……(宋寅[송인])
263
(17) 의태법(擬態法) : 사물의 태도를 의모(擬模)하여 흥미를 있게 한 것이다.
264
◯ 어룬 자박국이를 둥지둥둥 띄어두고 ……(蔡裕後[채유후])
265
◯ 두 소매 늘이치고 우줄우줄 하는 뜻은 ……(金應鼎[김응정])
266
◯ 어디서 살진 쇠양만 외용지용 하느니 …… (金天澤[김천택])
267
(18) 반복법(反覆法) : 동일한 어구를 되풀이로 하여 일종의 쾌감을 나게 한 것이다.
268
◯ 어화 베힐시고 낙락장송(落落長松) 베힐시고 ……(鄭澈[정철])
269
◯ 알았노라 알았노라 나는 벌써 알았노라 ……(李廷燮[이정섭])
270
◯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宋時烈[송시열])
271
(19) 문답법(問答法) : 문조(文調)의 진행을 파열(破裂)함에서 일종 취미를 나게 한 것이다.
272
◯ 아해(兒孩)야 무릉(武陵)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曺植[조식])
273
◯ 네 집이 어데메오 이 뫼 너머 긴 강 위에
274
백구(白鷗) 게 떠 있으니 게 가 물어보시오 ……(張晚[장만])
275
(20) 곡언법(曲言法) : 배감(背感)의 사물을 화(和)키 위하여 부분의 언사(言詞)를 숨기고 멀리 돌아 결과만 보인 것이다.
276
◯ 수국(水國)에 가을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孟思誠[맹사성])
277
◯ 객점(客店) 고등(孤燈)에 고향(故鄕)이 천리(千里)로다 ……(趙明履[조명리])
278
◯ 옥란(玉欄)에 꽃이 피니 10년이 어느덧고 ……(曺溪英[조계영])
279
(21) 반언법(反言法) : 진의를 반대로 세워서 정면보다 효력을 더 있게 한 것이니, 서양문의 아이러니 법과 같은 것이다.
280
◯ 치천하(治天下) 50년에 부지(不知)왜라 천하사(天下事) ……(卞季良[변계량])
281
◯ 천태산(天台山) 깊은 골에 불로초(不老草)를 캐러 가니
282
만학(萬壑)에 백운만(白雲滿)아 갈길 몰라 하노라 ……(安挺[안정])
283
(22) 측사법(側寫法) : 객(客)을 빌려주다가 주(主)를 사출(寫出)함으로써 문력(文力)을 있게 한 것이다.
284
◯ 뉘라서 애내일성(欸乃一聲)에 만고심(萬古心)을 알리요 ……(尹善道[윤선도])
285
◯ 어데서 호적(胡笛) 소리는 남의 애를 끊느니 ……(李舜臣[이순신])
286
(23) 설의법(設疑法) : 의문을 베풀어 취미와 상상의 여지를 둔 것이다.
289
◯ 어즈버 천고 이백(千古李白)이 날과 어떠하드니 ……(金天澤[김천택])
290
(24) 인용법(引用法) : 고사(古事)를 이끌어 자기 문장을 풍부케 한 것이니, 서양문의 allision과 동일하여 글의 힘을 강하게 함에도 많이 쓴 것이다.
291
◯ 오조(烏鳥)도 반포(反哺)를 하니 부모효도(父母孝道)하여라 ……(金尙容[김상용])
292
◯ 황하수(黃河水) 맑다더니 대성인(大聖人)이 나시도다 ……(金光煜[김광욱])
293
◯ 우리는 들은 말 없으니 귀씻음이 없어라 ……(尹善道[윤선도])
294
(25) 중의법(重義法) : 한 관념에 두 가지 사물을 표하여 구조(口調)로써 어로(語路)를 본뜨며, 또는 기지(機智)의 본령을 삼은 것이다.
295
◯ 창(窓)밖에 워석버석 님이신가 일어보니
296
혜란(蕙蘭) 계경(溪徑)에 낙엽성(落葉聲)은 무삼 일고 ……(申欽[신흠])
297
◯ 산(山)밑에 살자 하니 두견(杜鵑)이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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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을 굽어보고 소쩍다고 하는고야 ……(鄭澈[정철])
299
◯ 보리뿌리 맥근맥근(麥根麥根 : 매끈매끈) 오동(梧桐)열매 동실동실(桐實桐實) …… (無名氏[무명씨])
300
(26) 정화법(情化法) : 표정의 말을 더하여 부드러이 웃고 거친 맛으로 된 것이다.
301
◯ 용천 설악(龍泉雪鍔)을 들게 갈아 들어 메고 ……(崔瑩[최영])
302
◯ 만고 영웅(萬古英雄)을 손꼽아 헤어보니 ……(李德馨[이덕형])
303
◯ 밤마을 옛이름이 맞초아 같을시고 ……(金光煜[김광욱])
304
◯ 세상(世上)의 번우(煩憂)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金光煜[김광욱])
305
(27) 과장법(誇張法) : 사물의 수량과 성질을 과대케 한 것이다.
306
◯ 억조창생(億兆蒼生)이 대기(戴己)를 원(願)하나다 ……(卞季良[변계량])
307
◯ 천지(天地)는 장막(帳幕)이요 일월(日月)은 등촉(燈燭)이니 …… ( 李安訥[이안눌])
308
◯ 소상강(瀟湘江) 긴대 베어 하늘 및게 비를 매어
309
폐일(蔽日) 부운(浮雲)을 다 쓸어버리과저 …… (金瑬[김류])
310
(28) 미화법(美化法) : 평범한 말을 화려한 말로 구체적을 추상적으로, 또는 배감(背感)의 사물을 미화케 한 것이다.
311
◯ 추산(秋山)이 석양(夕陽)을 띠고 강심(江心)에 잠겼어라 ……(柳自新[유자신])
312
◯ 실같이 허튼 수심(愁心) 묵포도(墨葡萄)에 붙였노라 ……(金壽長[김수장])
313
◯ 귀밑에 해묵은 서릴 불어볼까 하노라 ……(禹倬[우탁])
314
◯ 꾀꼬리 새노래는 세우중(細雨中)에 구을거다 ……(安玫英[안매영])
315
(29) 거례법(擧例法) : 추상(抽象)을 구상(具象)으로 세우기 위하여 상당한 사물을 끌어댄 것이다.
316
◯ 신릉군(信陵君) 무덤 위에 밭가는 줄 모르시나 …… (申欽[신흠])
317
◯ 장사왕(長沙王) 가태부(賈太傅)는 그 눈물도 여읠시고
318
한문제(漢文帝) 승평시(昇平時)에 통곡(痛哭)함은 무삼 일고
319
우리도 그런 때 났다 어이 울까 하노라 ……(李恒福[이항복])
320
◯ 낙일(落日)은 서산(西山)에 져 동(東)바다로 다시 나고
322
어찌타 최귀인생(最貴人生)은 귀불귀(歸不歸)를 하느니 ……(李鼎輔[이정보])
323
(30) 현사법(現寫法) : 과거와 장래를 눈앞에 활현(活現)하여 회상(回想)과 예상(豫想)을 시킨 것이니, 서양의 연설 및 논설문에는 이 법을 주로 쓰는 것이다.
324
◯ 등을 쬐고 앉았으니 우리님 계신데도 이 볕이 쬐돗던가 ……(李鼎輔[이정보])
325
◯ 한번 죽은 후면 어느날에 다시 오며
327
술 부어 저 잡고 날 권하며 노세 하리 있으리 ……(金天澤[김천택])
328
(31) 거우법(擧隅法) : 전부에서 관계 있는 일부를 쳐들고 다른 부분은 함축하여 그 전모를 살피게 한 것이다.
329
◯ 어떻다 능연각상(凌練閣像)을 우리 먼저 하리라 ……김종서(金宗瑞)
330
◯ 사면(四面) 청산(靑山)이 옛얼굴 나노매라 ……(金光煜[김광욱])
331
◯ 홍진(紅塵)에 꿈깨언지 20년이 어제로다 ……(張經世[장경세])
332
◯ 님 ◯ 선생 ◯ 성인(聖人) ◯ 장부(丈夫) ◯ 부생(浮生) ◯ 무릉(武陵)
333
(32) 영탄법(咏歎法) : 영탄의 소리로써 심고강격(深高强激)의 정을 표한 것이다.
334
◯ 아마도 세상만사(世上萬事)가 다 이런가 하노라 ……(洪迪[홍적])
335
◯ 두어라 내 시름 아니라 제세현(濟世賢)이 없으랴 ……(李賢輔[이현보])
336
◯ 시절(時節)아 너 돌아오건 왔소 말만 하여라 ……(隱士[은사])
337
(33) 기경법(奇警法) : 의외로 기발한 말을 낸 것이니, 이는 문학의 진보를 최촉한 것이니 서양문의 에피그램(警句[경구])과 같은 것이다.
338
◯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백이숙제(伯夷叔齊) 한(恨)하노라
339
주려서 죽을망정 채미(採薇)조차 하올 것가
340
아무리 푸새엣건들 그 뉘 땅에 난 게오 ……(成三問[성삼문])
341
◯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못 들어 하노라 ……(李兆年[이조년])
343
주야(晝夜)로 흘러가니 옛물 다시 있을소냐 ……(黃眞伊[황진이])
344
이상에 진술한 여러 가지의 사자법(詞姿法)은 고대의 시인이 각기 취하던 문예술로서 1수의 조어(措語)에 따라 응용하던 것이다. 그중에도 조응법(照應法)을 크게 주의하여 그로써 문맥의 원칙을 삼았으니, 그러므로 어떠한 시든지 조응어가 없는 것이 없다.
346
운(韻)은 반복법이 발달하여 된 것이니, 같은 상태의 어운(語韻)을 거듭써서 운율(韻律)의 미감을 야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며 1도(度)에 부족한 음을 2도 3도에 반복하여 구박자와 어의를 조화하여서 일종의 쾌감을 나게 한 것이니, 두운(頭韻) ‧ 요운(腰韻) ‧ 말운(末韻)의 3종이 있다.
347
(1) 두운(頭韻)은 앞뒤 어구의 초위(初位)의 음을 근사케 한 것이니, 한시의 쌍운(雙韻)과 서양시의 두운과 같은 것이다.
348
◯ 매아미 맵다 하고 쓰르라미 쓰다 하고 ……(李廷藎[이정신])
349
◯ 이성에 저성하니 이룬 일이 무스 일고 ……(宋寅[송인])
350
◯ 처음에 모르더면 모르고나 있을 것을 ……(金友奎[김우규])
351
◯ 일학 송풍(一壑松風)이 이내 진상(塵想) 다 씻어라 ……(金友奎[김우규])
352
◯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듯 누르느니 ……(尹善道[윤선도])
353
◯ 이세상을 잊으리라 ……(申欽[신흠])
354
◯ 곧게 선 저 얼굴이 고칠 적이 제 없나다 ……(朴仁老[박인로])
355
◯ 부귀(富貴) 부러 마라 ……(金天澤[김천택])
356
◯ 어이하여 얻을소냐 ……(金天澤[김천택])
357
◯ 아마도 다툴 이 없긴 다만인가 하노라 ……(金天澤[김천택])
358
(2) 요운(腰韻)은 앞뒤 어귀의 중간음을 근사케 한 것이다.
359
◯ 이몸이 죽어 가서 그 무엇이 될고하니 ……(成三問[성삼문])
360
◯ 속 타는 줄 모르는다 ……(李塏[이개])
361
◯ 무정(無情)히 섰는 바위 유정(有情)하여 보이나다 ……(朴仁老[박인로])
362
◯ 이것아 어린 것아 ……(李廷煥[이정환])
363
◯ 곧기는 뉘시기며 ……(尹善道[윤선도])
364
◯ 백구(白鷗)야 물어보자 놀라지를 말라스라 ……(金天澤[김천택])
365
◯ 아는다 모르는다 ……(李濬[이준])
366
(3) 말운(末韻)은 미운(尾韻)이라고도 하는 것이니, 앞뒤 말의 말음을 근사케 한 것인데 1구의 최후 음을 같게 한 각운이란 것도 여기 속하니, 한시의 압운법과 서양시의 각운과 동일하다. 그런데 한시의 압운(押韻)은 너무 엄격하나 조선시의 압운은 영시의 압운과 똑같되 다만 반(半)의식적으로 자유로 쓰는 것이 하나의 법을 이룬다.
369
◯ 백년(百年)이 역초초(亦草草)하니 아니 놀고 어이리 ……(申欽[신흠])
370
◯ 나온댜 금일이야 즐거온댜 오늘이야 ……(金絿[김구])
371
◯ 청석령(靑石嶺) 지내거다 초하구(草河溝)는 어드메오
372
호풍(胡風)도 참도찰사 궂은비는 무삼일고
373
뉘라서 이 행색(行色) 그려다 님 계신데 드릴고 ……(孝宗王[효정왕])
374
◯ 눈으로 기약(期約)터니 네가 과연(果然) 피었구나
375
황혼(黃昏)에 달이 오니 그림자도 기이(奇異)커다
376
청향(淸香)이 잔에 떴으니 취(醉)코 놀려 하노라 ……(安玫英[안매영])
377
◯ 강호(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흥(興)이 절로 난다
378
탁료계변(濁醪溪邊)에 금린어(錦鱗魚)야 안주로다
379
이몸이 한가(閑暇)해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샸다 ……(孟思誠[맹사성])
381
초야(草野)에 우민생(愚民生)이 이러하다 어떠하료
382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쳐 무삼하이료 ……(李滉[이황])
383
이 운법(韻法)은 운율의 일종인 성운(性韻)으로서 시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시조시에는 정칙으로 쓰지 아니하고 반(半)의식적으로 문장법에 쓴 것이다. 그런데 옛사람은 여기 대하여 큰 관심을 둠이 보이지 아니하니, 시조시의 결점은 이 운법의 박약함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시에도 운이 없는 시가 있으니, 운법이 약한 것을 결점이라 할 것은 아니다. 이상에 열거한 사자(詞姿)를 종합하여 추상적으로 분류하면 사상상의 사자와 언어상의 사자로 구별할 수 있다.
391
살피건대 외국에는 일반 수사법에 있어 비상한 토의를 겪어온 것이다. 한문(漢文)에서는 양(梁)으로부터 청(淸)에 이르기까지 무릇 10여종의 책이 나왔으며, 서양문에서는 희랍 ․ 로마로부터 300종을 논란함이 있었고 근세에는 6, 70종을 말하다가 교과서에는 23, 4종을 취함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산문(散文)에 한정된 것이다. 조선문에는 옛날부터 문장법을 발론(發論)함이 없었거니와 그 법이 이상의 예로써 시조시에서 건설됨을 알 것이니, 이것이 실로 시조시의 예술적 운동의 발달된 증거이다.
393
편은 전문장의 조직을 완비한 것이다. 이 편법을 조직함에는 질서와 연락과 통일의 3요소를 취하고 이 3요소를 응용한 형식은 5법이 있으니 이를 이하에 차례대로 제시하겠다.
394
(1) 추서식(追敍式) : 사물의 어단(語端)을 연하여 끝으로 끝에 일보일보 진행한 방식이니, 이는 기행문 ․ 전기문 ․ 역사문 등의 예를 써서 단순하고 자연적인 조직으로 된 것이다.
395
◯ 하목(霞鶩)은 섞어 날고 물과 하늘 한빛인 제
396
소정(小艇)을 끌러 타고 여울목에 내려가니
397
격봉(隔峰)에 삿갓 쓴 노옹(老翁) 함께 가자 하더라 ……(金天澤[김천택])
398
◯ 산촌(山村)에 눈이 오니 돌짝길이 묻혔어라
399
시비(柴扉)를 열지 마라 날 찾을 이 뉘 있으리
400
밤중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내 벗인가 하노라 ……(申欽[신흠])
401
(2) 산서식(散敍式) : 각 장의 연락이 없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일맥이 은복(隱伏)하여 전체를 맺은 것이니, 최근의 인상적 묘사시(描寫時)와 같은 것이다.
402
◯ 오동(梧桐)에 우적(雨滴)하니 거문고를 이애는 듯
403
죽엽(竹葉)에 풍동(風動)하니 초한(楚漢) 서로 서두는 듯
404
금준(金樽)에 월광명(月光明)하니 이백(李白) 본듯 하여라 ……(徐敬德[서경덕])
405
◯ 매영(梅影)이 부딪친 창(窓) 옥인 금채(玉人金釵) 비꼈어라
406
이삼분 백발옹(白髮翁)은 거문고와 노래로다
407
잔 들어 권하랼 적에 달이 또한 뜨더라 ……(安玫英[안매영])
408
(3) 전제식(前提式) : 글머리에 전체의 대의를 내놓고 뒤에 그를 연역(演繹)한 것이다.
409
◯ 부허(浮虛)코 섬거울손 그 아마도 서초패왕(西楚覇王)
411
천리마(千里馬) 절대가인(絶代佳人)을 누굴 주고 예거니 ……(曺植[조식])
412
◯ 주인(主人)이 술 부으니 객(客)일랑 노래하소
413
한 잔에 한 곡조씩 날 새도록 즐기다가
414
새거든 새술 새노래로 이어 놀려 하노라 ……(宋宗元[송종원])
415
(4) 후제식(後題式) : 초 ‧ 중장에는 사물을 열거하다가 종장에 그를 귀납(歸納)하여 본뜻을 사출(寫出)한 것이다.
416
◯ 산외(山外)에 유산(有山)하니 넘도록이 산이로다
417
노중(路中)에 다로(多路)하니 옐수록이 길이로다
418
산부진(山不盡) 노불궁(路不窮)하니 님 가는 데 몰라라 ……(林悌[임제])
419
◯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農夫)될 이 뉘 있으며
420
의원(醫員)이 병(病) 고치면 북망산(北邙山)이 저러하랴
421
아희야 잔 가득 쳐라 내 뜻대로 하리라 ……(金昌業[김창업])
422
(5) 복제식(復題式) : 전제식과 후제식을 합한 것이니 곧 글머리에 본뜻을 내놓고 글끝에 또다시 그 본뜻을 겹쳐 말한 것이다.
423
◯ 빙자(氷姿)에 옥질(玉質)이여 누운 속에 네로구나
424
가만히 향기(香氣) 놓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期約)하니
425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安玫英[안매영])
426
◯ 일생(一生)에 한(恨)하기를 태고(太古)적에 못 난 줄이
427
초의(草衣)를 무릅쓰고 열음 따서 먹을망정
428
인심(人心)이 순후(淳厚)하던 줄 못내 부러 하노라 ……(曺植[조식])
429
이 편법(篇法)의 5종은 산문에도 쓰는 투식이요, 또한 동서양 문장법을 통하여 일반 용례로 된 것이니, 이로써 보면 시조시의 수사법은 실로 예술의 미를 다하여 발달한 것이니, 이로써 시조시는 세계의 각종 시법(詩法)보다 우월한 가치가 있음을 알 것이다.
431
문체(文體)는 문장의 용모와 자태이다. 이 용모와 자태는 나라와 시대와 문장의 종류와 또는 개인의 풍격(風格)에 따라서 각기 다른 것이니, 한문(漢文)에도 서문(序文) ‧ 기문(記文) ‧ 발문(跋文) 등의 60종이 있다 하며, 서양문에도 라틴체 ‧ 속어체 ‧ 학자체(學者體) 등 10여 종이 있다 하는 것이다. 시조시(時調詩)에 있어서는 시된 본질이니만큼 문형(文形)이 짧고 적은 때문에 각종의 문체를 발견할 수 없으나 품격과 어조의 여하를 따라 대략 5종으로 되어 있다.
432
(1) 고문체(古文體) : 단순한 수식(修飾)으로써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나오며, 어사(語詞) 배치도 또한 공교(工巧)한 노력을 더하지 아니한 것이니, 삼국시대의 소위 향가(鄕歌)의 용모와 자태로서 간결하고 실용성을 띤 것이다. 이 체가 근세에 와서는 유승(儒僧)인 도학자(道學者)의 일파가 많이 썼다.
433
◯ 언충신(言忠臣) 행독경(行篤敬)에 주색(酒色) 또한 삼가하면
435
행(行)하고 여력(餘力) 있거든 학문(學問)조차 하리라 ……(成石璘[성석린])
436
◯ 당시(當時)에 예던 길을 그 멫해를 버려두고
438
이제나 돌아오노니 년듸 마음 마로라 ……(李滉[이황])
439
◯ 사람아 사람마다 이 말씀을 들으시라
440
이 말씀 곧 아니면 사람이요 사람 아니니
441
이 말씀 잊지 마로라 배우고야 마로라 ……(周世鵬[주세붕])
442
(2) 산림체(山林體) : 어사(語詞)가 정결(精潔)하고 수사는 반복 완미(玩味)하여 품격을 주로 한 것이니, 이 체는 실사회를 떠나서 산림에 숨어 앉아 자연을 즐겨하는 산림파(山林派)들이 많이 쓰던 것이다.
443
◯ 산중(山中)에 한운기(閑雲起)요 수중(水中)에 백구비(白鷗飛)라
444
무심(無心)코 다정(多情)하니 이 두 것이 내 벗이라
445
일생(一生)에 시름을 잊고 너를 좇아 놀리라 ……(李賢輔[이현보])
446
◯ 청산(靑山)이 임벽계(臨碧溪)요 시내 위에 연촌(煙村)이라
447
초당(草堂)에 이 심사(心事)를 백구(白鷗)인들 제가 알랴
448
죽창정(竹窓靜) 야월명(夜月明)한데 이장금(一張琴)이 있나다 ……(權好文[권호문])
449
◯ 아해(兒孩)야 어구(漁具) 차려 동간(東澗)녘에 버지거다
451
저 고기 놀라지 마라 내 흥(興)겨워 하노라 ……(趙存性[조존성])
452
(3) 우유체(優柔體) : 많은 말을 펼쳐내어 내용보다 외형미를 낫게 하며 중속(衆俗)을 알기 쉽게 하니, 이는 고려조의 칠현파(七賢派) 또는 이조 태종의 작품으로 전파된 것인바 여성적으로서 근일 신시인(新詩人)이 많이 쓰는 문체이다.
453
◯ 헌삿갓 자른 되롱 삽 짚어라 호미 메고
455
아마도 박장기(朴將棊) 보리술이 틈없은가 하노라 ……(趙顯命[조현명])
456
◯ 기러기 다 날아가고 서리이는 멫번 온고
457
추야(秋夜)도 김도길사 객수심(客愁心)도 하도하다
458
밤중만 만정명월(滿庭明月)이 고향(故鄕)인 듯하여라 ……(趙明履[조명리])
460
이슬에 물든 단풍(丹楓) 봄꽃도곤 더 좋아라
461
천공(天公)이 나를 위하야 산색(山色) 꾸며내도다 ……(金天澤[김천택])
462
(4) 도통체(都統體) : 대경(對境)을 강인(强靭)하고 강어(剛語)를 붙이며 간결한 수식으로 쾌활한 남성적인 품위로 된 것이니, 이는 삼국시대의 무사풍(武士風)의 사상으로 내려온 것인바 고려조 말에 최영(崔瑩)의 작품으로 부터 다시 일어난 것이다.
463
◯ 녹이상제(綠耳霜蹄) 좋이 멕여 시냇물에 씻겨 타고
464
용천설악(龍泉雪鍔)을 들게 갈아 들어 메고
465
장부(丈夫)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을 세워볼까 하노라. ……(崔瑩[최영])
466
◯ 장백산(長白山) 기(旗)를 꽂고 두만강(豆滿江)에 말 씻기니
468
어찌타 능연각상(凌烟閣像)에 뉘 얼굴을 그리리 ……(金宗瑞[김종서])
469
◯ 벽상(壁上)에 칼이 울고 흉중(胸中)에는 피가 뛴다
471
시절(時節)아 돌아오거든 왔소 말만 하여라 ……(隱士[은사])
472
(5) 포은체(圃隱體) : 어조에 위력이 있고 맹렬한 감정이 감촉하여 폭포나 노도(怒濤)같이 표출하는 것이니, 이는 정포은(鄭圃隱) 시(詩)를 조술(祖述)한 것이다.
473
◯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이 검노매라
474
야광명(夜光明) 밝은 달아 밤중인들 어두우랴
475
님 향(向)한 일편단심(一片丹心)야 변할 줄이 있으랴 ……(朴彭年[박팽년])
476
◯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477
고국 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478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하여라 ……(金尙容[김상용])
479
◯ 흉중(胸中)에 불이 나니 오장(五臟)이 다 타간다
480
신농씨(神農氏) 꿈에 뵈아 불끌 약(藥)을 물어보니
481
충절(忠節)로 난 불이어니 끌 약 없다 하더라 ……(朴泰輔[박태보])
482
앞의 5종 외에 다시 고시(古詩)에 나타난 사상으로 분류하면, 또한 내용률(內容律)의 구별이 있겠으나 이는 별문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직 시조시에 의하여 특별히 발생한 효과의 문장법만 진술함에 그치겠다.
484
시조시를 그 재료와 표현 형식의 방면으로 살펴보면 서양시의 서정시(抒情詩)라는 노래 곧 음악에 합창하는 시로 된 것인바, 다시 말하면 고조(高調)되는 감정이 가창적(歌唱的)으로 영출(詠出)하는 서정시로 된 것이다. 그러나 예부터 있어온 여러 사람들의 작품을 조사해 보면 전연 작자 자기의 주관적으로 표현한 것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상(事象)을 표현한 재료로 한 것도 있다. 그러므로 조금 자세히 구별하면 4종이 있다.
485
첫째 서정시다. 이 서정시 중에는 네 가지 구별이 있으니 ① 사랑의 서정시 : 이는 군신(君臣)간, 부모 형제간, 남녀간 등의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② 자연의 서정시 : 이는 자연의 풍물에 접하여 유발(誘發)되는 감정과 기분을 영출(詠出)한 것이니, 고대의 시조시는 대개 이 종류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③ 애상적(哀傷的) 서정시 : 이는 죽음을 애도하거나 이별 ․ 객려(客旅) 기타 비통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④ 반성적(反省的) 서정시 : 이는 사색적 철학적인 요구를 많이 내포한 것이다.
486
둘째는 서사시(敍事詩)니, 이는 객관적으로 인물의 행위와 상태든지 어떤 사상(事象)을 재료로 하여 묘사한 것인데, 이 종류는 많지 않다.
487
셋째는 서경시(敍景詩)니, 이는 자연의 풍물을 객관적으로 영출(詠出)한 것인데 흔히는 작자의 주관을 직접으로 표현치 않고 아떤 감정을 거기에 붙인 것이 있어 구별이 분명치 못한 것이 많다.
488
넷째는 서양의 담시(譚詩)같이 전설(傳說) ‧ 이야기 ‧ 역사적 사건 등을 재료로 하여 거기에 작자의 어떤 관념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그 수가 많지 못하다.
499
조선의 시가사를 말하면 복잡하게 보일지 모르나 대략 4기로 나눈다.
500
(1) 제1기는 민요시대다. 이는 삼국 이전 시대니, 이 시대의 실례상 문구가 나오지 아니하였으매 그때 시가의 성질을 말할 수 없으나 추측으로 말하면, 당시의 시가는 솔직한 실감을 정서(情緖)의 구조(口調)에 의하여 발하는 민요(民謠)가 주체로 되던 때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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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기는 가도(歌道) 진흥 시대다. 삼국시대부터는 문자의 기사법(記寫法)도 생기고 음악의 율격도 차비(差備)되며 겸하여 심미심(審美心)이 발달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대의 산만한 민요는 점차 예술적으로 발전되고 또 진보되니 그 진보된 예술적 발동(發動)에 따라 가도는 비 뒤의 봄풀같이 진흥하여 나갈새 도의적(道義的)인 화랑체(花郞體), 선교적인 승려체, 실감적인 민요체 등이 섞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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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3기는 가도(歌道) 쇠퇴 시대다. 고려조 의종 때에 무사(武士)의 등양(騰揚)에 반하여 문사(文士)는 크게 참운(慘運)을 만났다. 그로부터 가도의 소식은 적적히 들리지 않고 그 대신에 한시가(漢詩歌)의 작풍(作風)이 풍성하였다. 그후에 간혹 신작의 노래가 나옴이 있으나 그 내용은 필요 이상의 활력으로 충동하여 나타나는 유희적인 연애설(戀愛設)이며, 그 문장은 음률에 배합함을 위주하여 동어재창(同語再唱) 반복법 또는 유어(類語)를 열거함에 그치니 「한림별곡(翰林別曲)」「정석가(鄭石歌)」「청산별곡(靑山別曲)」「쌍화점(雙花店)」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운각(韻脚)이 균제(均齊)됨이 있으매 이 시기에는 이것으로써 일종의 색채를 바친 것이다. 곧 그 신작품은 어느 것이든지 운각이 정정(井井)한 율조로 조직되었으매 이 운율의 새로운 예만은 전대보다 진보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 운율 정제의 작용은 최후에 이르러 시조시를 발생함에 사무치니, 이것은 곧 그 쇠퇴기가 부흥되는 서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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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4기는 가도 재흥 시대니, 이는 고려조 말엽부터 이조 일대에 뻗친 시기다. 전대 말기에 시조시가 발생한 후에 마침 언어 기술에 적당한 언문(諺文)이 제정되고 한문예계(漢文藝界)에서는 한문으로 악부(樂府)를 짓기 어렵다는 자각이 일어나며, (『遺山樂府[유산악부]』 서문, 『東人詩話[동인시화]』『西浦漫筆[서포만필]』『北軒散藳[북헌산고]』) 또 한편으로 옛 명현(名賢)의 유적(遺蹟)을 애모하는 관념 등의 동기를 잡아 가도(歌道)가 재흥하여 나갈새 그로부터 점차 고체(古體)를 모작(模作)하는 기풍이 소생하다가 명종 때에 대가 정송강(鄭松江:澈[철])이 나오고 신상촌(申象村: 欽[흠])· 박노계(朴蘆溪 : 仁老[인로])· 윤고산(尹孤山 : 善道[선도]) 등 거장이 계속 일어나서 시조시의 울흥(蔚興)을 진작(振作)하고 또한 김남파(金南坡 : 天澤[천택] )· 김노가(金老歌 : 壽長[수장]) 두 가객(歌客)이 출현하여 달하(達下)의 융창을 이루었다. 그 전성의 뒤를 이어 글의 표현 형식이 일진(一進)하여 장가(長歌) 이른바 가사(歌詞)의 발달을 촉진한 동시에 소설문(小說文)을 합하여 극시(劇詩)가 일어남에 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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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에 발생 초기로부터 그 전성하기까지에 나온 작품을 종합하여 보면, 대체로 심리적 사실을 기초로 한 문예품이로되 거기 표현된 정서는 다 사회적 충동에 둘러온 것이다. 곧 근년 세정(世情)이 평화와 소동(騷動)의 선율적으로 발전될새 일시는 태종파(太宗派)의 우유체(優柔體)가 행하고 일시는 포은파(圃隱派)의 열렬체(熱烈體)가 행하였다. 그 밖에 언지부사(言志敷事)로 특별한 사상을 표사(表寫)하며 연애· 희작(戱作) 등 여러 가지 각촉 격발(刻燭擊鉢)의 소사(騷詞)가 없지 아니하나 대체의 정서 발동에 있어서는 앞의 두 파가 상호 교체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시가 전사(全史)로 보면 시조시가 발생한 후 500년간은 하등의 신문체의 발생이 없이 거의 단조(單調)로 행하여 체재상으론 보수(保守)한 현상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서사(敍事)가 귀하고 단순한 순간적 감정을 표현하는 서정시가 주장되매 그 간단한 표현의 형식은 자연히 단형(短形)의 문체를 요구치 않을 수 없었으니, 이것이 시조시의 발달된 원인의 하나이다. 시조시를 주중(主重)하여 옴에 어울려서는 시적· 예술상 공작은 오로지 일도(一道)로 달림으로써 그 미적 효과를 증진키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장법이 스스로 상당한 세련과 퇴고를 경과하여 진선진미로 발달하였다. 그러므로 문장법은 시조시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으니 이후에 어느 사람이 어떤 종류의 문이나 시를 지어내든지 시조시의 문장법 곧 사자법을 효칙치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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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발달하여 온 내맥(內脈)은 위에 기술함과 같거니와 한층 더 나아가 그 발달력을 장양(長養)한 문수(文粹)는 무엇인가. 최후에 이르러 이것을 말하고자 한다. 대저 시가는 정(情)을 사(寫)하고 심성(心性)으로 묘(描)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시가 조선인의 산물인 이상에 그것이 조선인의 성정과 긴요하게 달라붙은 관계가 있음을 알 것이다. 조선인의 성질은 ① 화순성(和順性)이다. 평화적 무사의 기풍이 있다. 극단의 참혹한 행색을 취하지 않는다. 흰옷을 좋아한 것처럼 순직 무잡(純直無雜)하고 충실 용진(忠實勇進)으로 직선적 행동을 취하니, 그러므로 수천년 문화 양식도 많은 변화가 없었다. 옛날부터 수많은 시체(詩體)를 다 버리고 시조시 한 체만 가장 숭상하여 온 것도 그 성정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② 조직적 정신이다. 화순성은 한편으로 원만을 취하는 활동이 있으며 한편으론 규칙적 정리를 즐기는 조직성이 있으니. 지방 자치 같은 주밀한 제도를 세계의 선진으로 시행하여 온 것도 그 성정의 발작이다. 그러므로 시조시의 문장 및 그 운율 법칙이 상당한 학적(學的)으로 구성됨도 그 조직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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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예술을 수(粹) 또는 조(調)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한갓 형식적 또는 기교로 흐르면 망국적(亡國的) 물건이 되는 것이다. 바둑을 둘지라도 앉음새와 손 모양에 격조가 없이 머리를 흔들고 손을 휘둘러 장난같이 하면 실조(失調)요 천태(賤態)다. 음악과 무용도 다 그렇거니와 도덕도 무체무의(無體無義)로 실조 상절(失調喪節)하면 그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시조시도 그와 같이 근본 정신과 그의 운율을 잃으면 아니 되느니, 문예가든지 미술가든지 모두 이것을 크게 주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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