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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와 모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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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6
김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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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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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조각가의 모델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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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인사  / 김복진(조각가) 구본웅(화가) 김환기(화가) 정현웅(화가) 최근배(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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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측  / 함대훈 김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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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   / 4월 16일 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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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본사 귀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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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의 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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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바쁘신 틈을 타서 이처럼 와 주시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모델 좌담회’ 라고 해서 어떤 분은 모델 자신의 좌담회라고 생각하신 분도 있은 듯 하나 그런 것이 아니고 화가나 조각가가 본 모델 좌담회이니 여러분이 지금까지 모델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회합이니 만큼 조금도 숨김없이 어디 한번 털어놓고 말씀해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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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조선에는 아직 모델을 직업으로 하는 데가 없습니다. 김복진 씨 모델의 시초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좀 말씀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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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나도 정확한 것은 단언 할 수 없습니다마는 동경 상야공원 바로 뒤에 궁기(宮崎)라는 모델 소개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궁기는 말하자면 그의 어머니의 업을 계승한 것으로서 모델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그의 어머니지요. 그런데 이 궁기의 어머니라는 자는 워낙이 ‘구호(龜戶)’ 출신입니다. 그가 처음에 어떻게 모델을 구했는가 하면 참 진기하지요. 오전탕(お錢場)(공동목욕탕)으로 다니면서 벌거숭이 여자 가운데서 이것저것 고르다가 그럴 듯한 놈이 있거든 잘 보아두지요. 착의장으로 나와서 의복 입는 것을 보고 그의 채림채림으로 보아서 가난한 집 사람인 것 같으면 그의 뒤를 따라 나가 모델이 되는 것이 어떠냐고 교섭을 하였답니다. 그 후 얼마 안되어 어머니가 죽은 후 아들인 궁기가 지금까지 어머니의 업을 계승하여 온 것입니다. 이 외에도 소위 모델 소개소라는 데가 두어 곳 있지요. 하나 는 ‘지대(池袋)’ 에 있고 또 하나는 ‘목흑(目黑)’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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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그 궁기소개소라는 데는 모델이 전부 몇 명이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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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내가 작년에 갔을 때는 한 3백명 가량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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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된 동기와 모델 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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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모델들은 모델 이외에 무슨 다른 직업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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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모델 전업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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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배  댄서와 모델을 겸직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여학생들도 있지요. 이 여학생은 물론 고학하는 사람으로서 학교가 필하면 곧 책보를 끼고 와서 모델 노릇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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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모델로 나서는 동기는 대개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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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물론 생활난으로 나서지요. 젊은 여인의 몸으로 하기 쉽고 수입이 많으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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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모델 자신이 회화에 취미를 가지고 모델로 나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모델 소개소 즉 모델 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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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모델을 한데 모아 놓고 즉 낭하 같은데 쭉 앉히우고 모델을 구하고자 하는 화가가 돌아가면서 선을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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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매주 일요일마다 모델을 한 방에 앉혀 놓지요. 그리고 모델을 구하는 사람이 기웃기웃하며 모델의 얼굴과 스타일을 관찰하다가 자기 마음에 합당한 모델을 발견하면 그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올라가서는 의복을 벗겨놓고 또 한 차례 나체의 선을 본 다음에 마음에 들면 주인과 모델에 관한 계약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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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대개 모델의 시간비는 어떻게 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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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보통 세 시간에 일원씩입니다. 작년에는 일원 오십전씩이더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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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나체와 착의에 따라 요금에도 차이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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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작년에는 나체가 일원 오십전이고 착의는 일원입디다. 그런데 이 요금문제도 주문하는 사람에 따라 좀 다른 모양인데 말하자면 주문하는 측이 큰데면 좀 싸게 할 수 있고 개인이면 좀 비쌀 수도 있지요. 그러나 대가는 체면도 있고 하니 만큼 좀 많이도 주고 대개는 한 일 년씩을 계약하는데 이 일년 계약은 모델측이 퍽 유리한 것이 그 일년 동안 주문자가 그림을 안 그리더라도 일년 계약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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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일주일 계약이면 보통 3원 육십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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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모델의 평균 수입은 대개 얼마나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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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일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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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최고는 얼마나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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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최고는 일개월 일백 이삼십냥쯤 되고 최저는 사오십원 가량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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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배  평균 수입이 한 육칠십원쯤은 되는 모양입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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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나체를 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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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그러면 다음에는 나체 모델을 맨 처음에 보았을 때 여러분은 어떠한 감상을 가지었는지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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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나부터 이야기 하지요(일동 폭소). 지금부터 약 16년 전입니다. 동경미술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니까요. 그 때 참 난생 처음으로 숙성한 여인의 나체를 보았는데 모델 여자가 벌거벗고 모델대로 올라가지를 않겠습니까. 그 순간- 그 일사(一沙)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를 본 순간 마치 고무방망이로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듯이 머-ㅇ 해졌습니다. 얼굴이 후꾼후꾼 붉어지고 눈이 자꾸만 한곳으로 가두구만요. 그러나 한 번 두 번 경험을 거듭하구 보니 그렇지도 않더구먼요. 참 처음에는. (소성(小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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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나는 섬사람이라 어릴 때 해변에서 나체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 그렇게 심한 충동은 받지 않았었습니다마는 새빨간 쥬반(襦袴 *유고)을 벗을 때는 좀 이상하더구먼요. 어쩐지 마음이 떨리고 그런데 순나체보다도 의복을 벗는 순간이 더 급해요. 그런데 모델 중에도 벗기를 무척 싫어하는 여자가 많습니다. 그렇게 벗기를 싫어하는 여자면 이 편이 무척 땀이 납니다. 벗기는 수단이 용해야지요. 이 편이 주문자라고 해서 다짜고짜 벗으라고 명령한댓자 좀체로는 벗지 않습니다. 별별 연극을 다 해야지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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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배  아니 직업 모델도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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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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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최근배 씨도 좀 이야기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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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배  나는 일학년 때 상급생들이 그리는 모델을 가만히 문틈으로 들여다 본 적이 있는데 좀 이상하더군요. 그러나 정작 자기가 모델을 쓰고 보니까 뭐 대수롭지 않습디다. 하여튼 처음엔 좀 흥분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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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어떻게 흥분되는지 좀 자세히 이야기를 해야지. (일동 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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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배  거저 마음이 화끈화끈 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결코 성적 흥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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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다른 사람이 그리는 것을 처음에는 보았는데 뭐 아무렇지도 않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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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나도 처음엔 좀 켕겼습니다. 문을 열고 한 발자욱 쑥 안으로 들어서니 울긋불긋한 커튼을 등지고 나체 모델이 서 있는데 참 이상하데요. 그러나 그것이 성적 흥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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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과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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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모델과 화가 사이에는 흔히 로맨스가 일어나기 쉽다는데 구본웅 씨 어데 재미있는 로맨스를 하나 공개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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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없습니다. 그러나 모델은 대개 그림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화가나 조각가에 대하여 그리 악감은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델 보고 ‘후에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으면 태반은 화가가 되겠다고 하지요. 또 그림을 공부하면서 모델 노릇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모델들은 화가를 한 번 보면 그 화가가 ‘소인(素人)’ 인지 ‘현인(玄人)’ 인지 단번에 알아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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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조각하시는 분들은 모델을 만져 본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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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만져만 보나요. 쓸어두 보지요. 동경 어떤 대가는 모델과 입을 맞추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교까지 하고야 비로소 집필한다는 사람도 있으나 나로 말하면 제작 중에는 의식적으로라도 모델에게 좀 가혹하리 만큼 냉정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런데 모델과의 로맨스는 나는 없지마는 내 친구의 이야기가 하나 있지요. 그 A라는 친구는 마음이 무척 약한 사람으로서 11년 동안이나 한 모델을 사모하면서도 자기의 심중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로 말하면 A의 진의를 잘 알면서도 그를 배반하고 A의 친구와 동첩하여 딸을 둘씩이나 나가지고 살다가 또 그와도 헤어지어 역시 A의 다른 동무와 결혼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A는 15년 동안이나 제 본 마음을 표시하기 않고 그만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황천길을 밟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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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모델 구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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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그럼 다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모델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합시다. 김복진 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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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호불호야 주관에 따라 다르지요마는 모델에게도 소위 유행형이라는 것이 있어서 4년 전까지는 살이 좀 있는 편이 유행이던 것이 3년 후 지금에 이르러서는 살이 없는 편이 유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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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김복진 씨의 주관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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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나는 조금 살진 편을 좋아하지요. 작년 일입니다. 사도(寺島)라는 모델이 있었는데 살두 좀 지고 그리고 사람된 편이 좀 바보 같은데 아주 흥미를 많이 가졌습니다. 그 모델에게서 나는 공부도 많이 하였지요. 그랬던 것이 그 사도가 작년 그만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 나는 그의 영을 위하여 참묘(參墓)까지 해 주었답니다.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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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일본 내지의 이야기고 조선서 모델을 얻는 방법을 좀 이야기 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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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조선서는 모델 얻기가 대단히 어렵지요. 어디 모델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언젠가 친구에게 모델을 하나 얻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가 어떤 색주개 집에서 색주개를 한 명 이백원에 사왔더랍니다. 그런데 진기로운 것은 그 색주개로 말하면 모델로 온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하자면 첩으로 온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양방의 의사가 통할 리가 없지 않아요. 첩으로서의 생활을 몽상하고 온 것인데 그런 생활은 조금도 시켜주지 않고 매일 벗겨놓고 조각 제작에만 몰두하는 남편(?)을 의아의 눈으로 쳐다보지 않을 수 없지요. (일동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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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그래 어떻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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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종내 도망해 버리고 말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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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그야말로 환멸의 비애를 느끼고 도망했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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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그것은 하여튼 내 경우로는 뚜쟁이를 중간에 내세우고 색주개 한 명과 15세 된 어린 계집애를 한 명 데려다 제작한 일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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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나체겠지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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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물론 나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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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빠 같은데서 친해가지고 모델을 구하는 수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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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빠에도 가 보았습니다마는 착의는 승락해도 나체는 좀체로 승락하지 않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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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요금은 대개 얼마나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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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한 시간에 보통 일원 평균이지요. 그리고 하루면 3원인데 어떤 사람은 제작이 죄다 끝난 후에 무슨 물품으로 보수하는 이도 있지요. 이처럼 조선서는 모델 구하기가 대단히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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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언젠가 미술연구소에서 모델 구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냈더니만 어떤 내지 여자가 광고를 보고 찾아 왔는데… 참 우스워 견딜 수가 없는 것이 화실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쭉 벗어버리더니 거기 정물 사생용으로 놓아 두었던 능금을 덤벅 쥐어다 아주 천연히 먹고 있겠지. 그래 어딘가 좀 이상하다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미치광이야 미치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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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  하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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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그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조선서는 도저히 적당한 모델을 구할 수가 없으니까 동경서 주문해다 쓰기로 했으면 어떨까하고요. 동경서 주문해 오면 먹여주고 매월 60원씩 주면 될 것입니다. 물론 왕복 차비는 이 편에서 내고 말이지요. 궁기소개소에 교섭을 해 보았더니 특별히 40원씩이면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일개월이면 식비와 왕복 차비를 합계해서 일백 오십원 이내입니다. 그러나 그 비용을 나 혼자서 부담할 수도 없고 해서 동업자의 찬동을 구했더니만 어디 찬동자가 있어야지요. 지금 경성만 해도 제작자가 10여 명이나 되니 모델 3인만 있으면 모델 자신의 수입도 많아질 텐데 어디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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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나체를 즐겨 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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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그런데 모델들은 의복을 쉽사리 잘 벗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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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물론 모델을 업으로 하는 자는 잘 벗지마는 처음으로 나선 사람은 좀체로 안 벗습니다. 언젠가‘헤렌’이라는 노서아 여자를 한 번 모델로써 보았는데 이 여자의 아버지는 독일계의 노서야 사람이고 어머니는 조선 기생입니다. 그래 그 ‘헤렌’ 을 꾀어가지고 모델로 데려오긴 했으나 어디 옷을 벗어야지요. 그래 그것을 벗기느라고 참 굳은 땀을 흘렸습니다. 서양인의 육체는 조선사람보다 풍부하고 좋다거니 뭐 어떠니 하면서 겨우 벗겨 놓았습니다. 또 언젠가는 조선사람 행랑 어멈을 데려다가 문을 걸고 벗으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안 벗겠다는 게요. 그래 여기 올 때 벗기를 약속하고 온 것이 아닌가고 절반은 협위(脅威)로 벗긴 적이 있지요. 또 다르게 벗기는 방법은 여자를 추켜 올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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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하여튼 한 번만 벗어보면 다음부터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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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그런데 나체를 많이 보면 대개 어떤 데에 제일 매력을 느끼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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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배  나는 무엇보다도 유방이 제일 매력이 있더구먼. 겨울 난로 옆에 서있는 모델의 살빛 그 복숭아 빛으로 변한 살빛이란 참 신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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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나는 남자와 같은 여자를 좋아합니다. 즉 중성적 여자에 제일 매력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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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그런데 나는 항상 이상히 생각하는 점이 있는데 화가나 조각가는 어째서 모델 중에도 나체를 좋아하는지? 아니 어째서 나체만을 즐겨 그리는지 참 모를 일이더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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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물론 소제(素題)는 많지만은 인체의 생동성과 복잡성이란 참 별 변화가 다 많으니까 치아라 나체를 그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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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그래도 미는 코스츔을 입은 데서 더 많이 발견할 수가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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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몸에는 참말로 무궁한 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그려도 좀체로 압증이 안 생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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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배  더구나 살빛은 분위기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만큼 다른 것보다 소위 변화가 많지요. 더구나 곡선,직선의 미가 풍부하고 또 육체의 구조의 묘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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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물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착의도 결국에 있어서는 나체와 마찬가집니다. 옷을 입었다고 하여도 옷 그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육체와 의장(衣裝)의 관계를 그리는 게니까요. 나체는 말하자면 그 자신에 큰 매력을 가지고 있지요. 아마 나체화는 예술사상에 있어서 영구한 대상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조각 방면은 정물보다도 동물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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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웅  나체 그것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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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즉 미적 관념을 나체 위에 표현하는 게니까.
 
84
김복진  말하자면 미에 대한 기성 관념을 모델에 접하여 고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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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성  성적 매력이 창작적 감흥을 자극하는 데 한층 더 굳세게 작용하는 때문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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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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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  나체는 성적 대상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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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대체로 동양화가들도 인물 연구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 화가의 그림에는 어딘가 좀 다른 점이 있지요. 대체로 식물과 작가 간의 변화보다도 사람과 작가 간의 변화가 더 미묘하고 더 많지요. 나는 삼백명의 모델을 써 보려고 결심은 했으나 어디 경제 문제와 시간 문제가 허합니까. 그래 자기의 웃는 얼굴 우는 얼굴 성난 얼굴 등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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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의 자격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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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  모델의 자격 문제를 좀 이야기 하여 주시오. 육체적 자격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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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나는 조선 여자를 육칠인 가량 나체 모델로 써 보았는데 모두들 어깨가 넓어서 못 쓰겠어요. 키는 오척에다 어깨의 넓이가 일척 일촌(一尺一寸) 이상이면 못 씁니다. 어깨가 넓고 가슴과 요부가 가늘면 보기 싫습니다. 또 손은 손목에서 손가락 끝까지가 그 몸의 십분지 일이면 되고 살지고 마른 것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가슴만 맞으면 됩니다. 그리고 얼굴이 곱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균형이 맞아야 되지요. 사람에게는 각각 남이 갖지 못한 특징이 있으니까 그 특징을 발견하여 그것에 매력을 가지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유방과 골반이 중요합니다. 제 작상에 있어서 나는 아이 낳기 전이면 모두 처녀라고 보는데 아이를 낳고 보면 골반과 유방에 차이가 생기지요. 처녀는 유방이 종 같고 젖꼭지가 위를 향합니다. 그것이 퍽 좋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나면 젖꼭지가 축 처지지요. 면적이 크고 탄력이 없고…. 그 다음 골반은 조각에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위치의 정확 여하에 달려 전부를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골반에 따라 조각품의 위치가 안정되지요. 그리고 산후면 위보다 아래가 더 퍼지는데 다리와 다리 사이가 전같이 밀접하지를 못하지요. 이와 같은 점만 면하면 나는 어떤 모델이든 환영합니다.
 
92
김환기  나는 어린애 안 낳고 마르지 않고 허리가 잘숙한 여자면 좋습니다.
 
93
최근배  나는 무엇보다도 빛깔이 좋아야 됩니다. 빛깔이 좋아야 그림 그릴 기분이 생기지 빛깔이 나쁘다고 생각하면 붓대를 잡아도 그려지질 않습니다. 하여튼 무엇보다도 먼저 모델에게 반하야만 그림이 잘 될 것입니다.
 
94
정현웅  얼굴도 그렇습니다. 그림이 되고 안 되고는 얼굴이 밉다든가 곱다든가에 달리지 않았어요.
 
95
김복진  가령 죽은 자의 동상 같은 것을 제작하려면 한 장밖에 없는 사진을 보고 횡면,후면 등을 숫자적으로 연구 산출해야 하지요. 대개 사람의 얼굴에는 사각,원형,타원형의 3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면만이 아니라 측면을 두고 말해도 마찬가진데 하여튼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이런 것을 모두 연상해 내야만 됩니다. 또 여자에 대한 매력 문제도 정비된 것만을 요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소위 탈선한 점도 그것에 미를 느낄 수가 있지요. 보통 ‘아름답다’ 고 하는 데는 ‘젊음’과 ‘아름다움’ 을 혼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젊음’을 제하고 나머지가 참다운 ‘미’ 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델은 반드시 미인이 아니라도 될 것이며 또 코가 정비치 못하면 다른 데가 아무리 좋아도 틀리지요. 조선 여자는 대개 코가 약하고 눈과 눈 사이가 멀어서 원방에서 보면 눈은 보이지 않고 미간만 뵈이지요.
 
96
함대훈  김복진 씨의 코는 어떠시우?
 
97
김복진  내 코는 여자라면 참 미인이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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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배  하여튼 너무 구비된 것도 틀리지요.
 
99
함대훈  많이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좌담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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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1938.6
【원문】예술가와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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