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종직(丘從直)은 성종 때 사람으로 자는 정보(正甫)요 호는 안장공(安長公)이다.
3
근본이 평인으로 소시에 성균관(成均館) 하재(下齋)에 들어가니 그때 생원(生員) 진사(進士) 20여 명이 점장이에게 평생 길흉화복을 묻는데 마침 종직에게 이르러서 점장이가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4
"공은 일품이 되시고 수는 70을 넘기실 부귀지상으로 이 방 중에 제일이 올시다."
5
여러 사람이 이 말에 모두 웃더니 후에 등과하여 교서관(校書館)으로 분관하여 임직할 때 경회루(慶會樓)가 좋단 말을 듣고 밤중에 누하에 가서 거닐다가 별안간 왕께서 남여를 타시고 두어 시종을 데리시고 후원으로 이르시니 종직이 두려워서 길 곁에 엎드렸다. 왕은 깜짝 놀라시어 물으시니 대답 하기를
8
"신이 들으매 경회루이 옥주(玉柱)와 요지(瑤池)가 천상선계(天上仙界)라 하옵기로 지금 숙직하였다가 감히 몰래 보려 하였읍니다."
10
"촌부의 노래가 어찌 성률(聲律)에 합하겠읍니까?"
12
하시니 그는 만성(漫聲)으로 길게 뽑는다. 왕이 좋다 하시고 또 소리를 높이라 명하시고 기뻐하사 말씀하시기를
16
이튿날 종직을 부교리(副校理)로 특배하시니 삼사(三司)가 모두 반대하나 허락지 않으시고 5∼6일을 지내어 왕이 편전에 듭셔서 삼사의 관원을 다 부르사 대헌(大憲)이하로 하여금 춘추를 외게 하시니 한 사람도 외는 자가 없었다. 왕은 종직을 명하사 제1권을 외게 하시고 마친 뒤에 또 다른 질(帙)을 뽑으니 다 외거늘 왕이 제신더러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한 구도 외지를 못 하면서 오히려 청환(淸宦)에 있으면서 구종직 같은 자의 벼슬을 어찌 의논 하느냐 하시고 종직더러 받으라 하시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