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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栗谷)의 모부인(母夫人) 사임당(師任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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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明宗) 대왕 때에 감찰 이원수(監察 李元秀)의 부인이요 율곡 이이(李珥)의 모친이요 진사 신명화(進士 申命和)의 딸인 신씨(申氏號師任當[신씨호사임당])는 어렸을 때부터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서화에 밝으니 7 세시에 안견(安堅)의 산수도(山水圖)를 모방하여 배웠고 또 포도를 잘 그리므로 세상에 그 이름이 들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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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선비의 집에서 자라나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통달하여 옛 사람의 가언선행(嘉言善行)을 체준(體遵)하였으나 지아비 이원수는 학업이 공소(空疎)하였다. 그러나 부인이 늘 도와 실수가 없었다. 이기(李芑)에의 동족으로 늘 기문(芑門)에 출입했는데 신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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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영상(領相)이 어진 선비를 많이 무해(誣害)하고 권세만 탐하니 덕릉 부원군(德陵府院君)의 존영(尊榮)이 어찌 오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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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만류하였다. 이원수는 그 말을 듣고 출입을 끊었는데 후일 이기가 실패 할 때에 그 화를 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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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후에 다시 재취(再娶)하지 말고 이미 있는 네 아들이나 잘 기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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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가 출처(出妻)하였단 말이 있으니 그것이 예(禮)에 합당하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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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가 노(魯)나라에서 소공(昭公)의 난(亂)을 피하여 제(齊) 나라 이계(尼谿)로 가실새 그 안해가 쫓지 아니하고 송(宋)나라로 가므로 부자(夫子) 다시 동실(同室)치 아니하였으나 그 안해를 내보냈다고 현언(顯言)하지는 않으셨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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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증자(曾子)의 출처(出妻)는 무슨 예(禮)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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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曾子)의 부친이 찐 배를 좋아하는데 그 부인이 배를 잘 찌지 못하므로 부친 봉양하는 도리에 어긋나므로 부득이 한 일이라 그러나 항려(伉儷)의 의를 중히 여겨 다시 장가들지 않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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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朱子) 47세에 부인 유씨(劉氏)가 별세하였으나 다시 재취치 아니하였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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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어색(語塞)하여 더 묻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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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씨 일찍 죽으니 이씨는 그 말대로 좇았다. 이렇게 그는 자식들만 가르침이 아니요 남편까지도 가르친 것이다. 이러한 모교(母敎) 아래서 대 율곡(大栗谷)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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