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萬德者,姓金,耽羅良家女也。幼失母無所歸依,托妓女爲生。
4
만덕자。성김。탐라양가녀야。유실모무소귀의。탁기녀위생。
5
만덕(萬德)은 성이 김(金)이고 탐라(제주)의 양갓집 딸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어서 기생(妓女)에게 의탁하여 살아가게 되었다.
6
稍長,官府籍萬德名妓案。萬德雖屈首妓於役,其自待不以妓也。
7
초장,관부적만덕명기안。만덕수굴수기어역,기자대불이기야。
8
점점 자라자, 관부(官府)에서 만덕의 이름을 기생의 명부(妓案)에 올렸다. 만덕은 비록 머리를 숙여 기생으로 일하였지만, 스스로를 기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9
年二十餘,以其情泣訴於官,官矜之除妓案,復歸之良。
10
년이십여,이기정읍소어관。관긍지제기안。복귀지량。
11
나이 스무 살이 넘어서, 그의 사정(私情)을 관부에 읍소(泣訴)하니 관부에서 이를 불쌍히 여겨 기생 명부에서 삭제하고 다시 양민(良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12
萬德雖家居乎庸奴,耽羅丈夫不迎夫。其才長於殖貨,能時物之貴賤, 以廢以居。 至數十年, 頗以積著名。
13
만덕수가거호용노,탐라장부불영부。기재장어식화,능시물지귀천,이폐이거。지수십년。파이적저명。
14
만덕은 비록 집에 탐라 남자를 하인(庸奴)으로 두었지만, 남편(夫)을 맞지는 않았다.
15
그녀의 재능은 재화를 늘리는 일(殖貨)을 잘해서, 물가 등락(貴賤)하는 때를 맞추어 사고팔기를 잘하여, 수십 년에 이르니 자못 부자로 이름이 났다.
16
* 폐거(廢居) : 물건을 쌓아 두고 값 오르기를 기다림. 폐거(廢擧). 폐저(廢著).
17
聖上十九年乙卯, 耽羅大饑, 民相枕死。 上命船粟往哺。 鯨海八百里, 風檣來往如梭, 猶有未及時者。
18
성상십구년을묘,탐라대기,민상침사。상명선속왕포。경해팔백리,풍장래왕여사,유유미급시자。
19
성상 19년 을묘년, 탐라에 큰 기근(饑饉)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서로를 베고 누워 죽었다. 임금께서 배에 곡식을 싣고 가서 그들을 구제하라고 명했다. 거친 바닷길 팔백리를 범선(帆船: 風檣)이 베틀의 북처럼 왕래했지만, 때에 맞게 이르지 못했다.
20
* 경해(鯨海) : 고래 같은 파도가 이는 바다.
21
* 풍장(風檣) : 돛단배, 범선. 檣 - 돛.
22
於是萬德捐千金貿米, 陸地諸郡縣棹夫以時至。 萬德取十之一, 以活親族, 其餘盡輸之官。 浮黃者聞之, 集官庭如雲。 官劑其緩急, 分與之有差。
23
어시만덕연천금무미,육지제군현도부이시지。만덕취십지일,이활친족,기여진수지관。부황자문지。집관정여운。관제기완급。분여지유차。
24
이에 만덕은 천금을 내어 육지에서 쌀을 사서, 여러 군현의 뱃사공(棹夫)들이 때에 맞게 이르렀다. 만덕은 십분의 일을 취하여 친족(親族)을 살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관청에 실어 보냈다. 부황(浮黃)난 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관청의 뜰(官庭)에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 관청에서는 그 상태의 완급을 조절하여 차등 있게 이를 나누어 주었다.
27
남자와 여자들이 나와서 만덕의 은혜를 칭송하며, 모두가 ‘우리를 살린 자는 만덕이다’라고 했다.
28
賑訖, 牧臣上其事于朝。 上大奇之, 回諭曰: “萬德如有願, 無問難與易, 特施之。”
29
진흘。목신상기사우조。상대기지。 회유왈。 만덕여유원。무문난여이。특시지。
30
진휼(賑恤)이 끝나고, 목사(牧使)가 그 일을 조정에 상주(上奏)했다. 임금께서 이를 매우 기특하게 여기시고 회답하시기를,
31
‘만덕이 만일 소원이 있다면 어렵거나 쉽거나를 묻지 말고 특별히 베풀어 주어라’
33
* 목신(牧臣) : 지방 수령.(여기서는 제주의 목사)
34
牧臣招萬德以, 上諭諭之曰: “若有何願?” 萬德對曰: “無所願。 願一入京都, 瞻望聖人在處, 仍入金剛山, 觀萬二千峯, 死無恨矣。”
35
목신초만덕이상유유지왈。약유하원。만덕대왈。 무소원。원일입경도。첨망성인재처。 잉입금강산。관만이천봉。사무한의。
36
목사가 만덕을 불러 임금의 유시(諭示)로써 분부하여(諭之) 말하기를,
39
‘바라는 바는 없습니다만, 한 가지를 바란다면, 서울에 올라가 임금(聖人)이 계신 곳을 멀리서 우러러보고(瞻望), 인하여 금강산에 들어가 일만 이천 봉우리를 본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41
盖耽羅女人之禁不得越海而陸, 國法也。 牧臣又以其願上, 上命如其願, 官給舖馬遞供饋。
42
개탐라녀인지금불득월해이륙。국법야。목신우이기원상。상명여기원。관급포마체공궤。
43
대개 탐라의 여인은 바다를 건너 육지에 오르지 못하도록 금하였으니, 이것이 나라의 법이었다. 목사가 다시 그녀의 소원을 상주(上奏)하니, 임금께서 그 소원을 따라 관(官)에서 역마(驛馬: 舖馬)를 대주고 번갈아 음식을 제공하도록(供饋) 명하셨다.
44
* 포마(舖馬, 鋪馬) : 驛站中所備的馬匹, 역참에 구비된 말.
47
만덕은 한 척의 범선을 타고 너른 구름 바다를 건너서, 병진년 가을에 서울에 들어왔다.
50
여러 차례에 걸쳐 채 상국을 뵈었고, 채상국은 그 일을 임금께 아뢰었다.
53
임금께서 선혜청에 명하여 달마다 식량을 대주도록 하셨다.
54
居數日, 命爲內醫院醫女, 俾居諸醫女班首。
56
며칠이 지나서, 명하여 내의원 의녀로 삼고, 의녀들의 반수(班首)로 대궐에 머물게 하셨다.
57
萬德依例詣, 內閤門, 問安殿宮。 各以女侍。
59
만덕은 전례에 의거하여 대궐(閤門) 안으로 나아가 전궁(殿宮)(왕과 왕비)께 문안하였다. 각각 궁녀가 시중들었다.
60
* 상국(相國) :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통틀어 이르는 말.
61
傳敎曰: “爾以一女子, 出義氣救饑餓千百名, 奇哉!” 賞賜甚厚。
62
전교왈。이이일녀자。출의기구기아천백명。기재。상사심후。
63
전교하여 말씀하시기를, ‘너는 일개 여자로서 의기(義氣)를 내어 굶주린 사람 천백 명을 구제하였으니, 기특하구나.’ 하시고 상을 내리심이 매우 두터웠다.
64
居半載, 用丁巳暮春, 入金剛山。 歷探萬瀑ㆍ衆香奇勝。 遇金佛輒頂禮, 供養盡其誠。
65
거반재。 용정사모춘。입금강산。 력탐만폭,중향기승。 우금불첩정례。공양진기성。
66
반년이 지나서 정사(丁巳)년 늦은 봄에 금강산에 들어가 만폭동(萬瀑洞) 중향봉(衆香峰)의 기이한 경치를 두루 구경하고, 금불(절의 불상)을 마주하여 정례(頂禮)하고 공양을 드림에 그 정성을 다하였다.
67
盖佛法不入耽羅國, 萬德時年五十八, 始見有梵宇佛像也。
68
개불법불입탐라국。만덕시년오십팔。시견유범우불상야。
69
대개 불교가 탐라국에는 들어가지 않아서 만덕의 이때 나이가 오십 팔세였지만 처음으로 절(梵宇)과 불상을 보았다.
70
卒乃踰鴈門嶺, 由楡岾下高城, 泛舟三日浦, 登通川之叢石亭, 以盡天下瑰觀。
71
졸내유안문령。유유점하고성。범주삼일포。등통천지총석정。이진천하괴관。
72
마침내 곧 안문령을 넘고 유점사(楡岾寺)를 경유하여 고성으로 내려가 삼일포에서 배를 띄우고 통천의 포석정에 오르니, 천하의 아름다운 경관(瑰觀: 괴관)을 다 본 것이다.
73
然後還入京, 留若干日。 將歸故國, 詣內院告以歸, 殿宮皆賞賜如前。
74
연후환입경。류약간일。장귀고국。예내원고이귀。전궁개상사여전。
75
그런 후에 다시 서울로 들어가 며칠을 머무르고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내원(內院: 궁궐)에 나아가 돌아갈 것을 고하니, 전궁(왕과 왕비)께서 모두 전과 같이 상을 내리셨다.
76
當是時, 萬德名滿王城, 公卿大夫士無不願一見萬德面。
77
당시시。만덕명만왕성。공경대부사무불원일견만덕면。
78
이때에 만덕의 이름이 서울에 가득하여 공경 대부와 선비들이 만덕의 얼굴을 한 번 보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었다.
79
萬德臨行, 辭蔡相國哽咽曰: “此生不可復瞻相公顔貌,” 仍潸然泣下。
80
만덕림행。사채상국경인왈。 차생불가부첨상공안모。잉산연읍하。
81
만덕은 떠날 때가 되어서 채상국에게 목이 메어 말하기를, ‘이번 생에는 상공(相公)의 얼굴을 다시 뵙지 못하겠습니다.’ 하고는 인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82
相國曰: “秦皇ㆍ漢武皆稱海外有三神山, 世言‘我國之漢挐, 卽所謂瀛洲; 金剛, 卽所謂蓬萊。’ 若生長耽羅登漢挐, 㪺白鹿潭水, 今又踏遍金剛, 三神之中, 其二皆爲若所包攬。 天下之億兆男子, 有能是者否。 今臨別, 乃反有兒女子刺刺態何也?”
83
상국왈。진황한무개칭해외유삼신산。세언아국지한나。즉소위영주。금강즉소위봉래。약생장탐라등한나。구백록담수。금우답편금강。삼신지중。기이개위약소포람。천하지억조남자。유능시자부。금임별。내반유아녀자자자태하야。
85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는 모두 바다 건너 삼신산(三神山)이 있다고 말했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한라산이 곧 소위 영주(瀛洲)이고, 금강산이 곧 소위 봉래(蓬萊)라고 하는데, 너는 탐라에서 나고 자라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 물을 떠먹었고, 지금 또 금강산을 두루 구경했으니, 삼신산 중에 그 둘을 모두 네가 두루 알고 본 것이다. 천하의 많은 남자들 중에 이것을 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 이제 이별할 때가 되어 도리어 아녀자의 자자(刺刺: 수다스러움)한 모습이 있으니 어찌 된 것인가?’
89
여기에 그 일을 서술하여 '만덕전(萬德傳)'이라 이름하고, 웃으며 그녀에게 주었다.
90
聖上二十一年丁巳夏至日, 樊巖蔡相國七十八, 書于忠肝義膽軒。
91
성상이십일년정사하지일。번암채상국칠십팔。서우충간의담헌。
92
성상 이십일년 정사년 하지일, 번암 채상국이 칠십 팔세에 충간의담헌(忠肝義膽軒)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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