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숙종 임금 시절, 남원 고을에 사또 자제 도련님 한 분이 계시되,
6
나이는 십 육 세요, 인물 좋고 재주있고 슬기로우니 보기드문 기남자라.
7
하루는 일기 화창하야 도련님이 방자 불러 물으시되
8
“얘, 방자야! 내가 너의 고을 내려 온지
9
수 삼삭이 되었으나 볼만한 경치를 모르니,
13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호걸들이
14
승지강산을 구경허고 대문장이 되었으니라.
22
상산의 바돌 뒤던 사호 선생이 놀았으니,
24
아니 놀고 무엇허리. 잔말말고 일러라.”
26
“도련님 분부가 그리 허옵시니 대강만 아뢰옵지요.
27
동문 밖 나가오면 충렬 제일 관왕묘가 좋사옵고,
28
서문 밖 나가오면 금수청풍 신원사가 좋사옵고,
29
북문 밖 나가오면 교룡산성 대복암이 좋사옵고,
30
남문 밖을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삼남 제일루로소이다.”
31
“거 네 말을 들어보니, 광한루가 좋을 듯 허구나.
38
청홍사(靑紅絲) 고운 굴레, 상모(象毛) 물려 덥벅 달아
39
앞뒤 걸쳐 질끈 매, 칭칭 다래 은엽등자(銀葉登子)
40
호피 돋움 태가난다. 모탄자(帽綻子) 걸쳐덮어
42
도련님 호사헐 제, 옥골선풍(玉骨仙風) 고운 얼굴
43
분세수(粉洗手) 정히 허고, 감태 같은 채진 머리
44
동백기름 광을 올려 갑사(甲紗) 댕기 드렸네.
45
쌍문초(雙紋縮) 진동옷 청중추막(靑中赤莫)을 받쳐
46
분홍띠 눌러 띠고, 만석당혜(萬石唐鞋)를 좔좔 끌어
48
등자 딛고 선뜻 올라 통인방자 앞을 세우고
50
황학의 날개 같은 쇄금당선(灑錦唐扇) 좌르르 피어
51
일광을 가리우고, 관도성남(官道城南) 너룬 길,
52
호기 있게 나가실 제, 봉황의 나는 티껼
53
광풍 좇아 펄펄 날려, 도화점점 붉은 꽃
54
보보향풍 뚝 떨어져, 쌍옥계번의 네 발굽
66
“요헌기구하최외(瑤軒綺構何崔嵬)는 임고대를 일러있고,
67
자각단루분조요(紫閣丹樓紛照耀)는 광한루가 이름이로구나.
69
오작교가 분명 허면 견우직녀가 없을소냐?
70
견우성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성은 뉘라서 될거나.
71
오날 이곳 화림중에 삼생연분 만나럴 볼까?”
73
“좋다, 좋다! 과연 호남의 제일루라 허것구나.
74
이애, 방자야! 이런 좋은 경치 중에, 술이 없어
75
서야 되겠느냐! 술 한 상 가져오너라!”
76
방자 술상을 드려놓니 도련님이 좋아라고,
77
“구경 나오길 잘했구나. 너희도 한잔씩 받어라.”
79
도련님도 못 자신 약주를 이삼 배 자셔놓니,
84
흰 '백'자 붉을 '홍'은 송이송이 꽃피고,
85
붉을 '단' 푸를 '청'은 고물 고물이 단청이라.
90
물은 보니 은하수요, 산은 보니 옥경이라.
91
옥경이 분명허면 월궁항아(月宮姮娥) 없을소냐!”
93
이렇다시 도련님이 봄 향기에 취해 아련히 한 곳을 바라보니,
95
백백홍홍 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 어떠한 미인이 나온다.
96
해도 같고 달도 같은 어여뿐 미인이 나온다.
97
저와 같은 계집아 다리고 함께 그네를 뛰려 허고,
100
섬섬옥수를 번듯 들어 양 그네줄을 갈라 쥐고
102
한 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듯 높았고,
103
두 번을 툭 구르니 뒤가 점점 솟았네.
104
난만도화 높은 가지 소소리쳐 툭툭 차니,
106
봄바람에 꽃잎은 붉은 눈송이로 떨어진다.
107
그대로 올라가면 요지황모를 만나볼 듯,
108
그대로 멀리가면 월궁항아를 만나볼 듯,
109
입은 것은 비단이나 찬 노리개 알 수 없고,
110
오고간 그 자취 사람은 사람이나 분명한 선녀라.
111
어찌보면 훨씬 멀고 어찌보면 곧 가까워,
117
“이애, 방자야! 이애 방자야! 이리 오너라.
118
이리 와서 저 녹림 숲속에 울긋불긋 오락가락
120
“아니, 도련님. 무얼 보고 말씀이시오? ”
121
“이리 와서 내 부채발로 좀 보아라.”
125
“아, 글쎄 저루대 두 번 분질러도 아무것도 안보이오!”
127
“아, 글씨 자시 아니라 축시로 보아도
129
방자 생각허되 도련님을 놀리는 일도 지나치면
132
이 고을 퇴기 월매 딸 성춘향이라 하옵난디,
133
지몸 본시 도고하와 기생구실 마다 허고,
134
오월 단오일마다 지 몸종 향단이를 데리고
136
“아니, 그게 기생의 딸이란 말이냐?”
138
“그럼 어서 가서 불러오너라. 나와 같이 놀아보자.”
140
“아니, 이놈아! 양반이 기생의 딸 좀 불러놀기로
142
“당치않은 내력을 소인놈이 낱낱이 아뢰옵지요.”
144
“춘향은 제비처럼 맵시있고 피부는 눈같이 희고
145
얼굴은 꽃같이 어여쁜 천하의 미인이요,
152
“이놈아, 네 말을 듣고 보니 기필코 봐야겠구나!
153
천하의 보물에는 임자가 각각 있는 법이니라.
156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157
궁구러지고 맵씨 있고 태도 고운 저 방자,
158
쇠수 없고 발랑거리고 우멍시런 저 방자.
160
새털벙치 궁초 갓끈 맵씨 있게 달아 쓰고,
162
한 발 여기 놓고 또 한 발 저기 놓고
168
춘향 추천허는 곳에 바드드드드 달려들어
173
“아이고 야야. 하마트면 낙상할 뻔 했다.”
174
“허허, 시집도 안 간 가시네가 낙태했다네.”
176
“아니 녀석아! 언제 우리 아씨가 낙태라 하셨드냐,
178
“그래, 그건 잠시 농담이고, 그간 밥 잘 먹고
179
잘들 있더냐? 그런디 딱헌 일이 있어 왔네.
180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 구경 나오셨다가
181
자네들 그네 타는 거동을 보고 불러오라 하셨으니,
184
“아니,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185
부르신단 말이냐? 늬가 도령님 턱밑에 앉어서
187
종조리새 연씨 까듯 조랑조랑 까받쳤구나?”
188
“허허, 제 행실 그른 줄 모르고 나보고 일러바쳤다고?”
190
“자네 그른 내력을 내 이를테니 똑똑이 들어보소이.”
194
계집아의 행실로, 여봐라 추천을 헐냥이면은
196
남이 알까 모를까 허여 은근히 뛸 것이지.
197
또한 이곳을 말하자면, 광한루 머잖은디
200
봄바람에 흔들흔들 너울너울 춤을 출 제,
201
외씨 같은 네 발 맵씨는 구름 새로 해뜩,
202
홍상자락은 펄렁, 잇속은 해뜩, 선웃음 빵긋,
207
“이 애가 점점 더 미치는구나. 내 아무리 미천허나
208
기생 이름 올린 적 없고, 여염집 아이로서 초면남자
209
전갈 듣고 따라가기 만무허니, 너나 어서 건너 가거라.”
212
“니가 만일 아니 가고 보면, 너의 노모를 잡어다가
215
얼게미 채궁기 진가리 새듯 아조 살살 샐 터니,
216
올테거든 오고 말템 마라. 떨떨거리고 나는 간다.”
218
그때여 춘향이 얼굴을 들어 누각을 살펴보니
219
늠름하게 서있는 도련님이 군자의 거동이요,
220
맑은 기운이 사람에게 쏘이시니 열사의 기상이라.
222
“얘, 방자야! 글쎄, 여자의 염치로 차마 못가겠다.
223
너 도령님전 건너가서, 안수해(雁隨海)
224
접수화(蝶隨花) 해수혈(蟹隨穴)이라 이 말만 여쭤라.”
225
방자 충충 돌아오니 도련님이 화를 내며,
226
“네 이놈. 춘향을 다리고 오랬지, 쫓고 오라더냐?”
227
“쳇, 쫓기는 누가 쫓아요? 아무리 가자 해도
228
종시 듣지 않고 도련님전 욕만 잔뜩 허옵디다.”
230
“뭐라더라, 아. 안주 해서 접시에 받쳐 먹고,
231
뭐라더라, 헤, 해숫병에나 걸리라던가?”
232
“안주해.. 접시..해수.. 이애, 방자야! 혹시,
233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 하지 않드냐?”
235
“이놈아, 그게 욕이 아니다.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236
나비는 꽃을 따르니 날 더러 찾아오라는 말이다.
237
이얘 방자야! 춘향집이 어딨는지 춘향집 좀 일러다오.”
238
방자 좋아라고 썩 나서며 손을 들어 춘향집을 가르키는디
240
“저 건너 저어 건너 춘향집 보이난디,
241
생김새는 평범하나, 점점 찾어 들어가면
243
나무, 나무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헌다
246
문앞의 실버들 가지는 제멋대로 늘어지고.
247
들총, 측백, 전나무는 이휘칭칭 얼크러져서
251
정자 대숲 두 사이로 은근히 보이난 것이
256
송죽이 우거지니 절개 있음이 분명코나.”
262
“맹자견(孟子見) 양혜왕(梁惠王) 허신디,
263
왕왈 수불원천리이래(叟不遠千里而來)허시니,
264
역장유이리오국호( 亦將有以利吾國乎)릿까?
265
이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들여라.”
267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허며
268
재신민(在新民)허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269
남창은 고군(孤軍)이오, 홍도는 신부(新府)로다.
270
홍도 어찌 신부되리. 우리 춘향이 신부 되지.
271
이 글도 못 읽겠다. 주역을 들여라.”
273
“건(乾)은 원(元)코 형(亨)코 이(利)코 정(貞)코
274
춘향 코 내 코 한데 대면 좋코 좋코.”
277
“이 자식아 듣기 싫다. 사략을 읽어보자.”
279
“태고라 천황씨는 쑥떡으로 왕 허시다(以木德王).”
281
“다섯 가지 덕, 목덕으로 왕 허신다는 말은 들었어도,
282
쑥덕으로 왕 헌다는 말은 난생 처음이요.”
283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천황씨는 이가 단단하여
284
나무 떡을 자셨거니와 오늘날 선비야 어찌 딱딱한
285
목떡을 자실 수 있겠느냐? 그러기에 공자님께서
286
후세를 위해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바꾸라고 꿈에
287
나타나 이르셨느니라. 이 글도 못 읽겠다.
288
천자를 들여라. 하늘 천, 따 지 ,가말 현 ,누르 황.”
290
“아니, 우리 도련님은 공부를 거꾸로 하시오?
292
“이놈아, 네가 무식하도다. 천자라 허는 것은
293
사서삼경 칠서의 조상이요, 천지 만물의 이치가
295
도련님이 천자 뒤풀이를 하시는데 또한 건너 뛰것다.
297
“자시의 생천허니 불언행사시 유유창창 하늘‘천(天)’,
298
축시의 생지허여 금목수화토를 맡아 양생만물 따‘지(地)’,
299
이 해가 왜 이리 더디진고 일중지책의 기울‘책(昃)’,
300
남원 와서 오늘 처음 보았네, 광한루의 찰‘한(寒)’,
301
베개가 높거든 내 팔을 베려 이만큼 오너라, 올 래(來)’,
302
언제 만날 기약 없이 춘향 혼자만 갈 ‘왕(往)’,
303
어서 보고 싶어 일각이 삼추라 가을 ‘추(秋)’,
304
백발이 장차 오게 되면 소년 모습 거둘 ‘수(收)’,
305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 감출 ‘장(藏)’,
306
해는 어이 이리 불어늘어 터진고 ? 불 윤(潤)’,
307
저러한 고운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餘)’,
308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 만사 이룰 ‘성(成)’,
309
우리가 이리저리 노니다 부지 세월의 해 ‘세(歲)’,
310
조강지처는 박대 못 허느니 대전통편의 법중 ‘율(律)’,
311
춘향과 날과 단둘이 앉어 입을 마주 대고
314
“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 춘향 보고지고
315
추천하든 그 맵시를 어서어서 보고지고!”
321
“책실에서 무슨 소리가 그리 요란하느냐?
322
어느 놈이 생침을 맞느냐? 어서 사실을 아뢰어라!”
324
“쉬잇, 도련님은 뭣을 그리 보고 소리를 지르셨기에
325
사또 들으시고 놀래시여 알어 오라 야단이 났소!”
326
“이얘, 큰일났구나! 이런 때는 거짓말이 약이니라.
327
내가 논어를 읽다 차호오소야(嗟乎吾衰也)
328
몽불견주공(夢不見周公)이라는 대문을 보다
332
사또 들으시고 몽룡이가 공부하는데 취미를 꼭
333
붙인 듯 싶어 책실을 불러 자랑이 낭자한 끝에,
336
“예, 용에서 용 나고, 봉에서 봉 나옵니다.”
337
하며 맞장구로 받고, 둘이 한참을 수작터라.
338
시간은 흐르게 마련, 이윽고 때가 되니
342
퇴령소리 길게 나니 도련님이 좋아라고,
345
“청사초롱 불 밝혀들어라. 춘향집을 어서 가자.”
347
“좁은 길 넓은 길을 구름 사이로 달빛이 희롱허고,
348
푸른버들 사이사이 꽃 빛 넘쳐, 경치도 장히 좋다.”
349
춘향집을 당도허니 우편은 청송이요, 좌편은 녹죽이라.
350
뜰 지키는 백두룸은 사람 자취에 일어나서
352
뚜뚜루루루 낄룩 징검 징검, 알연성이 거이허구나.
354
이렇듯 춘향 문전을 당도허여 서성거릴제,
355
문전의 청삽사리 컹컹 짖고 쫓아 나오니
356
건넌방 춘향모가 개를 쫓으면 나오는구나.
357
“저 개야 짖지마라. 공산에 잠긴 달 보고 짖느냐?”
359
“달도 밝고 달도 밝다. 휘영청 달도 밝다.
360
원수 년의 달도 밝고, 내 당년의 달도 밝다.
361
나도 젊어 이르기를 ‘월매, 월매’ 찾더니,
362
세월이 물처럼 흘러 춘안노골 다 늙었다.
365
방자 쉬잇 하고 달려드니 춘향모 깜짝 놀래
368
“아니, 네 이놈. 아닌 밤중에 내 집에 웬 일이냐?”
370
“아이고 이 자식아, 진즉 말을 헐 것이지!”
372
“귀중허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시기는 천만
373
의외올시다. 어서 안으로 들어 가시지요.”
374
도련님을 윗자리로 모시니, 도련님은 숫된 양반이라
376
방치레가 수수하나, 뜻있는 글과 그림이 걸렸구나.
379
위수 강에 낙수질 허는 강태공이 걸려있고
381
바돌 두는 상산사호 네 노인이 걸려있다.
383
관우, 장비, 양장수가 큰활에 쇠화살 먹여
384
나는 기러기 절컥 맞쳐 떨어뜨리는 거동이요,
386
비 개고 달 오른 동정호에서 흰옷 입은
387
두 여인이 스리렁 둥덩 현금 타는 거동이라.
397
도련님이 이렇듯 속으로 치하하고 계실적에,
404
오늘 일기 화창하야 광한루 구경 나갔다가
409
“말씀은 감격하오나, 나의 말을 듣조시오.”
411
“회동 성참판 영감께옵서 남원 부사로 오셨을 때,
412
일등 명기 다 버리고 나를 수청케 하옵기에
413
그 사또 뫼신 후에 저 애를 아니 낳소?
416
그 댁 운수 불길허여 영감께서 돌아가신 후
421
상하불급 혼연이 늦어가와, 주야 걱정은 되오나,
422
도련님은 사대부라 탐화봉접(探花蜂蝶)으로
423
잠깐 보고 바리시면 두 목심 사생이 가련허니
424
그러헌 말씀 마옵시고 잠깐 노시다나 가옵소서.”
427
“장부일언중천금이요, 불충불효 허기 전에는
428
잊지 않을 것이니 어서 허락허여 주소.”
429
춘향모 간밤에 몽조가 있어 용꿈을 꾸었는지라,
430
이것이 또한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 생각하고,
432
“도련님, 분부가 정녕 그리하옵시면 육례는 못이루나
433
사주단지 혼서지 겸하여 증서나 한 장 써 주시지요!”
434
필연을 내어놓니, 도련님이 일필휘지 하야,
435
“천장지구(天長地久)에 해고석난(海枯石欄)이요,
436
천지신명(天地神明)은 공증차맹(共證此盟)이라.
437
이몽룡 필서. 자, 이만허면 되였제?”
438
춘향모 그 증서를 품 안에 간직허고 술 한잔씩 나눴것다.
439
알심있고 눈치 밝은 춘향모가 그 자리에 오래 머물고 있겠느냐?
440
향단이 시켜 자리 보전한 연후어, 건너방으로 건너 갔것다.
441
춘향과 도령님이 단둘이 앉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될 일이냐?
442
그날 밤 정담이야말로 서불진혜(書不盡兮)요, 언불진혜(言不盡兮)라
443
글로도 다 못하고 말로도 다 할 수 없구나.
444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오륙 일이 넘어가니,
445
나이 어린 사람들이 부끄럼은 훨씬 멀리 가고
446
정만 담뿍 들어, 하루는 서로 안고 딩글며
449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452
단산 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 속을 넘노난듯,
453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을 넘노난듯,
454
구곡 청학이 난초를 물고 송백간의 넘노난 듯,
457
목단무변수여천(目斷無邊水如天)에 창해같이 깊은 사랑,
458
삼오 신정 달 밝은 밤, 무산천봉 완월(玩月)사랑,
459
생전 사랑이 이러허니 사후 기약이 없을소냐?
460
너는 죽어 꽃이 되되, 벽도홍 삼춘화가 되고,
461
나도 죽어 범나비 되야, 춘삼월 호시절에
462
늬 꽃송이를 내 덤쑥 안고 너울 너울 춤추게 되면
464
“화로허면 접불래라. 나비 새 꽃 찾아가니,
466
“그러면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종루 인경이 되고,
468
밤이면 이십 팔 수, 낮이면 삼삽삼천 그져 댕 치거드면
473
따‘지’, 따‘곤’, 그늘‘음’, 아내 ‘처’, 계집‘녀’자 글자가 되고,
475
하늘천(川),하늘 건(乾),날 일(日),볕양(陽),지아비 부(夫), 기특 기(奇), 사나이 남(男), 아들 자(子)짜 글자가 되어
479
“아이고 도련님. 오늘같이 이렇게 즐거운 날
481
“오 그럼, 우리 정담도 허고 업고도 한번 놀아보자.”
482
도련님이 춘향을 업고 한번 놀아 보는디,
500
당동지 지루지허니 외가지 단참외 먹으려느냐?
501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 도령 스는디 먹으랴느냐?
504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를 보자.
511
나는 도련님을 무거워서 어찌 업어요?”
512
“얘야. 내가 널다려 날 무겁게야 업어 달라더냐?
513
내 양팔만 네 어깨우에 얹고 징검징검 걸어다니면
518
“둥둥둥 내 낭군, 오호 둥둥 내 낭군.
519
도령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자가 절로나.
520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시고.
521
소상동정칠백리 일생 보아도 좋을 ‘호’로고나.
524
“이애, 춘향아, 말 들어라. 너와 나와 유정(有情)허니
526
담담장강수(淡淡長江水) 유유원객정(悠悠遠客情)
527
하교불상송(河橋不相頌)허니 강수원함정(江樹遠含情)
531
삼태육경(三台六卿)의 백관조정(百官朝庭)
532
주어 인정 복 없어 저 방정, 일정 실정을 논정하면
533
네 마음 일편단정 내 마음 원형이정(元亨利貞)
534
양인심정이 탁정타가 만일 파정이 되거드면
535
복통절정 걱정 되니 진정으로 완정 허자는
540
호사다마라, 뜻밖에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하야
543
하릴없이 춘향 집으로 이별차로 나가시는디,
550
두고갈까, 다려갈까 하서리히 울어볼까.
551
저를 다려 가자허니 부모님이 꾸중이요,
553
그 마음 그 처사에 응당 자결을 헐 것이니,
555
길 걷는 줄을 모르고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562
문에 들면 기침소리, 오시는 줄 알겄더니
563
오늘은 누구를 놀래시랴고 가만가만히 오시니까?”
564
그때여 춘향모친 도련님 드리랴고 밤참을 장만허다
565
도령님을 얼른 보고 손벽치고 일어서며,
568
밤마다 보건마는 낮에 못 보아 한이로세.
570
내가 꼭 정허제. 한 분되니 헐 수 없네.”
571
도령님 아무 대답없이 방문 열고 들어서니,
574
쌍긋 웃고 일어서며 옥수 잡고 허는 말이,
576
편지 일 장 없었으니 방자가 병들었오?
577
어데서 손님왔오? 발서 괴로워 이러시오?
579
누가 내집에 다니신다 해담을 들으셨오?
581
뒤로 돌아가 겨드랑이에 손을 대고 꼭꼭꼭
584
춘향이가 무색허여 뒤로 물러나 앉으며,
585
“내 몰랐오, 내 몰랐오, 도련님 속 내 몰랐오.
586
도련님은 양반이요, 춘향 저는 천인이라,
589
속 모르는 이 계집은 늦게 오네, 편지 없네,
590
짝사랑 외즐거움이 오직 보기가 싫었것소.
591
듣기 싫어 하는 말은 더 허여도 쓸 데가 없고,
592
보기 싫어 허는 얼굴 더 보아도 병 되느니,
597
네가 미리 속을 찌르기로 내가 미쳐 말을 못 허였다.
600
“속 모르면 말 말라니 그 속이 참 속이오,
604
“이애, 춘향아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허여
606
“아이고, 도련님 댁에는 경사났오 그려.”
608
“올체 인제 내 알았오, 올체, 인제 내 알았소!
609
도련님 한양을 가시면 내 아니갈까 염려시오?
615
미장전에 외방출입 허였단말 원근에 낭자하면,
616
사당참례도 못 허고, 과거 한 장도 못보고,
622
춘향이가 훗기약 말을 듣더니 그 어여쁜 얼굴이
623
붉으락 푸르락 붉어지면, 이별 초두를 내는디,
626
“여보시오 도련님, 여보 여보 도련님!
627
지금 허신 그 말씀이 참말이요, 농담이요?
628
이별 말이 웬말이요? 답답허니 말을 허오.
629
작년 오월 단오야의 소녀집을 나와겨셔,
630
도령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어
632
천지(天地)로 맹세허고 일월(日月)로 증인을 삼어,
633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635
말경(末境)의 가실 때는 뚝 떼여 바리시면
636
이팔청춘 젊은 년이 독수공방 어이 살으라고,
637
못허지 못해요, 공연한 사람을 사자 사자
638
조르더니 평생신세를 망치네 그려. 향단아!”
641
도련님이 떠나 가신단다. 사생결단을 헐란다.
644
그 때에 춘향 모친은 이런 속 하나 모르고
645
춘향 방에서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리거날,
646
“아이고 저것들이 벌써 사랑싸움 허네 그려.”
647
울음이 장차 길어지니 춘향 모친이 화김에
650
춘향 모친이 나온다. 춘향 어머니 나온다.
654
귀를 대고 들으니 정녕한 이별이로구나.
657
“허허 별일났네. 우리집에가 별일 나.
658
한 초상도 어려울제 세 초상이 원말이냐?”
659
쌍창문을 번쩍 열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662
내가 일상 말하기를 무엇이라고 이르더냐?
663
후회 되기 쉽것기로 태과 헌 맘 먹지 말고
665
인물도 너와 같은, 봉황 같은 짝을 지어
666
내 눈 앞에 노는 양을 내 생전에 두고 보면
668
마음이 너무 도도하야 남과 별로 다르더니
671
“여보시오 도령님, 나하고 말 좀 허여 보세.
672
내 딸 어린 춘향이를 버리고 간다 허니
675
어느 무엇 그르기로 이 봉변을 주랴시오?
676
군자 숙녀 버리난 법, 칠거지악을 범찮으면
677
버리난 법 없난 줄을 도련님은 모르시오?
678
내 딸 춘향 임그릴 제, 월정명 야삼경
682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날과 같이 그립든가?
683
뉘년의 꼬염을 듣고 여영 이별이 되려나?
684
아주 잊고 여영 잊어 일장 수서가 돈절 허여
685
긴 한숨 피 눈물은 창 끊는 애원이라.
686
외로이 벼개 우에 벽만 안고 돌아누워,
690
내내 고치던 못 허고 원통히 죽게 되면,
691
혈혈단신 이 내 몸이 뉘를 의지허오리까?
692
이왕에 가실테면, 춘향이도 죽이고 나도 죽이고,
693
향단이까지 마자 죽여, 삼 식구 모두 죽여
694
땅에 묻고 가면 갔지 살려 두고는 못 가리다.
695
양반의 자세허고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오?
698
“여보, 장모, 장모! 춘향이만 데려 가면 그만 아닌가?
699
내일 요여 배행 시에 신주는 내서 내 도포 소매 안에
700
모시고, 춘향이를 요여 안에다 태우고 가면,
701
누가 신주 모셨다 하제 춘향이 태우고 간다 헐라던가?”
704
“아이고 어머니, 도련님 너무 조르지 마오.
705
양반의 체면으로 오죽 답답허고 민망허여
708
이왕에 이리 된 일, 도련님과 단둘이 앉아
709
울음이나 실컷 울고, 내일 이별 헐라요.”
712
“못 허지야, 못 허지야. 네 마음 대로는 못허지야.
713
저 양반 가신 후로 뉘 간장을 녹이려느냐?
714
보내여도 곽을 짓고 따라가도 따라가거라.
715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너의 서방을 따라가거라.
716
나는 모른다. 너이 둘이 죽던지 살던지
719
춘향어멈 건너간 후어, 도련님 춘향이 단둘이 앉아
722
“아이고, 여보 도련님. 참으로 가실라요?
723
나를 어쩌고 가실라요? 도련님은 올라가면
724
명문귀족 재상가의 요조숙녀 정실 맺고,
727
천리남원 천첩이야 요만큼이나 생각허리.
728
이제 가면 언제 와요? 올 날이나 일러주오.
729
높은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실랴오?
733
용 가는 디 구름 가고, 범 가는 디는 바람이 가니,
734
금일송군 임 가신 곳 백년소첩 나도 가지.”
736
“오냐, 춘향아 우지마라. 오나라 정부라도
737
각분동서 임 그리워 규중심처 늙어 있고,
738
공류한강천리원정(共問漢江千里外) 관산월야 높은 절행
739
추월강산이 적막헌디, 연을 캐며 상사허고
740
너와 나와 깊은 언약 상봉 헐 날이 있을테니,
741
쇠끝 같이 굳은 마음 홍로라도 녹지를 말고,
742
송죽같이 굳은 절개, 늬가 날 오기만 기둘려라.”
743
둘이 서로 꼭 붙들고 떨어질줄을 모르는구나.
745
그 때여 춘향이가 저의 집 담장 안에서 도련님과
748
와상 우어 자리럴 피고 술상 채려 내어 놓며,
749
“아이고, 여보 도련님. 이왕으 가실테면
751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권군갱진일배주 허니,
752
권할 사람 뉘 있으며, 위로 헐 이 뉘 있으리.
753
이 술 한잔을 들으시고 한양을 가시다가
755
마상에 뇌곤허여 병이 날까 염려 허오니,
756
행장을 수습허여 부디 평안히 행차를 허오.”
759
너와 나와 만날 때는 합환주를 먹었거니와,
768
이런 이별 있건마는 너와 나와 당한 이별,
769
상봉헐 날이 있을테니 설워말고 잘 있거라.”
770
도령님이 염낭을 만져 추월 같은 대모석경
776
저 쪘던 옥지환을 바드드드득 벗어 내어
779
여자의 굳은 절행 지환 빛과 같사오니,
780
옛터에다 묻어둔들 변할 리가 있소리까?”
781
둘이 서로 받아 넣더니만은, 퍼버리고 울음을
782
우는 모양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네.
788
따랑 따랑 따랑 따랑, 춘향 문전 당도허여,
789
“어허, 도령님 큰일났오! 내 행차 떠나려고
790
도련님을 찾삽기로 먼저 떠났다 아뢰옵고 왔아오니,
792
이별이라 허는 것 너 잘 있거라, 나 잘 간다,
794
웬놈의 이별을 뼈가 녹두록 헌단 말이요.
797
도련님, 하릴없이 나귀 등에 올란즈며,
799
장모도 평안히, 향단이도 잘 있거라.”
800
춘향이 거동 보소, 우루루루 달려들어,
802
또 한 손으로 등자 딛인 도련님 다리 잡고,
803
“아이고, 도련님,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805
쌍교도 싫고, 독교도 나는 싫소. 걷는 말끔
806
반부담 지어서 워리렁 추렁청 날 다려가오.”
807
말은 가자 네 굽을 치는데 임은 꼭 붙들고 아니 놓네.
810
비호같이 가는 말이 청산녹수 얼른 얼른
812
춘향이 기가 막혀 가는 임을 우두머니 바라보니,
815
십오야 둥근 달이 떼구름 속에 잠긴 듯이
818
“아이고 허망허네. 가네 가네 허시더니
821
이렇다시 도령님은 서울로 떠나고, 춘향이 하릴없이
822
향단으게 붙들리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디,
824
향단으게 붙들리어 자던 침방 들어가니,
825
만사가 정황이 없고 촉목상심 허든구나.
826
“여보아라, 향단아, 발 걷고 문닫쳐라.
829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 보이난 님은
831
답답이 그럴진대 꿈 아니면은 어히 허리.
832
이별‘별’자 내든 사람 날과 백년 원수로구나.
833
이별‘별’자 내셨거든, 뜻‘정’자 내지를 말거나,
834
뜻‘정(情)’자 내셨거든, 만날‘봉’자 없었거나,
843
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식불감미 밥 못먹고, 침불안석 잠 못 자니
845
앉어 생각, 누워 생각, 생각 그칠 날이 전히 없어,
846
모진 간장 불이 탄들 어느 물로 이 불을 끄리.”
847
이리 앉어 울음을 울며 세월을 보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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