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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삼 춘향가(春香歌) ◈
◇ 전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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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향가(알심) - 구나새 창본
 
2
◈ 전반부 ◈
 
 
 

1장. 만남의 장

 
4
〈아니리〉
5
숙종 임금 시절, 남원 고을에 사또 자제 도련님 한 분이 계시되,
6
나이는 십 육 세요, 인물 좋고 재주있고 슬기로우니 보기드문 기남자라.
7
하루는 일기 화창하야 도련님이 방자 불러 물으시되
 
8
“얘, 방자야! 내가 너의 고을 내려 온지
9
수 삼삭이 되었으나 볼만한 경치를 모르니,
10
그 어디 어디가 좋으냐?”
 
11
“황송하오나 공부하신 도련님이
12
승지는 찾아 뭣 하실라요? ”
 
13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호걸들이
14
승지강산을 구경허고 대문장이 되었으니라.
15
승지라 하는 것이 도처마다 글귀로다.
16
내 이를께 들어 보아라.”
 
17
〈중중모리〉
18
“기산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
19
채석강 명월야에 이적선도 놀아 있고
20
적벽강 추야월의 소동파도 놀고,
21
시상리 오류촌 도연명도 놀아 있고,
22
상산의 바돌 뒤던 사호 선생이 놀았으니,
23
내 또한 호협사라. 동원도리 편시춘.
24
아니 놀고 무엇허리. 잔말말고 일러라.”
 
25
〈아니리〉
26
“도련님 분부가 그리 허옵시니 대강만 아뢰옵지요.
27
동문 밖 나가오면 충렬 제일 관왕묘가 좋사옵고,
28
서문 밖 나가오면 금수청풍 신원사가 좋사옵고,
29
북문 밖 나가오면 교룡산성 대복암이 좋사옵고,
30
남문 밖을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삼남 제일루로소이다.”
 
31
“거 네 말을 들어보니, 광한루가 좋을 듯 허구나.
32
나귀 안장 지어라. 광한루 구경 가자”
 
33
“예이!”
 
34
〈자진모리〉
35
방자 분부 듣고 갖은 안장을 짓는다.
36
홍영자공(紅纓紫鞏), 산호편(珊瑚鞭),
37
옥안금천(玉鞍錦薦), 황금륵(黃金勒),
38
청홍사(靑紅絲) 고운 굴레, 상모(象毛) 물려 덥벅 달아
39
앞뒤 걸쳐 질끈 매, 칭칭 다래 은엽등자(銀葉登子)
40
호피 돋움 태가난다. 모탄자(帽綻子) 걸쳐덮어
41
제질 툭쳐 돌려세워 말대령하였소.
42
도련님 호사헐 제, 옥골선풍(玉骨仙風) 고운 얼굴
43
분세수(粉洗手) 정히 허고, 감태 같은 채진 머리
44
동백기름 광을 올려 갑사(甲紗) 댕기 드렸네.
45
쌍문초(雙紋縮) 진동옷 청중추막(靑中赤莫)을 받쳐
46
분홍띠 눌러 띠고, 만석당혜(萬石唐鞋)를 좔좔 끌어
47
‘방자 나귀를 붙들어라.’
48
등자 딛고 선뜻 올라 통인방자 앞을 세우고
49
남문 밖 나가실 제,
50
황학의 날개 같은 쇄금당선(灑錦唐扇) 좌르르 피어
51
일광을 가리우고, 관도성남(官道城南) 너룬 길,
52
호기 있게 나가실 제, 봉황의 나는 티껼
53
광풍 좇아 펄펄 날려, 도화점점 붉은 꽃
54
보보향풍 뚝 떨어져, 쌍옥계번의 네 발굽
55
걸음걸음 이는 생향(生香)이라.
56
일단선풍 도화색(一團旋風 桃花色)
57
위절도 적표마가 이에서 더하오며,
58
항장수 오추마가 이에서 더할소냐?
59
서부렁 섭적 걸어 광한루 당도허니.
 
60
〈아니리〉
61
도련님이 광한루 위에 올라서서
62
사면 경치를 바라보실제
 
63
〈진양조〉
64
적성의 아침날에 늦은 안개 띄어있고,
65
녹수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 둘렀난디,
 
66
“요헌기구하최외(瑤軒綺構何崔嵬)는 임고대를 일러있고,
67
자각단루분조요(紫閣丹樓紛照耀)는 광한루가 이름이로구나.
68
광한루도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69
오작교가 분명 허면 견우직녀가 없을소냐?
70
견우성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성은 뉘라서 될거나.
71
오날 이곳 화림중에 삼생연분 만나럴 볼까?”
 
72
〈아니리〉
73
“좋다, 좋다! 과연 호남의 제일루라 허것구나.
74
이애, 방자야! 이런 좋은 경치 중에, 술이 없어
75
서야 되겠느냐! 술 한 상 가져오너라!”
 
76
방자 술상을 드려놓니 도련님이 좋아라고,
 
77
“구경 나오길 잘했구나. 너희도 한잔씩 받어라.”
 
78
따라온 사령도 마시고 방자도 마시고,
79
도련님도 못 자신 약주를 이삼 배 자셔놓니,
80
취흥이 도도하야,
 
81
〈중중모리〉
82
앉았다 일어나 두루두루 살핀다.
 
83
“앞으로난 영주각 뒤로는 무릉도원,
84
흰 '백'자 붉을 '홍'은 송이송이 꽃피고,
85
붉을 '단' 푸를 '청'은 고물 고물이 단청이라.
86
유막황앵환우성(柳幕黃鶯喚友聲)은
87
꾀꼬리 벗 부르는 소리요,
88
황봉백접쌍쌍비(黃蜂白蝶雙雙舞)는
89
벌나비 향기 찾는 거동이라.
90
물은 보니 은하수요, 산은 보니 옥경이라.
91
옥경이 분명허면 월궁항아(月宮姮娥) 없을소냐!”
 
92
〈아니리〉
93
이렇다시 도련님이 봄 향기에 취해 아련히 한 곳을 바라보니,
 
94
〈자진중중모리〉
95
백백홍홍 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 어떠한 미인이 나온다.
96
해도 같고 달도 같은 어여뿐 미인이 나온다.
97
저와 같은 계집아 다리고 함께 그네를 뛰려 허고,
98
녹림 숲속을 당도하야 장장채승 그네줄
99
휘늘어진 백도 가지 이휘칭칭 잡어매고,
100
섬섬옥수를 번듯 들어 양 그네줄을 갈라 쥐고
101
선뜻 올라 발구를 제,
102
한 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듯 높았고,
103
두 번을 툭 구르니 뒤가 점점 솟았네.
104
난만도화 높은 가지 소소리쳐 툭툭 차니,
105
춘풍취화낙홍설(春風吹花落紅雪)
106
봄바람에 꽃잎은 붉은 눈송이로 떨어진다.
107
그대로 올라가면 요지황모를 만나볼 듯,
108
그대로 멀리가면 월궁항아를 만나볼 듯,
109
입은 것은 비단이나 찬 노리개 알 수 없고,
110
오고간 그 자취 사람은 사람이나 분명한 선녀라.
111
어찌보면 훨씬 멀고 어찌보면 곧 가까워,
112
들어갔다 나오는 양
113
연축비화낙무연(燕蹴飛花落舞筵),
114
제비가 차올린 꽃은 춤추며 내려앉는다
115
도련님 심사가 산란하야
 
116
〈아니리〉
117
“이애, 방자야! 이애 방자야! 이리 오너라.
118
이리 와서 저 녹림 숲속에 울긋불긋 오락가락
119
하는 게 저게 무엇인지 좀 보아라”
 
120
“아니, 도련님. 무얼 보고 말씀이시오? ”
 
121
“이리 와서 내 부채발로 좀 보아라.”
 
122
“부채발 아니라, 미륵님 발로 보아도
123
소인놈 눈에는 아무것도 안보이요.”
 
124
“아 이놈아! 톡톡히 좀 보아라.”
 
125
“아, 글쎄 저루대 두 번 분질러도 아무것도 안보이오!”
 
126
“아, 이놈아! 자세히 좀 보아!”
 
127
“아, 글씨 자시 아니라 축시로 보아도
128
소인놈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오.”
 
129
방자 생각허되 도련님을 놀리는 일도 지나치면
130
뒤끝이 좋지 않을지라 그쯤하고,
 
131
“예이! 그게 다름이 아니오라,
132
이 고을 퇴기 월매 딸 성춘향이라 하옵난디,
133
지몸 본시 도고하와 기생구실 마다 허고,
134
오월 단오일마다 지 몸종 향단이를 데리고
135
나와 그네 타는 거동이로소이다.”
 
136
“아니, 그게 기생의 딸이란 말이냐?”
 
137
“예이”
 
138
“그럼 어서 가서 불러오너라. 나와 같이 놀아보자.”
 
139
“웬, 당치않는 말씀이시오.”
 
140
“아니, 이놈아! 양반이 기생의 딸 좀 불러놀기로
141
무엇이 당치 않단 말이냐?”
 
142
“당치않은 내력을 소인놈이 낱낱이 아뢰옵지요.”
 
143
〈자진모리〉
144
“춘향은 제비처럼 맵시있고 피부는 눈같이 희고
145
얼굴은 꽃같이 어여쁜 천하의 미인이요,
146
이백과 두보의 문장을 갖추었으며,
147
따듯한 마음과 정절을 품어 있어
148
만고 여자 중의 여군자(女君子)이옵고
149
어미는 기생이나 근본이 양반이라
150
오라 가라 하기 어렵습니다.”
 
151
〈아니리〉
152
“이놈아, 네 말을 듣고 보니 기필코 봐야겠구나!
153
천하의 보물에는 임자가 각각 있는 법이니라.
154
잔말 말고 불러 오너라.”
 
155
〈중중모리〉
156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157
궁구러지고 맵씨 있고 태도 고운 저 방자,
158
쇠수 없고 발랑거리고 우멍시런 저 방자.
159
말 잘허고 눈치있고 영리한 저 방자,
160
새털벙치 궁초 갓끈 맵씨 있게 달아 쓰고,
161
청창의 앞자락을 뒤로 잦처 잡어매,
162
한 발 여기 놓고 또 한 발 저기 놓고
163
충 충 충충거리고 건너간다.
164
조약돌 덥석 집어 버들에 앉은 꾀꼬리
165
툭 쳐, 휘여어 날려보고,
166
장송가지 툭 꺽어 죽장 삼어서
167
좌르르르르 끌어 이리저리 건너가,
168
춘향 추천허는 곳에 바드드드드 달려들어
169
춘향을 부르되 건혼이 뜨게,
 
170
“아나 였다, 춘향아!”
 
171
〈아니리〉
172
춘향이 깜짝 놀래 그네 아래 내려서며
 
173
“아이고 야야. 하마트면 낙상할 뻔 했다.”
 
174
“허허, 시집도 안 간 가시네가 낙태했다네.”
 
175
향단이 툭 나서더니,
 
176
“아니 녀석아! 언제 우리 아씨가 낙태라 하셨드냐,
177
낙상이라고 했제?”
 
178
“그래, 그건 잠시 농담이고, 그간 밥 잘 먹고
179
잘들 있더냐? 그런디 딱헌 일이 있어 왔네.
180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 구경 나오셨다가
181
자네들 그네 타는 거동을 보고 불러오라 하셨으니,
182
나와 같이 건너가세.”
 
183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
 
184
“아니,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185
부르신단 말이냐? 늬가 도령님 턱밑에 앉어서
186
춘향이니 난향이니 기생이니 비생이니
187
종조리새 연씨 까듯 조랑조랑 까받쳤구나?”
 
188
“허허, 제 행실 그른 줄 모르고 나보고 일러바쳤다고?”
 
189
“내 행실이 뭐가 그르단 말이냐?”
 
190
“자네 그른 내력을 내 이를테니 똑똑이 들어보소이.”
 
191
〈중중머리〉
192
“늬 그른 내력을 늬 들어라.
193
늬 그른 내력을 늬 들어 보아라.
194
계집아의 행실로, 여봐라 추천을 헐냥이면은
195
너의 집 후원에 그네를 매고,
196
남이 알까 모를까 허여 은근히 뛸 것이지.
197
또한 이곳을 말하자면, 광한루 머잖은디
198
녹음 우거지고 방초는 푸르러,
199
앞내 뒷내 버들은 찢어지고 늘어져,
200
봄바람에 흔들흔들 너울너울 춤을 출 제,
201
외씨 같은 네 발 맵씨는 구름 새로 해뜩,
202
홍상자락은 펄렁, 잇속은 해뜩, 선웃음 빵긋,
203
도련님이 너를 보시고 불렀제.
204
내가 무슨 말을 허였단 말이냐?
205
잔말 말고 건너 가세.”
 
206
〈아니리〉
207
“이 애가 점점 더 미치는구나. 내 아무리 미천허나
208
기생 이름 올린 적 없고, 여염집 아이로서 초면남자
209
전갈 듣고 따라가기 만무허니, 너나 어서 건너 가거라.”
 
210
방자가 을러대기를
 
211
〈중중모리〉
212
“니가 만일 아니 가고 보면, 너의 노모를 잡어다가
213
난장형문(亂杖刑問)에 주릿대 방맹이,
214
굵은뼈 부러지고 잔뼈 으스러져,
215
얼게미 채궁기 진가리 새듯 아조 살살 샐 터니,
216
올테거든 오고 말템 마라. 떨떨거리고 나는 간다.”
 
217
〈아니리〉
218
그때여 춘향이 얼굴을 들어 누각을 살펴보니
219
늠름하게 서있는 도련님이 군자의 거동이요,
220
맑은 기운이 사람에게 쏘이시니 열사의 기상이라.
221
방자를 다시 불러,
 
222
“얘, 방자야! 글쎄, 여자의 염치로 차마 못가겠다.
223
너 도령님전 건너가서, 안수해(雁隨海)
224
접수화(蝶隨花) 해수혈(蟹隨穴)이라 이 말만 여쭤라.”
 
225
방자 충충 돌아오니 도련님이 화를 내며,
 
226
“네 이놈. 춘향을 다리고 오랬지, 쫓고 오라더냐?”
 
227
“쳇, 쫓기는 누가 쫓아요? 아무리 가자 해도
228
종시 듣지 않고 도련님전 욕만 잔뜩 허옵디다.”
 
229
“그래, 무엇이라고 욕을 하드냐?”
 
230
“뭐라더라, 아. 안주 해서 접시에 받쳐 먹고,
231
뭐라더라, 헤, 해숫병에나 걸리라던가?”
 
232
“안주해.. 접시..해수.. 이애, 방자야! 혹시,
233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 하지 않드냐?”
 
234
“아 에. 맞습니다요.”
 
235
“이놈아, 그게 욕이 아니다.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236
나비는 꽃을 따르니 날 더러 찾아오라는 말이다.
237
이얘 방자야! 춘향집이 어딨는지 춘향집 좀 일러다오.”
 
238
방자 좋아라고 썩 나서며 손을 들어 춘향집을 가르키는디
 
239
〈진양조〉
240
“저 건너 저어 건너 춘향집 보이난디,
241
생김새는 평범하나, 점점 찾어 들어가면
242
온갖 풀과 꽃이 선경을 지어내고,
243
나무, 나무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헌다
244
만발한 도화와 가지가지 화초들은
245
황홀한 향기를 큰길까지 퍼뜨리고
246
문앞의 실버들 가지는 제멋대로 늘어지고.
247
들총, 측백, 전나무는 이휘칭칭 얼크러져서
248
담장 밖으로 솟아 있고,
249
여러 층 꽃 계단 위에 모란, 작약,
250
연산홍이 첩첩이 쌓여난디,
251
정자 대숲 두 사이로 은근히 보이난 것이
252
저것이 춘향의 집이로소이다.”
 
 
 

2장. 사랑의 장

 
254
〈아니리〉
255
“좋다, 좋다! 장원이 깨끗허고
256
송죽이 우거지니 절개 있음이 분명코나.”
 
257
도련님이 책실로 돌아와 글을 읽되,
258
혼은 벌써 춘향집으로 건너가고
259
등신만 앉어서 놀이글로 뛰어 읽것다.
 
260
“책실 통인아, 맹자를 들여라.”
 
261
“에이!”
 
262
“맹자견(孟子見) 양혜왕(梁惠王) 허신디,
263
왕왈 수불원천리이래(叟不遠千里而來)허시니,
264
역장유이리오국호( 亦將有以利吾國乎)릿까?
265
이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들여라.”
 
266
“에이!”
 
267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허며
268
재신민(在新民)허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269
남창은 고군(孤軍)이오, 홍도는 신부(新府)로다.
270
홍도 어찌 신부되리. 우리 춘향이 신부 되지.
271
이 글도 못 읽겠다. 주역을 들여라.”
 
272
“에이!”
 
273
“건(乾)은 원(元)코 형(亨)코 이(利)코 정(貞)코
274
춘향 코 내 코 한데 대면 좋코 좋코.”
 
275
방자 옆에서 듣고 있다가,
 
276
“아니 도련님, 웬 코 타령이시오?”
 
277
“이 자식아 듣기 싫다. 사략을 읽어보자.”
 
278
“에이!”
 
279
“태고라 천황씨는 쑥떡으로 왕 허시다(以木德王).”
 
280
방자가 어이없어,
 
281
“다섯 가지 덕, 목덕으로 왕 허신다는 말은 들었어도,
282
쑥덕으로 왕 헌다는 말은 난생 처음이요.”
 
283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천황씨는 이가 단단하여
284
나무 떡을 자셨거니와 오늘날 선비야 어찌 딱딱한
285
목떡을 자실 수 있겠느냐? 그러기에 공자님께서
286
후세를 위해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바꾸라고 꿈에
287
나타나 이르셨느니라. 이 글도 못 읽겠다.
288
천자를 들여라. 하늘 천, 따 지 ,가말 현 ,누르 황.”
 
289
방자가 듣고 있다,
 
290
“아니, 우리 도련님은 공부를 거꾸로 하시오?
291
천자는 찾아 뭐하시려오?”
 
292
“이놈아, 네가 무식하도다. 천자라 허는 것은
293
사서삼경 칠서의 조상이요, 천지 만물의 이치가
294
그 안에 다 들어있노라. ”
 
295
도련님이 천자 뒤풀이를 하시는데 또한 건너 뛰것다.
 
296
〈중중모리〉
297
“자시의 생천허니 불언행사시 유유창창 하늘‘천(天)’,
298
축시의 생지허여 금목수화토를 맡아 양생만물 따‘지(地)’,
299
이 해가 왜 이리 더디진고 일중지책의 기울‘책(昃)’,
300
남원 와서 오늘 처음 보았네, 광한루의 찰‘한(寒)’,
301
베개가 높거든 내 팔을 베려 이만큼 오너라, 올 래(來)’,
302
언제 만날 기약 없이 춘향 혼자만 갈 ‘왕(往)’,
303
어서 보고 싶어 일각이 삼추라 가을 ‘추(秋)’,
304
백발이 장차 오게 되면 소년 모습 거둘 ‘수(收)’,
305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 감출 ‘장(藏)’,
306
해는 어이 이리 불어늘어 터진고 ? 불 윤(潤)’,
307
저러한 고운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餘)’,
308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 만사 이룰 ‘성(成)’,
309
우리가 이리저리 노니다 부지 세월의 해 ‘세(歲)’,
310
조강지처는 박대 못 허느니 대전통편의 법중 ‘율(律)’,
311
춘향과 날과 단둘이 앉어 입을 마주 대고
312
법중‘여(呂)’자로 놀아보자.”
 
313
이리 한참 읽어가더니마는,
 
314
“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 춘향 보고지고
315
추천하든 그 맵시를 어서어서 보고지고!”
 
316
〈아니리〉
317
이렇듯 소리를 크게 질러노니 안에서
318
사또 들으시고 깜짝 놀래시며,
 
319
“이리 오너라! ”
 
320
“에이!”
 
321
“책실에서 무슨 소리가 그리 요란하느냐?
322
어느 놈이 생침을 맞느냐? 어서 사실을 아뢰어라!”
 
323
통인이 급히 내려 오며,
 
324
“쉬잇, 도련님은 뭣을 그리 보고 소리를 지르셨기에
325
사또 들으시고 놀래시여 알어 오라 야단이 났소!”
 
326
“이얘, 큰일났구나! 이런 때는 거짓말이 약이니라.
327
내가 논어를 읽다 차호오소야(嗟乎吾衰也)
328
몽불견주공(夢不見周公)이라는 대문을 보다
329
나도 주공을 보아지다. 흥취로 소리가
330
높았습니다. 라고 여쭈어라.”
 
331
통인이 사또 전 그대로 여쭈었겄다.
332
사또 들으시고 몽룡이가 공부하는데 취미를 꼭
333
붙인 듯 싶어 책실을 불러 자랑이 낭자한 끝에,
 
334
“용생용이요, 봉생봉이로다.”
 
335
하니, 책실도 감격한 목소리로
 
336
“예, 용에서 용 나고, 봉에서 봉 나옵니다.”
 
337
하며 맞장구로 받고, 둘이 한참을 수작터라.
338
시간은 흐르게 마련, 이윽고 때가 되니
 
339
“하인 물려라.”
 
340
“예이!”
 
341
〈진양조〉
342
퇴령소리 길게 나니 도련님이 좋아라고,
 
343
“이애, 방자야.”
 
344
“예이.”
 
345
“청사초롱 불 밝혀들어라. 춘향집을 어서 가자.”
 
346
방자를 앞세우고 춘향집을 건너갈 제,
 
347
“좁은 길 넓은 길을 구름 사이로 달빛이 희롱허고,
348
푸른버들 사이사이 꽃 빛 넘쳐, 경치도 장히 좋다.”
 
349
춘향집을 당도허니 우편은 청송이요, 좌편은 녹죽이라.
350
뜰 지키는 백두룸은 사람 자취에 일어나서
351
나래를 땅으다 지르르르르 끌며,
352
뚜뚜루루루 낄룩 징검 징검, 알연성이 거이허구나.
 
353
〈아니리〉
354
이렇듯 춘향 문전을 당도허여 서성거릴제,
355
문전의 청삽사리 컹컹 짖고 쫓아 나오니
356
건넌방 춘향모가 개를 쫓으면 나오는구나.
 
357
“저 개야 짖지마라. 공산에 잠긴 달 보고 짖느냐?”
 
358
〈자진머리〉
359
“달도 밝고 달도 밝다. 휘영청 달도 밝다.
360
원수 년의 달도 밝고, 내 당년의 달도 밝다.
361
나도 젊어 이르기를 ‘월매, 월매’ 찾더니,
362
세월이 물처럼 흘러 춘안노골 다 늙었다.
363
늙어지니 하릴없네.”
 
364
〈아니리〉
365
방자 쉬잇 하고 달려드니 춘향모 깜짝 놀래
 
366
“게 눠냐?”
 
367
“웟다, 방자요 방자!”
 
368
“아니, 네 이놈. 아닌 밤중에 내 집에 웬 일이냐?”
 
369
“웟다, 도련님 모시고 나왔소.”
 
370
“아이고 이 자식아, 진즉 말을 헐 것이지!”
 
371
춘향모 깜짝 놀래 도련님을 향하여
 
372
“귀중허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시기는 천만
373
의외올시다. 어서 안으로 들어 가시지요.”
 
374
도련님을 윗자리로 모시니, 도련님은 숫된 양반이라
375
말을 못하고 방안만 둘러본다.
376
방치레가 수수하나, 뜻있는 글과 그림이 걸렸구나.
 
377
〈세마치〉
378
동벽을 바라보니,
379
위수 강에 낙수질 허는 강태공이 걸려있고
380
서벽을 바라보니,
381
바돌 두는 상산사호 네 노인이 걸려있다.
382
남벽을 바라보니,
383
관우, 장비, 양장수가 큰활에 쇠화살 먹여
384
나는 기러기 절컥 맞쳐 떨어뜨리는 거동이요,
385
북벽을 바라보니,
386
비 개고 달 오른 동정호에서 흰옷 입은
387
두 여인이 스리렁 둥덩 현금 타는 거동이라.
388
서안을 살펴보니,
389
춘향이 일부종사 오직 한 낭군 섬기랴
390
허고 글을 지어 붙였으되,
 
391
대우춘종죽(帶雨春種竹)
392
봄비를 기다려 대나무를 심고,
393
분향야독서(焚香夜讀書)
394
향불 피운 밤에 책을 읽는다,
 
395
왕희지 필법이로구나.
 
396
〈아니리〉
397
도련님이 이렇듯 속으로 치하하고 계실적에,
398
눈치 밝은 춘향모가 말문을 여는디.
 
399
“귀중허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셨는디
400
무얼 대접하오리까?”
 
401
그제야 도련님이 말궁기가 열렸것다.
 
402
“오날 내가 늙은이 집에 찾아온 것은
403
술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404
오늘 일기 화창하야 광한루 구경 나갔다가
405
춘향이 노는 거동을 보고
406
우연히 인연에 중매되어 나왔으니,
407
춘향과 날과 백년가약이 어떨런지?”
 
408
춘향모 이 말 듣고
 
409
“말씀은 감격하오나, 나의 말을 듣조시오.”
 
410
〈엇중모리〉
411
“회동 성참판 영감께옵서 남원 부사로 오셨을 때,
412
일등 명기 다 버리고 나를 수청케 하옵기에
413
그 사또 뫼신 후에 저 애를 아니 낳소?
414
뫼신지 수삭만에 이조참판 승차허여
415
내직으로 올라가시더니
416
그 댁 운수 불길허여 영감께서 돌아가신 후
417
내 홀로 길러낼제
418
근본이 있는고로 사서가 능통허니,
419
누가 내 딸이라 허오리까?
420
재상가는 부당허고 사서인은 부족하와,
421
상하불급 혼연이 늦어가와, 주야 걱정은 되오나,
422
도련님은 사대부라 탐화봉접(探花蜂蝶)으로
423
잠깐 보고 바리시면 두 목심 사생이 가련허니
424
그러헌 말씀 마옵시고 잠깐 노시다나 가옵소서.”
 
425
〈아니리〉
426
도련님이 이 말을 들으시고,
 
427
“장부일언중천금이요, 불충불효 허기 전에는
428
잊지 않을 것이니 어서 허락허여 주소.”
 
429
춘향모 간밤에 몽조가 있어 용꿈을 꾸었는지라,
430
이것이 또한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 생각하고,
431
이면에 허락하였것다.
 
432
“도련님, 분부가 정녕 그리하옵시면 육례는 못이루나
433
사주단지 혼서지 겸하여 증서나 한 장 써 주시지요!”
 
434
필연을 내어놓니, 도련님이 일필휘지 하야,
 
435
“천장지구(天長地久)에 해고석난(海枯石欄)이요,
436
천지신명(天地神明)은 공증차맹(共證此盟)이라.
437
이몽룡 필서. 자, 이만허면 되였제?”
 
438
춘향모 그 증서를 품 안에 간직허고 술 한잔씩 나눴것다.
439
알심있고 눈치 밝은 춘향모가 그 자리에 오래 머물고 있겠느냐?
440
향단이 시켜 자리 보전한 연후어, 건너방으로 건너 갔것다.
441
춘향과 도령님이 단둘이 앉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될 일이냐?
442
그날 밤 정담이야말로 서불진혜(書不盡兮)요, 언불진혜(言不盡兮)라
443
글로도 다 못하고 말로도 다 할 수 없구나.
444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오륙 일이 넘어가니,
445
나이 어린 사람들이 부끄럼은 훨씬 멀리 가고
446
정만 담뿍 들어, 하루는 서로 안고 딩글며
447
사랑가로 노니난디.
 
448
〈진양조〉
449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450
이는 다 덥쑥 빠져 먹든 못허고,
451
으르르르렁 아항 넘노난듯,
452
단산 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 속을 넘노난듯,
453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을 넘노난듯,
454
구곡 청학이 난초를 물고 송백간의 넘노난 듯,
455
내 사랑 내 알뜰 내간간이지야.
456
오호 둥둥 늬가 내 사랑이지야.
457
목단무변수여천(目斷無邊水如天)에 창해같이 깊은 사랑,
458
삼오 신정 달 밝은 밤, 무산천봉 완월(玩月)사랑,
459
생전 사랑이 이러허니 사후 기약이 없을소냐?
460
너는 죽어 꽃이 되되, 벽도홍 삼춘화가 되고,
461
나도 죽어 범나비 되야, 춘삼월 호시절에
462
늬 꽃송이를 내 덤쑥 안고 너울 너울 춤추게 되면
463
늬가 나인 줄 알려므나.
 
464
“화로허면 접불래라. 나비 새 꽃 찾아가니,
465
꽃 되기 내사 싫소.”
 
466
“그러면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종루 인경이 되고,
467
나도 죽어 인경마치가 되어,
468
밤이면 이십 팔 수, 낮이면 삼삽삼천 그져 댕 치거드면
469
니가 날인 줄 알려무나.”
 
470
“인경 되기도 내사 싫소.”
 
471
“그러면 죽어 될 것 있다.
472
너는 죽어 글자가 되되,
473
따‘지’, 따‘곤’, 그늘‘음’, 아내 ‘처’, 계집‘녀’자 글자가 되고,
474
나도 죽어 글자가 되되,
475
하늘천(川),하늘 건(乾),날 일(日),볕양(陽),지아비 부(夫), 기특 기(奇), 사나이 남(男), 아들 자(子)짜 글자가 되어
476
계집 녀(女)변에 똑같이 붙여 써서
477
좋을 호(好)짜로만 놀아 럴 볼까.”
 
478
〈아니리〉
479
“아이고 도련님. 오늘같이 이렇게 즐거운 날
480
어찌 사후 말씀만 하시니까?”
 
481
“오 그럼, 우리 정담도 허고 업고도 한번 놀아보자.”
 
482
도련님이 춘향을 업고 한번 놀아 보는디,
 
483
〈중중모리〉
484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485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486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487
이히이 이히이이 내 사랑이로다.
488
아매도 내 사랑아.
489
니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490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491
강능백청(江陵白淸)을 따르르르 부어,
492
씨는 발라 버리고, 붉은점 움푹 떠
493
반간진수로 먹으려느냐?”
 
494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495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496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497
귤병,사탕의 혜화당을 주랴.”
 
498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499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500
당동지 지루지허니 외가지 단참외 먹으려느냐?
501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 도령 스는디 먹으랴느냐?
502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503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504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를 보자.
505
방긋 웃어라, 잇 속을 보자.
506
아매도 내 사랑아.”
 
507
〈아니리〉
508
“이애, 춘향아. 나도 너를 업었으니
509
너도 날 좀 업어다오.”
 
510
“도련님은 나를 가벼워 업었지만,
511
나는 도련님을 무거워서 어찌 업어요?”
 
512
“얘야. 내가 널다려 날 무겁게야 업어 달라더냐?
513
내 양팔만 네 어깨우에 얹고 징검징검 걸어다니면
514
그 속에 좋은 수가 있느니라.”
 
515
춘향이가 이제 파겁이 되어 도련님을
516
낭군자로 마구 불러가며 업고 노는디,
 
517
〈중중머리〉
518
“둥둥둥 내 낭군, 오호 둥둥 내 낭군.
519
도령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자가 절로나.
520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시고.
521
소상동정칠백리 일생 보아도 좋을 ‘호’로고나.
522
둥둥두우웅둥 오호 둥둥 내 낭군.”
 
523
도련님도 좋아라고,
 
524
“이애, 춘향아, 말 들어라. 너와 나와 유정(有情)허니
525
‘정(情)’자 노래를 들어라.
526
담담장강수(淡淡長江水) 유유원객정(悠悠遠客情)
527
하교불상송(河橋不相頌)허니 강수원함정(江樹遠含情)
528
송군남포불승정(送君南浦不勝情)
529
무인불견송아정(無人不見送我情)
530
하남태수의구정(河南太守依舊情)
531
삼태육경(三台六卿)의 백관조정(百官朝庭)
532
주어 인정 복 없어 저 방정, 일정 실정을 논정하면
533
네 마음 일편단정 내 마음 원형이정(元亨利貞)
534
양인심정이 탁정타가 만일 파정이 되거드면
535
복통절정 걱정 되니 진정으로 완정 허자는
536
그 정자 노래라.”
 
 
 

3장. 이별의 장

 
538
〈아니리〉
539
이렇다시 사랑가로 세월을 보낼 적에,
540
호사다마라, 뜻밖에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하야
541
내직으로 올라 가시게 되었고나.
542
도련님이 부친 따라 아니갈 수 없어
543
하릴없이 춘향 집으로 이별차로 나가시는디,
 
544
〈늦은중머리〉
545
점잔허신 도련님이 대로변으로 나가면서
546
울음 울 리 없지마는,
547
춘향과 이별헐 일을 생각허면
548
어안이 멍멍, 흉중이 답답허여
549
하염없난 서름이 간장에서 솟아난다.
550
두고갈까, 다려갈까 하서리히 울어볼까.
551
저를 다려 가자허니 부모님이 꾸중이요,
552
저를 두고 가자허니
553
그 마음 그 처사에 응당 자결을 헐 것이니,
554
사세가 난처로고나.
555
길 걷는 줄을 모르고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556
〈중중모리〉
557
그때여 향단이 요염섬섬 옥지갑에
558
봉선화를 따다가 도련님을 얼른 보고
559
깜짝 반겨 일어서며,
 
560
“도련님, 이제 오시니까?
561
전에는 오시랴면, 담 밑에 예리성과
562
문에 들면 기침소리, 오시는 줄 알겄더니
563
오늘은 누구를 놀래시랴고 가만가만히 오시니까?”
 
564
그때여 춘향모친 도련님 드리랴고 밤참을 장만허다
565
도령님을 얼른 보고 손벽치고 일어서며,
 
566
“허허, 우리 사위 오시네.
567
남도 사위가 이리 어여쁠까?
568
밤마다 보건마는 낮에 못 보아 한이로세.
569
아 제자가 형제분만 되면 데릴사우
570
내가 꼭 정허제. 한 분되니 헐 수 없네.”
 
571
도령님 아무 대답없이 방문 열고 들어서니,
572
그때여, 춘향이는 도령님을 드리랴고
573
금낭에 수를 놓다 단순호치 반기허여
574
쌍긋 웃고 일어서며 옥수 잡고 허는 말이,
 
575
“수심이 만면허니 이게 웬일이요?
576
편지 일 장 없었으니 방자가 병들었오?
577
어데서 손님왔오? 발서 괴로워 이러시오?
578
사또께 꾸중을 들으셨오?
579
누가 내집에 다니신다 해담을 들으셨오?
580
약주를 과음하여 정신이 혼미헌가?
581
뒤로 돌아가 겨드랑이에 손을 대고 꼭꼭꼭
582
찔러 보아도 몸도 꼼짝 아니허네.”
 
583
〈중모리〉
584
춘향이가 무색허여 뒤로 물러나 앉으며,
 
585
“내 몰랐오, 내 몰랐오, 도련님 속 내 몰랐오.
586
도련님은 양반이요, 춘향 저는 천인이라,
587
잠깐 좌정허였다가 버리는게 옳다 허고
588
나를 떼랴고 허시는디,
589
속 모르는 이 계집은 늦게 오네, 편지 없네,
590
짝사랑 외즐거움이 오직 보기가 싫었것소.
591
듣기 싫어 하는 말은 더 허여도 쓸 데가 없고,
592
보기 싫어 허는 얼굴 더 보아도 병 되느니,
593
나는 건넌방 어머니에게 가지이이”
 
594
바드드득 일어서니 도련님 기가 막혀
595
가는 춘향을 부여잡고,
 
596
“게 앉거라. 게 앉거라.
597
네가 미리 속을 찌르기로 내가 미쳐 말을 못 허였다.
598
속 모르면 말을 마라.”
 
599
〈창조〉
600
“속 모르면 말 말라니 그 속이 참 속이오,
601
꿈 속이오. 말을 허오 말을 허여.
602
답답허여 못 살것오.”
 
603
〈아니리〉
604
“이애, 춘향아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허여
605
내직으로 올라가시게 되었단다.”
 
606
“아이고, 도련님 댁에는 경사났오 그려.”
 
607
〈중중모리〉
608
“올체 인제 내 알았오, 올체, 인제 내 알았소!
609
도련님 한양을 가시면 내 아니갈까 염려시오?
610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천리 만리라도
611
도령님을 따라가요.”
 
612
〈아니리〉
613
“답답한 소리 점점 더하는구나!
614
내아에 들어가 네 사정을 품고 하니,
615
미장전에 외방출입 허였단말 원근에 낭자하면,
616
사당참례도 못 허고, 과거 한 장도 못보고,
617
노도령으로 늙는다 허니,
618
이 일을 어쨋으면 좋겠느냐?”
 
619
“아니,그럼 이별하잔 말씀이요?”
 
620
“이별이야 되겠느냐마는 잠시 후기약
621
둘 수 밖에는 없구나.”
 
622
춘향이가 훗기약 말을 듣더니 그 어여쁜 얼굴이
623
붉으락 푸르락 붉어지면, 이별 초두를 내는디,
 
624
〈진양조〉
625
와락 뛰어 일어서더니
 
626
“여보시오 도련님, 여보 여보 도련님!
627
지금 허신 그 말씀이 참말이요, 농담이요?
628
이별 말이 웬말이요? 답답허니 말을 허오.
629
작년 오월 단오야의 소녀집을 나와겨셔,
630
도령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어
631
무엇이라 말허였소?
632
천지(天地)로 맹세허고 일월(日月)로 증인을 삼어,
633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634
되도록, 떠나 살지 마자더니,
635
말경(末境)의 가실 때는 뚝 떼여 바리시면
636
이팔청춘 젊은 년이 독수공방 어이 살으라고,
637
못허지 못해요, 공연한 사람을 사자 사자
638
조르더니 평생신세를 망치네 그려. 향단아!”
 
639
“예.”
 
640
“건너방 건너가서 마나님전 여쭈어라
641
도련님이 떠나 가신단다. 사생결단을 헐란다.
642
죽는 줄이나 아시래라.”
 
643
〈아니리〉
644
그 때에 춘향 모친은 이런 속 하나 모르고
645
춘향 방에서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리거날,
 
646
“아이고 저것들이 벌써 사랑싸움 허네 그려.”
 
647
울음이 장차 길어지니 춘향 모친이 화김에
648
동정을 살피러 나오것다.
 
649
〈중중머리〉
650
춘향 모친이 나온다. 춘향 어머니 나온다.
651
허던 일 밀쳐놓고 상추머리 행주치마
652
모양이 없이 나온다.
653
춘향 방 영창 앞을 가만히 들어서
654
귀를 대고 들으니 정녕한 이별이로구나.
655
춘향 어멈 기가 막혀,
656
어간마루 섭적 올라 두 손뼉 땅땅,
 
657
“허허 별일났네. 우리집에가 별일 나.
658
한 초상도 어려울제 세 초상이 원말이냐?”
 
659
쌍창문을 번쩍 열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660
주먹 쥐고 딸 겨누며,
 
661
“네 요년아, 썩 죽어라.
662
내가 일상 말하기를 무엇이라고 이르더냐?
663
후회 되기 쉽것기로 태과 헌 맘 먹지 말고
664
여염을 세아려, 지체도 너와 같고,
665
인물도 너와 같은, 봉황 같은 짝을 지어
666
내 눈 앞에 노는 양을 내 생전에 두고 보면
667
너도 좋고 나도 좋체.
668
마음이 너무 도도하야 남과 별로 다르더니
669
잘되고 잘되었다.”
 
670
도련님 앞에 달려 들어,
 
671
“여보시오 도령님, 나하고 말 좀 허여 보세.
672
내 딸 어린 춘향이를 버리고 간다 허니
673
인물이 밉던가? 언어가 불손턴가?
674
잡스럽고 흉하던가?
675
어느 무엇 그르기로 이 봉변을 주랴시오?
676
군자 숙녀 버리난 법, 칠거지악을 범찮으면
677
버리난 법 없난 줄을 도련님은 모르시오?
678
내 딸 춘향 임그릴 제, 월정명 야삼경
679
창천에 돋은 달 왼 천하가 밝아
680
첩첩수심이 어리어 낭군 생각이 간절
681
손 들어 눈물 씻고 북녘을 가리키며
682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날과 같이 그립든가?
683
뉘년의 꼬염을 듣고 여영 이별이 되려나?
684
아주 잊고 여영 잊어 일장 수서가 돈절 허여
685
긴 한숨 피 눈물은 창 끊는 애원이라.
686
외로이 벼개 우에 벽만 안고 돌아누워,
687
주야 끌끌 울제,
688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달래어도,
689
시름 상사 깊히 든 병
690
내내 고치던 못 허고 원통히 죽게 되면,
691
혈혈단신 이 내 몸이 뉘를 의지허오리까?
692
이왕에 가실테면, 춘향이도 죽이고 나도 죽이고,
693
향단이까지 마자 죽여, 삼 식구 모두 죽여
694
땅에 묻고 가면 갔지 살려 두고는 못 가리다.
695
양반의 자세허고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오?
696
마오, 마오, 그리 마오.”
 
697
〈아니리〉
698
“여보, 장모, 장모! 춘향이만 데려 가면 그만 아닌가?
699
내일 요여 배행 시에 신주는 내서 내 도포 소매 안에
700
모시고, 춘향이를 요여 안에다 태우고 가면,
701
누가 신주 모셨다 하제 춘향이 태우고 간다 헐라던가?”
 
702
〈창조〉
703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마는
 
704
“아이고 어머니, 도련님 너무 조르지 마오.
705
양반의 체면으로 오죽 답답허고 민망허여
706
저런 망언을 허오리까?
707
어머니는 건너방으로 건너가시오.
708
이왕에 이리 된 일, 도련님과 단둘이 앉아
709
울음이나 실컷 울고, 내일 이별 헐라요.”
 
710
〈중머리〉
711
춘향 모친 기가 막혀
 
712
“못 허지야, 못 허지야. 네 마음 대로는 못허지야.
713
저 양반 가신 후로 뉘 간장을 녹이려느냐?
714
보내여도 곽을 짓고 따라가도 따라가거라.
715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너의 서방을 따라가거라.
716
나는 모른다. 너이 둘이 죽던지 살던지
717
나는 모른다 나는 몰라.”
 
718
〈창조〉
719
춘향어멈 건너간 후어, 도련님 춘향이 단둘이 앉아
720
일절통곡 애원성은 단장곡을 섞어운다.
 
721
〈중머리〉
722
“아이고, 여보 도련님. 참으로 가실라요?
723
나를 어쩌고 가실라요? 도련님은 올라가면
724
명문귀족 재상가의 요조숙녀 정실 맺고,
725
소년급제 입신양명 청운의 높이 앉어
726
주야 호강 지내실 제,
727
천리남원 천첩이야 요만큼이나 생각허리.
728
이제 가면 언제 와요? 올 날이나 일러주오.
729
높은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실랴오?
730
마두각 나거던 오실랴오?
731
오두백 허거든 오실랴오?
732
운종용, 풍종호라.
733
용 가는 디 구름 가고, 범 가는 디는 바람이 가니,
734
금일송군 임 가신 곳 백년소첩 나도 가지.”
 
735
도련님이 기가 맥혀,
 
736
“오냐, 춘향아 우지마라. 오나라 정부라도
737
각분동서 임 그리워 규중심처 늙어 있고,
738
공류한강천리원정(共問漢江千里外) 관산월야 높은 절행
739
추월강산이 적막헌디, 연을 캐며 상사허고
740
너와 나와 깊은 언약 상봉 헐 날이 있을테니,
741
쇠끝 같이 굳은 마음 홍로라도 녹지를 말고,
742
송죽같이 굳은 절개, 늬가 날 오기만 기둘려라.”
 
743
둘이 서로 꼭 붙들고 떨어질줄을 모르는구나.
 
744
〈아니리〉
745
그 때여 춘향이가 저의 집 담장 안에서 도련님과
746
은근히 이별 허는디,
 
747
〈진양조〉
748
와상 우어 자리럴 피고 술상 채려 내어 놓며,
 
749
“아이고, 여보 도련님. 이왕으 가실테면
750
술이나 한잔 잡수시요.
751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권군갱진일배주 허니,
752
권할 사람 뉘 있으며, 위로 헐 이 뉘 있으리.
753
이 술 한잔을 들으시고 한양을 가시다가
754
강수청청 푸르거든 원함정을 생각헐까?
755
마상에 뇌곤허여 병이 날까 염려 허오니,
756
행장을 수습허여 부디 평안히 행차를 허오.”
 
757
〈중머리〉
758
“오냐, 춘향아 우지 마라.
759
너와 나와 만날 때는 합환주를 먹었거니와,
760
오늘날 이별주가 이게 웬일이냐?
761
이 술 먹지 말고 이별말자.
762
한양낙일수만리(河粱落日愁雲起)는
763
소통곡(蘇通國)의 모자(母子) 이별,
764
정객관산노기중(征客關山路幾重)의
765
오희월녀(吳姬越女) 부부(夫婦)이별,
766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은
767
위성중의(潙城朝雨) 붕우(朋友)이별,
768
이런 이별 있건마는 너와 나와 당한 이별,
769
상봉헐 날이 있을테니 설워말고 잘 있거라.”
 
770
도령님이 염낭을 만져 추월 같은 대모석경
771
춘향 주며 허는 말이
 
772
“아나, 춘향아 거울 받어라.
773
장부의 굳은 마음 거울 빛과 같은지라
774
날 본 듯이 내어 보아라.”
 
775
춘향이 그 거울 간직허고,
776
저 쪘던 옥지환을 바드드드득 벗어 내어
777
도령님전 올리면서,
 
778
“옛소, 도령님! 지환 받으오,
779
여자의 굳은 절행 지환 빛과 같사오니,
780
옛터에다 묻어둔들 변할 리가 있소리까?”
 
781
둘이 서로 받아 넣더니만은, 퍼버리고 울음을
782
우는 모양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네.
 
783
〈자진모리〉
784
그때의 동원에서는 내 행차 떠나려고,
785
쌍교를 어루거니, 독교를 어루거니,
786
병마 나졸이 분주헐제,
787
방자 겁을 내어 나귀 몰고 나온다.
788
따랑 따랑 따랑 따랑, 춘향 문전 당도허여,
 
789
“어허, 도령님 큰일났오! 내 행차 떠나려고
790
도련님을 찾삽기로 먼저 떠났다 아뢰옵고 왔아오니,
791
어서 가옵시다.
792
이별이라 허는 것 너 잘 있거라, 나 잘 간다,
793
이것이 분명 이별이제,
794
웬놈의 이별을 뼈가 녹두록 헌단 말이요.
795
어서 어서 가옵시다.”
 
796
〈중모리〉
797
도련님, 하릴없이 나귀 등에 올란즈며,
 
798
“춘향아, 잘 있거라.
799
장모도 평안히, 향단이도 잘 있거라.”
 
800
춘향이 거동 보소, 우루루루 달려들어,
801
한 손으로는 나귀 경마 쥐어 잡고,
802
또 한 손으로 등자 딛인 도련님 다리 잡고,
 
803
“아이고, 도련님,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804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805
쌍교도 싫고, 독교도 나는 싫소. 걷는 말끔
806
반부담 지어서 워리렁 추렁청 날 다려가오.”
 
807
말은 가자 네 굽을 치는데 임은 꼭 붙들고 아니 놓네.
808
방자 달려들어 나귀 경마 쥐어잡고
809
채질 툭 처 말을 몰아,
810
비호같이 가는 말이 청산녹수 얼른 얼른
811
이 모롱 저 모롱을 돌아가니,
812
춘향이 기가 막혀 가는 임을 우두머니 바라보니,
813
달만큼 보이다, 별만큼 보이다가
814
나비만큼 보이다가,
815
십오야 둥근 달이 떼구름 속에 잠긴 듯이
816
아조 깜박 박석치를 넘어가니,
817
춘향이 그 자리에 법석 주저앉아
 
818
“아이고 허망허네. 가네 가네 허시더니
819
이제는 참 갔고나.”
 
820
〈아니리〉
821
이렇다시 도령님은 서울로 떠나고, 춘향이 하릴없이
822
향단으게 붙들리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디,
 
823
〈진양조〉
824
향단으게 붙들리어 자던 침방 들어가니,
825
만사가 정황이 없고 촉목상심 허든구나.
 
826
“여보아라, 향단아, 발 걷고 문닫쳐라.
827
춘몽이나 이루어서 알뜰허신 도련님을
828
몽중으나 만나 보자.
829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 보이난 님은
830
신의 없다 일렀으나
831
답답이 그럴진대 꿈 아니면은 어히 허리.
832
이별‘별’자 내든 사람 날과 백년 원수로구나.
833
이별‘별’자 내셨거든, 뜻‘정’자 내지를 말거나,
834
뜻‘정(情)’자 내셨거든, 만날‘봉’자 없었거나,
835
공방적적대고등(空房寂寂待孤燈)허니
836
바랠‘망’자가 원수로구나.”
 
837
〈중머리〉
838
“행궁견월상심색(行宮見月喪心色)허니
839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840
야우문령단장성(夜雨聞玲斷腸聲)에
841
비만 와도 임의 생각.
842
추우오동엽낙시(秋雨梧桐葉落時)에
843
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식불감미 밥 못먹고, 침불안석 잠 못 자니
844
이게 모두가 임 그리운 탓이로구나.
845
앉어 생각, 누워 생각, 생각 그칠 날이 전히 없어,
846
모진 간장 불이 탄들 어느 물로 이 불을 끄리.”
 
847
이리 앉어 울음을 울며 세월을 보내는구나.
【원문】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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