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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방에 들어박혀 흙장난이나 합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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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8.12
김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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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에 들어박혀 흙장난이나 합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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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서 안가는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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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를 왜 아니가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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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노망이 나기 전에는 피서를 가지 않을 것이외다. 그런데 내가 노망이 나서 퀴- 퀴- 한 꼬라구니를 보이고 다니게 될랴면 적어도 이삼십년 후일 것이겠고 만일에 일이 잘못되어서 그 안에 어린이 망녕이 난다고 치더라도 그렇게 속히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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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성 형이 내 얼굴만 보면 어쩌자고 철이 아니나고서 늘 흙장난만 하느냐고 꾸지람을 합니다. 이러고 보니 나같이 채 철이 아니 난 인물이 벼락 감투로 노망이야 아직 날리야 있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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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서부터 저녁까지 정월서부터 동짓달까지 흙장난이나 하면서 세상을 보내는 철 안난 인물이 얼토당토 않게 피서가 당(當)합니까. 피서라는 것 을 나는 피세(避世)라고 이해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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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는 무더웁고 겨울에는 추워지는 것이 세상 일인데 더위를 피하려고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떠나자는 것일 것이며 그래도 아직은 영영 세상과 작별하기 싫으니 눈가림으로 산이나 바다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또 한편 사람에 시달려서 염통에 열이 나니 이것을 삭히러 가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나 그러나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이 있고서야 겨우 의미를 갖는 것이니 사람에 염증이 난다면 하필 여름에만 피할 바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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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피한다는 말이나 엽전운동(獵戰運動), 엽전운동(獵錢運動)에 도리 어 고달픈 신세들이 어느 해가에 제법 사람을 피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일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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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도 얼마 전에 별안간 전 조선 피서지를 단바람에 일순(一巡)하여 보자는 엉뚱한 생각을 하여 보았는데 그 까닭은 대략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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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철저한 동(銅) 제한으로 하여서 지금까지 구리를 뜯어먹고 살며 구리 귀신으로 자처하고 있던 나도 동상이라고는 제작하기 절망이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먹어 오던 구리를 먹지 못하고 쌀밥을 먹는대야 구미도 없을 뿐더러 남과 같이 먹는 법도 모를 것이므로 이런 쌀밥 먹는 법을 배워 볼까 하여서 금강산을 위시하여 석왕사, 원산, 몽금포, 대천 할 것 없이 돌아다니며 신통한 쌀밥 선생을 찾아 보자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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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금 조선에서는 쌀밥 그릇이나 제격으로 먹는 사람은 대체로 피서지로 간 듯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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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랴다가 이묘한 계획을 중지하고 나서 조그만 공방에서 여자 모델의 수밀도 같은 신선한 두 볼기짝을 매일 같이 들여다보고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쌀밥 선생을 찾아가는 것도 묘안이 아닌 것은 아니나 지금까지 내가 고집하던 갸름한 지조를 더럽힐까 두려워함이 있으니, 내가 가장 유복하게도 조선에 태어난 다음에 옛날의 중국 사람 모양으로 꼭 한 번 금강산을 보고 죽겠다는 소망을 아니 갖는데도 금강산이 조선 안에 있는 한 금강산 영기(靈氣)가 이 몸에 다소라도 영(詠)을 치고 있을 것이니 내 몸이 금강산이매 무슨 새삼스럽게 금강산을 찾아 갈 바이릿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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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 나는 평생 금강산을 보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여 나왔습니다. 그리하여서 과거에도 몇 번 금강산 순례에 참여할 기회가 없지 않았으 나 그 때마다 동료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행하였고 그 다음으로 해수욕장으로 말한대도 사람의 눈으로서는 차마 볼 수 없는 벌거숭이를 대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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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길거리에서 호화로운 의복을 입고 다니던 신사 숙녀의 벌거벗은 알몸을 나는 보고 싶지 않나니 이 분들의 육체는 보잘 것 없이 ‘미’ 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 것이라고 점치는 연유이지요. 혈색을 화장으로서 겨우 꾸미고 허물어진 골반을 차마 주름으로서 가리던 분들의 나체를 보고 난 다음에야 그야말로 조선 땅에서 차마 하룬들 더 살고 싶겠습니까. 내가 ‘아직 불건강한 돈환’ 이니 말이지요. 이래저래 나는 자연보다도 문화를 더 사랑 한다고 외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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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술 미용법도 확실히 문화의 하나이겠지요? 현대의 여자야말로 누구보다도 가장 문화를 향락하는 사람인데 이 분들을 ‘박가분(朴家粉)’ 시대로 돌려보낸다면 문화를 사랑하는 나는 어찌할 수 없이 눈을 가릴 수밖에 없으며 금강산만 하더라도 산은 첩첩이 들려 있고 바위가 있고 물이 있고 절에는 중이 있고 할 따름이요, 이렇다는 문화를 보일 것은 없을 것인데다가 요근래에 와서는 금강산 주인이 하도 많이 생겨서 제각기 종가(宗家) 쌈을 하는데 더욱 염증이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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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중석(重石) 도굴 사건을 비롯하여서 금강산 주인들이 이러니 저러니들 하나 이것도 시세의 바람이라 중석 몇 가마니쯤 판다고 치더라도 금강산이 무너질 법이 없을 것이며 또 일만 이천 봉에서 두어 고개쯤 없어진대야 무슨 그리 대수로울 것이 있으며 이것도 연구세심(年舊歲深) 하여지면 그대로 이끼가 나고 고색(古色)이 지고 하여서 수수하게 될 터인데 무에 그다지 시비거리가 될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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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는 이 통에 끼지 않고서 크나 적으나 간에 나의 공방에서 흙장난이나 하면서 더우면 부채질을 하고 그래도 견딜 수 없으면 얼음 덩어리를 두 볼에 물고 또 그래도 참을 수 없으면 그 때는 나도 벌거숭이가 되어 가지고서 모델과 연구생과 더불어 시원한 잡담 외담(猥談)을 주고 받으면서 의연히 동치(童推) 그대로 보내자는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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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론 피서도 아니며 또한 피세도 아니며 그저 흙장난에 끄티미니 그게 장난임에야 야취(野趣)가 도에 넘는다고 했자 한서(寒暑)를 모른침이 했자 인사가 아니라고 했자 장난꾼의 귀에야 좀처럼 들어올 리 만무할 것이외라 그러나 잊어서 아니될 것은 이 따위 흙장난꾼이야말로 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치 금강산을 위하고 있나니 그것은 금강산을 한 번도 이 발로 더럽히지 않는 점이며 다음으로 피서 내지 피세를 잘 다니는 거리의 신사 숙녀도 다른 사람보다도 더 존경하니니 그것은 쌀밥 선생님으로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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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8.8.12
【원문】공방에 들어박혀 흙장난이나 합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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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진(金復鎭)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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