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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 작가는 어떻게 이와 같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그야말로 일진일퇴의 손오(孫吳)의 병법을 반복할 따름이다. 작년에 <토훈(士薰)>도 물론 완성된 작품이라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래도 노력한 점, 하려던 곳을 보았었다. 그런데 <인개>에 있어서는 그 색채가 바래고 선조가 허황하고 배치가 난잡하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 속에 그림을 찾게 할 뿐이다. 그런데 아무리 죽은 것이라도 이다지 학대할 것이야 없을까 하여 어떠마한 진경(進境)을 보이지 않느니 만큼 유다른 화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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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작품에 통폐라고 할는지 모르나 극악스러운 사형벽(寫形癖)이 이번 것에는 좀 적다는 것이 한 기쁜 일이다. 양귀비 꽃에 있어서 백(白), 자(紫) 양종은 고운 맛이 부족하고 엽부(葉部)의 수법은 가전의 취미로 하여 전연히 실패하였다고 본다. 구도에 일진화를 보이나 그보다는 세부에 붙잡히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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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춘 협전이던가의 출품된 이 분의 제작(諸作)을 보고 그 뇌장(腦漿)의 체중을 달아 보고 싶었었다. 이런 작자는 속화, 범화, 타락의 표본으로나 그 존재를 시인하여 줄 수밖에 없다. 또 모방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마는 이렇게까지 된다는 것은 좀 고념(考念)을 아니할 수 없다. 그림이 되고 안 된 것은 별개 문제로 하고 관학파의 명예로 보더라도 철회시킬 수만있다면 철회시킨다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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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춘효(谿山春曉)><청산백수(淸山白水)> 허백련 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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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유동된다고들 한다. 이런 그림을 평가하기 전에 평자 자신의 상념할 바 일이 너무나 많음으로 하여 그러므로 이것이 이분을 위하여 섭섭한 일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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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初冬)><첩장(疊章)> 이상범 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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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보조로 막다른 골목을 걷는다고 본다. 반추도 비약도 몽상도 아무 것도 없이 다만 손에 익은 버릇(벽(癖))을 되풀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동양화부에 있어서 이보다 더 낫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만큼 그 지위를 높일 뿐이나<초동>은 미완성품이고 <첩장>에서는 전후의 산맥의 숙연(宿緣)을 분명하였으면 한다. 석대(石臺) 1기나 몽매한 농무로 미봉한다는 것은 우리의 즐겨 취할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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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에서밖에 보지 못할 구상을 엿보게 한다. 고사의 영춘으로 난 시절이 조금 잃는 듯하다마는 그러나 우회된 계류(溪流) 기암의 돌기, 이로 하여 단조에 빠지기 쉬운 화면에 박력을 주었으며 우편 산록과 그 주위에 있어 더 많이 석묵(惜墨)의 재기를 보이는 것은 고마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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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조선 여자의 머리라는 것이 그렇게 용이하게 그려질 까닭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사람으로서 손쉽게 요리하기에는 좀 짐이 무겁다고 안다. 또 정측면 입상이라는 것은 재고할 거리라고 믿는다. 아무것이든지 마음대로 그릴 것이다. 그러나 자유에는 의무가 따라다닌다고 그 누가 말하였다는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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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흥(筆興)에 부대끼어서 결국은 생기를 잃어버리었다. 자기 유혹이라고 할는지 어쨌든 간에 작년의 성공을 그대로 연장시키려는 것은 민소(憫笑)거리이겠고 심오감이 없느니만큼 지나가는 사람의 발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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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곡(幽谷)의 가을><야인효행>은 제외 예로 한다. (동양화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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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점이 어찌 없으리요마는 재미스러운 작품이다. 작자가 아직 년치(年齒)가 어리다 하니 말이다. 자중하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제일 재미있는 점을 들어 보라고 한다면 귀여운 아가씨의 머리가 퍽 크다는 것이다. 그게 어째서 재미가 있느냐. 그것은 작자나 모델이 다같이 어리고 또한 그 맛이 농후하게 표백되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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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을 통행하여야 한다. 아무리 초보이지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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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것보다는 필치가 연숙(練熟)하다고 칭찬하지마는 어쩐 일인지 마음 속의 공동은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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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에 있어 구도에 있어 화의에 있어 동일선상에 서 있는 사람이 선전에는 너무나 많이 있다. 사람의 뒤를 따른다기 보다는 사람의 추종을 허락치 않는 것이 괴팍한 예술가의 심정의 전부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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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이 희박하다. 이 책임은 작자가 전부 져야만 이론이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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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하기 쉬운 길을 밟는다는 것만 말하여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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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정(支那町)><천후궁(天后宮)> 나혜석 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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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자기의 변해(辨解)를 길게 쓴다. 이만큼 작품에 자신이 적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다 같은 여류화가로서는 백남순 씨보다 후중(後重)한 것은 보이나 박진력이 부족한 점에는 정(鼎)의 경중을 알기 어렵다고 믿는다. <지나정>에는 부족한 점도 또는 주문할 것도 없는 무난하다느니보다는 무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천후궁>은 구상에 있어 여자답다고 안다. 초기의 자궁병이 만일 치통과 같이 고통이 있다 하면 여자의 생명을 얼마나 많이 구할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었다. 신문을 보고 이 기억을 환기하고서 그래도 화필을 붙잡는다는 데 있어 작화상 졸렬의 시비를 초월하고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말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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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춘의 오소(五巢)><정물><경성의 풍경> 이승만 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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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각기 제대로 방산(放散)되고 휘발되고 생명을 잃은 잔해뿐만이 화폭에 점착되어 있다. 우선 정물에 있어 보더라도 지리하게 보는 사람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그 원인은 자연의 다양성 그것과 작가의 병적 신경의 항진의 복 없는 결합인 까닭이다. <초춘의 오소><경성풍경>에서도 퇴폐한 취미감정의 말초만이 보이니 작자에게 주문할 것은 이와 같은 취미를 버리고 순진한 길을 걸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현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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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어발(金魚鉢)><담일(曇日)> 장윤천 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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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일봉씨의 걸었던 길을 다시 한 번 보는 것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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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백의 모촌(目白의 某村)> (의자) <악기> 강신호 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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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할 작품이라 한다. 너무나 그 취미가 고귀하다고 할까. 자연 수정에 대담한 데는 점두(點頭)하지마는 조로될 증세가 보이는 것에 낙담된다. <풍경>은 열작(劣作)이겠고 더구나 촌가와 수목의 표현은 치졸하다고 본다. <의자>에는 삐루병에 일고할 여지가 있고 <악기>에서는 만도린이 실감을 제일 많이 가졌었다고 기억난다. 아무러한 부대(副代) 작용이 없는 작품인 것 만큼 장내에서 제일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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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효과에만 전력을 집중한 연고인지 소묘가 불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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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조의 순화에 먼저 찬사를 올리나 대상물의 신비화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면 명상, 도취로 자신의 유리화(遊離化)에 난 많은 불복(不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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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에는 묘를 얻었다고 상각(想覺)한다. 그래도 부분부분에 있어 유졸(幼拙)한 곳이 보이니 년치(年齒)의 관계라고 단정한대도 망발이야 아닐 것 같다. <칠경>은 전연 실패한 작품이요 <풍경>은 자연감이 농후하나 그러나 인물의 신장과 전신주의 교섭을 친절하게 하였더라면 하고 백색 주의(周衣)로 하여 균형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은 애석하다고나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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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화 가운데 더구나 조선 사람 것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결점이 없다는 것이야 아니다. 가령 <춘일의 H양>에 안면 양안에 있는 그림자[영(影)]라든가 그대로 노란 저고리에는 불만이 있고 <조춘>은 반감을 많이 살 작품이다. 화작에 있어 단지 색채로만 써 미화를 도모하려는 망계(忘計)가 눈에 뜨인다. 자연의 특상(特相)을 보자. 그리고 인생과의 교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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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어는 작년 것보다는 기후의 관계인지 모르나 생기가 있어 보인다. 전체에 있어 물체와 물체 사이에 친화력이 부족한 까닭인지 통일이 없고 길게 말할 것 없이 그림이 되려면 아직도 길이 멀다는 것이다. 한마디 또 하자. 부분 부분을 결합시킨다느니보다는 어떠한 주체에 전부를 통솔시킨다는 것이 작화상 효과가 많다는 것은 초학자네들도 다 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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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에 안정이 없고 빽 빛이 덜 익고 이와 같은 결점이 작자가 소학생이라는 것과 상쇄되어 버리고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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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다는 낫다고 보았다. 앞으로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어떻게 될는지 재미가 있다느니보다 위험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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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다. 평문을 쓰기 전 묵기인(默祈人)이라는 아호와 작품과를 비교해 보고서 불쾌하였었더라는 것만 써 둔다. (서양화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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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로 기품이 있고 응시가 있으나 압력이 부족한 것이 가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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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생경하고 세부에 붙잡히어 한 개의 덩어리(塊[괴])가 되지 못하고 그리고 중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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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에 기분 편중이라는 것은 위험한 길이다. 그대로 보고 그대로 두자. (조각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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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의 원수가 아닌 다음에야 무슨 은원이 있으랴. 다만 그대네의 그림을 보고 그림을 쓸 뿐이다. 이 평문으로 하여 매매 계약이 부조(不調)가 되었다하면 얼마간의 책임을 지고 주선에 힘쓰겠다는 언질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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