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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조각도의 향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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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5.10
김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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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각도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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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독자(獨自)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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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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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글씨를 알고 위창의 전각을 알고 하는 이 땅의 사람들이 ‘석고 조각’ ‘모델조각’ ‘나체조각’ ‘동상조각’ 에 왜들 흥미를 아니 가지며, 왜들 지망을 아니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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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는 조각의 ‘어머니’ 라고 나는 말합니다. 더구나 추사의 글씨는 그대로 조각의 원리입니다. 추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추사를 아는 사람이면 그대로 조각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각하는 사람은 글 쓰는 사람 보다도 노래하는 사람보다도 그림 그리는 사람보다도 훨씬 수효가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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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치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동양의 조형미술에서는 글씨가 왕위(王位)이겠지요. 비례 균형의 규약, 필치의 생리적 심리적 통정(統整), 감각 충동의 전달, 배포(配布) 구조의 합리성 이런 모든 조형 충동이 가장 단적으로 엄격하게 글씨에 있는 것이 되니 글씨의 조형미를 알진대 어찌 조각을 버릴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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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까지 말하면 선의 강약, 지속(運速), 경중, 태세(太細) 글씨의 모든 변화를 버리고 목, 석, 동 등의 인재(印材)의 질감을 살리는 것이니 이것도 바로 조각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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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씨의 추사, 현재 전각의 위창, 이 분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고 하니 조각들을 하여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합니다. 우연이랄까 아주 맹랑하게 내가 조각을 하여 보겠다는 것이 동아일보가 창간되던 해이고 또 중학교를 졸업하고서 허둥대다가 간 길인데 어느덧 20년을 맞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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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3(?)년 후에 평안남도 진남포의 태생으로 아주 귀염 덩어리인 곽윤모라는 사람이 조각과에 입학하였으나 이 사람은 ○도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화술(話術)도 묘하고 하여 귀염둥이였으나 일찌기 떠났고 그리고 5, 6년 전후에 평양의 김두일이 다음으로 문석오가 동경서 연구들을 하였고 한편으로는 내가 경성에서 연구소라는 것을 한다고 하였더니 이곳에 몇 사람이 모여서 지지하게 소일격으로는 하였으나 구본웅, 장기남, 양희문 등은 제법 ‘멋’ 을 찾을려던 사람들이며 이 다음으로는 한 10년 중절(中折)하였다가 우리집을 중심으로 하고서 이국전(동경 괴인사(塊人社) 사우) 윤효중 (본정(本町)) 박승구(목조) 이성화가 각도를 들게 되었고 다른 줄로서는 개성의 김경승과 대리석의 윤승욱, 인천의 조규봉 이제부터는 제법 본격적으 로 나갈 수 있을 만치 인물 배치(配置)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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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아직도 사람으로는 불과 10여 인이고 작품으로서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은 되지 아니하였으니 앞으로 오늘날의 과제로 할 밖에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상이 금일의 조각계의 조감도이외다. 가장 하잘 것 없는 현상이라고 하겠지마는 뜻만은 훨씬 크다고 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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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말입니다. 해마다 총독부 미술전람회의 회장에서 보면 동양화보다도 서양화보다도 공예보다도 작품 수준이 고르고 제작 태도가 진지하고 왕성한 경쟁으로서 생기는 신열(身熱)이 뚜렷합니다. 작년보다도 금년 늘 나는 기대합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이루지 못할 희망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으나 그러나 조선의 조각계만은 기다려 주어도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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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에 옛날의 선생을 만났습니다. 선생이 개구 일번(開口一番) 그만하면 조각의 논리(확실히 ‘조각의 논리’ 라고 말을 하는데 조각의 논리라(는 말을 꿈을 깨고서도 한참 생각하여 보았습니다.)를 알았을 터이니 좀 똑 똑한 것을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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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조각들을 만들기에 전력들을 할 것입니다. 주문품이나 동상이나를 가지고 청춘을 보내지 말고 조각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동상이 조선에 건립되기 비롯한 것은 대략 15년 전 일입니다. 휘문중학에서 세운 것이 처음이겠지요. 그런데 동상을 제작할 때마다 나는 늘 이런 생각을 가져집니다. 이것은 결국 자기 일생에 다시 제작을 하여 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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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을 제작하는 데는 대외적 간섭, 기한, 예산, 대소, 위치 등의 구속이 많은 데다가 작가 자신이 이상의 모든 조건의 소화력 부족이었으니 어찌 대번에 자기 만족이나 할 수 있는 것이 될 법합니까. 그러므로 적어도 한번씩은 다시 만들어 보아야 한다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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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조각, 석고조각, 목조, 석조, 모든 조각은 그대로 이도기(李陶器)와 같이 흙내가 물씬나게 하여야 할 것이겠고 추사의 글씨같이 한 각에 한 자에 하나 이상 열 이상, 무한의 ‘옥타브’ 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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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각이 누구의 손으로 될 것인가는 점칠 수 없는 일이나 반드시 조선에 생길 것만은 장담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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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의 추사. 전각의 위창을 가진 조선에서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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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40.5.10
【원문】조선 조각도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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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진(金復鎭)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40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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