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옛날 저 이조시절에 잇섯든 일이엇다. 한 재상이 잇서 두 아들을 두엇으니 맛아들의 이름은 인형이요 고담을 길동이라 불럿다. 마는 인형이는 그 아우 길동이를 그리 썩 탐탁히 녀겨주지 안엇다. 왜냐면 자기는 정실 유씨부인의 소생이로되 길동이는 계집종 춘섬의 몸에서 난 천한 서자이기 때문이엇다. 하인들까지도 길동이는 도련님이라 불러주지 안코 웃웁게 녀기어 막 천대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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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길동이는 저의 신세를 주야로 슬퍼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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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은 다만 그의 아버지가 한분게실뿐이엇다. 그는 길동이를 나실때 문득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진동하며 커다란 용이 수염을 거사리고 앞으로 달겨드는 꿈을 꾸시엇다. 뿐만 아니라 차차 자라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만치 총기가 밝고 재주가 비범함을 보시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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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식이 장차 크면 훌륭히 될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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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버지는 이러케 가끔 속으로 생각하며 기뻐하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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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품으로 덥썩안길제이면 그 아버지는 아들의입을 손으로 얼른 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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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버지라 못한다. 대감이라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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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은근히 꾸지즈셧다. 아들이 귀엽지 안흔것은 아니나 그러나 양반의 집안에서 서자가 아버지라 부르는 법은업는 일이니 남이 드르면 욕을 할가하여 꾸짓고 햇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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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밤이 이슥하야 아버지는 사랑마당에서 배회하는 길동이를 발견하셧다. 푸른 하늘에 달은 맑고 정자에 우거진 온갓 나무들이 부수수 하고 낙엽이 지는 처량한 밤이엿다. 그 나무 그늘에서 길동이가 달빛에 칼날을 번쩍이며 열심으로 검술을 연습하고 잇는 것이다. 이걸 보시고 아버지는 이상히 녀기시고 앞으로 길동이를 불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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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초당에서 글을 안읽고 왜 나왓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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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이라니 공부를 잘 해야 나종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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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천한 몸이라 암만 공부를 잘 해도 결코 훌륭한 사람이 못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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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길동이는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대답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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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말이 무슨 속이 잇어 함인지 다 짐작하셧다. 그러나 열두살밖에 안된 아이의 소리로는 너무나 맹낭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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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재우처 무러보셧다. 하니까 그 대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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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눌이 만물을 내시되 사람이 가장 귀하오나 저만은 천한 몸이 되와 아버님을 아버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또한 형님이라 부르지 못하오니 어찌사람이라 하겟읍니까. 앞으로 무술을 배워 나라에 공을 세우는것이 남자의 일이 아닐가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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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자리에 푹 엎으리고 소리를 내여 슬피 통곡하엿다.
26
아버지는 이 꼴을 가만히 나려다 보시다가 쓴 입맛을 다시며 언짠흔 낯을 지으셧다. 이윽고 두 손으로 손수 그 어깨를 잡아 일으키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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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서자가 네 하나뿐 아니니 슬퍼말구 어서 돌아가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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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는 아버지의 엄명을 어기지 못하야 제 침소로 돌아오긴 햇으나 좀체로 잠은 오지안헛다. 남은아버지가 잇고 형이 잇고 하건마는 저는 아버지도 형도 업는것이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 홍길동이라 하면서도 그 아버지를 아버지라 버젓이 못 부르는것이 무슨 까닭인지 생각하면 할스록 어린 가슴이 메여질듯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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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는 날이 새이도록 자리우에 엎드리어 끈임업시 흐르는 눈물로 이불을 적시고 또 적시고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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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중에 그 형 인형이는 길동이를 죽이고자하야 뒤로 음모를 시작하엿다. 길동이의 재주를 보매 비상할뿐 아니라 용한 관상쟁이를 불러 상을 뵈고나니 그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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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뒷말을 재촉하니 그제야 옆으로 가까히 다가안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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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리는 입밧게도 내지마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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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돈을 던저준 뒤에 호령을 해서 쫓아버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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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이네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살아오는 명문거족(名門巨族)이요 게다가 홍문까지 세운 충신이엿다. 길동이가 만일에 엉뚱한 생각을 먹고 난리를 일으킨다면 온 집안이 역적으로 몰릴것이요 따라 빛나든 문벌이 고만 망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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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 생각하고 인형이는 길동이를 죽이어 업새고자 결심햇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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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가 촛불을 켜놓고 글을 읽고잇노라니 문득공중에서 까마귀가 세번 울고 지나간다. 밤에는 까마귀가 우는 법이 업는데 이게 웬 일인가, 생각하고 점을 처보앗다. 하니까 역시 오늘 밤이 제가 칼에 맞아서 죽을 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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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는 요술을 써서 얼른 몸을 피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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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잇드니 과연 방문이 부시시 열리며 시퍼런칼날이 들어오지 안는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엄장이 크고 수염이 무섭게 뻣인 장사 하나이 눈을 부라리고 들어온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렷으나 길동이가 종시 보이지 안흐므로 방안을 샃샃이 뒤지기 시작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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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길동이의 입에서 뭐라뭐라고 진언이 몇마디가 떨어지자 별안간 난데업는 바람이 일고 방은 간곳이 업다. 장사는 뒤로 주춤하고 몸을 걷으며 눈이 휘둥그러타. 여기를 보아도 산, 저기를 보아도 산, 앞뒤좌우가 침침하고 험한 산에 둘러싸힌것이 아닌가. 이게 기필코 길동이의 조화이리라 생각하고 그는 제 목숨을 아끼어 산길로 그냥 도망질을 쳣다. 마는 얼마안가서 길은 딱 끈치고 층암절벽이 앞에 내닥쳣으니 한 발만 잘못 내드디면 떨어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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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데선가 퉁소 소리가 나드니 한 아이가 나귀를 타고 나타낫다. 장사의 옆을 늠늠히 지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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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째서 날 죽이러 왓느냐, 죄업는 사람을 죽일려는 너에게 천벌이 잇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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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점잔히 호령하엿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모진 바람이 일드니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돌이 날아들고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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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돌에 맞을가 겁이 나서 두 팔뚝으로 면상을 가리고 뒤로 물러섯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일개 장사로서 조고만 아이에게 욕을 당하는것은 너무나 분한 일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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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길동이지, 이놈! 내 칼을 받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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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이러케 소리를 지르고 와닥딱 달겨들자 그 시퍼런 칼로 길동이의 목을 나려첫다. 이것이 실로이상한 일이라 안할수 업다. 그 칼이 나려지면서 길동이는 간곳이 업고 도리어 장사의 목이 제칼에 툭떨어지며 바위아래로 구르는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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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인형이는 정자나무 밑에서 서성거리며 일이 어떠케 되엿나, 하고 꽤 궁금하엿다. 약속한 시간에도 장사가 돌아오지 안흐므로 이내 길동이의 방까지 일부러 와 보앗다. 방문을 열고 고개를 데미니 길동이를 죽이겟다고 장담하든 장사의 목이 요강옆에떨어저 잇는것이다. 그리고 정말 길동이는 어디로 갓는지 눈에 보이지 안헛다. 그제서는 길동이가 무슨 술법이 잇는것을 알고 그길로 얼른 제 방으로 돌아와 문의 고리를 걸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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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드리 나무가 빽빽이 들어박엿고 그 우에는 어여쁜 여러가지 새들이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한옆으로는 까마케 처다 보이는 큰 폭포가 우렁찬 소리로 콸, 콸, 나려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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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폭포 우의 바위에 여러 장사가 모여안저서 잔치를 하고잇다. 엄장이 썩 크고 우람스럽게 생긴 것들이 더러는 술을 마시고 더러는 무슨 의론을 하는중이다. 이것이 조선에서 유명한 도적의 소굴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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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들에게 괴수가 잇서야지, 오늘은 꼭 정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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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그 옆에 안젓든, 눈 한쪽이 멀은 장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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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러치 그래, 괴수가 업시야 어디 일을 할수가 잇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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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치만 저 돌을 드는 사람이 잇어야 할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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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번에는 뺨에 칼 자죽이 잇는 다른 장사가 손을 들어 저편을 가르킨다. 거기에는 거진 집채만한 무지한 바위가 하나 노혓다. 이돌을 능히 들어야 비로소 도적들의 괴수가 될 자격이 잇다. 마는 그러케까지 기운이세인 장사들이 모엿건만 하나도이돌을 감히 드는 사람이 업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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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입때껏 괴수를 정하지 못하엿다. 도적들이 술에 취하야 떠들고 잇노라니까 등 뒤의 돌문이 부시시 열리며 웬 아이가 들어온다. 여간 힘으론 못할텐데 항차 아이가 돌문을 열고 들어오므로 모도들 눈이 뚱그랫다. 그리고 그 관상을 봐한즉 범상치 안흔 아이임을 대번에 알고 앞으로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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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는 홍길동입니다 지나가다가 경치가 하도조아서 구경을 들어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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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아이는 조곰도 서슴지 안코 대답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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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보아도 그 풍채며 음성이 여느 사람과는 다른 곳이 잇섯다. 나무 그늘에 안젓든 한 도적이 무엇을 생각하엿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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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럼, 저 돌을 한번 들어볼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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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턱으로 아까의 그 바위를 가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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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무 말업시 바위앞으로 가드니 두손으로 어렵지 안케 번쩍 들엇다. 그리고 앞으로 성큼성큼 몇발작을 거러가서는 산아래로 그대로 내던젓다. 큰 바위가 나려 구르는 바람에 우지끈뚝딱, 하고 나무들이 꺾이고 씨러지고 이러케 요란스리 소리를 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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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은 경탄을하고 그 앞에 와 엎드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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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괴수를 정할래두 저 돌을 드는 사람이 업드니 장군께서 오시어 처음 드셧읍니다, 원컨대 우리들의 괴수가 되어 줍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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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절을 하엿다. 그리고 아이에게 술을 들어 권하고 돼지 고기를 비어 바치고 퍽들 기뻐서 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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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흥들이 나서 뛰놀다가 한 도적이 말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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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몇달전부터 해인사(海印寺) 절의 보물을 훔쳐오랴 하다가 재주가 부족해서 못햇으니 장군께서 힘을 모아줍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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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녀마라, 그대들은 그럼 나의 지휘대로 해야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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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길동이는 쾌히 승낙하고 주는 술잔을 또 받아들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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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는 처년스리 부잣집 도련님같치 의관을 차리고, 해인사로 찾아갓다. 물론 그 양옆에는 그것도 칠칠하게 옷을 잘 입은 하인이 둘식 따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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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사라는 절은 산속 깊이 들어안즌 굉장한 절이엇다. 중들은 문간까지 나와 길동이를 공손히 맞어드렷다. 그리고 얼골 둥그른 우뚜머리 중이 그앞에 와 절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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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홍판서댁 아들이다. 느이절에 와 공부를 좀 하랴하니 조용한 방을 하나 치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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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이 아니라 사흘후의 말이다. 그날 내 쌀 스무섬을 가저와 너이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랴하니음식도 정히 만들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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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시 혼란스러이 하인들을 데리고 돌아갓다.
93
중들은 기뻐서 그날부터 방을 치고 마당을 쓸고하엿다. 재상가의 아들이 와서 공부를 한다니까 여간경사스러운 일이 아니엿다. 무슨 큰 수나 생긴듯이 서루들 수군거리며 손이 올 날을 기다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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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쯤 되자 절 마당에는 큰 쌀섬 하나식을 질머메고 하인들이 몰려드럿다. 이십여명 하인들이 다들어오고 나서 그 뒤에 길동이가 지팽이를 천천히 끌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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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중들은 버선발로들 뛰어 나려와 길동이를 방으로 맞어드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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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길을 오시느라구 얼마나 고생을 하셧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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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은 업섯으나 시장하니 저 쌀로 곧 음식을 차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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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길동이는 정말 배가 고픈듯이 힘업시 자리에 쓰러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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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들은 말짱 나려와 팔들을 걷고 밥을 짓는다, 찬을 만든다, 하며 분주히 돌아다녓다. 음식이 된 다음 우선 길동이 앞에 떡 벌어지게 채린 교자상 하나를 곱게 갖다노핫다. 하인들과 중들은 마당에다 멍석을깔고 거기들 삥 돌라안저서 음식을 먹기 시작하엿다.
101
그런데 몇 수깔을 안 떠서 길동이는 딱, 하고 돌을 씹엇다.
102
「이놈! 음식을 이리 부정히 해노코 먹으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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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들은 너무 황송하야 밥들을 입에다 문채 아무말도 못하고 벙벙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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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쳐 길동이는 잡앗든 수저로 상전을 우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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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 너이놈들은 죄로 볼기를 맞어야 한다」
107
하드니 제가 데리고 온 하인들을 돌아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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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들은 우 달겨들어 굵은 바쭐로 중들을 하나식 꼭꼭 무꺼노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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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대문밧게 숨어서 잇든 여러 도적들이 쭉들어서서 광을 뒤지는 놈, 다락엘 올라가는 놈, 뭣해, 잇는 보물이란 모조리 들고나섯다. 그리고 길동이 하인들과 한패를 지어 산 아래로 다라낫다.
112
그러나 중들은 일어나진 못하고 이걸보고서 괜스레 자꾸 소리만 내질럿다.
116
이때에 함경감사는 백성들의 재물을 뺏어다가 제걸 만들고 그걸로 부자가 되엿다. 그래도 백성들은 아무 말 못하고 그가 받치라는대로 돈을 받치고 쌀을 받치고, 이러케 무턱대고 자꾸 뺏기엿다. 왜냐면 감사의 영을 거역하면 붙들려가 매를 맞고 옥에 가치고, 하는 까닭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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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가 이걸 알고 하루는 부하들에게 말하되,
118
「내 먼저 갈게니 사흘후 함경땅으로 만나자」
120
사흘 동안을 타달타달 거러서 함경땅에 비로소 다은것은 해가 서산으로 누엿누엿 질 때엿다. 길동이는 허리도 아프고 기진해서 풀밭에 들어누어 밤 들기를 기다렷다.
121
캄캄하게 어두엇슬 때에야 다시 일어나서 남문밧게 잇는 솔밭에다 불을 질럿다. 불꽃은 하늘을 뚫을듯이 무서운 세력으로 활활 타오르며 사방을 벌거케 물드렷다.
122
성안에 잇든 백성들은 모도들 놀라며 남문 밧그로 뛰어나왓다. 이불을 그냥 두엇다가는 성안에까지 번저서 집들이 타고 사람들이 죽고 할것이다. 그들은 통으로 물을 퍼 나르며, 그물을 받아 껸지며, 일변 아우성을 치며,
125
이러케 불 끄기에 눈코 뜰 새업시 분주하엿다.
126
이런틈을 타서 길동이는 조곰 전에 와 기다리고 잇든 부하들을 데리고 텡 비인 성안으로 들어섯다. 함경감사의 집은 성 한폭판에 섯는 크고 우뚝한 기와집이엿다. 그집을 찾아가 광을 때려부시고 쌀 돈 할것업시 죄다 구루마에 싯고서 북문으로 곳장 다라낫다.
127
길동이는 북문을 나올제 조히에다 활빈당(活貧黨) 홍길동이라 고 커다랗게 써붙첫다. 활빈당이라 하는말은굶은 사람을 도아주는 무리라 하는 의미다.
128
한 삼십리쯤 구루마들을 끌고 가다가 길이 어두어서 더는 갈수가 업섯다. 동이 트거든 가자, 생각하고 멀리서 불이 반짝어리는 인가로 찾아갓다.
133
도적들은 너무 벅찬 일들을 하엿기때문에 배가 몹시 고팟다. 안 마당으로 들어들 가며
135
하고 청하엿다. 그러나 주인은 상투를 긁으며 퍽 미안해하는 낯이드니,
136
「황송합니다 마는 밥은 안됩니다. 저희들도 쌀이업서서 이틀째 굶습니다」
137
하고 무슨 죄나 진드시 머리를 숙으린다.
138
길동이는 이 소리를 듯고 가난한 동리로군, 하고 생각하엿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139
「이 쌀과 돈을 풀어서 동리 사람에게 똑같치 나눠주어라」
141
부하들은 구루마에서 짐을 나리어 쌀을 푸고 돈을 세이고 하엿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그것을 받아서집집마다 한목식 문간에다 갓다노앗다.
142
주인은 이게 꿈이나 아닌가 하고 얼이 빠저서 섯다가 제목으로 쌀과 돈을 받고는,
144
하고 물으며 수업시 절을 하고 또 하고하엿다.
146
나라에서는 홍길동이라 하는 도적이 잇서 온갓 재물을 훌몰아간다는 소문을 드르시고 곳 잡아드리라, 명령을 나리셧다. 그러나 하나도 잡아드리는 사람은업섯다. 날마다 길동이에게 도적 맞엇다는 소식만 오고하는것이다.
147
더욱 이상한것은 홍길동이라는 도적이 조선 팔도에 (지금은 십삼도지만 예전에는 팔도이엿다) 하나식 잇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똑 같은 홍길동이가 한날 한시에 여덟군데서 도적질을 해가는것이다.
148
잉금님은 홍길동이를 못 잡으시어서 은근히 골머리를 알으셧다. 그러나 우연히 홍길동이란 아이가 전이조판서 홍모의 서자임을 아시고 그날로 당장 인형이의 부자를 붓잡아 드리게 하시엿다.
149
길동이 아버지는 우선 옥에 갓다가두고 인형이를불러서,
150
「홍길동이라는 도적이 너의 서동생이지?」
151
하고 손수 무르셧다. 인형이는 죄송하야 이마를 땅에 붙치고,
152
「네, 저의 서동생이올시다, 어려서 집을 떠나 생사를 모르드니 인제 알고보니까 도적의 괴수가 되엿습니다, 즈 애비는 글로 인하여 저러케 병이 위중하게 되엿습니다」
154
「그럼 느이들이 냉큼 잡아드려라, 그러치 안으면 느 부자를 구양을 보낼터이다」
155
「네 그러겟습니다, 그저 애비만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156
인형이는 이러케 잉금님께 다짐을 두고서 그길로 곳 함경땅으로 떠낫다. 아버지는길동이의 신변을 염녀하여 병환이 낫고 늘 자리에서 신음하시는 중이엿다. 그몸으로 구양을 가신다면 생명이 위험하실것이다. 그럼 아버지의 병환을 위하여 또는 여지껏 충신이엿든 문벌을 위하야 하루 밧삐 길동이를 아니 잡을수 업다.
157
그러나 길동이에게는 극히 교묘한 재주가 잇다. 그대로는 감히 잡지 못할것을 미리 알고 함경땅에 와서 궁리궁리 하엿다. 그 끝에 함경읍 사대문에다 다음과 같은 글을 써붙엿다.
158
길동이 보아라, 아버지는 네가 집을 나간후 생사를 몰라 병환이 되시엿다. 그리고 지금은 그몸으로 너의 죄로 말미아마 옥중에 가게시다, 너에게도 부자지간의 천륜이 잇거든 일시를 지체말고 나의 손에 와 묵기기를 형으로써 바란다─
159
인형이는 읍내의 집 하나를 종용히 치고 길동이가 찾아오기를 매일같치 기다렷다. 어느 날 혼자 안저서 담배를 피고 잇노라니 한 손님이 찾아왓다. 얼른 보니 의복은 비록 어른과같이 차렷으나 아직도 어린티가 보이는 길동이 아닌가─
161
하고 인형이는 그 손목을 탁 붙잡자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그리고 한참을 지난 뒤에,
162
「그전일은 모도 내가 잘못햇다, 지금 아버지가 병환이 위독하시니 너는 잘 생각하야 내손에 붙잡혀주기 바란다」
164
길동이는 아무 말 업고 다만 맘대로 무끄란듯이 두손을 앞으로 내밀엇다. 인형이는 그 손을 쇠사슬로 잘 무꺼가지고 그날로 서울을 향하야 떠낫다.
165
길에서는 길동이가 잡혀온다는 소문을 듯고 모도들 구경을 나왓다.
167
「저 양반이 우리에게 쌀을 논아주신길동이시다」
168
하고들 수군거리며 어떤 사람은 그 옆을 지날제 절을 하는이도 잇엇다.
170
대궐안으로 인형이가 길동이를 끌고 들어스니, 놀라운 일이라, 다른 사람이 또한 길동이를 무꺼가지고들어온다. 그리고 조곰 잇드니 또 다른 길동이가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이러케 하야 순식간에 궁전앞뜰에는 여덟 길동이가 쭉 들어섯다.
171
거기에 모여섯든 대신들은 눈들을 크게 뜨고 벙어리같치 벙벙하엿다.
173
「이놈들! 대체 어떤 놈이 정말 길동이냐?」
174
하고 된통 호령을 하시엿다. 그러니까 여덟 길동이가 제각기 서루,
177
「제가 정말 길동이면서 괜히 날보고 그래」
178
하고 성을 내인다. 마는 얼굴도 똑 같고 키도 똑 같고 심지어 그 음성까지도 조곰도 다른 곳이 업섯다.
179
노하셧든 잉금님도 하 기가 막히어 멀거니 넉슬일흐셧다. 그리고 한참 궁리하시다가 급기야 길동이의 아버지를 옥에서 뜰로 끌어내게 하셧다.
180
「애비면 알터이니 정말 길동이를 찾아내여라─」
181
「네 황송합니다. 제 자식 길동이는 왼쪽 다리에 붉은 점이 잇사오니 곳 찾아내겟습니다」
182
하고 아버지는 병에 야왼 해쓱한 얼골을 땅에 박고 절을하드니 길동이를 돌아보고는,
183
「이놈! 여기에 잉금님이 계시고 또 느이 애비가 잇는데 발칙스리 이놈!」
184
하고 호령은 햇으나 그자리에 피를 쏟고 푹 고꾸라지고 말엇다. 병으로 가뜩이나 쇠약한데다가 또 내자식이 왕께 죄를 졋구나 하는 원통한 생각에 고만기절되고 만것이엇다.
185
여러 대신들은 대경실색하야 일변 물을 떠다 먹인다 혹은 사지를 주물러준다하며 모도들 부산하엿다.
186
잉금님도 가만히 보시다가 가엽시 여기시고 당신이잡숫는 명약까지 갖다 먹이게 하셧다. 그래도 피여나질 안코 그냥 꼿꼿이 굳고 말엇다.
187
그제에야 여덟 길동이가 제각기 주머니를 훔척훔척 하드니 환약 하나식을 끄내들고 저의 아버지의 입에다 차례차례로 너어주엇다. 하니까 죽엇던 아버지가 기지개를 한번 쓱 하고 그리고 손등으로 눈을 부비며 일어난다.
188
이때에 여덟 길동이가 잉금님 앞에 나아와 공손히 절을 하고 하는 말이,
189
「잉금님께서 길동이를 잡고자 하셧스나 실상은 아무 죄도 업사외다. 백성들의 피를 긁어먹고 사는 감사들의 재물을 뻿어다가 빈한한 농민에게 풀어주엇으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앞으로는 저를 잡으려하시든 그 명령을 걷어주시기 바라나이다」
190
그리고는 여덟 길동이는 하나식 둘식 땅에 가 벌떡벌떡 나가자빠지고 만다.
191
잉금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입을 멍헌이 벌리었다. 왜냐면 곧 달겨들어 씨러진 길동이를 암만 뒤져보니 정말 사람 길동이가 아니라 죄다 짚으로 맨든 제웅이엇든 까닭이다.
193
그것은 꽃들이 만발한 그리고 따뜻한 봄날이엿다. 장안 백성들은 사대문에 붙은 이상스러운 저의를 처다보며 입입이 수군거리고 하엿다. 그 조히에는 이러한 글이 씨워잇셧다.
194
홍길동이는 암만해도 못 잡는 사람이니 그의 소원대로 병조판서(兵曹判書)의 벼슬을 시켜주시라. 그러면 잉금님의 그 은혜를 갚기 위하야 마즈막 하직을 여쭙고 부하들을 데리고 멀리 조선을 떠나리라─
195
대신들은 이것을 보고 서루 의론하여 보앗다. 홍길동이 이놈을 제원대로 병조판서를 시켜주면 그 은혜를 갚고자 대궐로 하직을 올것이다. 그때 문간에서여럿이 도끼를 들고잇다가 밧그로 나오랴할제 달겨들어 찍어죽이면 고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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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금님께 이 뜻을 아뢰고 그날 저녁때로 사대문에 방을 붙치게 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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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이에게 병조판서의 벼슬을 나리셧다. 낼로 와 인사를 여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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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튼 날 점심때가 좀 지내서이다. 남문으로 한 도련님이 나귀를 타고 들어오니 이것이 즉 길동이엿다. 군중은 길동임을 대뜸 알고 서루 눈짓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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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양반이 길동인데, 잡힐랴고 저러케 들어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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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지금 병조판서를 하러 들어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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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들 경사나 만난 듯이 쑥떡쑥떡 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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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로 지나며 길동이는 자랑스럽게 떡 버티고 궁전으로 들어갓다. 잉금님 앞에 가 절을 깍듯이 하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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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죄가 큰데도 용서하시고 병조판서까지 나리어 주시니 너머나 감사합니다. 약속대로 지금 곳 멀리 조선을 떠나겟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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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뒤에서는 길동이 나오기를 고대하여 손에 땀이 나도록 도끼를 힘껏 잡고 잇섯다. 그러다 길동이가 문간으로 나오는것을 보고 틀림업시 머리우에 나려지도록 도끼를 꼭 견양을 대고 잇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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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길동이는 어느 틈에 알앗는지 문간까지 한 서너 발자욱을 남기고 공중으로 후루루 솟아 흰 구름을 타고 가는것이 아닌가. 모두들 고개를 들고 닭쫓든 개모양으로 하눌만 멀뚱이 쳐다보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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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금님도 그제야 길동이의 참 재조와 그 인격을 아르시고 비로소 뉘우치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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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길동이을 신하로 데리고 일을 하엿드면 얼마나 행복이엿을가, 또는 얼마나 정사을 편히 할수가 잇섯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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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 생각하시고 옆에 서잇든 신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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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멀리 노처버린 길동이를 매우 아깝게 말슴하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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