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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金剛山)의 야계(野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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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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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金剛山)의 야계(野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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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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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消冬)이라는 말은 없어도 소하(消夏)라는 말은 있다. 소동이라는 말이 없는 대신에 월동(越冬)이 라는 말은 있으나 월동과 소하라는 두 개념 사이에는 넘지 못할 상극(相剋)되는 두 내용이 있다. 월동이라 하면 그 추운 겨울날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입고서 살아 넘길까 하는 궁상(窮狀)이 틀어박혀 있고, 소하라는 말에는 먹을 것 입을 것 다 걱정 없이 한여름을 어떻게 시원하게 놀고 지낼까 하는 유한상(有閑相)이 서려 있다. 어원적(語源的)으로 이 두 개념 속에 다른 의미가 있을는지 모르나, 적어도 우리의 생활에서 해석되는 내용은 이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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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과 소하 간에는 이 외에 인습적(因襲的)으로 틀에 박힌 원시적(原始的) 경제관념의 해석이 있는 듯하다. 즉 춘생하실추수동장(春生夏實秋收冬藏)이라는 공식적 관념이 그다. 이 중에 동장(冬藏)만은 제 것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 따라서, 월동이란 것이 위에 말한 바와 같이 궁상맞은 것인 줄은 다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하실(夏實)만은 아직도 탐탁하게 생각지 않은 모양이어서, 여름이 오면 소하놀이를 하면서도 월동에서와 같이 생활의 궁박(窮迫)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하실이라 하여도 먹을 것이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요, 입을 것이 거저 생길 것이 아니다. 안 먹고 안 입고 살지 못할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산에나 들에나 맺히고 열리는 실과(實果)나 채소(菜蔬)가 겨울에는 볼 수 없는 일이요, 널리고 깔린 것이 그것들이니까 모두가 제 것같이 생각되고, 비록 제 것이 아니로되 한두 개 집어먹어도 괜찮은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격 차려 쌓아 둔 듯이 걱정하는 소리는 없고, 너도나도 ‘소하, 소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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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깔리고 널린 오이 하나나 참외 하나라도 집어 보아라. 그렇게 쉽사리 ‘어서 가져갑쇼’ 하고 가만히 있을 자는 고사하고, 이 편에서 병신 될 각오를 하고 나서기 전엔 껍질 하나라도 얻어 보지 못할 것이니, 그러기에 소동파(蘇東坡)가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사물에는 각기 주인이 있으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일지라도 취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것도 요컨대 한 개의 반어(反語)이다. 너는 너대로 네 것으로 살지 남의 것일랑 달라지 말라는 소리다. 이렇게 보면, 소동파도 무던히 약은 사람이다. 우리같이 여름이건 겨울이건 아침 여덟시 아홉시부터 저녁 다섯시 여섯시까지 매달려 벌어야 그날 살 수 있는 사람에게는 소하(消夏)이고 월동(越冬)이고 그것이 그것이다. 소하라야 여름내 사무실에 붙어 있는 것이 소하요, 월동이라야 겨우내 사무실에 붙어 있는 것이 월동이다. 덥다고 산으로 바다로 더위를 도피할 팔자도 못 되고, 춥다고 온천으로 들어갈 신세도 못 된다. 이러고 보니 바다에서 이 소하의 기화진담(奇話珍談)이 있을 리 없다. 어느 물 건너 무사(武士)들은 여름에는 사람을 밀폐된 방에 모아 놓고 솜옷을 뜨뜻이 입고 이글이글 피는 화로를 수십 좌(座) 들여놓고 펄펄 끓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소하법(消夏法)을 삼고, 겨울에는 얼음장 방에 벌거벗고 앉아서 부채질을 하여 가며 얼음을 먹는 것으로 월동법(越冬法)을 삼았다 한다. 이것은 물론 심신단련(心身鍛鍊)을 위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소하, 소하’ 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우화(萬話)같이도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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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생활이 아무리 사무실 속에서 얽매인 생활이라 하여도 산에나 바다를 영영 가 보지 못하고 마는 것은 아니다. 산에를 가도 일을 가지고 가고, 바다를 가도 일을 가지고 간다. 소하를 위하여 가는 것도 아니요, 기화진담을 들으러 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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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을 가지고 다니는 우리에게도 왕왕이 기적이 현출(現出)된다. 그것은 이삼년 전에 금강산(金剛山)을 갔을 적 일이다. 장안사(長安寺)에서 곧 마하연(摩訶衍)까지 치달아 올라가 그곳 여관에서 자게 되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그때에는 조선인의 경영이 아니었다. 때는 장마 전이었으나 산속이라 그러한지 오후부터 안개가 자욱하더니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였고 날은 매우 추웠다. 여관에 들며 행장(行裝)을 풀기도 전에 불을 때라 하고 마루로 올라서니 통나무널이 제멋대로 덜컹거린다. 방이라고 들어서니, 널찍하고 정하기는 하나 연기가 자욱하여 들어앉을 수가 없다. 게다가 석유등잔의 기름내가 사람을 꽤 못살게 한다. 이만 못한 생활도 못한 바 아니나, 그래도 도회(都會)서 전등 밑에 좀 살았다고 상(常)말에 올챙이 생각은 아니 하고 호강스러운 마음만 들어 괴롭기 짝이 없다. 그럭저럭 저녁때가 되니까 여급(女給)이 둘이나 들어와서 시중을 든다. 원래 여급이 둘밖에 없다 하고, 더욱이 손이라고는 그때의 우리 일행인 두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총출동격(總出動格)이 된 모양이다. 하나는 무엇을 그리 먹고 살이 쪘는지 나이는 서른 전후인 듯하나 역사(刀士) 이상의 체격이었고, 하나는 꽤 못 얻어먹고 늙은 듯하여 시든 외같이 생긴 마흔 전후의 여자였다. 그래도 그것이나마 여자라고 저윽이 여정(旅淸)의 위로―참말로 위로가 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은―되는 듯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상놈이 양반 사람의 시중을 받으니 더욱이 영광(?)스러운 일 중의 하나도 되는 듯하였다. 저녁이 끝나자, 처음부터 그랬지만, 동행이 실없는 농담을 함부로 털어놓으니까 절구통 같은 여자는 자러 간다고 가고, 명태같이 마른 여급이 좋아라고 수작이 늘어난다. 수작이 웬만큼 어우러져 가니까, 한방에서 같이 자야 할 동행이 마침 내 자리를 다른 방으로 펴라 하고, 그 여급과 옮기고 말았다. 나는 ‘에이 시원하게 잘되었다’ 하고 자리에 누우니, 자려야 잘 수가 없었다. 이때까지 농담 수작 떠드는 바람에 모르고 있었으나, 바람 부는 소리, 나무 우는 소리는 집을 뒤흔들고 마루청이 들먹거리고 문창지가 요란하다. 바위를 치고 쏟아져 내려가는 물소리는 처음부터 베개 밑에서 나는 것 같더니, 조금 있다가는 자리 밑에서까지 나는 것 같고, 우렛소리 번갯불이 뒤섞여서 위협을 한다. 이 소리가 잠깐 잔 듯하면 옆방에서 이상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무섭고 휘원하고 쓸쓸하고 섭섭하고, 도무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신경이 무던히 과민해졌다. 자리에 누워만 있지도 못하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니, 가끔 철없는 아이 모양으로 집 생각까지 나게 된다. 이러그러 억지억지 잠이 어렴풋이 들락말락하니까 장작 패는 소리, 머슴 떠드는 소리에 날은 밝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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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밝아도 비는 여전히 들지 않았다. 가는 비, 보슬비, 소낙비 제멋대로 섞여 온다. 아침때가 되니까 자리를 옮겼던 아담과 이브가 다시 몰려 왔다. 아담은 눈이 패고 허리를 못 쓰고 기운을 못 쓸 만큼 쇠약해진 모양이나, 이브는 어투가 만족을 못 느낀 모양이다. 비는 오고 날은 추우니까 이불을 펴놓은 대로 추태 부려 가며 여전히 농거리가 흩어진다. 이브는 넙적다리, 젖통이 함부로 들락날락하고, 뒹굴며 뒤적거리며 에로를 성(盛)히 발산한다. 이 이브를 시든 오이 같다고 형용하였지마는 아직도 로댕(A. Rodin)이 만든 〈창부(娼婦)였던 여자〉의 상(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그를 옹호할 만큼 뇌쇄(腦殺)될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도 과거에는 창부였다 하지만, 로댕과 같이 예술적 가치조차 찾아낼 만한 존재가 못 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브가 전날 밤의 미흡을 나에게서 얻으려고 하였다. 비가 오니 못 갈 것이라는 둥, 하루 더 쉬었다 가라는 둥, 부인이 딱정떼냐는 둥, 별별 소리가 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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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다가 생각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전년의 청도(靑島) 해수욕장에 들렀을 적에 수정보(數町步)나 되는 사장(沙場)에서 참말로 뇌쇄당한 일이다. 이 해수욕장은 동양에서 좀 과장된 형용사이나 제일가는 곳이라 하는 만큼 화려하고 번화하였다. 사장 어귀에는 중화군(中華軍)인지 수비대(守備隊)인지 출장소 같은 곳도 있고, 몸에 안 맞는 푸른 군복을 입은 군인이 창검(槍劍)을 번쩍거리며 있고, 사장 끝에 도출된 갓곶이에는 왕년의 호위(虎威)를 보이던 독일군의 포대(砲臺)가 황폐된 채로 위용을 보이고 있다. 우거진 수풀 사이마다 호텔·별장 등 커다란 붉은 지붕의 양옥(洋屋)이 흩어져 있고, 사장을 끼고 뻗친 탄탄한 대로(大路)에는 티끌 하나 내지 않고 자동차가 내왕하였다. 안온(安穩)히 욱어든 앞섬은 황해(黃海)의 위용(偉容)을 끌어안고, 남청색 수파(水波)는 발밑까지 잔잔하였다. 그곳에 모인 군상(群像)은 수만이라 하면 백발삼천장식(白髮三千丈式)의 한 형용(形容)이지만, 적어도 수천은 되었다. 그리고 조선 양반이란 나 하나, 중국인으로는 전에 말한 군인 몇 사람 외에는 인력거꾼과 레스토랑의 보이들뿐이요, 가끔 모던보이 같은 것이 섞여 있으나 역시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고, 군중의 전부가 색다른 양종(洋種)들뿐이었다. 거의가 양키들 같으나 국별(國別)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쩐지 나의 눈에는 남자보다도 여자가 더 많은 것같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물속에서, 모래밭에서, 천막 속에서, 일산(日傘) 밑에서 하체만 가린 듯 만 듯한 순나체(純裸體)에 가까운 육체를 아낌없이 데뷔하고 있다. 게다가 그 능글맞게도 충실한 곡선을 흐느적거리며 폭양(曝陽)의 세례를 받고 있다. 어떤 것들은 남녀가 짝을 겨누어 모래밭에서 실연(實演)에 가까운 모션까지 연출하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것이나 핏덩이가 마르지도 않은 것이나 차(差)가 없었다. 나는 생전 처음 이러한 광경을 원관(遠觀)하고 설완(褻翫)도 하였으나 호기심보다도 오히려 그것을 지나쳐 뇌쇄의 정도가 컸다. 대체 내가 현대의 사람이고 저 사람들이 과거의 사람인가, 내가 과거의 사람이고 저 사람들이 현대의 사람인가, 또는 내가 현대의 사람이고 저 사람들이 미래의 사람들인가, 내가 미래의 사람이고 저 사람들이 현대의 사람들인가. 완고(頑固)한 것을, 상말에 십팔세기 유물이라 하지만, 이때의 나는 십팔세기커녕 십삼사세기 교부시대(敎父時代)의 사람같이도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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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나는 뇌쇄를 무던히 당하여 가면서도 남이 보면 연연(戀戀)해서 못 떠난다고 할 만큼 관광하고 있었으나, 이날 금강산에서 당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나에게 현실된 문제이다. 소위 추파(秋波)라는 것을 지나친 그 상사(想思), 뱀 같은 안광(眼光), 외람(猥濫)한 언사(言辭), 과음(過淫)된 행동, 나는 진저리를 치고 몸이 떨렸다. 이때껏 수절(守節)한 동정(童貞)을 네게 빼앗겼으랴, 집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이 몸은 장차 오십삼불(五十三佛)을 배관(拜觀)하고, 도쿄(東京)·교토(京都) 등의 대학에서까지 와서 촬영하려다가 못 하고 간 그 오십삼불을 일일이 촬영하러 가는 나다. 석가(釋迦)를 본받아 설산(雪山)의 여마(女魔)를 극복할 용기는 없다 하더라도, 불벌(佛罰)이 무섭도다. 더욱이 이번 여행에는 안 될 걸 하러 간다고 총독부박물관장(總督府博物館長)까지 빈정대고 말리는 것을 장담하고 나선 내가, 만일 오십삼불을 일일이 촬영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날에는 조소(嘲笑)만이 나를 환영할 것이요, 체면은 보잘것없이 사라지는 날이요, 장래의 신망(信望)까지 없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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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뿌리치고 일어나서 행낭을 둘러메고 미련이 남은 듯한 동행을 독촉하여 비를 맞으며 나섰다. 이리하여 나의 목적인 유점사(楡岾寺)의 오십삼불의 촬영은 완전히 성공하였다. 이것이 지금 경성대학(京城大學)에 남아 있는, 현재 가장 완전히 잔존된 오십삼불의 유일한 원판(原板)이다. 이때의 일을 생각하니, 당시에 소개장을 써 주신 이혼성(李混惺) 씨와, 곤란을 무릅쓰고 편의를 도와주신 김재원(金載元) 씨 및 제씨(諸氏)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다시금 난다.
【원문】금강산(金剛山)의 야계(野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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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4년 07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