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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9년
조위(曺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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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기(葵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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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曺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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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주로 귀양간 이듬해 여름이었다. 세든 집이 낮고 좁아서 덥고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채소밭에서 좀 높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골라 서까래 몇 개로 정자를 얽고 따로 지붕을 덮어놓으니 대여섯 사람은 앉을 만했다. 옆집과 나란히 붙어서 몇 자도 떨어지지 않았다. 채소밭이라고 해야 폭이 겨우 여덟 발인데 단지 해바라기 수 십 포기가 푸른 줄기에 부드러운 잎을 훈풍에 나부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 걸 보고 이름을 규정(葵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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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가운데 나에게 묻는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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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해바라기는 식물 가운데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여러 가지 풀이나 나무 또는 꽃 가운데서 어떤 이는 그 특별한 풍치를 높이 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향기를 높이 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난이나 혜초로 자기가 사는 집의 이름을 지었지 이처럼 하찮은 식물로 이름을 지었다는 말은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 했습니다. 당신은 해바라기에서 무엇을 높이 산 것입니까? 이에 대한 말씀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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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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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한결같지 않은 것은 그리 타고나서 그런 것입니다. 귀하고 천하고 가볍고 무겁고 하여 만의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해바라기는 식물가운데 연약하고 보잘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더럽고 변변치 못하여 이보다 못한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난초 혜초는 식물 가운데 굳고도 세어서 특별한 풍치가 있거나 향기를 지난 것들입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무리에서 뛰어나며 세상에 우뚝 홀로 서서 명성과 덕망이 우뚝 한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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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황량하고 머나먼 적막한 바닷가로 쫓겨나서 사람들은 천히 여겨 사람대접을 하지 않고 식물도 나를 서먹하게 내치는 형편입니다. 내가 소나무나 대나무 같은 것으로 나의 정자 이름을 짓는다해도 또한 그 식물들이 수치가 되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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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사람으로서 천한 식물로 짝하고 먼데서 찾지 않고 가까운데서 취했으니 이것이 나의 뜻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천하에 버릴 물건도 없고 버릴 재주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저귀나 샅바귀 무나 배추 같은 하찮은 것들도 옛사람들은 모두 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해바라기는 두 가지 훌륭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바라기는 능히 해를 향하여 그 빛을 따라 기울어집니다. 그러니 이것을 충성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또 분수를 지킬 줄 아니 그 것을 지혜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대개 충성과 지혜는 남의 신하된 자가 갖추어야 할 정조이니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겨 자기의 정성을 다하고 지혜로써 사물을 분별하여 시비를 가리는 데 잘못됨이 없는 것. 이것은 군자도 어렵게 여기는 바이지만 내가 옛날부터 흠모해 오던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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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두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는데도 연약한 뭇 풀들에 섞여 있다고 해서 그것을 천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이로써 말하면 유독 소나무나 대나무나 매화나 국화나 난이나 혜초만이 귀한 것이 아님을 살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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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비록 귀양살이를 하고 있지만 자고 먹고 하는 것이 임금님의 은혜가 아님이 없습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밥을 한 술 뜨고 나서 심휴문(沈休文)1)이나 사마군실(史馬君實)2)의 시를 읊을 때마다 해를 향하는 마음을 스스로 그칠 수가 없었으니 해바라기로 나의 정자 이름을 지은 것이 어찌 아무런 근거도 없다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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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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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는 알고 둘은 알지 못했는데. 그대 정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할 것이 없어졌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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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배를 잡고 웃으면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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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유월 상순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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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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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沈休文 : 중국 양나라 무강 사람. 이름은 약(約). 자는 휴문(休文). 박학하고 시문에 뛰어났으며 특히 음은 학의 태두로서 사성(四聲)연구의 개조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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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史馬君實 : 중국 북송 때의 학자. 정치가. 이름은 광(光). 자는 군실(君實).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자치통감(自治通鑑)을 편찬했다.
【원문】규정기(葵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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