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42] 조선 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 본관은 전주. 이름은 춘(椿)이며, 초명은 선래이다. 아버지는 천호
이행리이고, 어머니는 등주 최씨 호장 기열의 딸로, 도조는 이들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394년(태조 3) 이성계가 자신의 4대조를 추존(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왕의 칭호를 올리는 일)할 때 도왕이라 하였다가 2년 후 다시 도조로 격상시켰다.
원나라로부터 아버지의 천호 관직 계승과 함께 발안첩목아라는 몽고식 이름을 받았다. 처음에 박씨와 결혼하여 탑사불화와 자춘을 낳았으나, 얼마 후 박씨가 죽자 쌍성총관의 딸 조씨와 재혼하였으며, 이 때 의주에서 화주(지금의 함흥)로 거처를 옮겼다. 그가 화주로 거주지를 옮긴 까닭은 그 곳이 농업과 목축에 편리하다는 점도 있었지만 후처인 조씨가
조휘의 손녀이므로 처가의 정치적 세력을 이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뒤에 자손들 간의 후계자 쟁탈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334년(충숙왕 복위 3)부터 풍질을 앓게 되자 전처 소생인 탑사불화에게 가계를 계승시키려 하였으나 후처인 조씨는 그녀의 맏아들인 완자불화에게 계승시키기를 원하였다.
한편, 그 해에 원나라에서는 중서성 차관으로 하여금 행리를 따라온 오동의 백성 중 일부분을 가려내어 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원류 이민을 분리시켜 그 세력을 약화하려는 의도였으며, 이러한 원나라의 책동 배후에는 이춘의 후처인 조씨가 개입되어 있었다.
얼마 후 이춘이 죽자 그의 적자인 탑사불화가 아버지의 직무를 이어받았으나 2개월 뒤에 죽으니, 이로 인하여 전처 소생과 후처 소생 간에 본격적인 후계자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탑사불화의 아들 교주의 나이가 아직 어리자 이를 핑계로 하여 조씨의 자식인 나해(그의 동복형 완자불화는 이 때 사망한 듯함)가 야심을 품고 외가인 조총관의 세력을 배경으로 관직을 세습하려 함으로써 마침내 조카 교주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전처 소생과 후처 소생 사이의 갈등은 후계자 쟁탈전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춘의 전처 박씨는 오동의 백호 박광의 딸이고 탑사불화의 처, 즉 며느리인 교주의 어머니도 박씨였으므로 두 세력의 다툼은 결국 남방 유이민의 후예인 박씨 세력과 북방의 조씨 세력 간의 대결이 되었다. 이들의 대결은 이춘의 상 중에 원나라에서 직첩으로 내린 선명과 인신( 도장)을 나해가 훔쳐감으로써 절정에 달하였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자 교주의 숙부인 이자춘은 형수 박씨에게 교주를 데리고 개원로에 가서 앞뒤 사정을 호소하게 하였고, 결국 원나라에서는 조씨는 적실이 아니므로 조씨 소생은 세습할 자격이 없으며, 교주는 아직 나이가 어리므로 그가 장성할 때까지 그의 숙부인 자춘이 직무를 이어받을 것을 명함으로써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이 때 원나라에서 박씨 세력을 옹호한 것은 쌍성총관으로 당시 막대한 권력을 쥐고 있던 조씨가 더 많은 세력을 독점하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춘의 능은 함흥에 있는 의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