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추존왕으로, 도조(度祖)의 아버지, 환조(桓祖)의 조부, 태조(太祖)의 증조부이다. 이름은 이행리(李行里)이다. 조선 개국 이후 증손자인 태조에 의해 익왕(翼王)으로 추봉되었다가 고손자인 태종 때 익조(翼祖) 강혜성익대왕(康惠聖翼大王)으로 재추봉되었다.
능(陵)은 함경남도 안변군에 위치한 지릉(智陵)으로 아내인 정숙왕후(貞淑王后) 최씨(崔氏)의 능(陵)인 숙릉(淑陵)은 함경남도 문천군에 위치해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275년(충렬왕 1)에 아버지로부터 천호 및 다루가치(達魯花赤)의 직을 세습하였다. 그가 알동(斡東)에서 세력을 다지고 있는 동안 원나라의 세조는 일본 침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원나라의 명령을 받고 본소(本所)의 군인을 선발해 원정군에 협력하였다.
이 무렵 그가 충렬왕을 알현한 기사가 『고려사』에 실려 있다. 그는 엄연히 원나라의 신하가 된 역신인데도 충렬왕은 그를 옛날의 신하로 온건하게 대하였다. 그도 충렬왕에게 고려를 배반한 죄과를 용서해 줄 것을 빌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알동에 살면서 안변 · 화주 · 함주에도 자주 내왕하여 활동영역을 넓혔다. 1300년에 원나라로부터 승사랑의 산계(散階)를 받은 것은 부원세력으로서 확고한 기반을 닦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아버지 안사 때와는 달리 여진인과 마찰을 빚었다.
그것은 이때 원나라의 통치력이 약화하고 원장(元將) 산길(散吉)의 영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여진인들은 기성(崎城)을 정찰하는 도중에 그를 제거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두만강 하류의 적도(赤島)로 피해 화를 면하였다.
알동의 주민이 이 곳으로 옮겨와서 한동안 같이 살았다. 1290년(충렬왕 16) 직도(稷島) · 추도(楸島) · 초도(草島)의 재목으로 배 10척을 만들어 뱃길로 연고지인 의주로 옮겨와서 살다가 죽었다. 능은 지릉(智陵)으로 안변 서쪽 서곡현(瑞谷縣)에 있다.
【인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