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 ~ 1599] 조선의 왕족 출신 무신이자 군인이다.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경 또는 자홍(子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7대손이다.
1576년(선조 9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변방에서 야인들을 격퇴하였으며 1587년 경흥부사(慶興府使)가 되었는데 오랑캐가 녹둔도(鹿屯島)를 침공하자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과 함께 이를 격퇴했으나 10명이 전사하고 160명의 병력이 여진족의 포로가 되는 등 피해가 많아
이일의 탄핵으로 파면되고 백의종군하였다. 1588년 다시 오랑캐가 침입하자 선봉으로 물리쳐 그 공으로 복권되고, 나주목사로 천거되었다가 대간의 반대로 김해부사(金海府使)로 부임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나주목사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터지자 의병장
김천일(金千鎰)을 도와 전공을 세우고 이후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1593년 제주목사(濟州牧使)가 되었다.
임진왜란 동안 7년여를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왜적의 침입에 방비를 하여 선조가 비망기를 내여 품계를 가자하기도 하였다. 절도에서 7년간 성실히 근무한 공로로 가선대부로 승진했고, 제주도 임지에서 부친상을 당하였다. 한편 정병 3백명을 선발하여 임금을 지키겠다는 장계에 임금을 감동시켰고, 제주도 토산물을 해로를 통해 안전하게 의주행재소까지 진상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성산 외성을 쌓다가 풍토병에 걸려 1599년 1월에 임지에서 사망했다.
사후 아들
이서의 인조 반정 참여 공로로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으로 추증되고 완풍부원군(完豊府院君)에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