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全羅左道水軍節度使營), 줄여서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은 조선 시대 전라도의 동쪽에 존재하던 수군절도사영이다. 지휘관은 정3품 당상관인 수군절도사이다. 이름이 좌(左)수영인 것은 한양에서 남해 쪽을 바라보았을 때 전라도의 왼쪽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삼도수군통제영 휘하 수영중 유일하게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수영이었던
진남관 그리고 선소 그리고 기타 시설물 등 그리고 한민족의 성웅인 충무공 이순신의 승전에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기에 여수시에는 충무공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상세
전라좌수영은 1479년(성종 10년) 기존 고려시절부터 있었던 전라도수영을 분리하면서 해남에 있는 수영(전라우수영)에서 독립한 수영으로, 순천도호부의 내례포에 있는 진을 철폐하고 수영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졌다. 전라좌수영성은 영이 설치된 직후 전라좌수사 박양신에 의해 성종 16년(1485년)부터 수축되기 시작하여 성종 21년(1491년)에는 완성되었다. 『호좌수영지』ㆍ『성종실록』에는 성곽의 둘레 3,634척(약 1,133.44m), 동서 1,200척, 남북 908척으로 동서가 약간 긴 형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성내의 샘도 6곳과 7곳으로 기록되어 있어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1847년의 기록인 『호좌수영지』에는 체성 주위가 3,158척, 여첩 437좌, 총혈 1302, 곡성 6처에 포루와 화포기 각각 6좌, 성내 민가 2024호, 천정 성내 7곳 성외 2곳, 연못 1처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좌수영성은 조선 후기까지도 중요한 수군영으로서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에는 객사 건물인 진남관과 일부 성터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장수인
이순신이 이곳 전라 좌수영의 지휘관 전라좌수사여서 다른 수사들에 비하여 인지도가 가장 높다. 임진왜란 ~ 정유재란 사이의 정전 기간 동안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였다. 이후 이순신이 일시 파직되면서
원균이 후임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가, 그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자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바가 있다. 이 때 패전으로 전라좌수영 본영의 시설들은 파괴되었고 임진왜란 이후에 복구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1601년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을 겸하기도 했는데, 그 이후에는 경상우수사
이시언이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하고 경상우수영을 통제영과 겸하면서 바뀐다. 이시언이 통상대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전라좌수영 부지에 세운 객사인
진남관은 오늘날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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