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 ~ ] 조선후기 『초산잡저』를 저술한 서화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미재(美哉), 호는 학산목재(學山木齋)·초산(樵山)·정암(鼎庵). 보통 학산(學山)이라 불렸다. 벼슬은 직장(直長)에 그쳤다. 어린 시절에 집안의 고화법서(古畫法書)를 보고 화보풍(畫譜風)의 산수와 화훼(花卉)를 배웠다.
당대의 유명한 서화가
조희룡(趙熙龍), 의관(醫官)
이기복(李基福) 등과 교유가 깊었으며,
김정희(金正喜)를 따라 명승지를 편력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초산잡저(樵山雜著)』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