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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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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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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이방익이 지나간 선하관(仙霞關) 제주 출신 이방익 일행이 걸었던 아치형 관문 선하관(仙霞關)은 중국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선하관은 처음에 다섯 개의 관문이 있었지만, 네 개의 관문만 보존되어 있다. 선하관은 한국의 문경새재처럼 1관에서 4관까지 가는 길이 1시간 이상 소요되는데, 경관이 뛰어나고 중간에 쉴 곳이 많아 탐방객이 아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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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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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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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에는 968개의 전통 사찰(절, 가람, 승원)이 등록되어 있으며 총 사찰 수는 17,100 개로 추정합니다. 유명한 사찰들은 전망이 좋은 산자락이나 풍광 좋은 곳에 위치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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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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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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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湖口望廬山瀑布水〉와 작자 張九齡 및 주요 단어(張九齡, 鄱陽湖, 廬山, 紅泉, 迢迢, 紫氛,灑落, 重雲, 虹蜺, 靈山, 氤氳 .... 등)에 대해서 설명 ; (2)改의 甲骨文과 《說文解字》에서의 문자학적 의미 설명 ; (3춘추시대 제후국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당시 商人들의 정치활동에 관하여 설명 ; (4)《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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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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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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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한산도대첩’의 원래 명칭은 ‘견내량해전’이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선조 임금에게 보낸 장계 〈견내량파왜병장〉에서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해전의 이름은 전투가 최초 일어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옥포해전이나 사천해전, 합포 및 적진포, 당포해전도 마찬가지로 전투가 최초 일어난 지역의 이름을 붙여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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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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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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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엽이었다. 해주, 충주 목사를 지내고 영의정에 해당하는 시중(侍中)을 거쳐, 창녕 부원군(昌寧府院君)에까지 봉해졌던 성여완(成汝完)이, 난세를 피하여 이곳 ‘왕방산(王方山)’ 아래에서 우거(寓居)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등극하게 된 이성계가 지금의 신북면 심곡리와 신읍리 사이에 가로놓인 고개를 넘어, 예를 갖추어 이곳 성여완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씨 조정에 입조(入朝)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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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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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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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큰아들이 바보라서 그것이 늘 걱정이었다. 어느 날, 두 아들이 산 중턱에 있는 밭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노루 한 마리가 콩잎을 따 먹으러 밭 가까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것을 본 형제는 그 노루를 잡으려고 쫓아갔다. 그러나 이 낌새를 챈 노루는 벌써 멀리로 도망쳐 버렸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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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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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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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子夜吳歌-秋歌-〉와 작자 李白 및 주요 단어(萬戶, 擣衣聲, 總是, 玉關, 玉門關, 胡虜, 良人, 郞君, 罷, 遠征...... 등)과 古體詩와 近體詩의 비교 등에 대해서 설명 ; (2)《詩經》〈小雅·大東〉「東人之子, 職老不來」에서 來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 ; (3)《史記》〈淮陰侯列傳〉 原文 독해 및 一飯千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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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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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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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하여 부르는 단가(短歌)의 하나. 조선조 말기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곡으로 민족항일기에 가장 많이 불린 곡 중 하나이다. ‘만고강산’이라는 곡명은 첫머리의 “만고강산 유람할제”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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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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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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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방이 바뀌었어요! (1) 화사한 봄날에 고(옛)조선유적답사회가 주관하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답사에 참여했다. 이번 여행은 240여 년 전 연암 박지원이 건륭제 70세 탄신 축하사절의 일원인 자제 군관으로 뽑혀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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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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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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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나서 물이 넘쳐 사람이 많이 죽었다. 많은 사람이 떠내려갔지만 몇몇 사람들은 ‘종자봉’에 올라가 살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자봉’에 올라가 살면서 씨를 퍼뜨려 사람의 씨가 퍼졌다. 그래서 그 곳을 ‘종자봉’이라 한다. 비가 올 때는 ‘종자봉’ 테두리에 구름이 낀다. 그래서 ‘종자봉’ 테두리에 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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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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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 조선 비금도 표착-3 프랑스 제2제국 상하이 주재 샤를 드 몽타니 영사가 이끄는 구조대원들은 포경선 구조를 위해 ‘Tio-sang’ 섬을 찾아 항해에 나섰다. 상하이를 출항한 지 5일 만에 황해 난류를 타고 항해하여 1851년 4월 25일(양력) 제주도 대정현(大靜縣) 해안에 도착했다. 당시 구조대는 지도를 보유했지만, 그곳이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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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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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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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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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다. 하루는 할머니가 물을 뜨러 갔는데 돌아올 시간이 되어도 집에 오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이상히 여겨 나가 보니, 커다란 지네가 바위 밑의 올라오는 길에서 할머니를 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때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벼락이 바위를 쳤다. 결국 지네는 바위에 깔려 죽었고 할머니는 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바위를 ‘벼락바위’라 불렀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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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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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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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산’은 원래 수원에 있는 산이었다. 그래서 수원 사람이 해마다 산(山)값을 받으러 왔다. 수원 사람이 산값을 받으러 어김없이 왔다. 어른들은 꼼짝 못하고 있는데, 열 살 먹은 아이가 나왔다. 그러더니 수원 사람에게 ‘산밑에 묻힌 땅 값을 가져오면 산값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원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버렸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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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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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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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얘기를 아주 좋아하는 대감이 있었다. 이 대감이 얘기를 너무 좋아해서, 얘기를 해주는 사람은 ‘군수 한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단 대감이 얘기를 들을 때 ‘그만하라’ 할 때까지 얘기를 해야 되는 조건이었다. 어느 해에 흉년이 몹시 들었다. 그래도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하니, 어느 젊은이가 대감의 얘기를 듣고 찾아 왔다. 그가 대감에게 다음과 같은 쥐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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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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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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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산골에 밥술이나 먹고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몹시도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찌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지나가는 나그네도 이야기를 하면 대접을 잘하고 하룻밤 묵고 가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나그네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배도 고프고 날도 저문지라, 이 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원래 입담도 없고 이야기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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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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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를 즐기던 어떤 사람이 ‘한 마디에 두 번 대답하기’ 내기에 이겨 큰 부자가 되었다. 내기를 아주 좋아하는 그 사람은 얘기 잘 하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방을 붙였다. 하루는 한 사람이 와서는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을 줄줄이 늘어놓다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러더니 옛날에 우리 집에서 돈을 꾸어 간 적이 있다며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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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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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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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집에서 며느리를 얻었는데 오래지 않아 얼굴이 노랗게 되는 노랑병이 들었다. 시댁 식구들이 까닭을 묻자 며느리는 방귀를 뀌지 못해서 병이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식구들은 시원하게 방귀를 뀌라고 말했다. 그러자 며느리는 식구들에게 집안의 튼튼하고 무거운 물건을 각각 하나씩 붙들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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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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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씨가 아주 착한 이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하러 산에 들어갔는데, 나무를 ‘북’ 긁으니까 개암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 사람이 개암을 주워 넣으며 말했다. “어이구 이건 우리 아버지 드려야지.” 또 한 번 나무를 긁으니, 개암이 ‘툭’ 떨어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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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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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무꾼이 하루는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와서 나뭇단을 풀고 거기에 들어 눕더니 다른 나무꾼에게 그걸 묶어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산 속에 혼자 있는데, 도깨비가 모이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부스럭 소리를 내자 도깨비들이 그 나뭇단을 풀렀다.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오니, 도깨비가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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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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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와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는 도깨비가 많아서 저녁에는 부엌에서 설거지도 하고 밤에는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그릇 챙기는 소리도 나고, 아침에 나와보면 저녁에 제대로 놔두었던 솥뚜껑이 넘어져 있기도 했다. 후에 그 집은 도깨비 장난 때문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헐리게 되었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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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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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병조판서를 지낸 정씨라는 사람이 녹두 서 말을 뿌려놓았다. 그리고는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길 때 소리를 지르면 녹두가 군사가 되어 나올 것이라 했다. 사람들이 임진왜란 때 정씨가 말한 군사를 부르려 했으나, 왜병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정씨의 혈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녹두가 변해서 된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나오다가 목에서 피를 토하며 모두 죽어버렸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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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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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피난을 가지 못한 젊은이가 왕방산에 숨게 되었다.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 젊은이는 주변의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고 목숨을 연장하면서 산신령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하기를 서너 달이 지났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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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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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집에 개 한 마리와 당나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주인이 당나귀에게는 콩깍지만 주고 일을 시켰고, 강아지에게는 일도 시키지 않고 놀고 잠만 자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나귀가 들에서 일을 하고 들어 왔다. 그 때 집에서 낮잠만 잔 강아지가 집에 들어온 주인에게 달려가 귀여움을 받고 있었다. 당나귀는 ‘어떻게 하면 나도 주인에게 사랑을 받을까’하고 생각하다 강아지 흉내를 내기로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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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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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용산댁 할아버지라고 하는 분이 살았다. 하루는 오가리에 가서 콩을 심는데 먹을 것이 없는 궁색한 살림이라 그냥 날콩으로 점심을 먹고는 일을 계속했다. 하루는 콩을 심고 돌아오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끌고 오던 소를 나무에 매어 놓고는 목욕을 하였다. 그런데 목욕을 하다보니 소는 없고 소코뚜레만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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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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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집에는 집을 지켜주는 텃구렁이가 있는데, 그 뱀이 사람에게 보이면 그 집이 망한다고 했다. 하루는 사촌형님이 집에서 큰 뱀을 보았는데 그 후로 사촌 형님이 돌아가시고 집안도 풍비박산되었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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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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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머니가 친구 분하고 도봉산에 도토리를 따러 갔다. 점심을 먹고 바위에 누워 있으려니 하얀 여우가 와서는 ‘와우’ 하고 짖었다. 어머니는 무척 놀랐으나 문득 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옛날에는 여우에게 돌멩이를 많이 집어주면 신이 나서 공기놀이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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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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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개척될 당시부터 살았던 유씨네 집안은 호랑이와 친했다. 호랑이가 유씨네를 잘 따랐기 때문인데 그 일에는 오랜 내력이 있었다. 옛날 옛적, 유씨와 오씨 가문 자손이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 따라 가게 되었다. 길을 가다가 산골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산더미 만한 호랑이가 길을 딱 가로막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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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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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 해가 저물어, 어떤 오두막 집에 찾아들었다. 그 집에는 예쁜 여자가 혼자서 살고 있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사람이 아니라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구렁이였다. 나그네는 기겁을 하고 보따리도 놓아 둔 채, 그곳을 도망치고 말았다. 얼마 동안을 도망치다가 바라보니, 저쪽 산기슭에서 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그네는 그곳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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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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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경기도 포천의 기피울이라는 마을에 할머니 몇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은 가난하여 농사를 지은 양식만으로는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봄철부터 늦은 가을까지 산에서 양식을 구하기도 하고, 산에서 나는 약초나 나물을 캐어 장에 내다 팔아서 양식을 사오기도 하였습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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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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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에 김삼봉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40이 되도록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늘 아들, 딸 가릴 것 없이 소생이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이에 그 부인이 명산에 가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아들이나 딸을 하나 점지하여 달라고 치성을 드렸다. 정성이 지극하여 산신의 은혜를 받았던지, 태기가 있기 시작해 10개월 만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돈’이라 지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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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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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지금의 경기도 포천 지방에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곳에는 해마다 황새들이 몰려와, 소나무 위에서 떼지어 놀기도 하고 새끼도 낳아 오손도손 살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은 황새들이 묵어 가는 마을이라고 하여 언제부터인가 ‘황새묵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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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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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1리 앞에 지금은 수도원이 있으나 옛날 그곳은 아주 커다란 절이 있는 곳이었다. 그 절에서 탑을 올리고 나서 큰 제를 올리겠다고 하며 마을에 소 여덟 마리를 팔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러겠다고 허락을 하였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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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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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수수밭에서 영감, 외아들, 며느리가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떤 중이 지나가다가 시주를 구하자, 며느리는 가난한 형편에도 중에게 자기들의 끼니를 나누어 대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발이 해져서 신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우리 아버님이 짚새기 장사를 하시니, 그 짚으로 신을 만들어 신으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 중을 집으로 먼저 들여 보내고, 그 부자(父子)와 며느리는 일을 마저 끝내고 돌아왔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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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느 산봉우리에서 한 스님이 자신의 눈썹을 떼어, 임경업의 유령 삼촌에게 주었다. “이걸로 저 아래를 한 번 보시오.” 이 때 들에서는 보릿철이라 사람들이 한참 논을 매고 있었는데, 유령 삼촌이 눈썹으로 들판을 보니 사람들은 모두 개로 보이고 한 아이만이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자 중이 갑자기 큰 백호로 변해서 들판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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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시집살이를 모질게 하는 며느리가 있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범의 눈썹을 한 움쿰 뽑아 오지 않으면 내쫓겠다.” 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며느리는 산으로 올라갔는데, 조그만 오막살이집에서 불이 반짝반짝하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혼자서 살고 있었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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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지관에게 묘자리를 물었다. 그런데, 어느 집안이 지관에게 묻지 않고 아무 곳에나 묘를 쓰려고 하니 그 마을의 유명한 지관이 하는 말이“그 곳에 묘를 쓰면 삼태생이는 낳아도 아들 셋은 다 호환을 당합니다.” 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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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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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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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경기도 포천의 기피울에 만석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만석이는 마음씨가 착하고 정직하여 온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농토는 물론, 집도 변변한 것을 갖추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의 농사를 돌보아 주기도 하고 날품팔이로 그날 그날을 살았습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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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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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도둑질을 허가 받을 정도로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잡히자 임금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궁으로 데려오게 하여 그에게 물었다. “너는 도둑질에 그렇게 자신 있느냐?”“네.”“그렇게 자신 있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 시키는 대로 못하면 죽을 줄 알아라.”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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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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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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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총각이 무과 급제의 꿈을 안고 서울로 갔다. 과거 날이 되어 과장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드디어 과거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순서대로 활쏘기를 하였다. 가난한 그 총각은 미처 활을 준비하지 못해 다른 선비에게 활을 빌려 달라고 했으나, 그 선비는 활을 빌려주지 않았다. 화가 난 총각은 선비의 활을 꺾어 버렸고, 그 바람에 싸움이 일어났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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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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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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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홍계월전」의 여성영웅 공간의 양상과 문학적 의미에 새로운 해석을 더해 보는 데 있다. 세대를 초월한 강인한 여성영웅의 탄생이 가능했던 토대, 그녀가 종횡으로 누볐던 ‘공간’의 양상에서 문학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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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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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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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 제일 많이 가는 산은 북한산(삼각산)이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습니다. 북한산에 올라가면 이어진 산성이 있습니다. 오늘은 1925년 대홍수로 사라진 건물의 복원에 일제 강점기 때 찍은 북한산(성) 사진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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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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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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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이(權龍伊) 1903(광무 7) ~ 1972 1919년 3.1 독립선언 당시 20세의 약관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 김봉조(金鳳祚) 1907(융희 1) ~ 1983 자는 치욱(致勖). 호는 송강(松崗)이다.
• 김인환(金寅煥) 1919 ~ 1989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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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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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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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가 절찬리 상영되고 있다. 단종 임금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육지의 섬인 청령포에 유배되어 죽고 그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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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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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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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카탈로그는 다빈치!지식지도의 핵심 구조이자,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최종 지식 산출물이다. 이는 개별 지식을 정리한 목록이 아닌, 서로 연동되고 탐색 가능한 지식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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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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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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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청해진 국가유산 지정 40주년 되는 해로 완도군은 6월 26일부터 3일간 완도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국, 중국, 일본의 승려들은 글로벌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정부는 완도 청해진을 설치한 날을 기념해 1994년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했다. 3년 후인 2028년은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건설한 지 1,200주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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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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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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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면 백학산 준령이 서남맥으로 덕진당을 거쳐 임진강변을 끼고 내려와 삼선산(三仙山) 우뚝솟은 봉우리에서 양편으로 펼쳐진 지맥 내령끝머리 쌍태봉(형제산)이 있는 아래 한수동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옷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찬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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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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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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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산비탈에만 농사를 짓고 강가에는 농사를 짓지 못했거든. 그래서 못 근처에 농사를 질라꼬 여남은 번(여러번) 시도를 했는데, 농사를 지으려면 둑을 쌓아야 홍수가 안 나거든, 그래서 둑을 만들어야 되는데. 근데 이게 막으면 터지고, 막으면 터지고 그그던.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고민을 한참 하는데. 한 40대쯤 되는 여자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당신들이 그렇게 둑을 백 번 막아봐야 백 번 헛고생 하는 거시더. 하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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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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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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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平安南道)를 두루 돌아 마지막 길에 박천(博川) 땅을 찾게 되었다. 초가을 하늘이 높게 트여 인심도 쾌락하니 정주(定州)에서 기차를 타고 박천(博川)으로 가려 한다. 차창(車窓)에 빗대 앉아 박천군내(博川郡內)에 있던 옛 사암(寺庵)을 헤아리니 화악산(華岳山)에 금계사(金鷄寺), 봉린산(鳳鱗山, 217m) 극락사(極樂寺), 서공사(西孔寺)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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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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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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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는 갯마을이 많아서 마을의 명칭이 무슨 포(浦)니 해서 '포(浦)’자가 들어 있는 마을 이름이 많이 있다. 다른 이름도 이상하리만치 까마기재, 무지개재, 꽃바구미, 함박구미 등 순수한 우리말 이름들이 있다. 원래 거제군은 동부면, 둔덕면, 사등면, 한산면, 일운면, 이운면, 연초면, 하청면으로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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