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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 (藥學)
사람, 또는 동물의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데사용되는 의약품에 대한 기초 및 응용 과학을 다루는 학문.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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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 (藥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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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또는 동물의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의약품에 대한 기초 및 응용 과학을 다루는 학문 . 약의 창제·생산·관리 등에 대한 이론 및 응용의 종합 학문이다. 따라서 약학은 약을 중심으로 하여 화학· 물리학 · 생물학 등의 분야를 포함하며, 그 연구 수단에 따라 학문적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사회의 요구에 따라 생산되고 있는 상품으로서의 사회성· 경제성도 지니게 되었다. 이처럼 약학은 물질 과학이면서 동시에 생명 과학적인 양면성·경계 영역성 자연 과학의 특성을 가진다. 다시 말하면, 약학이란 생리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취급하는 자연 과학인 것이다. 약학에는 의약품으로 쓰이는 약용 식물의 재배, 의약품으로서 가치 있는 화합물의 합성 및 의약품의 분석 등이 포함된다. 약사들은 정제· 캡슐제 ·멸균 주사제와 같은 의약품의 제형을 제조할 책임이 있으며, 의사·치과의사· 수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조제한다. 약학 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리 나라의 백제 시대 때 의사 제도에서 의학 박사와 제약사가 직업적으로 따로 분리되어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약학과 의학이 확실히 나누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약학의 발전만을 따로 분리하기도 힘들며, 중국에서 전래된 의학과 약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우리 나라 고유의 의학이나 약학만을 따로 체계화하기는 힘들다. 우리 나라 약학의 발전의 자취를 더듬어 살펴보자. [ 고대 약학] 원시 시대의 약물 발전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치료 본능 에 의하여 시행 착오적인 경험으로 천연 자연물 가운데서 약물을 찾아 내어 그 지식을 축적시켜 나간 것이 약학의 기원이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의학 창시자는 개국 신화의 환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이 되기 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치성을 드리도록 한 기록에서 환웅이 백성들의 병을 주관하는 동시에 쑥· 마늘을 이미 약으로 개발하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 시대에 내려와서는 우리 나라의 인삼이 중국에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고구려 때는 연금이 약으로 쓰였다는 중국 의 기록이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본초도 중국과 일본 에 널리 알려졌으며,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신라의 골품제 신분 계급의 사회 생활 양식상 지켜야 할 여러 제약이 적혀 있다. 여기에서 사용 제한 내지는 사용 금지를 하는 품목으로 공작· 비취· 침향 등 남국 물산이 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와 같은 물품이 서역, 또는 남양에서 교역, 유입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당나라 때는 대식국·천축·곤륜 각지와의 교역이 활발하였으며, 신라는 당나라와의 통교가 빈번하였으므로 신라도 남방 각지와 직접 교역을 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 중세 약학] 고려의 약학은 국초에는 신라 약학의 계승이었기 때문에 당나라의 영향으로 시작되어 송나라 및 원나라의 문화를 섭취하였으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고려 약학을 발전시켰다. 약재도 국산 약재를 사용하여 전통성이 강한 향약방과 향약 본초를 발전시킨 것을 특징으로 한다. 고려 때의 구급 의방서인 《향약구급방》 및 《향약집성방》에 의해서 고려 시대의 향약을 추측할 수 있다. 의료 기관으로서는 왕의 약을 관장하는 상약국이 있었고, 주부군현의 향관직 중에 약점이라는 직제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지방의 의약을 관장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고려에 약국이라는 제도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유일하게 현존하는 의약 방서인 고종 때의 《향약구급방》 가운데 향약목이 있어 당시의 각종 약물의 명칭·성미·채취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두로 병기되어 있는 향약명은 당시의 동물· 식물을 고찰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근세 약학] 근세 조선의 개국 초기에 있어 향약 장려책을 답습하여 진흥시킨 것은 의약 자립의 정신이며, 구체적인 시책으로 향약의 생산 및 다약의 재배 등을 관장하게 하는 종양색이라는 부서, 향약의 수납 및 향약에 의한 구료, 또는 《향약재생집성방》을 비롯하여 향약 문서의 편집 송포를 실시하는 제생원을 설치하였다. 1450년(세종 32)에 조선 문화의 융성기를 이룩하였으며, 의학· 약학도 자주적 발전을 이룩하여 우리 나라 의약의 최고봉을 이룬 시기이며, 의약학을 국정에 적합하도록 발전시키기 위하여 의학· 약학의 제도적 정비 확충을 비롯하여 의· 약학의 장려책을 강구하였다. 조선조를 통한 고유 본초서로는 《향약집성방》 《향약채취월령》 《동의보감》 《제중신편》 《의종손익》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촌가구급방》의 향약명, 《산림경제》의 치약부, 《사의경험방》의 물명, 《급유방》의 본초 발명 및 식치 발명, 《본초류함》 《본초정화》 《유씨물명고》 《임원경제지》의 보양지 및 인제지, 《방약합편》 등이 자료가 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나라에서 간행된 《향약본초서》 《향약방서》가 일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의약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실사 구시의 과학적인 실학이 일어남에 따라 우리의 독자적인 본초학 내지는 약학을 수립할 수 있는 기운에 처하였으나 크게 발전하지는 못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였다. 그래도 소수의 뜻있는 실학자들에 의하여 농수산학적, 또는 박물학적 본초서가 간행된 것은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본초학적 기술 개발이 독창적이고 탁월하였다는 실증은 고려 인삼의 개발을 들 수 있겠다. 1613년에 허준 에 의해서 완성되어 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의 탕액편은 본초학적 식견과 자주성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독창적 본초서라 할 수 있다. 한편 우리 나라의 의·약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인물은 이제마(李濟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약성론은 사람을 체질에 따라 4 체형으로 나누고 각 체형에 따른 약물의 선택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상약성론을 저술한 것이 《동의수세보원》이며, 이제마가 1893년에 착수하여 그가 죽은 다음 해인 1901년에 출간되었다. 이는 성명론·사단론·확충론·장부론·의원론·광제설· 사상인 변증론의 7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약리학적으로나 과학화되지 못한 채,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 약학의 기반 위에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도입된 개화기의 약학이 오늘날의 세계적 수준의 현대 약학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근대 약학] 근대 약학이 서양으로부터 도입된 것은 조선 말기에 서양 의약품이 이른바 양약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부터이지만, 약학 교육 기관으로서는 1915년의 조선 약학 강습소가 최초이다. 이 곳은 1918년 조선 약학교, 1930년 전문 학교로 승격되면서 우리 나라 근대 약학의 산실이 되었다. 이 후 우리 나라의 약학은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한편, 약학은 수많은 국내외 약사 조직이 있다. 1841년 설립된 영국 약사회가 가장 오래된 전통을 지닌 대표적인 약사회이다. 미국에서는 1852년 약사와 약학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다루는 미국 약사회가 설립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46년 3월 조선 약학회가 설립되었으나 1951년 1월 대한 약학회라고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1948년 3월 《약학회지》라는 학술지가 창간되었다. 또한, 1954년에 대한 약사회가 설립되었다. '국제 약학 연맹'은 전세계적으로 약학의 전문성과 학문성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으며, 50여 개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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