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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거제도(巨濟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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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巨濟島)
경상남도 거제시의 본섬으로, 제주도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2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382.2 km2(거제시 전체의 면적은 403.86km2)이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거제도 (巨濟島) 학익진 거제시 진해만 통영시 옥포 한산도 1592년 1597년 권율 김시민 이순신 옥포 해전 한산도 대첩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행주 대첩 거북선
▣ 백과사전
경상남도 거제시의 본섬으로, 제주도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2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382.2 km2(거제시 전체의 면적은 403.86km2)이다.
 
북동쪽으로 부산 가덕도거가대교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통영시와 거제대교, 신거제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북쪽 해안은 진해만(鎭海灣)과 접한다. 높은 산이 많으며 경사가 급한 편이다. 조선업과 어업이 발달하였다.
 
 

역사

삼한시대는 변한의 12개 나라 중 독로국(瀆盧國)에 해당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년)부터 거제(巨濟)라는 현재의 명칭이 사용되었다.
 
고려 때 기성현으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는 거제현이라고 불렸다. 지리적으로 일본에 가까워 이 시기에는 왜구의 침입에 자주 시달렸다.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1592년 옥포해전, 한산대첩, 1597년 칠천량해전 등 주요 해전이 벌어졌고, 이 때문에 인근의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다.
 
1914년 4월 1일 통영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53년 1월 1일 거제군으로 다시 분리되었다. 6.25 전쟁 중에는 유엔군에 의해 거제포로수용소가 운영되었다.
 
1974년과 1981년 조선소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생산활동 인구가 급속히 유입되어 이 지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1989년 1월 1일 장승포읍이 시(市)로 승격하여 거제군과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장승포시와 거제군이 통합하여 도농복합시인 거제시가 되었다.
◈ 조회순
2024.09.05
001. 거제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문화】 거제도에서 아직까지 구석기시대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산달도패총과 대포패총 등에서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와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 櫛文土器)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면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에 걸쳐 사람들이 거주하였고 고기잡이와 가축사육 등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24.09.05
【문화】 세종 대에 자체적으로 위도와 경도 측정이 가능해짐에 따라 상세한 지도제작이 가능해지고 세종에 이어 세조 역시 지도 제작에 관심이 많아 동국지도가 완성되기도 하였으나 많은 전란 속에 소실되었다. 18세기 영·정조시대 농업과 상업의 발전으로 다양한 지도 제작이 성행하여 현재 남아 있는 지도 대부분은 조선 후기의 것들이다.
2024.09.05
002. 청동기문화 거제도에 꽃피웠다
【문화】 거제에는 청동기시대에 세력이 큰 부족이 많이 살았음을 고인돌 유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거제시와 동아문화연구원에서 거제 전 지역 전수조사를 한 결과 거제의 해안가와 하천 주변 들판 등 73개소에 492개의 고인돌이 있었다. 그러나 1973년과 1974년 한화오션(구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 국가조선산업단지가 조성되고 도시의 팽창과 주거환경 개선 등으로 인하여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2024.09.05
018. 옥포해전 출전 경로와 송미포(松未浦)는 어디일까
【문화】 옥포해전은 경상우수사 원균(1540~1597)과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의 연합함대가 협력하여 싸운 최초의 연합전투이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자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옥포해전 출전 경로를 두고 전라좌수영 수군과 경상우수영 수군이 고성 당포(唐浦) 앞바다에서 합류한 후 거제도 북쪽 해역을 돌아 옥포에 이르렀다는 북로설(北路設)과 거제도 남쪽 해역을 경유했다는 남로설(南路設)로 나뉘어져 그와 관련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2024.09.05
003. ‘독로(瀆盧)’에서 ‘거제(巨濟)’까지 거제 지명 변천사
【문화】 거제(巨濟)라는 지명은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명명된 이후 제창현, 통영군 등의 이름으로 잠시 변경되기도 하였지만, 1,200여년 동안 사용하고 있다. 그 이전에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변진’ 에는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이란 나라 이름과 함께 “그 독로국(瀆盧國)은 왜(倭)와 경계(境界)에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2024.09.05
005. 고깔 쓴 토우가 발견된 아주동고분군(鵝州洞古墳群)
【문화】 거제도에는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있다. 오른쪽 자락 끝에 있는 아주동을 말하는 것인데, 용소 늪에 거위〔鵝〕가 서식하고 있다고 하여 아주동(鵝州洞)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오늘도 힘찬 날갯짓하는 아주동에는 아주동고분군(巨濟 鵝州洞 古墳群)이라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61호가 있다.
2024.09.05
020. 조선 수군의 영광 ‘견내량해전(한산도대첩)’
【문화】 우리가 알고 있는 ‘한산도대첩’의 원래 명칭은 ‘견내량해전’이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선조 임금에게 보낸 장계 〈견내량파왜병장〉에서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해전의 이름은 전투가 최초 일어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옥포해전이나 사천해전, 합포 및 적진포, 당포해전도 마찬가지로 전투가 최초 일어난 지역의 이름을 붙여 명명하였다.
2024.09.05
007. 고려시대 거제현의 토착세력 성씨 이야기
【문화】 고려시대 거제현의 성씨는 토성, 내성, 속성, 촌성, 백성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성(土姓)은 거제 본래의 토착성이고 내성(來姓)은 주로 거제지역 인근 군현의 토성에서 이속되어 온 성이며, 속성(續姓)은 여말선초 이래로 거제현의 향리가 부족하여 이를 보충 내지 열읍(列邑) 간 조정한 결과 옮겨와서 형성된 성이고, 촌성(村姓)은 토성이 확정된 후에도 거제현의 관내에서 독자적인 구역을 보유한 채 임내(任內)와 병렬해 있던 촌락의 성이며 백성성(百姓姓)은 거제지역 촌락지배의 성단(姓團)으로서 거제현의 성립 시에 참가한 읍내(邑內)의 인리성(人吏姓)과 함께 토성이 된 성이다.
 
◈ 최근등록순
2024.09.05
038. 항공사진으로 본 거제도
【문화】 다음 페이지의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거제도 남동쪽 지세포(왼쪽 아래)부터 아양(지금 한화오션)과 해변, 두모, 느태, 능포, 양지암, 장승포항과 옥림리 일대까지 중요한 해변들을 담고 있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왼쪽 아래 지세포만에 ‘149’라는 숫자와 ‘옥림리(Ongnim-Ni)’라는 영문 지명이 등장한다. 지세포 건너편에 내도가 약간 보인다.
10 (+4) | 거제도, 거제시
2024.09.05
036. 남부면 근대 역사의 남겨진 문화유산
【문화】 근포마을 뒤편 바닷가에 5개의 땅굴(길이 20~50m, 높이 5m)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41년 일본군이 외지인 보급대를 동원하여 발파 작업 등으로 포진지 용도로 굴착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중단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2015년 당시 윤치원 마을 이장의 모친(당시 92세. 현 작고)께서 18세 때 시집오니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굴착을 시작하였고, 김부관(당시 84세) 마을 어른은 당시 10살 때 발파작업을 하면 멀리서 구경하며 뛰놀았다고 전하며, 이 두 어른의 이야기를 들어 그 유래를 알 수 있었다.
2024.09.05
035. 온 나라에 효의 귀감이 된 쌍효문(雙孝門) 이야기
【문화】 거제에는 마을 곳곳에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로 그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비석으로 자리 한켠을 지켜내고 수줍게 거제시민들에게는 효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거제 남부면 명사해수욕장 동쪽 끝, 그리고 6월이면 수국 축제가 열리는 저구마을에 독특한 비석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명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비석은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
2024.09.05
034. 비석에 새겨진 거제도 여인 이야기
【문화】 열녀비란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 여자의 행적을 새겨 세운 비석이 열녀비다. 열녀비에 실린 내용을 종합해 보면 청상과부가 되어 시부모를 공경하고 슬하의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공통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거제도 열녀비들에서도 그와 비슷한 내용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2024.09.05
【문화】 거제는 사면이 바다이다 보니 배〔船〕하고 연관이 깊고 거제의 역사는 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래 사진은 통구민이라고 하는 배이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배라 하여 통선이라고도 하고 통구밍이라고 부르는 무동력선이다. 거제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에서는 이 배로 고기도 잡고 섬에서 육지로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거제 지세포에 있는 어촌민속전시관에서 이 통구민 배를 볼 수 있다.
12 (+4) | 거제도, 거제시,
2024.09.05
032. 최전방 거제의 통신수단 ‘봉수대’ 이야기
【문화】 한반도는 유사 이래 북쪽으로부터는 유목민족, 남방에서는 왜적들로부터 끊임없는 침탈을 받아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변방에 봉수대를 정비하고 중앙에 신속하게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그리하여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요해처 곳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었다. 그중 거제도는 한반도를 침략하는 왜구가 식수와 땔감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선착하는 지역 중 하나였다.
2024.09.05
031. 거제도에 남은 ‘삼도수군통제사비’의 흔적
【문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는 초대 통제사로 이순신(1593. 8~1597. 2)이 임명된 이후, 제2대 원균(1597. 1~8), 제3대 이순신(1597. 8~1598. 11), 제4대 이시언(1599. 1~1601. 5), 제5대 류형(1602. 1~1603. 2), 제6대 이경준(1603. 2~1605. 9)이 거제 오아포, 한산도, 춘원포 일대에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제208대 홍남주(1894. 10~1896. 5)를 끝으로 1895년에 폐영되었다.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성이 부각되었던 거제도에서 삼도수군통제사의 흔적을 찾아 본다.
2024.09.05
030. 거제 공교육의 뿌리! 향교(鄕校)의 역사
【문화】 향교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 교육기관으로서 인종 5년(1127년)에 인종이 각 군현에 학교를 설립하도록 함으로써 향교의 시초가 되었다. 조선이 건국되고 억불숭유정책으로 태조 7년에 고려의 제도를 따라서 성균관을 건립하고 지방에서는 국책으로 향교를 각 고을마다 세웠다.
2024.09.05
【문화】 세종 대에 자체적으로 위도와 경도 측정이 가능해짐에 따라 상세한 지도제작이 가능해지고 세종에 이어 세조 역시 지도 제작에 관심이 많아 동국지도가 완성되기도 하였으나 많은 전란 속에 소실되었다. 18세기 영·정조시대 농업과 상업의 발전으로 다양한 지도 제작이 성행하여 현재 남아 있는 지도 대부분은 조선 후기의 것들이다.
2024.09.05
028. 상생(相生)한 표류인(漂流人) 이야기
【문화】 거제부지도 〈지도 1〉의 오른쪽(동쪽)에 ‘대마도 산천 수로 480리(對馬島山川水路四百八十里)’라고 적혀 있다. 거제의 포구가 나란히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마도와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뜻하는데, 〈지도 2〉를 보아도 정말 가까이 있는 두 섬인데. 그래서 두 섬 사이에는 잔혹한 전쟁사뿐만 아니라 따뜻한 위로의 이야기도 있다. 바로 표류인이 그것이다.
2024.09.05
027. 거제도에서 보이는 섬 대마도
【문화】 “왜(倭)가 고성, 죽림, 거제(固城·竹林·巨濟)를 노략질하니 함포천호 최선(合浦千戶 崔禪)과 도령 양관(都領 梁琯) 등이 싸워 격파하고 300여 급을 참획(斬獲)하였다. 왜구(倭寇)의 침탈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기에 거제·고성 지역은 대마도와 최단 거리에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왜구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2024.09.05
026 조선시대 거제부사(府使) 이야기
【문화】 조선 후기 숙종 37년(1711년)에 거제는 현에서 도호부로 승격된다. 거제가 도호부로 승격하는 데에는 거제의 지리적 위치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거제(巨濟)는 해문(海門)의 요충(要衝)에 있으니, 중진(重鎭)을 설치하고 열진(列鎭)을 절제(節制)함이 마땅한데, 그 현령(縣令)이 도리어 첨사(僉使)의 아래에 있으니 부사(府使)로 승격시켜 방어사(防禦使)를 겸임케 함이 마땅합니다.”
2024.09.05
025. 거제 현령(縣令) 이야기
【문화】 ● 이호성 - 거제현령 이호성은 어릴 때 체격이 좋았고, 자라서는 병법서를 많이 읽었으며, 말타기, 활쏘기에 뛰어났다. 세종 9년(1427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여진족 정벌에 참여할 장수로 뽑혀 최윤덕을 따라 여진족 정벌에 큰 공을 세웠다. 동서(東西) 양계(兩界)에 화포를 능숙하게 다루는 감련관으로 선발되어 파견되기도 한다.
2024.09.05
024. 임진왜란 시 공을 세운 거제 선무원종공신 22인
【문화】 임진왜란이 끝나자 전란 중에 각 방면에서 공을 세운 문·무 관원에 대한 공신책봉 문제가 논의되다가, 선조 37년(1604) 호성공신(扈聖功臣), 청난공신(淸難功臣)과 더불어 ‘선무공신’을 선정하였다. 지휘관급인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18명을 ‘선무공신’으로 칭호하여 1등에는 임진왜란에서 육군과 해군을 이끈 이순신(李舜臣), 권율, 원균 등 3인의 장수가 선정되었다.
2024.09.05
023. 조선 수군의 눈물 ‘칠천량해전’
【문화】 임진왜란의 아픔, 경상우수사 원균의 지휘로 참혹한 패전을 맛보았던 해전이다. 이미 왜구들의 속내를 간파하며 왕명을 끝까지 따르지 아니하여 파직과 백의종군을 감당해야 했던 이순신과 왕명에 복종하여 무리한 해전을 나가야 했던 칠천량해전을 우리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24.09.05
022 임진왜란과 거제의 왜성
【문화】 왜성이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왜군이 사용할 목적으로 쌓은 성을 말한다. 왜성은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로 가기 위하여 부산에서 서울을 지나 의주까지의 거처와 군수물자 보급로 확보를 위해 쌓은 성이다. 조선의 읍성을 고쳐서 사용하거나 간단하게 축성했다.
2024.09.05
021. 한산도는 옛 거제 땅이었다
【문화】 한산도는 1,200여 년 동안 거제의 땅이었다.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에는 명진현에 속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둔덕면에 속하였으나 1,900년 진남군이 설치되면서 한산면과 가조도가 진남군에 편입되었다. 1909년에 진남군이 용남군으로 개칭되면서 용남군 소속 가조리를 분리하여 가조면이 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에 용남군과 거제군을 통합하여 통영군을 설치하였으며 통영군 서부면을 거제면으로 개칭하였고 이때부터 거제는 통영군 소속으로 있었다.
2024.09.05
020. 조선 수군의 영광 ‘견내량해전(한산도대첩)’
【문화】 우리가 알고 있는 ‘한산도대첩’의 원래 명칭은 ‘견내량해전’이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선조 임금에게 보낸 장계 〈견내량파왜병장〉에서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해전의 이름은 전투가 최초 일어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옥포해전이나 사천해전, 합포 및 적진포, 당포해전도 마찬가지로 전투가 최초 일어난 지역의 이름을 붙여 명명하였다.
2024.09.05
019. 임진왜란 거제 의병의 넋이 깃든 거제읍성 ‘고현성(古縣城)’
【문화】 거제는 한반도 남해안 방어의 최전선 역할을 한 군사적 요충지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다양한 성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거제에는 현재 우리가 쌓은 성 20개, 왜구가 쌓은 성 4개 등 모두 24개의 성곽 유적 및 그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단일 섬 지역에 이렇게 많은 성곽이 잔존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례로 알려져 있다.
2024.09.05
018. 옥포해전 출전 경로와 송미포(松未浦)는 어디일까
【문화】 옥포해전은 경상우수사 원균(1540~1597)과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의 연합함대가 협력하여 싸운 최초의 연합전투이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자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옥포해전 출전 경로를 두고 전라좌수영 수군과 경상우수영 수군이 고성 당포(唐浦) 앞바다에서 합류한 후 거제도 북쪽 해역을 돌아 옥포에 이르렀다는 북로설(北路設)과 거제도 남쪽 해역을 경유했다는 남로설(南路設)로 나뉘어져 그와 관련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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