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4 ~ 1593] 조선 중기의 의병장. 호는 준봉(準奉), 시호는 효열(孝熱)이다.
1570년(선조 3년)에 진사가 되고, 1577년에 문과에 급제, 벼슬이 현령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경명(敬明)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으나, 금산 싸움에서 아버지와 동생 인후(因厚)를 잃었다.
다시 의병을 일으켜서 스스로 복수 의병장이라 일컫고 여러 곳에서 싸웠고, 위급해진 진주성 을 지키다가 성이 왜병에게 함락당할 때
김천일·
최경희 등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세상에서는 그들 3부자를 3 장사라 불렀으며 나라에서는 그를 이조판서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