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동남쪽에 자리잡은 조선 후기 건물. 1847년 헌종 13년에 창건되었으며, 주택풍의 연속된 세 채 건물과 후원이 딸려 있다.
이 건물 은 본래 국상을 당한 왕후들이 소복을 입고 근신하던 곳이므로 상중에 근신하는 왕후가 소박한 건물에서 예를 지키도록 하여 단청도 하지 않았다. 건물이 위치한 곳은 궁의 동쪽 건양문 밖으로 이 곳은 원래 태조가 임종을 맞았던 광연정이 있던 자리이며, 뒤에 왕세자인 동궁의 처소인 저승전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건물 구성은 낙선재·석복헌·수강재 세 건물이 옆으로 길게 붙어 있고, 그 뒤편에 건물이 들어가고 나온 데 따라서 자연스럽게 후원이 조성되었다.
낙선재의 뒤뜰은 절제되면서도 조화있는 조경으로 꾸며져 있다. 후원에는 취운정·한정당·상량정이 있다. 낙선재의 앞과 오른쪽에는 행랑이 있어 외부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행랑 남쪽 가운데에 출입문이 나 있는데 장락문이다. 문을 들어서면 ㄱ자형의 낙선재가 나타난다. 소박한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에 누마루가 튀어나온 단층 팔작집으로, 장대석으로 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방주를 세워 익공식으로 꾸몄다. 가운데 3칸은 퇴를 개방하였고 나머지는 분합문이나 회벽으로 벽체를 꾸민다. 이 때 분합문의 창살 무늬가 섬세하게 꾸며져 여성들이 머무는 궁중의 건물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마루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였고, 벽에는 작은 돌을 불규칙하게 붙여 자유롭고도 아름다운 벽면을 장식하였다.
낙선재의 동쪽으로 연결되어 석복헌이 있는데, 이 건물도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며, 다시 석복헌에 이어서 동쪽으로 같은 규모의 수강재가 있다. 이 세 건물 사이에는 행랑이나 담이 둘러져 있어서 서로 독립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세 건물 뒤로 조성된 후원은 장대석으로 여러 단의 화계를 꾸미고 각단에는 사철에 알맞은 화초가 심어져 있으며, 건물에서 연결되어 나온 굴뚝이 조경의 한 요소로 꾸며져 있기도 한다.
후원의 담장은 벽돌을 구워 장수무늬·고리무늬·석쇠무늬 등이 꾸며져 있다. 후원 동쪽에는 꽃무늬 담장 사이에 출입문이 나 있는데 원형을 이루고 있고, 좌우로 미닫이문이 있다. 후원 뒤편엔 별당인 한정당이 있다. 집 앞뜰은 잘 정돈된 수목이 심어져 있고 그 사이로 괴석들이 놓여 있어 한가로우면서 조화있는 자연스러운 정원을 이루고 있다.
낙선재 건물은 후원의 빼어난 조경으로 더욱 돋보이고 또 아름다운 창살· 난간· 굴뚝·담장 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조선 시대 후기 건축 장인들의 축적된 기량을 엿볼 수 있다.
1926년 순종이 죽은 뒤 윤비가 이 곳에서 은거하다 죽었고, 1963년 일본에서 환국한
영친왕 이은도 이 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또한,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도 이 곳에서 생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