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의 출생지로, 강감찬이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서울 유형 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감찬은 948년 지금의 낙성대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은천이었다.
983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양주 목사· 동경 유수를 지내는 등 10여 년 동안 여러 고을에서 관리 생활을 하였으며, 993년 개경으로 올라와 예부 시랑·한림원 학사 승지·중추원사를 역임하였다.
1018년 서북면 행영 도통사가 되었으며, 그 해 12월에 강동 6 주의 반환을 요구하며 거란의 소배압이 쳐들어오자 상원수가 되어 20만 대군으로써 흥화진에서 크게 물리쳤다.
이듬해 2월에는 귀주에서 퇴각하는 거란군을 맞아 대승을 이루어 '추충 현모 안국 공신'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나라에서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집터에 사리탑식 3층 석탑을 세우고 그가 태어나던 날 밤 큰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 따라 낙성대라 이름하여 '거란의 침입'을 막아 낸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였다.
현재의 낙성대는 서울시에서 강감찬의 애국충정의 정신을 기리고자 1973~1974년에 이르는 2년 동안 사괴석(四塊石)으로 409m의 담장을 쌓고 안국사(安國祠)를 짓는 등 일대를 공원으로 정비한 것이다. 안국사는 외삼문인 맞배지붕의 안국문(安國門)을 거쳐 내삼문 안에 건축되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사당 안에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공원의 총면적은 31,350㎡이나 성역화된 곳은 11,550㎡이며, 안국사의 면적은 237.6㎡이다. 공원 경내에 5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입구에 큰 연못을 파서 구름다리를 놓았다. 안국사 앞에는 원래의 낙성대 터에 있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3층석탑을 옮겨 놓았다.
화강암으로 된 이 탑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탑의 높이는 4.48m이다. 석탑의 첫층 탑신 앞면에 ‘姜邯贊 落星垈’라는 명문(銘文)이 해서(楷書)로 새겨져 있어 탑 이름을 ‘강감찬탑’ 혹은 ‘강감찬낙성대탑’이라 부르고 있다.
탑의 양식은 단층기단 위의 3층탑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다. 기단석은 각 면마다 한 장의 면석이 둘러 있고, 면마다 우주(隅柱)가 모각되어 있다. 한 장의 돌로 된 갑석 역시 그 한가운데에 옥신 받침이 있다. 탑신의 옥신석에는 각기 우주가 모각되었고, 옥개석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며, 층급(層級)은 2단으로 매우 간결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석탑의 대석을 비틀어 탑의 위층을 빼어 한 층을 낮추어 정기를 줄이고 탑 안에 있던 보물을 훔쳐 갔다는 일화가 전한다. 왜군들은 탑만이 아니라 탑 주위에 있던 병풍바위와 선돌바위도 모두 부수고, 탑의 동쪽 구릉을 파내어 땅의 혈맥을 끊기도 하였다고 전하여 온다.
주변에 숲과 휴게 시설이 있어 휴식 공간으로 안성맞춤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