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65] 고려 공민왕의 비. 원나라의 황족인 위왕의 딸로,
1349년(고려 충정왕 1년)에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하였다.
1351년 12월에 공민왕과 함께 귀국하였는데, 공민왕은 그 달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1364년에 난산(難産)으로 병이나, 이듬해 2월에 죽었다.
왕비를 매우 사랑했던 공민왕은, 그 후부터 정사를 돌보지 않고 왕비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혼제(魂祭)를 지내고 화려한 영전을 짓기까지 하였다.
생년은 알려지지 않는다. 1349년(충정왕 1년)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하였으며, 이후 공민왕이 고려로 돌아갈 때 원으로부터 승의공주(承懿公主)에 책봉되었다. 노국대장공주는 공민왕이 반원 정책을 실시하자 자신이 태어난 고국을 배척하고, 남편을 도왔으며, 공민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가 한 번 유산이 되었다고 한다. 노국대장공주는 후에 겨우 다시 아이를 갖게 되었으나, 난산으로 죽었다. 그녀가 죽자 공민왕은 매우 슬퍼하였다. 그녀가 죽은 지 얼마 후 정치권을
신돈(辛旽)에게 양도했다. 공민왕은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벽에 걸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그리워했다고 한다. 또한 공민왕은 그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혼제를 지냈으며, 그 진영을 모시기 위해 호화로운 영전을 짓도록 하였다.
조선의 제10대 임금 연산군은 모후인 폐비 윤씨와 노국대장공주의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공서에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수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