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고종 32년)에 남성들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
김홍집 내각이
을미사변 이후 내정 개혁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당시까지 써 오던 음력 대신 양력을 쓰기로 하면서 단발령도 아울러 공포하였다. 고종도 스스로 서양식으로 이발을 하였으며, 내부에서는 강제적으로 국민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하였다.
그러자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서 머리털을 소중히 여겨 오던 선비들의 반발이 대단하였다. 뿐만 아니라 단발령 자체가 일인의 배후 조종에서 나온 것이라 판단하여, 을미사변으로 악화되어 있던 배일 감정이 폭발하여 의병을 일으키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