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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델포이(Delphoi)
델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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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Delphoi)
그리스의 고대 도시 가운데 하나. 영어로는 '델피'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 과 신탁소가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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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Delp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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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고대 도시 가운데 하나. 영어로는 '델피'라고 부른다.
 
델포이는 그리스 중부의 포키스 지방의 파르나소스 산맥 계통의 남쪽 기슭 파이도리아데스 산괴가 형성하는 해발 고도 약 500m의 험한 낭떠러지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쪽 프레이스토스강의 협곡에는 올리브나무가 밀림을 이루고 있다.
 
이 곳은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 과 신탁소가 있던 곳으로 유명한데, 그 당시 신탁(神託)은 해외로 식민단을 보내거나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는 등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뿐만 아니라 개인이 결혼 이나 상거래, 질병 등의 문제에 대하여 결정할 때도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신의 뜻으로 숭배되었다. 신탁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남자 신관에게 문제를 말하고 남자 신관이 피티아라는 무녀에게 말하면 그 무녀가 신을 접하여 신의 뜻을 알아 내게 된다. 그 다음에 무녀는 그것을 신관에게 말하고 신관이 그것을 운율을 가진 글의 형태로 정리해서 신탁을 의뢰한 사람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현재 약 1,200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다. 1892년부터 프랑스의 고고학회에 의하여 아폴론의 신전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델포이의 전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는 델포이에 관하여 두 가지 전설이 전하여지고 있다.
 
하나는 제우스가 독수리를 세계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날아가도록 하였다. 한 마리는 동쪽을 향하여 날려 보내고 다른 한 마리는 서쪽을 향하여 날려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두 마리의 독수리가 만난 곳이 바로 델포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그 곳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고 돌을 하나 놓아 표시하였다. 그들은 그 돌을 '옴팔로스(세계의 배꼽)'라고 불렀으며, 그 주위에 신전을 지었는데, 아폴론 신전의 첫 번째 방에 옴팔로스가 놓여 있었다.
 
또 하나의 전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연관된 것이다. 델포이의 신탁소는 본래 대지 의 여신인 가이아의 소유였는데, 가이아는 그녀의 아들인 피톤(거대한 뱀이었다고 함)으로 하여금 이 신탁소를 지키도록 맡겨 두었다. 그러나 아폴론이 와서 피톤을 살해하고 이 곳을 자신의 신탁소로 삼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원전 2,000년경에는 이 곳에 가이아의 성소가 있었고 신탁도 행해졌으나, 기원전 9세기부터는 아폴론의 신전에서 신탁 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델포이의 역사

델포이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4세기인 미케네 문명 말기로 보인다. 기원전 8세기 이후 아폴론 신전의 신탁이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다른 나라에서도 권력자들이 신탁을 구하러 찾아오기도 하였다. 기원전 6세기에는 제우스 신전이 있던 올림피아, 아폴론 신전이 있던 델로스와 더불어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신탁소로 인정되어 그리스의 종교적 중심지의 역할을 하였다. 당시에 많은 순례자들이 델포이 를 찾았는데, 델포이 부근에 있는 크리스시는 델포이로 들어오는 순례자를 상대로 세금을 징수하였다. 기원전 7세기에는 신탁의 중요성이 커지자 델포이는 중부 그리스 제국이 구성하는 인보 동맹(隣保同盟)에 가담하여 중심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인보 동맹이 그 중심을 안텔라에서 델포이로 옮기자, 기원전 590년경에 제1차 신성 전쟁이 일어나 포키스의 키라가 파괴되었고, 또 크리스시도 파괴됨으로써 순례자들은 자유롭게 델포이 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 제1차 신성 전쟁으로 델포이는 독립과 중립을 보장받게 되었고, 기원전 582년경에는 전 그리이스적 제전인 피티아 경기를 4년마다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에 델포이 신탁소의 명성은 그리스어권 전 지역 으로 알려졌으며, 델포이는 개인의 사사로운 일에서부터 국가적인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신탁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심지어 델포이의 신탁소에서 받은 신탁이 국가 의 정책을 변경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는 민주주의가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델포이에 있는 신전의 보고(寶庫)의 자금과 아테네의 아테네 신전의 보고의 자금 이 상업 활동의 기금으로 중요하게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 후 델포이는 지도적인 도시 국가인 아테네를 비롯하여 스파르타· 테베 등의 영향을 받다가, 기원전 356~346년에 포키스인에 의하여 점령당하였고 신전의 보물도 약탈당하였다. 그 뒤에 제3차 신성 전쟁이 일어나 포키스인들은 쫓겨나고 다시 마케도니아 왕인 필립포스 2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를 지나면서 때때로 약탈당하다가, 크리스트교가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델포이 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특히, 로마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1세는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정하고 이교도 금지령을 내려, 390년에 마침내 델포이의 신탁소는 폐쇄되고 말았다.
 

델포이의 유적

델포이의 유적은 1892년 이후 프랑스 고고학회에 의하여 고대의 성지가 발굴되기 시작하였는데, 다행히 2세기경의 그리스 지리학자로 알려진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이 남아 있어서 유적지를 확인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직사각형 의 성소는 터가 매우 넓고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현재는 주춧돌과 계단 일부, 둥근 기둥 몇 개만이 남아 있는 아폴론 신전이 그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이 신전은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것인데, 처음에 세워졌던 아폴론 신전(기원전 7세기경)과 두 번째 세워졌던 아폴론 신전(기원전 6세기 말)은 모두 불타거나 파괴되어 기둥이나 벽돌 몇 개, 조각품 몇 개 이외에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아폴론 신전까지 뻗어 있는 신성한 길을 따라 가노라면 아폴론의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국가들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건립하여 아폴론에게 바친 기념비들과 보물 창고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보물 창고들은 대부분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이 가운데 아테네의 보물 을 보관하던 창고만은 당시의 자재들이 남아 있어서 그것들을 이용하여 현재 완전하게 복원되었다. 또 노예 해방 비문 (碑文)도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사회상이나 경제사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최근에는 5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크리스트 교회의 유적 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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