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종 때
이황(李滉)이 지은 연시조. 총 12수로 되어 있다.
지은이가 늘그막에 안동
도산 서당에서 학문에 힘을 기울일 무렵, 자연에 대한 심회와 학문과 사색에 잠기는 생활을 읊은 것이다.
모두 12수로 되어 있는데, 전 6곡과 후 6곡으로 나누어 전 6곡을 언지(言志), 후 6곡을 언학(言學)이라 하였다.
'언지'는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며, '언학'은 자기의 학문 및 덕을 닦는 실제를 읊은 것이다.
원문
<언지(言志) 1 : 자연 속에 살고 싶은 마음>
이런들 엇더하며 뎌런들 엇다하료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텨 므슴하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산다고 해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언지(言志) 2 : 허물없는 삶>
연하(煙霞)로 지블 삼고 풍월(風月)로 버들 사마
태평성대(太平聖代)에 병(病)으로 늘거가뇌
이 듕에 바라는 이른 허므리나 업고쟈
안개와 놀의 멋진 자연 풍치로 집을 삼고 밝은 달과 맑은 바람으로 친구를 삼아,
태평스런 세상에 자연과 더불어 늙어 가네.
이렇게 살아가는 중에 오직 바라는 일은 잘못이나 저지르는 일이나 없었으면 한다.
<언지(言志) 3 : 인성의 어질고 순박함>
순풍(淳風)이 죽다하니 진실로 거즈마리
인성(人性)이 어지다 하니 진실로 올흔 말이
천하(天下)애 허다 영재(許多英才)를 소겨 말슴할가
순풍(예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이 이미 사라졌다 하니 이것은 참으로 거짓말이다.
인성(사람의 성품)이 본디부터 어질다고 하니 이는 참으로 옳은 말이다.
천하의 수많은 슬기로운 사람(영재)을에게 이렇게 확실한 것을 어찌 속여 말할 수 있을까?
<언지(言志) 4 : 자연 속에 살면서 임금을 잊지 못함>
유란(幽蘭)이 재곡(在谷)하니 자연(自然)이 듯디 됴해
백운(白雲)이 재산(在山)하니 자연이 보디 됴해
이 듕에 피미일인(彼美一人)을 더옥 닛디 몯하얘
그윽한 난초가 골짜기에 피어 있으니 듣기 좋아
흰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의 경치가 보기 좋구나.
이 중에 우리 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언지(言志) 5 : 자연을 멀리하는 현실 개탄>
산전(山前)에 유대(有臺)하고 대하(臺下)애 유수(有水)ㅣ로다
떼 만한 갈며기는 오명가명 하거든
엇더다 교교백구(皎皎白鷗)는 머리 마음 하난고
산 앞에 높은 대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흐르는구나.
떼를 지어 나는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는데,
어찌하여 희고 깨끗한 갈매기(어진 사람)는 나로부터 멀리 마음을 두는고(이 좋은 곳을 떠날 생각만 하는가!)
<언지(言志) 6 :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의 모습>
춘풍(春風)에 화만산(花滿山)하고 추야(秋夜)에 월만대(月滿臺)라
사시가흥(四時佳興)ㅣ 사람과 한가지라
하믈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야 어내 그지 이시리
봄바람이 부니 꽃은 산에 가득 피어 있고, 가을밤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하구나.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가 사람과 마찬가지로다.
더구나 고기는 물에서 뛰놀고, 솔개는 하늘을 나니 흘러가는 구름은 그늘을 짓고, 밝은 태양이 빛나는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언학(言學) 1 : 독서하는 무궁한 즐거움>
천운대(天雲臺) 도라드러 완락재(玩樂齋) 소쇄(瀟灑)한듸
만권생애(萬卷生涯)로 낙사(樂事)ㅣ 무궁(無窮)하얘라
이 듕에 왕래 풍류(往來風流)를 닐러 므슴할고
천운대를 돌아서 들어가니, 완락재가 맑고 깨끗하게 서 있는데,
거기에서 많은 책에 묻혀 사는 즐거움이 무궁무진하구나.
이렇게 지내면서 때때로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새삼 말해서 무엇하리?
<언학(言學) 2 : 진리 터득의 중요성>
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여도 농자(聾者)는 못 듯나니
백일(白日)이 중천(中天)하야도 고자(고者)는 못 보나니
우리는 이목(耳目) 총명(聰明) 남자로 농고(聾瞽)갇디 마로리
우레 소리가 산을 깨뜨릴 듯이 삼하더라도 귀머거리는 듣지를 못하며,
밝은 해가 떠서 대낮같이 되어 있어도 소경은 보지를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서 귀머거리나 소경 같지는 되지 말아야 한다.(학문을 닦아 도를 깨우치며 살자).
<언학(言學) 3 : 옛 성현들의 삶을 따르려는 의지>
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 몯 뵈
고인(古人)을 몯 뵈도 녀던 길 알페 잇네
녀던 길 알페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또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옛 성현을 뵙지 못해도 그 분들이 가던 길이 앞에 놓여 있네.
가던 길(진리의 길)이 앞에 있는데 나 또한 아니 가고 어떻게 하겠는가?
<언학(言學) 4 : 학문 수양에 대한 다짐>
당시(當時)에 녀던 길흘 몃해를 바려 두고
어듸 가 다니다가 이제야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듸 마음 마로리
그 당시에 학문에 뜻을 두고 실천하던 길을 몇 해나 버려두고
어디(벼슬길)에 가서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으리라.
<언학(言學) 5 : 학문 수양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
청산(靑山)은 엇뎨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는 엇뎨하야 주야(晝夜)애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
푸른 산은 어찌하여 항상 푸르며,
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는가?
우리도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서) 저 물 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 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언학(言學) 6 : 심원한 학문 수양의 즐거움>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몯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온가
쉽거나 어렵거나 듕(中)에 늙는 주를 몰래라
어리석은 사람도 알며 실천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성인도 다 행하지 못하니, 그것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쉽거나 어렵거나 학문 수양의 생활 속에서 늙는 줄을 모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