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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독립 대동단(獨立大同團)
독립 대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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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대동단 (獨立大同團)
1919년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지원하기 위해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독립 운동 단체.
▣ 지식지도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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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과사전
1919년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독립 운동 단체.
 
널리 대동단으로 알려진 이 조직은 1919년 3월 말경에 서울시 봉익동 전협의 집에 모여서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첫째, 한국이 일본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국을 형성할 것, 둘째,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확보할 것, 셋째, 사회주의 를 철저히 실행할 것 등의 3대 강령을 내세우고, 조선 민족 대동단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다.
 
단원의 구성은 귀족·관리·유학자· 종교인·상공인·청년·학생·부녀자 등 각계 각층 11개 사회 단체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었으며,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점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경기도· 충청도·전라도· 평안도· 만주 안동현 등 국내의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여 조직을 확대하고 독립 자금을 모집하였다.
 
총재는 김가진, 군자금 등 재정 담당은 전협, 선전 및 대외 활동은 최익환 등이 맡았으며, 그 밖에 김찬규· 박영효 ·민영달 등이 참가하였다.
 
1919년 4월부터 1년 동안 선언문·진정서·포고문 등을 인쇄, 배포했으며, 특히 《대동 신보》를 제작하여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독립 운동에 힘쓸 것을 호소하였다.
 
임시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상해로 본부를 옮기려고 계획했으며, 의친왕 이강을 상해로 탈출시킬 거사도 준비하였다. 의친왕 을 수령으로 추대하고, 의친왕과 김가진 등의 이름으로 제2차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여 국내외의 관심을 끌어모아 독립운동을 촉진시키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11월 2일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으나 그 영향도 매우 컸다. 이 사건으로 1920년 12월 1심 판결에서 최익환과 전협 등 31명이 징역 6개월에서 8년까지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때 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문서 책임자 최익환, 인쇄 책임자 권태석, 자금 조달 책임자 이능우, 노동자 배포 책임자 나경섭, 일인 배포 책임자 김영철 등이다. 그 후에는 임시 정부의 나창헌 등이 대동단의 활동을 계승하여 정남용이 붙잡히기 전까지 각종 선언서·일을 꾀하는 방법과 계략·포고문 등을 등사기로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하면서 독립 정신을 북돋워 일으켰다.
 
당시 대한 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이종욱 등을 이 독립 대동단에 파견하여 활동을 지원하며 도움도 받고 있었다. 1919년 12월에 작성된 독립 대동단 규칙서는 모두 8장 45개조에 이르는 규칙과 44개 조항의 세칙이 첨가되어 있어 조직이 매우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활동하던 단원 중에는 의병장 임병찬의 두 아들과 동생 등 한 가족 이 대를 이어 조국의 국권 회복 운동에 참여하였는가 하면, 주동자의 한 사람인 전협은 한때 친일파인 일진회원으로 활동하였으나 대동단으로 변신하여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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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