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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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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관념론 (獨逸觀念論)
칸트 이후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독일을 지배했던 철학 사상. '이상이 현실을 지배한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 ' 독일 이상주의'라고도 한다. J.G. 피히테, F.J. 셸링, G.W.F. 헤겔에 의해 대표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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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독일 관념론 (獨逸觀念論)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독일을 지배했던 철학 사상. '독일 이상주의' J.G. 피히테, F.J. 셸링, G.W.F.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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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이후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독일을 지배했던 철학 사상. '이상이 현실을 지배한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 ' 독일 이상주의'라고도 한다. J.G. 피히테, F.J. 셸링, G.W.F. 헤겔에 의해 대표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시대는 프랑스에서는 계몽기에서 혁명기로 들어서는 시기에 해당되며, 근대적 인간과 근대 사회로 옮아 나가는 기운이 싹트는 때였다.
 
30년 전쟁 이후,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근대화 가 비교적 늦게 시작된 독일에서도 내면적·사상적인 영역 에서 대규모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근원적으로 근대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반성과 그 구조의 정착이 행하여졌는데, 그것이 바로 독일 관념론이었다.
 
한편, 관념론은 이상주의 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사상 영역에서 근대적 인간의 이상이 이상 속에 숨겨져 있던 관념성·추상성을 밖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독일 관념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독일 관념론의 중심적 주장은 자아 중심주의이며, 피히테는 이 경향을 일관적으로 유지하였으나 셸링은 신과 자연으로, 헤겔은 국가와 역사로 자아 존립의 장을 확장하였다.
 
독일 관념론의 시발점인 I. 칸트는 계몽 시대의 표어였던 '이성'에 대하여 전면적인 반성과 비판을 가하였다. I. 뉴턴으로 대표되는, 자연 과학을 수학적으로 인식하는 데 대한 한계를 밝히고, 이론이나 이성만으로는 신이라든지 자유·영원한 삶 등 종래의 형이상학의 과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또한, 칸트는 그것의 최종적인 해결을 근대적인 자율적 인격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실천 영역에서 해법을 구하면서, 근대적 이성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그 기초적인 구조를 뚜렷하게 하였다. 이처럼 이원론적인 칸트의 철학만으로는, 이론과 실천의 세계가 충분히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피히테는 통일적 원리로서 '자아'를 주장하였다. 피히테에 의하면 "모든 것은 그 관념성에 대하여서는 자아에 의존하며 실재성에 대해서는 자아 그 자체가 의존적이다. 그러나 자아에 대해서 볼 때 관념적인 것 없이 실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관념 근거와 실재 근거는 자아의 입장으로 볼 때는 같은 것이다." 피히테는 인간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관념론 입장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자아가 어떠한 뜻에서든 실재성의 근거가 되는 이상, 능동적 자아인 논리적 사고 능력이 실재성의 수동적 측면인 감성과 하나가 되는 장면이 자기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지적 직관이라고 했다. 또, 셸링은 일종의 무한한 신적·창조적 원리로서의 '자연'에 의거하였다.
 
'자아'이든지 '자연'이든지 간에 여기에는 선구자인 프랑스의 J.J. 루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것을 낭만적으로 그리워하는 면을 가지고 있는데, 셸링과 헤겔 둘 다 칸트의 유한적 이성의 입장은 취하지 않았다.
 
헤겔은 이러한 영향을 받아 역사·자연·사회 등을 비롯하여 형태가 있든 없든 모든 사물과 현상을 무한한 정신의 변증법적인 자기 전개와 자기 실현의 과정이라고 보는 이론 체계를 수립하였다.
 
이와 같이 독일 관념론은 칸트의 이원론적 입장을 넘어서서 일원론적인 통일적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 각기 다른 입장에서 꾸준히 시도되었으며, 헤겔에 이르러 최고점에 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헤겔은 독일 관념론의 마지막 대표자이다. 그러나 독일 관념론이 너무 대담하게 이성주의적인 입장에서 형이상학적 철학을 내세운 나머지, 헤겔이 죽은 뒤에는 그것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에서 셸링의 영향을 받아서 A. 쇼펜하워 등의 비합리주의적 철학이 나타났고, 다른 한편에서는 헤겔의 영향으로 L. 포이어바흐, K. 마르크스, F. 엥겔스 등 유물론적 사회주의 철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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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