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사찰.
국립 공원 계룡산 상봉에서 북동쪽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이 사찰은, 724년(신라 성덕왕 23) 상원조사가 조그만 암자를 세운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암자에
회의화상이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상원사'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921년(고려 태조 4)에
도선이 상원사를 다시 증축하였다.
936년(태조 20) 신라가 멸망하자, 대승관 유차달이 상원사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초혼제를 지낼 때 '동계사'를 건축하였는데, 이 때 참선하는 승려들이 많이 모여들어 사찰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후에 '동학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394년(태조 3)에는 고려 때부터 남아 있던 신하인
길재가 동학사의 승려 운선과 함께 단을 쌓아서 고려
태조와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를 위한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
이어서 1457년(세조 3)에는
김시습이 조상치, 이축과 조려 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 쌓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 유성원 등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뒤이어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이듬해인 1458년(세조 4)에는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제단을 둘러보았다. 이 때 세조는 단종을 비롯하여 안평대군·금성대군·김종서·사육신 등과, 세조 찬위로 억울하게 죽은 280여 명의 이름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하고 초혼각을 짓도록 하였다. 세조는 이를 위하여 토지를 하사하면서 진심으로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러나 1728년(영조 4) 신천영의 난으로 사찰과 초혼각이 모두 없어졌고, 1785년(정조 9)에는 정후겸이 위토를 팔아 버려 초혼제를 올릴 수 없게 되었다.
1814년(순조 14)에 월인이 예조에 글을 올려 10여 칸의 사옥과 혼록봉장각을 세우고, 1824년(순조 24)에는 홍희익이 다시 별채를 세워 인신을 봉안하였다.
1864년(고종 1)에 보선국사가 이를 모두 헐어 버리고 절 40칸과 초혼각 2칸을 다시 지었다.
초혼각은 1904년(광무 8)에 '숙모전'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가, 6·25 전쟁으로 옛 건물이 모두 없어진 것을 1975년에 다시 증축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운문사와 함께 우리 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비구니(여자 스님)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내에는 고종이 그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숙모전과 동계사 그리고 표충사와 삼은각 등이 있고, 그 외에도 대웅전·무량수각·범종각 등이 있다.
지금도 매년 2월 15일과 10월 24일에는 초혼제를 올리고 있다.
동학사는 계룡산 동쪽 입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산 너머 북쪽 계룡북사인 구룡사지에는 석당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동학사 주변에는 은선 폭포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동학사에서
갑사간까지의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등산로의 나비는 2m나 되고, 이 길의 3분의 1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천천히 걸으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 외의 관광지로는 유성 온천과 유성 컨트리 클럽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