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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
마키아벨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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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 (Machiavellism)
정치를 하는 데에 있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 술수주의 즉 남을 속이는 술책. 이 권모 술수는 일반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한 수단, 종교에 위배되는 수단일지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책도 허용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주의를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마키아벨리 가 쓴 저서에서 노골적으로 이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고 방식에 의하여 행동하는 사람을 모두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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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 (Machiavellism) 정치학 사회 과학 메디치 가 마키아벨리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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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하는 데에 있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 술수주의 즉 남을 속이는 술책. 이 권모 술수는 일반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한 수단, 종교에 위배되는 수단일지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책도 허용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주의를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마키아벨리 가 쓴 저서에서 노골적으로 이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고 방식에 의하여 행동하는 사람을 모두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말기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마키아벨리는 1513년에 《군주론》을 써서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군주란 신의가 두텁고 종교심도 깊으며 고결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한편, 권력을 유지하고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여우와 같은 간사한 술책과 사자와 같은 강제의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의는 목적만 정당하다면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모든 사물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시니시즘을 제창한 것으로 인식이 되어,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정치와 교회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의 사상과 함께, 권력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행하여지고 있는 시점에서, 근대 정치학의 초석으로 평가되고 있다.
 
《군주론》은 문체가 간결하고 수사법이 생기가 넘치고 있으며, 거침없이 써내려간 문장으로 후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 인류가 타락하지만 않았어도 이 모든 글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기술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마키아벨리가 실제적으로 원했던 것은 순수하고 선한 인간 사회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인간 현실을 감안해 볼 때 만일 권모 술수를 쓰지 않는 군주가 있다면 반드시 몰락할 것이라고 논하였다.
 
또 다른 자신의 저서인 《로마사론》에서는, 하나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비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고대 로마인이 가졌던 능력을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되살려 내고, 새로운 이탈리아 의 정치 질서 및 사회 질서를 수립하려는 그의 이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그는 먼저 낡은 관습을 없애 버리고, 강력한 지도자를 배출해 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마키아벨리는 외교, 특히 군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서, 1521년에는 《전술론》을 쓰기도 하였다. 마키아벨리에게 호의적이었던 줄리오 데 메디치가 교황이 된 이후로는, 강인하고 독창적인 자신의 정신 이 담겨 있는 작품 《피렌체사》를 집필하여 교황에게 헌정하였으며, 교황에게서 사례금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참된 뜻이 이해되지 않고, 도덕이나 종교를 부정한다는 일면만이 강조되어 그의 사상 전체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거침없는 문구 등으로 사람들에게 강력한 충격을 주고자 했던 그의 의도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마치 사탄의 화신인 양 가톨릭 반동 세력의 표적이 되었다. 로마 교황청은 마키아벨리 가 죽은 지 약 30여 년이 지난 1559년에, 그의 모든 저서를 금서 목록에 넣어서, 그가 쓴 책이 또다시 출판되고 판매되지 못하게 하였다.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는 마키아벨리 가 쓴 《군주론》이 정치가에게 악덕을 권유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1740년에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반마키아벨리론》을 써서 출간하여, 도덕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대왕은 실제로 반도덕적 정치 행위를 일삼은 마키아벨리즘의 실천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비난들로 인하여 일반 사람들은 마키아벨리가 정치가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수단이든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마키아벨리즘이 나오게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이탈리아적인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이 마키아벨리즘을 경멸을 담은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마키아벨리의 참된 뜻에서 벗어난 이러한 인식들로 인하여 마키아벨리가 마치 무슨 음모를 꾸미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고, 역사상의 모든 비열한 행위는 모두가 마키아벨리즘 의 실천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역사 철학의 창시자로서, 그 때까지 어느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부터 역사 순환론을 이끌어 낸 최초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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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