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9 ~ 기원후 4] 신라의 시조. 왕호는 거서간(居西干)이며 박씨의 시조이다. (재위 BC 57 ~ AD 4).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옛날에 지금의 경주 지방에는 여섯 마을이 흩어져 살았는데, 하루는 양산 산기슭에서 말이 울어대기에 고허촌장 소벌공이 가 보니 큰 알이 있어, 그것을 깨뜨리니 옥동자가 나왔다. 그 알이 매우 커서 박과 같다 하여 성을 박이라 하였다. 아이가 13세에 이르자 기골이 빼어나고 매우 영특하여 여섯 마을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받들었다 한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나라 이름을 ‘서나벌(徐那伐 : 《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유사》에는 ‘서라벌’로 기록되어 있음)’이라 하고, 서울을 ‘금성(金城)’이라 하여 그 곳에 궁궐을 지었다 한다.
기원전 53년에 왕비를 맞아들여 왕비와 함께 여러 마을을 순시하면서 농사와 누에치기를 장려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