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 ~ 1970]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브레슬라우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 취리히 대학·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한 뒤, 케임브리지 대학· 시카고 대학에서 연구하고 괴팅겐 대학에서 D. 힐베르트 와 H. 민코프스키로부터 당시로서 가장 앞선 수학을 배웠다.
힐베르트는 《기하학의 기초》에서 공리주의를 주창하고 불변식론·대수적 정수론·적분 방정식 등을 연구하였으며, 민코프스키는 기하학적 정수론을 발전시키고 '민코프스키 공간'이라는 개념을 제창하여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기초가 되게 한 대수학자들이다.
보른은
아인슈타인과 친한 벗이 되어 그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1907년에 아인슈타인의 착상에 기초를 둔 고체 비열의 이론을 T. 카르만과 함께 발전시켰다. 카르만은 카르만 소용돌이, 고속 기류의 이론 및 탄성론 등의 업적을 남긴 미국의 응용 역학자이다. 이 이론은 뒤에 보른이 격자 역학과 양자론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보른은 1915년에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919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25에 출판되어 나온 《결정 격자의 역학》에서는 그 동안 연구한 결정 물리학 등의 결과를 발표하였다. 1921년에는 괴팅겐 대학의 이론 물리학 교수가 되었으며, J. 프랑크 와 함께 원자 구조를 연구하여 괴팅겐 그룹을 형성하였다. 여기에는 W. 파울리, W. 하이젠베르크, P. 요르단, E. 페르미, P. 디랙, J. 오펜하이머, M.G. 마이어 등이 참가하여 양자 역학과 핵물리학을 연구하였다.
보른은 괴팅겐 대학을 코펜하겐 대학· 뮌헨 대학과 함께 양자론 연구의 세계 3대 대학으로 만들었다.
1925년에는 그의 조수였던
하이젠베르크가 양자 역학에 대한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자, 보른은 1925~1926년에 하이젠베르크, P. 요르단과 함께 그것을 수학적 공식으로 발전시켜 행렬 역학 형태의 양자 역학으로 완성시켰다.
1926년에는 에르빈 슈뢰딩거가 드 브로이의 물질파 이론 을 발전시켜 파동 역학을 전개시킴으로써 슈뢰딩거 파동 방정식을 수립하여 발표하자, 보른은 그 방정식의 해가 지니는 물리적 중요성은 통계적인 면에 있다고 설명하고 통계적 해석을 충돌 과정의 보기로 나타내었다. 이것은 이듬해인 1927년에 N.H.D.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양자 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확립하는 데에 길잡이가 되었다.
또한 보른 근사법을 소개하였는데, 이것은 원자 입자의 산란에 관련된 문제를 풀 때 이용하는 기법이다. 그리고 J. 로베르트 오펜하이머와 함께 분자의 전자 구조를 다룰 때 이용하는 간편한 계산법을 고안하여 냈다.
1933년에 나치스에 의하여 괴팅겐 대학에서 추방당하여 영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보른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강사 등을 거쳐 1936년에는 에든버러 대학의 자연 철학 교수가 되었고, 1939년에 영국 영주권을 얻었다. 1953년에 70세의 나이로 정년 퇴직한 후에 말년에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
러셀-아인슈타인 선언과 서독의 핵 무장에 반대하는
괴팅겐 선언에 참여하였다.
1954년에 파동 함수의 통계적 해석의 업적으로 독일의
발터 보테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양자 역학· 원자 역학· 상대성 이론·결정 격자·광학 등의 분야에 관하여 20권의 책과 30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