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북도 울진군 서면 하원리 천축산에 있는 절. 651년(진덕왕 5)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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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북도 울진군 서면 하원리 천축산에 있는 절. 651년(진덕왕 5)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천축산이라는 지명은 절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과 비슷해서 생긴 이름이다. 당우로는 대웅보전·근락전· 응진전·명부전·조사전·칠성각·관음전·영산전·황화당·설선당·범종루·응향각·칠령각 등이 있고, 창건 당시부터 있던 무영탑과 돌거북 2 기도 유명한 문화 유적이다.
유백유가 지은 『천축산불영사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절의 창건 동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의상이 경주로부터 바닷길을 따라 단하동에 들어가서 해운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저리 좋은 절터를 찾아 풍수를 감상하면서 북쪽을 바라보니, 인도의 천축산을 똑같이 본딴 듯한 지세가 보였다. 또한, 맑은 냇물 위로는 다섯 부처가 물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비쳤다고 한다. 신기하게 여긴 의상은 그 곳으로 내겨가서 모습 주위를 잘 살펴보니, 독룡이 살고 있었다. 의상은 독룡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곳에다가 절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독룡은 의상의 말을 듣지 않고 훼방을 놓으려고만 하였다. 이에 의상은 신비로운 주문을 외워 독룡을 쫓아 낸 뒤 용이 있던 연못을 메워 절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서쪽에 있는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의 그림자가 항상 그 연못에 비친다고 한다. 그리하여 절의 이름은 천축산 불영사라 불리우게 되었다.
676년(문무왕 16)에는 의상이 불영사를 향해서 가다가 한 선사촌에 들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한 노인이 부처가 왔다고 하면서 몹시 기뻐하며 반가움을 표시하였다. 이 때부터 그 마을 의 사람들은 부처님이 돌아오신 곳이라는 뜻으로 불귀사(佛歸寺)라고 불렀다고도 전하고 있다. 의상 대사는 이 절에서 9년간 머무르며 수행을 하였으며, 후에 원효 대사도 이 절에서 의상과 함께 생활하였다. 나중에 청련전과 무영탑료는 각기 환희료와 환생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문명이 지은 『환생전기』에 보면, 한 부인이 비명 횡사한 남편을 살리기 위해 관을 탑전에 옮겨 기도를 하였고, 지극한 정성으로 인해 남편이 환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그 때부터 그런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1397년(태조 6)에 화재 를 입었으나 소운이 중건하였다. 그 후 다시 소실되어 1500년(연산군 6) 양성 법사가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도 병화를 입어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응진전만은 피해를 면하였다. 그 후 1609년(광해군 1) 진성 법사가 다시 재건한 바 있으며, 1721년에는 천옥에 의해 중건되었다. 계속해서 여러 승려들의 손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데, 혜능은 요사채를 신축하였으며, 재헌과 유일은 원통전을 중수하고 청련암을 이건하였다. 1899년, 1906년에 설운이 절을 다시 중수하였으며, 이 때 선방도 새로 지었다.
불영사의 동쪽으로는 삼각봉, 아래에는 좌망대와 오룡대, 서쪽으로는 부용성·학소대가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향로봉·청라봉·종암봉이 있으며 북쪽에는 금탑봉· 의상대·원효굴·용혈이 있다.
【문화】불교에서는 동지팥죽에 얽힌 설화가 있다. 갑오년(1892) 동지 날에 있었던 일이다. 경북울진 불영사 공양주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팥죽을 쑤려고 부엌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살펴보니 불씨는 꺼지고 재만 남아 있었다.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하는데 절 안에 남은 불씨는 없고, 언제 불을 지펴 죽을 쑬 지 공양주 스님은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문화】조선 숙종의 왕후인 인현왕후 민씨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따님으로 30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인경왕후의 다음 왕비로서 대비전이 친히 중전으로 간택한 왕후이며, 가례를 지낸지 6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으므로 크게 걱정하여 스스로 왕께 후궁을 간택할 것을 아뢰었으나, 왕께서는 왕후의 나이가 어림을 이유로 후궁을 맞기를 주저하니, 몇 차례의 간곡한 아룀에 마지못하여 후궁 간택의 전교를 내리고 희빈 장씨를 맞이하였다.
【문화】불영사(佛影寺)는 울진군 서면 불영사길 48 천축산(天竺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불영사가 자리한 불영사 계곡은 명승 제6호로 지정된 15㎞에 이르는 길고도 장엄한 계곡이다. 예전에는 워낙 교통이 불편하여 찾는 이가 많지 않았으나 1985년 불영사 계곡을 끼고 달리는 36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문화】- 백극재란 인물이 울진 현령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내려가던 중 급서했는데, 그의 아내가 불영사에서 관을 놓고 지극히 기도하자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
옛날 광산 백극재 선생이 울진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임지로 내려가는 도중 갑자기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문화】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화엄법회를 열고 교화에 힘쓸 때였다. 어느 날 노인 한 사람이 8명의 동자를 데리고 의상대사를 찾아왔다. 『대사시여! 우리는 동해안을 수호하는 호법 신장이옵니다. 이제 인연이 다하여 이곳을 떠나면서 스님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문화】- 백극재란 인물이 울진 현령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내려가던 중 급서했는데, 그의 아내가 불영사에서 관을 놓고 지극히 기도하자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
옛날 광산 백극재 선생이 울진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임지로 내려가는 도중 갑자기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문화】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화엄법회를 열고 교화에 힘쓸 때였다. 어느 날 노인 한 사람이 8명의 동자를 데리고 의상대사를 찾아왔다. 『대사시여! 우리는 동해안을 수호하는 호법 신장이옵니다. 이제 인연이 다하여 이곳을 떠나면서 스님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문화】조선 숙종의 왕후인 인현왕후 민씨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따님으로 30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인경왕후의 다음 왕비로서 대비전이 친히 중전으로 간택한 왕후이며, 가례를 지낸지 6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으므로 크게 걱정하여 스스로 왕께 후궁을 간택할 것을 아뢰었으나, 왕께서는 왕후의 나이가 어림을 이유로 후궁을 맞기를 주저하니, 몇 차례의 간곡한 아룀에 마지못하여 후궁 간택의 전교를 내리고 희빈 장씨를 맞이하였다.
【문화】불교에서는 동지팥죽에 얽힌 설화가 있다. 갑오년(1892) 동지 날에 있었던 일이다. 경북울진 불영사 공양주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팥죽을 쑤려고 부엌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살펴보니 불씨는 꺼지고 재만 남아 있었다.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하는데 절 안에 남은 불씨는 없고, 언제 불을 지펴 죽을 쑬 지 공양주 스님은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문화】불영사(佛影寺)는 울진군 서면 불영사길 48 천축산(天竺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불영사가 자리한 불영사 계곡은 명승 제6호로 지정된 15㎞에 이르는 길고도 장엄한 계곡이다. 예전에는 워낙 교통이 불편하여 찾는 이가 많지 않았으나 1985년 불영사 계곡을 끼고 달리는 36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