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치인의 집단을 일컫는 말. 주의와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로 결합된 배타적 정치 단체이다. 중국에서 관료는 개개인이 천자에 예속되는 것이라 하여, 관료가 횡적으로 결합해서 당파를 만들 때는 붕당이라 하여 처벌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중기에 이루어진 사림의 집단으로서 서로 대립하고 공존하면서 정치를 이끌어 왔다.
15세기 말 이후 지방에서 성장하여 중앙에 진출한
사림파(士林派)는
훈구파(勳舊派)로부터의 심한 탄압을 이겨 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뒤 중앙 정계를 장악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과
동인으로 분파되었다.
분파된 이유는 당시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훈구 정치를 어떤 속도와 방법으로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선후배 세대 간의 입장 차이에 있었다. 또 사회적으로는 중앙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관직을 둘러싼 경쟁 이 집단화되어 나타난 현상이었다. 학문과 정치가 결합된 상황에서 붕당은 학통의 차이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많은 분기를 보이면서, 정치 세력 결집과 권력 행사에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18세기 중반 영조와 정조 때에는 왕의 절대성을 추구한
탕평책(蕩平策)으로 말미암아, 정치 세력이 국왕의 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재편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신료들 내부의 쟁점과 입장 차이를 두고 대립한 기존 붕당 의 변질을 뜻하는 것이다.
붕당은 한때 조선의 망국을 가져온 원인으로 비판되었으나, 나름대로의 정제된 이념과 정치 운영 장치를 갖추고 폭넓은 여론을 반영하여, 후대로 내려와서는 사회 정책에도 독자적 입장을 지닌 정치 집단이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군주제 틀 안에서 지배 세력을 이해하는 데 그침으로써 현대 민주 정당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송(宋)의 인종(仁宗 재위 1022~1063) 때 구양수(歐陽修)는 《붕당론》을 저술하여 소인의 당은 영속되지 못하고 군자의 결합만이 영속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