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의 노략질은 역대 우리 조정의 골칫거리였는데, 조선 시대에 들어와 세종은 이를 근절시키기 위해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그러자 왜구를 뒤에서 조종하던 일본의 영주들은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 교역을 제의해 왔다.
이에 세종은 교린 정책의 하나로 그들에게 부산포, 제포, 염포의 세 항구(삼포)를 열어 교역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뒤 다시
계해약조를 맺어 삼포에 드나들 수 있는 배의 척수와 머물러 살 수 있는 일본인의 수, 무역량 등을 한정하였다.
그러나 삼포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는 점점 늘어나 그것이 뒷날
삼포 왜란의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