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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에게해(Aegea海)
에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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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 (Aegea海)
그리스 동부에 있는 바다의 이름. 동서의 길이는 320㎞이고, 남북의 길이는 640㎞이며, 전체 면적 은 약 21만 4,000㎢이다. 동쪽은 소아시아 반도, 서쪽은 그리스 본토, 남쪽은 크레타섬, 북쪽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지방과 트라키아 지방이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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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동부에 있는 바다의 이름. 동서의 길이는 320㎞이고, 남북의 길이는 640㎞이며, 전체 면적 은 약 21만 4,000㎢이다. 동쪽은 소아시아 반도, 서쪽은 그리스 본토, 남쪽은 크레타섬, 북쪽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지방과 트라키아 지방이 둘러싸고 있다.
 
에게해의 북동쪽으로 다르다넬스 해협·마르마라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례로 거치면 흑해와 만난다. 그리스어로는 '아이가이온 펠라고스'라고 한다. '에게'라는 이름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인 '아이게우스', 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성지인 '아이가이'에서 왔다고 한다.
 
에게해는 아시아와 유럽의 가운데 있다. 또, 역사상 처음으로 고대 문명이 탄생한 이집트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기원전 2000년 무렵 이 곳에서는 '에게 문명'이 탄생하였다. 그 후 에게 문명이 사라지고 암흑 시대를 거치고 나서 기원전 800년 무렵 그리스 문명이 발생했을 때 에게해는 다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바다의 연안을 중심으로 생활해 왔다. 에게해는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이 화근이 되어 주변 민족들의 싸움터가 되기도 했다.
 
그리스 문명이 쇠퇴하고, 로마·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겪은 뒤 15~16세기에 일어난 베네치아- 투르크 전쟁으로 에게해의 거의 모든 섬은 투르크 제국의 땅이 되었다.
 
19세기에는 러시아가 이 곳을 발판으로 삼아 다른 나라를 지배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1832년 그리스 왕국이 세워지면서 스포라데스 제도와 키클라데스 제도가 그리스 영토가 되었고, 1913년에는 크레타 섬과 도데카네스 제도도 다시 그리스 에 속하게 되었다.
 
에게해에서 기원전 2000년 무렵에 탄생한 문명을 '에게 문명'이라고 한다. '에게 문명'은 세계 고대 문명의 하나로, 크레타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의 남부, 소아시아 서해안의 트로이 등에 걸쳐 있다. 이 문명은 '미노아 문명'과 그리스 본토· 트로이에서 발생한 '미케네 문명'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이 문명은 19세기 중반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독일의 고고학자인 슐리만 이 트로이· 미케네를 발굴하고, 영국의 고고학자인 에번스가 크레타섬의 크노소스를 발굴하자 에게해 일대에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미노아 문명'은 크레타섬에서 발생하였다. 그 후 기원전 2000년 무렵에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즉, 정교한 도자기가 제작되었고, 크노소스에는 미노스왕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세워졌다. 이 궁전을 크노소스 궁전이라 하는데, 여러 개의 방과 복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미로와 같은 인상을 준다. 이 궁전은 기원전 16세기에 두 번 파괴되었다. 원인은 지진 때문인지 아니면 이 무렵에 이집트에서 추방된 힉소스족의 침입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기원전 1400년 무렵 크노소스 궁전은 파괴되어 세워지지 않았고, 미노아 문명 은 끝나게 되었다. 미노아 사람들은 에게해를 무대로 활발하게 해상 무역을 하였다. 그들은 우수한 건축가였고, 기술자였으며, 또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가 성벽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서 크노소스 궁전 주변에 성곽을 건설하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는 지중해 동부 일대와 로마의 시칠리아까지 수출되었다. 정치는 전제적인 왕이 맡아서 통치하였는데, 잘 조직된 관료제 가 있었다고 한다.
 
미노아 문명이 처음 발생했을 때 크레타섬 에는 작은 왕국들이 많이 있었으나, 기원전 16세기에 크노소스의 왕이 섬 전체를 통일하여 지배하였다. 사회의 분위기는 부유하고 활기찼고, 상류층은 축제와 스포츠를 즐기면서 쾌적한 생활을 했다. 지금까지 노예의 집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노예 계층이 있었는지는 의심스러운데, 커다란 궁전을 세울 때 상당히 많은 노예가 동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술은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곧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예술의 주제는 그들에게 번영을 가져다 준 바다와 약동하는 자연, 그리고 즐거운 축제와 스포츠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름답고 정교한 도자기들과 궁전의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 있다. 이 벽화 에는 ' 파리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매우 개성적인 여인의 그림이 있다.
 
'미케네 문명'은 그리스 본토와 트로이에서 탄생했으며, 미노아 문명을 받아들여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5세기에는 미케네가 크노소스를 지배하였고, 미노아 문명이 사라진 후 미케네가 에게해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 후 기원전 12세기에는 도리아족에 의해서 미케네 문명 도 사라졌다. 미케네는 미노아에 못지 않게 번영하였다. 즉, 왕족을 위해서 커다란 원형 분묘를 지었으며, 도시 주변에는 커다란 돌로 튼튼한 성벽을 세웠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미케네는 미노아와는 달리 군사적인 성격이 강한 나라였다. 정치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왕이 다스렸는데, 왕은 넓은 토지와 가축을 소유하였으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의 전제 군주에 비하면 힘이 약한 편이었다. 사회 구조 는 제일 위에 왕이 있었고, 그 아래에 귀족적인 전사 계급, 관료, 상인과 농민들이 있었으며, 최하층에는 노예가 있었다. 생산은 농업과 목축이 주를 이루었으며, 수공업 도 발달하였다. 나라 안에서 물품을 사고 파는 일은 별로 없었으나, 다른 나라와는 매우 활발하게 교역하였다. 페니키아 · 히타이트· 이집트와도 교역하였다고 한다. 예술은 기본적으로는 미노아 예술을 계승했으나, 예술의 주제는 전쟁과 사냥 이었다. 에게해는 그리스 문명을 탄생시킨 곳으로, 독특한 지리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지형이 매우 복잡한데, 바다라고 하기보다는 지중해가 육지로 쑥 들어가 있는 만(灣)과 같다. 에게해는 맑고 푸른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400개나 있어서, 이에 따라 다도해라고도 부른다. 군도(群島)를 뜻하는 '아르키펠라고'라는 말도 처음에는 에게해에만 사용되었다.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에게해의 섬들이 마치 나일강이 범람하여 그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집들과 비슷하다고 했다. 유럽 역사가 시작될 때 이 섬들은 이 지역 사람들과 3개 대륙에 있던 사람들을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해안 전 지역에 널려 있는 만과 항구, 그리고 작은 시내들은 선원들이 에게해를 항해할 때 쉼터가 되어 주었다. 중요한 섬으로는 가운데에 있는 델로스섬이 중심인 키클라데스 제도, 동부의 스포라데스 제도,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이탈리아로부터 되돌려 받은 도데카니소스 제도, 남부의 크레타섬 등이 있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인 크레타섬 과 카르파토스섬· 로도스섬은 그리스에서 소아시아의 터키 해안으로 가는 큰 징검다리가 된다. 소아시아 반도 에 가까운 동해안 부근의 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섬들이 그리스에 속한다. 그러나 후진국인 그리스의 정치력으로는 모든 섬들을 다스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다도해 통치가 매우 어렵다. 다음의 지리적인 특성은 해안선이 매우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지중해의 어떤 다른 지역도 이처럼 해안선이 발달되어 있지는 않다. 바다 위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기 때문에 바다 밑의 지형도 복잡하다. 깊이가 2,000m가 넘는 깊은 곳이 있는가 하면 깊이가 수십 m밖에 안 되는 얕은 곳도 있다. 에게해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크레타섬의 동쪽으로, 깊이가 3,543m에 이른다. 에게해 의 바닥은 주로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비교적 최근에 이 지역을 진동시켰던 화산 활동에 의해 성분이 많이 바뀌었다. 에게해에는 지질 구조상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키클라데스 제도로, 가장 남쪽에 있는 티라섬에는 1925년에 폭발한 화산이 있다. 에게해는 지중해와 마찬가지로 가장 쓸모 없는 바다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바닷속의 영양 상태는 대체로 빈약한데, 흑해에서 소금기가 적은 바닷물이 흘러 와서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지중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이 곳의 해양 생물은 지중해 서쪽 해분의 북쪽 지역에 있는 해양 생물과 아주 비슷하다. 영양 상태는 좋지 않지만, 바닷물이 깨끗하고 난류가 있기 때문에 한창 번식기에 많은 양의 고기들이 에게해로 몰려든다. 이러한 고기들은 다른 바다에서 흘러들어오는데, 특히 흑해에서 많이 들어온다. 에게해 해분의 조류는 대체로 지중해 동쪽 조류의 움직임을 따르는 듯하다. 바닷물 온도 는 흑해에서부터 북동쪽으로 흐르는 온도가 낮은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다. 깊이가 약 480m 되는 곳의 온도는 14~18℃이나 해수면에서는 약 14℃로 일정하다. 에게해 지역의 주민 은 고대 그리스인의 후예는 적고 대부분이 혼혈이다. 이들은 대부분 영세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에게해 지역 의 평야 지대는 레스보스·키오스· 로도스·크레타와 같은 보다 큰 섬에 있으며, 비옥하여 곡물 재배가 잘 되는 편이다. 그러나 다른 섬들은 바위 투성이로 매우 황폐하며, 계단식 땅에 빈약한 토양이 조금 있을 뿐이다. 주요 생산물은 밀· 포도주· 기름· 유황· 건포도·벌꿀· 야채· 무화과 이다. 어업도 중요한 사업으로, 산호·해면(海綿)이 산출된다. 에게해에는 북풍이 지배적이지만, 겨울 기간인 9월 말부터 5월 중순에는 보다 따뜻한 남서풍이 분다. 기후가 따뜻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섬들은 관광 휴양지로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한편으로 겨울 바다는 매우 거칠어 교통이 끊기는 등의 이유로 아직도 개발이 안 된 곳이 있다. 이런 곳들은 대부분 아직까지 전통적인 풍습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인 크레타섬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맨발로 살고 있다. 에게해에서 번영했던 선사 시대 문명 유적지들과 흰색 도료를 칠한 주택, 그리고 수공예품이 있는 마을들에 매료된 관광객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관광업의 수익도 늘어나고 있다. 아테네·피레우스로부터 항공기나 관광선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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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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