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 ~ 1936]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 민국에 걸친 근대 중국의 혁명 운동가. 호는 타이옌〔太炎〕이고 저장성〔浙江省〕 위항〔余杭〕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고증학을 배우고 역사 제도를 연구하였으나,
청일 전쟁 다음 해부터 정치 운동에 뛰어 들었다. 1900년의
의화단 운동을 계기로 민족주의 혁명을 결심하였으며, 1902년 일본에서 '지나 망국 242년 기념회'를 열려다가 저지 당하였다. 그는 중국의 문제들이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1903년 《소보(蘇報)》에 한민족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호소하는, 청나라에 반항하는 논조의 글을 실어 투옥당하였다. 1906년 출옥하자 일본으로 가서 쑨 원〔孫文〕이 동경에서 조직한 혁명 조직인 동맹회에 가입하고, 혁명파의 중앙 기관지 《민보(民報)》의 주필이 되었다.
신해혁명 직후인 1911년 11월 중국으로 돌아가 중화 민국 연합회를 조직하였으며, 중화 민국의 총통
위안 스카이〔袁世凱〕에게 희망을 걸고
쑨 원·
황 싱〔黃興〕 등 혁명파를 과소 평가하여 그들과 갈라섰다. 그러나 뒤에는 위안 수카이에게 반대하여 유폐당하였으나, 계속 그를 비판하다가 1916년 그가 죽자 석방되었다. 석방 후
쑨 원이 새로 수립한 혁명 정부에 잠시 가담하였다가, 1918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그 뒤 후진을 지도하는 한편 저술에 전념하였다. 신문화 운동에 비판적이어서 지식인들과 대립하였으나, 말년에 일본의 침략이 격심해지자 국민 정부를 비판하면서 항일을 주장하였다.
쑨 원·
황 싱과 함께 혁명 삼존(革命三尊)이라 불리며, 유학자로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