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대궐의 호위를 맡아 보던 군대. 종전의 숙위소(宿衛所)를 폐지하고 새로운 금위 체제(禁衛體制)에 따라 개편한 군대이다.
1784년 정조는 생부인 사도 세자의 존호를 장헌 세자로 바꾸고, 이를 경축하기 위하여 특별 과거를 실시, 무과에서 무려 2,000여 명을 합격시켰다. 이듬해 홍복영(洪福榮)의 역모 사건이 일어나자, 국왕의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이 과거에 합격한 무사들을 흡수하여 장용위(壯勇衛)를 설치하였는데, 정예 군사 약 500명을 5대(隊)로 나누어 군대를 조직하였다.
1793년에는
장용위의 규모를 확대해서 하나의 군영으로 발전시키고 장용영이라고 하였다. 장용영은 도성(都城) 중심의 내영(內營)과 그 외곽인 수원· 화성(華城) 중심의 외영(外營)으로 편제하였다. 이로써 장용영은 기존의 5군영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규모는 5사(司) 23초(哨)의 편제를 갖추었고, 장용영의 대장인 장용사가 이를 지휘하였다.
이 장용영은 처음 설치할 때의 목적이 왕권을 강화하는 데 있었으므로, 중앙 집권적인 5위 체제를 도입하여 강력한 왕권의 상징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한 이듬해인 1802년에 폐지되었다.